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를 되돌아보며 안녕


2003.11.23(맑음)

석남사(08:40)→쌀바위(10:40)→가지산정상(11:15)→아랫재(12:30) →운문산정상(13:20~14:00) →딱밭재→석골사→버스정류장(16:10)


금낭화님의 산행기를 읽고 지난해 이맘때 영남 알프스를 찾아 고별 산행의 추억이 새로와 여러 산님과 함께 하고저 올려 봅니다




다음주부터는 이곳 근무가 끝나 상경해서 예전의 삶으로 복귀된다.
지난 1년6개월동안 심신의 안식처가 되었던 영남알프스와도 이별을 해야 한다.
이제 가면 다시 찾아 보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은 그지없다.

영남알프스의 주산인 가지산과 그동안 교통상의 이유로 발길이 뜸했던 운문산 신령님을 찾아 작별인사를 드려야겠다
해가 짧은지라 석남사에서 밀양행 버스와 바로 연결되면 석골사로 올라 운문산을 거쳐 가지산으로 돌아올 생각이다.

석남사에 도착하니 밀양행은 09:10출발이란다.
30여분을 기다리기 보다는 어서 빨리 오르는 편이 좋겠다
같이 내린 10여분의 산꾼들은 평소와같이 기념탑쪽으로 몰려 가지만 나는 주차장 바로 옆의 석남사 계곡을 건너간다.

겨울의 문턱을 알리는 징표인지 지표면에는 군데군데 마치 보리싹같이 생긴 하얀 성애꽃이 솟구쳐 있다.
호기심에 손에 올려 자세히 보니 줄기같이 자라난 흔적이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기한 작품이다.

석남사 담장 철책선을 따라 가다 좌폭포 계곡을 건너 쌀바위로 이어지는 급경사길을 오르는데 지난번 밤늦게 하산하면서 애먹었던 바로 그길을 역방향으로 오르니 지난 추억이 새롭다.




50여분 오르니 저만치 쌀바위 능선길로부터 떠들석한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녘에 운문산 아랫재에서부터 올라 정상을 거쳐 하산하는 산악회 분들이다.
쌀바위에 올라 주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사진 찍고 디카에도 남기고 곧바로 쌀바위와도 작별인사를 한다





가지산 정상에는 벌써 많은 분들이 기념사진 찍고 야단들이다.
잠시 그곳에서 북릉,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능동산, 천황산, 제약산을 돌아보며 눈인사를 건내는데




바로 맞은 편에 가마솥처럼 솟은 운문산이 늦지 않도록 어서오라고 손짓한다.
이내 아랫재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을 내달린다.


호박소로 빠지는 길을 지나 아랫제에 다다르니 부근의 키큰 소나무들이 대부분 찢기고 부러져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지난번 매미가 운문산과 가지산에 갇혀 몽땅 이곳 아랫재로 빠져 나간 모양이다.
매우 안타깝다. 모두가 늘씬한 좋은 소나무들이었는데.....

이곳 영남 알프스는 소나무가 별로 없지만 뜸뜸히 반겨주는 소나무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보통 소나무가 아니다. 계곡에 있는 것은 우람한 장송이요.
능선길에는 오랜 풍상으로 온몸이 연단되어 키는 작지만 낮게 뻗은 수많은 가지가 일품이다.
아랫재를 지키는 오두막집에 잠시 들렀다가면 좋으련만 해가 짧은지라 눈인사만 건내고 지나쳐 버린다. 곧바로 운문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길을 쉬어가며 50여분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 눈앞이다.

봉우리 가까이 아마추어 무선통신용 GP 안테나도 푸른 창공을 향하여 솟구쳐 보인다.
동호인이 혹시 저 산막에 있나하고 소리 높여 DS5FTI 여기는 HL1TQR 하며 불러 본다. 하지만 응답이 없고 그쪽으로 귀를 귀울여 봐도 산막 안은 잠잠할 뿐이다.
교신은 두서너번 했지만 만나보질 못했으니 이곳에 오면 만날 수도 있겠지 했는데......

이곳 정상은 가지산과 달리 가마솟뚜껑처럼 평퍼짐하고 한적한 편이다.
억새위 따뜻하고 폭신한 곳에 주저앉아 도시락를 먹으며 주변을 살피니 낮익은 신불산 영취산 재약산 그리고 이름모를 산들이 첩첩이 구름처럼 이어져 아련한데 그 끝머리에는 지리산 천왕봉도 그름 위로 보일듯 말듯하다.

달궈진 억새위에 누워 잠시 오침을 즐기고 운문산 신령님께 고별인사를 드린다.
억산쪽으로 뻗은 급경사 암릉길을 내려가는데 정상 바로 아래 산죽사이로 상원암자가 잘 가고 또 오라 하신다

건너편 산중턱에는 사리암이 석양빛으로 선명하고 저 아래 계곡에는 운문사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운문사와 사리암, 이곳 석골사와 상원암은 크게 대비가 된다.
저쪽은 큰 부자집 같고 이쪽은 그야말로 가난하고 쓸쓸한 분위기다.

신도들의 접근성이 불편해서인지 사찰도 번성하려면 위치를 잘 잡아야 하는가 보다.

딱밭재에 도착하니 운문사 억산 석골사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어디로 가려느냐고 물어온다. 억산길은 두 번정도 가봤고 시간도 여의치 않고 해서 석골사 길을 택한다.

급경사 길을 내려서 계곡 옆으로 30여분 가니 상원사 길과 만난다.
거의 다 내려왔는지 계곡수가 제법 풍부하다.
물속의 돌들이 해맑게 웃으며 이제 가면 언제 오나요 여기까지 잘 왔으니 잠시 쉬었다 가지요라고 한다.

8시간동안 등산화속에 같혀 수고한 발이 어느새 알아차리고 막차시간은 여유가 있으니 운문산 신령님이 내어 주시는 맑고 시원한 물 속에 들렀다 가자고 마구 졸라댄다. 그렇게 하지. 이곳에 오기가 쉽지가 않으니...

이내 물가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니 쌓인 피로가 가시며 정신이 새롭다. 시원하고 상쾌한데 1분이상 지속할 수 없다.
물 밖으로 뺏다가 다시 집어 넣기를 서너번 반복한 후 기다리니 대충 물기가 가신다.

석골사에서 생수 마시고 기념수 한통 채우고 버스정류장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밀양에서 석남사행 버스는 한시간마다 운행되는 데 막차 시간을 모르니....

이곳 어르신께 막차 예정시간을 물어보아도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이용빈도가 많지 않으신 모양이다.
정류장에 도착(16:10)후 밀양행 버스는 2대가 지나갔는데 석남사행은 왜 이리도 아니 올까? 벌써 40여분을 넘게 기다렸는데 혹시 막차가 끊겼나 걱정이다. 하는 수 없이 쌩쌩 지나가는 승용차에게 용기 내어 구원의 손길을 보내본다. 못 본체 더욱 속력을 내며 질주한다.

해는 석양으로 기울어 가는데 기다리는 차는 아니오고 체념상태로 막차를 기다리는데 건너편 석골사에서 나오는 산타페가 우리의 모습을 보았는지 가까이 다가와 선다.
반가운 마음에 석남사 주차장까지 부탁하니 어서 타라고 하신다.
부부가 함께 운문산에 오셨다가 울산으로 가시는 분이다.
역시 산꾼만이 산꾼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가보다.

영남 알프스를 되돌아보니 지난 1년 6개월이 꿈같이 흘러갔다.
학심이 길을 몰라 합수점에서 예정을 바꿔 북능를 타고 힘들게 가지산을 넘어왔던 일이며
학소대 폭포에 매료되어 물놀이 하다가 밤늦게 석남사로 살금살금 하산하던 일,
배내골은 봄을 알려주는 파래소 폭포소리가 요란한데 신불산은 얼음꽃으로 뒤덥혀 있던 때며,
설악산 공룡능선 일부를 빼닮은 에베로 릿지 암벽을 타며 좋아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통도사 맞은편에 자리한 천성산,
웅상과 남창사이의 대운산, 북으로 범어사와 남으로 금강공원를 품고 있는 금정산,
부산 어린이 대공원과 백양산, 부산역과 용두산 공원을 품고 최남단에 위치한 시약산 모두가 정겹고 고마운 산들이다.

우리들 가까이에서 심신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새로운 기운으로 채워주는 고마운 산
길이 길이 보존되어야 할텐데.....

산중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맞으며 오르락 내리락 땀을 흘리다보면
산천초목 온갖 것들과 진솔한 대화가 이어지고 좋으련만......

영남 알프스의 모든 산들이여 우리들의 부족함을 용납하여 주시고
또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우리 모두 안녕!

*영남 알프스와 맺었던 그밖의 추억은 "저의 작은 집( HTTP://cafe.daum.net/sorozon )"에 올려져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