1. 지리산 산행


친구가 지리산 산행을 하자 했다. 이러저러하게 생각을 해서

알려주었더니 일이 생겨서 어려우니 다음 기회에 하자 한다.

친구와 함께 지리산 다녀오고 또 산악회 지리산 산행을 하려

했었는데 친구와의 계획이 무산되니 산악회를 통해 한번만

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방송을 보니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태풍 민들레가 지나가고 나자 장마가‘소강’상태에

들었다 한다. 지리산 종주를 위해서는 장마가 빨리 와서

빨리 끝나길 바랄 뿐 이였다. 장마의 끝자락이 산행시작하는

때에 걸려 있다. 조금은 염려되었지만 그래도 괜찬을

거라고 낙관하는 이유가 있다.

노고단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산의 능선을 타고 길을

따라 가면 되기 때문이다. 비온 날 또는 비내린 다음날

산행을 하더라도 계곡을 타고 산행한다면 이건 무척이나

염려스럽다. 내린 비는 물의 속성상 아래로 흐르는데

계곡에서 이물과 저물이 만나고 작은 물이 또 다른

작은 물을 만나 큰물을 이루면서 멀리서 본다면 물의

흐름과 물의 소리는 장쾌하지만 그 곁을 지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선을 탄다는 것은 흐르는 물을 아래로 보니

안전하다.

산행신청을 하고 며칠 후 조편성이 되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조장이 낸시김으로 그는 자신이

김치찌개를 아주 잘한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신김치에

돼지고기 또는 비계 조금과 함께 넣고 끓이는 김치찌개는

아주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다. 게다가 신김치의 신맛이

찌개로 끓여졌을 때 느껴지는 그 뜨거운 시원한 맛은

맑은 공기를 함께 마시며 먹는다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였다.

그런데…

입금을 하고 카페에 들어가 보니 이건 무슨 일인가!?

조구성이 개편되었다. 먹구름이 끼어 있는 형상이다.

평소 내몸하나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이에게

조장이라니…

일반 산행도 아니고 지리산 산행, 그것도 종주산행인데

조원들에게 짐이 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또 조장이라니…

집을 나서는데 부모님의 염려가 아주 크다.

어머님은 염려가 크시고 그래도 아버님은 속내를

보이시지 않았다. 부모님의 염려를 받고 도착한 사당은

참가자들이 아쉽게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과의 환송으로

내리는 비 보다 더 젖어 있는 듯하다.

언제부턴가 그랬듯이 예정시간보다 아주 늦게 출발했다.

중간중간에 몇몇 회원들을 더 태우니 버스는 가득찼다.

도착한 노고단, 안개가 자욱한데 수많은 산악 애호인들이

다모였다 싶을 정도로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차량의

불빛과 혼잡한 소리의 덩어리에 나도 하나가 되었다.

성삼제에서 아침을 먹고 연하천에서 점심을 한다하니

잰걸음으로 움직여야 했다. 처음 나온'에비씨'가 부지런히

가더니 취사 준비를 능숙하게 한다.

라면에 밥넣고 죽인지 밥인지 애매모호 한 것이

꼭 무슨밥(?)이다. 무슨 다른 격식이 필요 없다.

그져 잘먹고 우리의 목적인 안전한 산행을 한다.

성삼제는 아무것도 보여주질 않는다. 안개가 짙기

때문이다. 전같으면 저쪽 화엄사 방면으로 운해가

최상품의 융단처럼 깔리고 그위로 맑고 푸른 하늘이

보였을 텐데 감추어져 있다. 돌탑이 보일만도 한데

보이지도 않는다. 성삼제 정상은 흰 치마 저고리를

휘감은 여인처럼 아주 것도 보여주질 않는다.

경사져 오른 모습에 푸르른 풀밭이 아주 멋있었을

터인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쉬움보다는 늦게

도착해 늦은 출발을 한터라 서둘러야 했다.

앞선 이들의 꼬리를 물고 간다.

아침인데도 아직은 새벽과 같다. 안개속에 나뭇잎 사이로

푸른 새벽을 몰고 와있다.

산행이 초반부터 더디기만 하다. 사람이 많이 몰려서

그런가 했더니 반드시 그것 많은 아닌 것이

앞선 이들 앞에는 또 어린 산행자들이 있었다.

조금의 쉼터가 나오니 그네들이 쉬면서 길을 내어주었다.

조금은 산행 속도가 난다. 질은 길, 축축히 젖어

미끄러워 보이는 바위, 간간이 떨어지는 나뭇잎에

있는 빗방울들이 전에 와 보았던 지리산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산의 능선을 탄다하지만

대부분이 숲속을 걸어간다. 숲속은 어둡고 산의

정령들의 손길을 대신한 듯이 나뭇잎을 내밀어

지나가는 나를 우리를 모든이들에게 축복하듯이

우리의 어께를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산행 잘하라고 조심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다 뒤로 넘어졌다.

앞사람의 뒤만 보다 왼발이 바위 뿌리에 걸리는 것을

감지 하지 못했다. 뒷사람의 도움으로 일어났다.

그런 숲속을 한참을 지나 가다 보니 안전이 밝아 지고

조금의 넓은 터가 보이고 무언가 모를 또 다른

확트임을 준다. 그래도 안개는 여전히 짙어 산하를

보여주질 않는다. 아쉽다. 길이 비로 인해 쉽지 않다.

거의 땅만 보면서 가느라 어떻게 가는지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가면서 쉬면은 여지없이 행동식이 나온다.

어떤이가 사탕을 주면 다른이는 초콜렛을 또 어떤이는

오이를 주고 받으며 서로는 주는 데서 산을 통한 그들의

사랑함을 느끼는 듯하다. 또 얼마를 걸었나 넓은 터에

쉬는 사람들이 있다. 임걸령샘이다. 비로 인해 샘물은

아주 많이 흐르고 시원하기가 그지 없다. 샘 입구에서

술한병이 열렸다. 조금씩 먹고 마시는데 까피가 어떻게

아침부터 술을 먹냐며 마다한다. 아침이지만 술을

마셔야 하는 의미가 체온 유지의 의미라면서

주위에서 재차 권하자 한잔 받는데 그 표정이

너무도 재미있다.

'마시면 안돼는데 조금이라니까 먹어요

아침부터 술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산행을 위해서니까 마셔요 그런데 마시니까 아주 좋다

조금 더 마실 수 있다면 좋겠는데..' 하는 표정이

한꺼번에 나온다. 주위에서 권하지 않았다면 훗날

무척이나 아쉬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다른 모습일까? 전에 와보았을 때 느끼고

본 기억속의 지리산 모습과 많은 부분 연결이

되지않는다. 여름에 와 보았고 초가을에 와 보았고

했었는데 비가 와서 그런가 많은 풍경이

연결되지 않는다. 삼도봉에서 쉽지가 않은 것이

사진을 찍으려 하니 이도 못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안전을 생각한 대장님의 염려로 우의를

걸치고 얼른 다시 산행길에 올랐다. 토끼봉이였던가?

비스듬한 고사목과 바람에 흐르는 안개의 모습이

아주 그럴 듯 하다. 숲을 지나오는데 산중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소리가 요란하다. 넓어지는 터에 벽소령

산장이 자리한다. 스티븐님과 까피님의 수고했다는

소리를 들으니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것같다.

몇몇 회원들에게서 발과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찜질 로션을 바르고 몸을 살피고 한다.

까피님은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관리한다.

서희님도 그랬다.

벽소령의 장관이란 두눈 가득히 채울 수 없는

산의 그 가득한 푸르름일 것이다. 안개로 인해

볼수 없었다. 이건 당연히 아쉬운 것이다.

선비샘에서 세석가는 길의 삼분지이를 지났을까?

계단을 한참올라 전망대에서 쉬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비려니 했더니 이건 지나가는

비가 절대로 아니다. 빗방울의 굵기와 소리가 내려

꽂힌다. 우의를 다시 입고 가는데 발이 젖는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산장에 도착하니 산장 밑에서

비를 피하는데 등산객들이 어쩔줄을 모른다.

김상호씨가 산행의 잰걸음으로 와서 일착으로

식사를 끝냈는데 조금 남은 음식이라도 감사하다.

비가 계속오는데 산장은 바글바글하다.

멀리서 보았다면 먹을 것을 발견한 개미들의

부산한 움직임 처럼 느껴졌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자리를 잡기 위한 고충은 전쟁으로 표현할 만 했다.

자리를 배정하는데 경로우대의 정신에 입각해서

하였다. 그래도 잠자리가 모자랐다.

마냥 대기 하고 있는데 여자회원-

너무 피곤해서 누군지 기억이 안나는 점에
그 여자분에게 미안한 맘 전한다.-

하나가 와서 이야기 해주었다.

올라올라님과 선경나라님이 맡은 두자리가

있는데 그리로 옮기라 하였다. 두분 덕에

좋은 자리에서 자게 되었구나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김양규대장님은 회원들에게

신경쓰다 보니 정작 자신의 자리는 확보가

되지 못한 모양이였다. 이자리를 양보하고

산장내 잠자리를 돌아 다녀 보았다.

정말 재미있는 모습들이다. 예약한 사람들이

나가 식사를 하는지 연회를 하는지 자리

주인이 없었다. 없으면 차지하고 자면 된다면서

두사람의 목소리가 빈곳을 차지했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예약자가 왔다.

자리를 비워 줄 것을 요구했다.

둘의 목소리가 그랬다.

“어떻게 예약했어요? 정말 대단해요!”

그러자 원 예약자의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비켜주면 되지

그런 소리는 왜 해요?”

구렁이 담넘어 가는 소리와 매의 날카로운

소리의 신경전이 일어났다. 또 어느 곳에서는
하필 자기 옆에서 잔다고 투덜투덜 거리는

소리가 있었다. 옛날 같이 부대껴서 자는

모습은 전혀 없는 듯하다. 산장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그런지 누워있어도 추운 느낌이

없었다. 요가 필요 없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열기를 내뿜으며 자니까 이불이

그렇게 필요는 없었다. 새벽녁에 대장님 옆에

조금 틈이 나기에 옆에 가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아침이 깨운 것이 아니라 대장님이 깨웠다.

이 나이에 누가 깨워서 일어나야 한다니…

일어나서 출발 전에 산행 수정사항을 이야기

했는데 아침님이 변경코스 가이드로 간다 했고

스티븐님이 밀어 부쳤다. 대원사 코스로 전원

간다고. 운무님이 장터목까지 무척 힘들어

하셨는데 장터목에서 괜찬아 지셨다.

우리 어머님이 내가 중고생때 씻지 않고

그럴 때 하신 말씀이 있다.

어린놈이 씻기만 해도 멋있는데 왜 안씻고

그러냐는 말씀이셨다. 힘드니까 잔소리 하는

사람 없으니까 그냥 넘겼다. 그런데 장터목에서

여회원들이 물을 보니까 간단히 몸단장을 한다.

그렇게 이뻐 보일수가 없다. 화장도 한것도 아니고

그냥 세수만 한것인데 무척이나 이뻐보인다.

비는 간밤에 그쳤지만 바람에 안개가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그에 따라 언듯언듯 보이는

하늘색은 전에 볼수 없는 아래에서 전혀

볼수 없는 색으로 다가 온다. 리컴님은

감탄을 연발하고 통천문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되는 보조개를 보여주었다.

천왕봉 정상, 1915미터의 정상,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한국인의 정기가 이곳에서 발원되다!

스티븐님은 너무도 좋았는지 사진을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고 회원들과 찍고 하였다.

그래도 스티븐님이 남을 배려한다.

내가 사진을 찍더라도 내사진도 찍으라며

카메라를 받아 나도 찍어 주는 사려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더 이상 오를 길없다.

내려가는 길뿐이다. 내려가다 올라 간다해도

내려가기 위해 올라가는 것뿐이였다.

그래도 지리산이다. 내려가는 것 조차 지루하다.

바위길, 한참을 가고 가다가 만나는 5미터 내외의

평탄한길을 잠깐 만났다.

얼마를 갔는지 알수 없는데 드디어 치밭목산장이 나타난다.

도착해 보니 스티븐님과 까피님이 성대한 만찬을 준비했다.

그때까지 가지고 오려면 무척 힘들었을 삼겹살,

그야말로 쌀 한가마니, 김치와 온갖 반찬을

가져온 분들의 성의에 조그맣게 술을 한병 내밀었다.

그런데 올라올라님은 더했다. 올리는 술한잔에

발렌타인 한병을 배낭에서 꺼내어 선듯 내주셨다.

사진을 찍으면 찍어 자신은 못찍는 수가 많은데

술은 따라 주면 나도 마시게 된다. 내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까피님과 스티븐님이 염려를 해주었다.

그런데 술을 마셔서 몸이 괜찬았을 지도 모른다.

천왕봉을 내리면서부터 발바닥에 통증이 오고 아펐다.

술기운으로 이를 진정시키고 내려가기 까지가

어려운 코스라는 것을 체험한 적이 있어

조심스러웠던 것은 있었다. 그런데 발이

풀린 것은 어쩔수 없는지 산죽이 키를 넘는

지점에서 어렴풋한 기억으로 07-10지점을

지나서 넘어졌었다. 계곡이나 벼랑이 없는

곳이여서 다행이다.

김양규 대장님은 내려오면서 말이 없다.

웃음도 없다. 왼만하면 쉬었다 갈만도 한데

쉬려하지도 않는다. '내가 대장님 속을 긁은게 있나?'

하는 생각에 괜한 주눅까지 든다. 무언가 산길이

아까아까와는 틀리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아침님이 문득 나타났다. 뒤에 오는 사람

마중 가는 길이라 하였다.

산죽길을 나와 보니 저쪽에 휴대전화 송수신탑이

보이고 시멘트 길이 보인다. 땀에 젖은 몸을

서로간에 등목해주고 또 한참을 기다려 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 왔다. 모두가 다친곳 없이

산행을 완주한 얼굴이다.

서로의 얼굴에 기쁨이 넘친다. 그러면서 축하의 말을 건넨다.

완주한 이들은 완주한 기쁨의 덕담을 주고 받든다.

비록 완주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안전산행을 축하한다.

힘들다!

다시 서울로 출발이다!

도로가 나있고 그도로가 서울로 향한다.

비로인해 하천의 물은 버스안에 앉아 있어도

사납게 흐르는 물의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논이 보이고 도로옆에 함지박만한 무궁화 꽃이 보인다.

연분홍빛의 흰꽃잎에 꽃술 부분이 붉다.

이름이 적단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든다.

하늘향해 드높게 솟은 산정상에 구름이 걸려있다.

내가 저다지 높은 곳을 산행했나 싶어 스스로 대견해진다.

전에는 깊고 깊은 산중이였는지 이리 틀고 저리틀며

오르는 길은 굽은 길, 그리고 언제 올라갈까 싶도록 높은 산길로 오른다.

차가 술에 취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흔들리는 차보다 더 취한 분이 왔다.

중간에 하차해야 하는 분의 염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장님의 염려와 기사님의 수고로 다행히 그는 원하는 자리에 잘내렸다.

산행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무지하게 아쉽다.

지리산 천왕봉 일출이야 기상상태가 악천후였고

새벽산행을 하지 않아서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벽소령의 풍경, 세석평전의 아름다움 장터목에서

볼수 있는 양쪽의 운해위로 펼쳐진 하늘의 모습을

볼수 없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그런데 뭐 이번 산행이 아쉬운 점들 뿐이겠는가

마는 이런 저런 아쉬운 점들을 모두 누를 수 있는

가장 큰 제일은 악천후 중에

안전산행으로 완주했다는 것이다.



2. 제일의 산벗들

내가 속한 조의 산벗들은 제일의 산벗들이다.

일조라서 그러한 것 뿐만 아니다. 토마토님이

사정상 취소를 했다. 그러고는 밝은미소님은

부친상으로 취소했다.

그러더니 에비씨님과 서희님이 조원으로 왔다.

그리고 파페님이 있다. 모두가 네숭을 떤다.

‘산행 많이해 보았어요?’ 하고 물으니 많이

못해 보았다, 지리산은 몇 년만에 처음이다라고

답했다. 산행을 하면서 보니 이건 거의 물어본

내가 바보라는 게 딱이다. 서희님은 스티븐님

처럼 산의 흐름을 타고 가는지 ‘쭉, 쭉!’

나가고 에비씨님과 파페님은 꼼꼼한 준비를 했고

더욱이 산행을 아주과묵한 것이 나와는 다르게

차분한 산행을 한다. 특히 이 두조원은 운무님과

보조를 맞추어 산행의 탄력성을 더했으며

자신의 짐도 무거운데도 불구하고 다른 짐을

져주는 의기까지 있었다. 스티븐님은 지리산

산행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쭈욱 나가다

조원들을 살펴보고 시간을 맞추어 보곤 했다.

까피님 또한 쭉쭉 나가면서 세석에 먼저 도착했고

치밭목에서는 먼저 도착하여 능숙한 솜씨로 점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솜씨 좋고 항상

자신을 돌보는 맵씨를 갖춘 고운 마음씨의

소유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서희님은 혼자 또는 다른 곳에서도 산행을

많이 해보았다 한다. 산행내내 맑고 밝게

웃는 모습이 아주 돋보인다. 우리 운무님은

왕언니로서의 차분함과 여유로움이 있어

산행하는데 보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몸하나

관리하기 어려운데 조장이라는 것이 부담이였다.

그런데 스티븐님이 아주 큰 역할을 해주었다.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앞서서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그와 까피 그리고 서희님이 서로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견인차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주었고 선비샘에서는 쉬다가 너무 쳐질까봐

출발을 독려했다.

아쉬운 것은 운영진되는 아침님이 닭도리탕을

준비했다 했는데 구경만 했다. 운영진이라고

후미 챙기고 신경을 쓴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3. 강력하면서도 측은한 운영진

조장이 되었으니 정모 때 꼬옥 나와 조원들과

준비사항 점검하라고 캔디님의 메시지가 있었다.

그리고 몇번의 메시지가 더왔다.

1조 준비물 올리고 조별 공지사항도 올려달라고 했다.

카페에 들어갔을 때 대화를 시도하더니 준비사항

이상 없냐고 묻고는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금방 빠져 나갔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4년간의

산악회 생활에서 아주 획기적인 기획이였다.

무박과 당일산행만 있는 기존의 산행방식에서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것는 아주 큰 일임에는

틀림없다. 개인 또는 몇몇 사람들과의 종주는

시원한 맥주한잔하며 이야기 하고 기차타고

버스타고 가면 되는데 40여명이 넘는 인원을

이끌고 간다는 것은 의기가 투합하는 회원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첫째이고 조별로 준비가

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두 번째이고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산행에 맞는 팀웍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그 셋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례없는 일이기에 무모한 듯이 보이기도

했다. 큰 사고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것을 보면

운영진이 계획을 잘하기도 했지만 회원들의 산에

대한 의식이 아주 높아서 가능했다고 느껴진다.

세석에 도착하기 전부터 비가 억수로 왔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나와 내일이 지나면

출근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괜찬을까?

코스의 변경 내지 수정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약간의 수정은 있었지만

그들은 계획대로 추진했다. 그런데 세석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깐 나가 보았다.

비는 그쳤는데 대장님이 잠자리를 물었다.

없냐고 물어보았더니 없다 했다.

올라올라님과 선경나라님이 맡아주신 자리가

있는데 자리에서 자라고 했다. 자리를 잡자 마자

김양규 대장님은 얼마나 피곤했는지 바로 잠에

들었다. '편히 쉬기라도 하면 다행일텐데…'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음날 새벽 여기 저기를 돌다가 대장님 옆 터가

나기에 잠을 청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대장님이

일어나라 했다. 정말 운영자라는 것이 무슨

굴레인지… 산행 준비를 위해서 깨워 줘야

하기도 한다. 그뿐이겠는가 아픈사람, 식사

못한 사람 있는지 챙겨야 하고…

어떻게 보면 무리한데 강행한다.

그러면서 회원들을 챙겨주어야 한다.

자신은 챙길 수가 없는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stubborn)하지만

측은한(piteous) 느낌이 든다.


4. 다른 산벗들

마지막 5조의 조원 소개시간이 되었다.

손오공님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쭈니님이

무언가 들고 나와 나누어 주기시작했다.

작은 것이지만 과자를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산행에 기분을 엎시키려는 그의 성의가

대단히 커보인다.

산행을 하는데 얼마를 걸었고 또 어디를

걷고 있는지 알길이 없다. 언뜻한 기억으로

토끼봉을 지났을 것으로 기억된다.

주노의 배낭이 두개다. 힘들어 하는 이의

배낭도 들어 주었다고 한다.

세석에서 수선화님과 낸시킴 그리고 몇몇이

계속 요리를 한다. 술은 권하면 자신도 먹지만

요리는 하면은 자신은 먹지를 못한다.

그런데 그네들은 부지런히 요리를 한다.

리컴님은 그들이 하는 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어준다. 그런데 그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그것이 산에온 분위기를 돋우고 가슴을

열게하고 마음을 열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듯하여 좋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후미를

기다리면서 조금 먼저 온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학동이 힘들어 하는 이들과 함께 다독이면서

내려오고 있다 하였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참여한 한사람 한사람에게서 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네들 모두의 옆에서 있질 못해서

그렇지 참여한 모든이들과 시종일관 함께 했다면

회원들 모두에게서 좋은 점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5. 지리산 산행은 인생

무작정 내려간 화엄사 입구에서 그곳에서

슈퍼마켓을 하는 분에게 물어 보았다.

‘이산 갔다 오는데 몇시간 걸려요?’

그의 표정이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이였다.

중얼거리듯 답한 말은 ‘한 며칠 걸리죠..’

이것이 6년전의 일이다. 그때는 정말 무작정

준비 별로 없이 갔었다. 그러고 백무동으로

하산했다. 산행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 만나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하고 또 헤어지고…

아주 험난한 바위길을 올랐다 내려가고

그러며 산행을 했다. 산행을 마치고

회고해보았을 때 마치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것이 삶에 사람을 만나고 헤어짐과

같다는 것을 느끼고 바위길을 가고 오르고

내리는 것이 꼭 무슨 경험이 많은 이들이

인생을 이야기 해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갈려면 얼른 준비하고 빨리 떠나야 해!’하며

정재덕형이 산행을 재촉하는 말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형인데 비소식에 결정을

못하는 내게 후다닥 출발하자 했다. 추석 전이였다.

기차를 타고 구례역에서 내렸다. 화엄사로 가야 하는데

눈치 빠른 이형이 어떤 여자에게 가서 말을 하더니

화엄사 근처까지 가는 교통편을 확보했다.

먼곳에 나가 일을 하던 여자는 자기 언니에게

휴대전화로 전화해서 나와 달해 했던 모양이다.

이를 그형이 잽싸게 사정이야기 하고 그 여자가

이를 쾌희 응답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성삼제까지는 그형과 함께 했었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나서 먼저 가라 하더니

그와 나는 더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가면서 아침 먹던곳에서 만난 산행객과 만나

반야봉까지 함께 올랐다. 그곳에서 광주에서

올랐다는 가족들과 만나 술한잔과 갓김치를

얻었다. 그들의 영상을 담아 나중에 보내주는

것으로 보답을 했다. 성삼제 친구들은 뱀사골에서

헤어지고 가는데 너무 힘들어 토끼봉 밑에서

12시간을 잤었다. 매트레스와 침낭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장터목 가는 데서 또 다른 사람둘을

만나 함께 식사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쭈욱 혼자 대원사로 하산하는데 정말 긴 산행이였다.

9시에 출발해서 7시경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지리산을 산행하다 보면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시작부터 끝까지 가는 사람이 있는데 끝까지

함께 하는 이는 드믈고 여기서 만나 저기까지

가기도 하며 잠깐 쉬면서 만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런중에 산길은 아무리 능선을 탄다하더라도

길은 무척이나 어렵다. 거의가 바윗길, 비에 젖으면
미끄러운길, 땅만 보며 가다보면 등산로

아닌 곳으로 빠지기 쉬운길, 천길 낭떨어지의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이는 절벽,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의 절경 그러다

연속되는 어려운길, 가끔가다 나오는 5미터

안팎의 평탄한길 등등이 우리네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느낀다. 삶은 고해라고 했던가?

가는 길 마다 바위고 암벽이고 질은 길이고

오르고 내리는 길의 반복이고 연속이다.

이것은 고해 같다. 가면서 보는 산세의 절경과

흐르는 구름과 하늘빛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기쁨이고 가끔가다 나오는 짧은 평탄한 길은

험난한 길의 위안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산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시작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살면서(산행하면서)

험한길(바위길, 암벽길)을 가면서 먼저 가서

다음일을 준비하는이들(스티븐님, 까피님),

힘들어도 꾸준히 밝은 모습으로 가는이(서희님)이

있었고 함께 하기만 해도 든든하게 해주는

모습(운무님)이 있었고 뒤에서

묵묵히(파페님, 에비씨님) 함께 해준 님들과

가이드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덕에 하나의

완벽한 팀웍이 이루어져 산행하는(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리산이 지혜와 이도의 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을 더 생각해

보는산 지리산, 산행이 추억으로 남는다.

함께 했던 스티븐님, 운무님, 까피님,

서희님, 에비씨님, 파페님,

그리고 아침님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