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기도 효험이 크다는 선바위-


백련산, 북한산둘레길, 자락길, 인왕산

20190016011            2019-04-06()


자리한 곳 : 서울시 은평, 서대문, 종로구

지나온 길 : 불광천-백련사-백련산(은평정)-북한산둘레길-자락길-배수지-인왕산정상-선바위-인왕사-독립문역

거리및시간: 4시간 08(09:24~13:32) 총거리 : 12.3km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흐림 (가끔 가랑비 지나감)


변덕스런 날씨로 아침에 즉석에서 결정한 인왕산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날씨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창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니 기상예보가 적중해, 바람이 강하고 가랑비가 오락가락 지나가는 주말날씨라 마음에 두었던 원거리산행을 지우고, 교통체증에서 자유로운  지하철을 이용한 근교산행코스를 생각하다 집에서 가까운 코스(백련산, 북한산둘레길, 자락길, 인왕산)로 정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집을 나선다.(09:20)


-백련사 전경-


오늘 산길을 진행한 다양한 코스를 요약하면

자택근거리 개천(불광천) 꽃다리(​ 불광천 첫번째 일명 다리)를 들머리로 참다래어린이공원, 응암시장교차로, 은평둘레길, 백련산로2, 백련사, 백련사부도, 백련산등산로, 백련산능선, 백련산(215m, 은평정), 산골고개, 산골마을, 북한산(옛성길코스)둘레길, 북한산자락길, 옥천암, 홍제천, 북악터널배수지, 용천약수터, 기차바위능선, 기차바위, 인왕산(338.2m), 무악동갈림길, 선바위, 인왕사, 독립문역 2번 출구까지 거리는 12.3km며, 소요시간이 4시간 08분이다.


-백련산 은평정에서 바라본 은평구 전경-


仁王山(인왕산) :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누상동·사직동과 서대문구 현저동·홍제동에 걸쳐 있는 높이 338m

풍수지리설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한양의 도읍을 정할 때 정도전의 뜻대로 주산을 북악산으로 하지 않고 무학대사가 말한 인왕산(仁王山)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이따금 하게 된다. 인왕산 서편에 궁궐이 들어섰다면 '어진 임금'이라는 인왕산의 이름처럼 조선도 개국 초기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기보다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경복궁 왼쪽에 자리한 인왕산은 예로부터 황제가 태어날 명당이 있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돌았다. 도성의 풍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한양을 대표할 풍경은 모두 이곳 인왕산 주변을 맴돌고 있다. 특히 필운대(弼雲臺), 청풍계(淸風溪), 반송지(盤松池), 세검정(洗劍亭)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국도팔영(國都八詠)'에 꼽혀 한양 명승지의 절반을 인왕산 자락이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왕산 주위로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서 땅의 기운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북한산 둘레길 장군바위에서 만난 풍경-


山行(산행) 登山(등산)이란 생각에 대한 개념

특정인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겼던 등산이 서민들에게 일반화 된것은 199712IMF(외환위기)로부터 외환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필요이상의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허울좋은 명예, 희망퇴직 제도를 도입하며 일터에서 대규모 해고가 단행되며 무대책으로 실직당한 실업자들이 가장 싼 비용으로 하루를 보낼 도피처로 산을 찾는 사람들과 인터넷의 확산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아웃도어(Outdoor) 산업의 발전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산에 간다는 말은 등산하러 간다는 의미로 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국의 걷기 좋은(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길을 모태로 제주 올레길이 열리며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앞 다투 참여하자 들불처럼 번지며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하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하며, 걸으려고 산에 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요즘에는 둘레길 걷기로 자리 잡아 장비를 갖추고 힘들게 정상을 향해 등산하는 산객보다는 둘레길을 트레킹 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아지고 있으며 동창, 친목모임들을 자연과 함께하며 부담 없이 걷는 야외활동 방식으로도 차츰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인왕산 기차능선에서 바라본 풍경-


仁旺寺(인왕사) : 서울 종로구 무악동 산2-68

요약 :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인왕산(仁王山)에 있는 사찰.

역사적 변천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護國道場)으로서 인왕사(仁旺寺)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12년 박선묵이 선암정사(禪巖精舍, 현 본원정사)를 세우면서 이 절을 중창하였다. 1914년에 탄옹이 인근에 대원암(大願庵)을 세웠고, 1924년에는 자인이 안일암(安逸庵)을 지었다. 이어 1927년에는 춘담이 극락전을 세우고 1930년에는 묘법이 치성당을 신축하는 등 1930년경에 이르면 10여 개의 암자가 모이며 군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1942년에 분리된 여러 개의 암자를 통합하여 다시 인왕사라 칭하고 봉은사(奉恩寺)의 말사로 등록하였다.

내용

현재 5개 종단의 11개 사암이 인왕사라는 한 명칭의 사찰 아래서 공존하고 있다. 각 암자마다 종단이 다르고 주지가 따로 있지만, 4년에 한 번씩 대표역할을 하는 총주지를 선출하여 절을 운영하고 있다. 인왕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본원정사(本願精舍)는 대웅전과 요사, 유물관인 심우장(尋牛莊) 등의 건물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주요 법회와 각종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초에 호국도량으로 창건된 단일 사찰이었지만, 근대기에 들어와 여러 개의 암자가 군락을 이루며 인왕사라는 하나의 사찰로 공존해 오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왕사 안내판, 이틀째 불광천 벚꽃 축제-


에필로그

하산주가 생각나 상도동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로 점심이나 함께하자고 청했으나 선약이 있다며 거절하고 독립문역에서 지하철로 귀가해 늦은 점심식사를 겸한 반주(소주반병)로 안전산행을 자축하는 의식을 겸하고 하루를 조용하게 정리했다. 다음날 산행중 라디오뉴스를 통해서 어제 낮 시간에 다녀왔던 인왕사(서울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에 있는 사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안타까운 보도를 접한 내용이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은 7일 오전 655분께 보광전에서 시작돼 약 1시간 40분 만인 오전 836분께 완전히 진화됐다보광전 1층은 생활공간, 2층은 법당 및 내실로 이뤄져있다. 불은 2층 내실 침대 인근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로 보광전이 전소돼 소방당국 추산 약 31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났다. 또 불상과 법고 등이 불탔으나 문화재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아울러 거주자 4명이 자력 대피했으며 인명피해는 없다고 소방당국은 전했다소방당국은 목조 기와 건물의 특성상 화재를 완전히 진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다행히 산불로 옮겨 붙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경찰과 소방당국은 오는 9일 합동 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할 방침이다.                       -일요신문 온라인 기사    2019.04.07 14:00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찾아서~


2019-04-10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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