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인지,10월 첫주인지

 

암튼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놈은 고수였으며 ,

박사 였으며,교주였습니다

 

제가 광고한 정릉코스가 이제 꽤 여럿이 오르락 하더이다.

놈은 2박3일가량 ,

족히 40리터 배당을 메고 ,

 

그 이유를 후에 알리라 하더이다.

 

정릉 초입부터 우측 산사로 향하더니만 실로 초장길로, 4'19기념탑 등로능선과 조우했습니다.

 

4.19

 

4학년9반 안해와 저,그리고 친구의 모든 역사는 3공화국이며

우리고향 "이승복" ,저는 동갑내기로 기억합니다.

 386이전 자연스럽게 우리는..

 

 허나 친구는 조심스럽게 "진보"인 듯 하더이다.

수년전 눈덮힌 속리산에서 격하게 논하던 다른 친구 심가처럼 

 

벌써 5년전 북한산

안해와 함께 등산후에 ,광화문 지나 이순신 장군앞에서

오후6시

시선을 좌로 돌려 동아일보 전광판 대선결과 출구 조사,조사 ,조사결과

 

벌써 5년이 흐르고

우리는, 친구사이에는

되도록 정치는 비켜가야 하며

어설픈 경제는 애써 지나치고

 

50대의 이모작,

친구의 의료구휼, 환경,놈의 교리대로 대화를 풀고 엮어가며,

비굴하게 동의하며

 

내심 나의코스로  시간이 날때마다 자신감으로 오르던 정릉코스가

(저는 통상 보국샘,계단길 보국문 50분 쫗기듯 땀을 빼고ㅡ대성문 형제봉,샘터,,,,)

 

정릉코스가 처음부터.,.

 

나름 정릉의 유래부터 풀어 갔습니다.

태조의 목마름,말발굽,여인과 버들잎,

수표굔지,광통굔지,

정녕 정릉은 보지 못했의되  참나무의 그늘과 낙옆의 정취까지

 

나는 사설이었으나

놈은 메아리도 없었습니다.

 

눈이 큰 저는 겁이 많아 칼바위를 언제나처럼 우회합니다만

 

저는 바위를 탄다합니다만

놈은 붙는다 했습니다.

홀로 지리산 종주,신새벽 대청봉의 무용담도,

학부시절 인왕에 붙었다 했던 친구앞에선

 

처음으로 칼바위를 저도 붙어 봤습니다. 놈의 눈엔 물론 어설피 타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산성 주능선

 

놈에게도 허는 있었습니다.

보국문부터 대성문까지 이미 허물어진 오솔길입니만 당단풍과 고즈녘,시각을 늘려가며 걷는 서북 7부 능선 

 

좋은 길이라 하더이다.눈물겹게 고맙더이다.

 

다소 거만한 나의 정릉코스는

대성문,

영취사를 지나 끝이 났습니다.

 

놈은

영취사직전 우회,우회  그많은 오솔길,샘터,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놈은 삼다수2리터 8병

20킬로를 업보처럼 등져매고 보란듯이, 역시 놈은 고수였습니다.주말마다 낮밤없이

 

졌습니다.

 

저의 정릉코스에서 ,족히 3시간에서 3시간 반

주차료 4천원이

 

5시간 넘게 새로운 정릉코스에서, 칭구와 함께

 

 

언제부터인지 청수장이 문을 닫았습디다.

.청국장도 사라지고,7080 통키타 음악도 들리지 아니하고

노상에서

서울 막걸리 두사발로 마무리 하고.

 

목동 아파트 1층 , 감나무가

홍시가 될즈음 친구의 연락이 오겠지요

 

형과보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