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 체력 모두 소진,, 위험천만 면산


동해안의 바다표고와 별 차이 없이 삼척 원덕(호산)읍에서 시작되는
월천의 계류를 따라 서쪽으로 약 30km 거리에 풍곡(가곡면)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곳은 일명 응봉산 용소골로 유명한 덕풍계곡(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잘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원시적 모습을 다른 어느 곳보다 잘 간직하고 있음.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꼭 한 번 산행하고파하는 코스로 알려져 있음)으로 들어가는 관리사무소와 가곡자연휴양림 그리고 동활계곡(태백으로 향하는 국도가 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끼고 이어져 있으며 주위엔 신리재와 너와집이 보존되어 있음)이 있는 마을이다. 해를 보는 시간보다는 산그늘에 가리워 추위가 다른 어느 곳 보다 심한 곳이다.


이 풍곡을 중심으로 일 천 미터가 넘는 낙동정맥(태백 매봉산에서 부산 금정산,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의 옛이름)을 이루고 있는 최고봉인 면산(1289.2m)을 비롯하여 묘봉(1167.6m) 용인등봉(1124m), 응봉산(998.5m)등이 자웅을 겨루듯 거대한 능선을 이루며 우뚝 우뚝 서 있다. 그 뿐 만 아니라 그 산정 아래로 해발 600-800m의 크고 작은 산(치바위산, 북두산, 중봉산, 퇴암산, 범바위봉, 염팔산, 활메기산, 갈경산등)들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이들 산이 만들어내는 풍광과 계곡이 모여 동활계곡과 풍곡계곡을 만들고 이 계류가 모여 월천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월천 끄트머리에는 기장미역과 더불어 옛날 임금님께 진상을 했다던 미역으로 유명한 고포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고포는 마을 한가운데를 가르는 골목길(복개천)을 사이에 두고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을 통해 무장공비들이 상륙 침투해 그 유명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을 만들어 냈다.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빠졌다. 풍곡일대는 산세가 험하고 마치 거대한 수석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 관광객들에게 일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호평을 얻자 관광자원유치라는 명목으로 조금씩 개발되었으나 지난 태풍과 수해에 폭격을 맞아 큰 피해를 입고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풍곡에는 묘봉과 면산 사이를 넘어가는 도로가 생겼는데 이것이 바로 경북 봉화와 강원 삼척을 잇는 석개재(920m)이다.
이 석개재는 풍곡일대의 덕풍계곡 개발을 앞세워 포장공사를 서둘렀는데 산세가 높고 험할 뿐만 아니라 골이 깊어 도로가 넘어가는 사면은 엄청나게 가파르다. 쳐다만 보아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다.

아내와 단 둘이 함께 한 나의 산행은 가곡자연휴양림과 석개재 오름길이 갈리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11:10)
풍곡-석개재정상-면산정상-가곡자연휴양림-풍곡... 이렇게 도는 트라이앵글 코스를 택하여 시작하는 것인데 초행이라 미리 등산도면과 산행기 등을 인터넷을 통하여 숙지해 놓은 터였다. 석개재는 말그대로 구간구간 위험천만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지난 수해를 입은 도로는 산사태로 떠내려가고 무너진 곳이 꽤 되었다. 도로가 굽어가는 굽이굽이가 익히 경험한 그 어떤 곳보다도 심하다.. 만약 승용차를 끌고 오르다간 잘못하면 엔진이 타버릴까 걱정이 될 정도다.

산사태로 도로가 심하게 훼손된 도로 경사를 오르기 시작하여 그곳을 지나 아스팔트길로 삼십여분 올라 발을 멈추고 주위를 조망하니 동남북을 아우르는 산하의 물결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풍곡의 골이 깊고 가파르다는 것이 실감나는 장면이었다. 덕풍계곡 접근을 용이하게 하기위한 도로공사가 잠시 중단되어 있는 집 몇 채가 고작인 외삼방 마을이 좌측으로 내려다 보였다. 이 길로 통행하는 차량이라야 고작 몇 대, 한참을 돌아돌아 능선을 넘어드는 듯 올라 고개를 넘어섰지만 석개재 정상은 한참 더 가야 나오는가 싶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높은 대에 오르자 그동안 가려져 있던 묘봉이 머리 위로 나타나고 저쪽 멀리 뾰족한 응봉산 정상과 그 일대의 마루금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뒤를 돌아서면 정면으로 높고 웅대한 산이 보였는데 북두산(978.4m)과 치바위산(835m)을 앞에 둔 사금산(1092m)이다. 산정을 하나 더 돌고 긴 그늘 굽이 경사면을 크게 돌아 걸으니 강원도 삼척과 경북 봉화의 경계를 알리는 표석이 나타났다. 석개재인 것이다. (12:40)
도로를 걸어 올라온 것만 꼬박 한 시간 반 걸린 셈이었다. 먼 길이다.


석개재에서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다.
숲으로 들어서자 낙동정맥 종주를 하는 산악인들 말고는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길의 윤곽이 약하고 몹시 좁은 편이었다. 나무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 드는 등산로를 따라 가파른 봉우리 하나를 거뜬히 넘었다. 삼각대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1008.9m봉이다. 사람키를 넘는 철쭉과 진달래 나무들이 한참 동안 옷에 걸려 부러지는가 싶더니 블록으로 쌓아 만든 건물 한 채를 지나 짙푸른 산죽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일백 여 미터 계속되는 이 바다는 멀리 군데군데 등산객들이 매달아 놓는 길 표시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진하기 어렵고 길을 잃어버리기 쉬울 성싶다. 산죽밭을 헤치며 앞으로 발을 끌고 나가는 기분은 마치 가슴깊이의 물 속에서 손사래질치며 헤엄쳐 걸어나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가로 세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질서정연하게 식재되어 있는 금강송림과 전나무 숲을 지났다. 두 번째 봉우리를 넘자 손에 잡힐 것처럼 면산의 둥근 모습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정상인지는 초행이라 정확히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되었다.


마루금으로만 이어지는 오리지날 능선길... 방태산의 등산로가 떠올랐다. 면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정상을 그리 쉽게 내어주질 않았다.
몇 개의 봉우리가 앞을 가리며 자기가 정상인 양 우뚝 솟아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몇 번을 속은 뒤에야 면산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탓에 정강이의 뒷 근육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하였다. 다행인 것은 내심 걱정이 되는 아내가 아직 심하게 힘들어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한번쯤은 쉬어가자고 했을 터였다. 정상이 아직 멀었냐고 묻기만 한다.
"저기가 정상인 것 같은데 한 30분 정도만 더 가면 되지 않을까?"
막연한 대답밖에는 해 줄 수 없었다.
이곳의 산행길은 수 차례 지나는 산죽밭이 인상적이다.
끝날 듯 하면 또 나타나는 산죽밭.. 산죽의 키가 배에서 가슴을 가릴 정도이다. 다른 산에서 자라는 산죽에 비하면 매우 큰 편이다.


정상 흉내를 내는 암봉과 그 뒤 또 몇 봉우리... 올라보면 더 높은 산정이 저 쪽 멀리 밀려가 있어 얼마나 고된지 모르겠다. 아내는 차츰 지쳐 가는지 산죽밭 옆으로 벌렁 누워 버렸다. 거의 휴식이 없었느니 당연하기도 했다.(암봉 도착 13:40)
배낭엔 귤 몇 개와 물 그리고 쵸코바 3개... 쉬운 산행일 것이라 여기고 올라섰는데 막상 올라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힘든 산행이 될 줄 알았다면 요기할 것과 물을 더 충분히 준비하였을 터인데 말이다. 내가 인터넷을 통하여 확인해 본 산행기에는 면산과 석개재에 이르는 등산로가 그리 어려웠다는 표현은 없었다. 다만 백병산에서 면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경우 면산 정상과 정상부 근처의 몇 개 봉우리에서의 오름길이 가파라 고생했다는 이야기만 적혀 있었다.


회갈색과 은회색으로 치장된 무성한 신갈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정상부.. 둥근 봉우리로 향해 치닫는 오름길은 마지막으로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내어 올라보니 그곳은 펑퍼짐하면서도 키작은 산죽과 바싹마른 습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정상 바로 앞의 안부였다. 십여 미터 앞에 조금 더 높은 안부가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니..알록달록한 리본들이 많이 매달려 있고 더 이상 높은 곳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상임이 틀림없었다. (14:20)
정상표석조차 없는 면산(1245.2m), 이 볼품 없는 산정이 높이 솟아 있었으니 힘겨움에 신경질이 났다. 정상부는 평평하였고 주변 신갈나무에 둘러싸여 무릎 높이의 산죽들만 무성하였다. 산죽이 이곳의 주인인 셈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가곡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로를 찾아 백병산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북쪽 능선은 눈발이 그대로 남아있어 매끄러웠고 산행기대로 경사가 가파르고 높아 체력이 소진될 것임이 예상되었다. 산행기에 하산로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여 주의를 하산로를 찾는데 집중하였다. 백병산으로 향하는 마루금 줄기 아래 동쪽은 깎아낸 듯한 골로 형성되어 있어서 검푸른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도무지 하산로가 있을 성 싶지 않았다. 몇 개의 높은 봉우리를 넘고 또 지났는데도 하산로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아내에게 "저기 계곡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까지 두 봉우리만 지나보고 그래도 나타나지 않으면 되돌아가자"고 한 후 서둘러 앞서 나가기 시작하였다.
적어도 3시전에는 하산을 하든지 돌아서 가든지 선택을 해야만 하였다. 겨울이라 해가 금방 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봉우리를 두 세개 더 넘었는데도 나타날 것 같던 휴양림 하산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정상에서 지나 전진해 온 시간을 재어보니 40여분이 소진되었다(15:00) 정상으로 되돌아 갈 경우 몇 개의 큰 봉우리를 다시 넘어야 하고 정상으로 오르는 오름길도 많고 몹시 가파르므로 아마 정상까지 되돌아가는 데만 40분 이상 걸릴 것이 뻔하였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체력도 문제였다. 아내가 걱정되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아프거나 퍼지면 문제가 심각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꺼내 하산로 유무를 묻기 위해 시도를 해 보았으나 전파가 약하여 연결되지 않았다.



멀리 태백-함백산 준령이 보인다.

한시라도 서두르자는 마음에 조바심도 나고 걱정도 되고...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하였다. 잘못하면 산 속에서 꼬박 밤을 맞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산죽밭이라도 없다면 덜 걱정되겠는데 산죽밭이 많아 어두워지면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걱정되었다. 우리에게 감탄과 즐거움을 주었던 이 산의 운치와 험한 산세, 그리고 수많은 산죽밭이 이제는 걱정을 더하는 그런 양상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발길을 돌려 체력과 정신을 소진해 가며 정상에 다시 다다른 데는 이러저러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40분 걸려 되돌아 왔으니 시간을 많이 단축한 셈이 되었다.(15:40)

그런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맥이 없는 것이... 내가 이렇게 고된데 아내는 오죽할까 하는 걱정이 엄습하였다. 산 중 오가는 사람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으니 이런 험한 산중에 믿을 거라곤 나 밖에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로을 찾느라 조바심을 내어 서둘러 앞서간 것이 오버페이스된 것 같았다. 체력이 소진되어 탈진상태가 되었다. 나는 아내도 걱정되어 아내에게도 힘을 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도 무척 힘든 모양이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다고 말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쓰러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상에서 약간 내려온 부분 산죽밭 부근... 난 더 이상 걸을 수 가 없어 휴식을 취하였다. 한참을 누워 쉬었다. 아직 해는 떠 있었지만.. 그늘진 곳에서의 바람과 추위는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얼마쯤 더 내려왔을까. 석개재로 가는 능선은 몇 개의 봉우리가 더 남아 있었다. 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아내를 불러 세우고 또 드러누웠다. 내가 또 쓰러지며 드러눕자 이젠 아내가 놀란 모양이다. 내게 힘을 내라고 하지만 힘을 낼 수가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맥이 풀린 상태였다. 입술은 바싹 말랐고 입안에선 단내가 났다. 아내에게 '걸을 만 하냐'고 누워서 묻는 나의 처지가 불쌍해졌다. 아내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했다.. 난 배낭을 아내에게 지우고 전화기를 들었다. 배낭에서 바람막이용 트라우저를 꺼내 입고... 마지막 물병을 비워버렸다.

나는 아내에게 119에 구조요청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 정도냐고 묻지만...너무 힘들었다. 전화기를 꺼내 통화시도를 했지만 통화불능지역...아내에게 전화기를 주고 먼저 내려가라고 하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석개재까지 나간 후 전화가 되면 119에 구조요청하고 전화가 안되면 지나가는 아무 차나 잡아타고 민가로 내려가 구조요청하라고... 아내는 쓰러진 나의 모습을 보더니 당황한 빛이 역력하였다.

아내가 먼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난... 낙엽 위에 쓰러져 한참을 눈감고 있었다. 이럴 때도 있구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그리고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도... 몸에선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 추위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굳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꽁꽁 얼어죽는다는 건.. 편하게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것 같았다.
눈을 더 보니 어느 새 해는 저물었고.. 뉘엿뉘엿 어둠이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구조를 받더라도 내가 나갈 수 있는 데까지는 바깥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서 걷기 시작하였다. 일어날 땐 힘들었으나... 텅 빈 몸이라 여겨지니... 날아가는 새이려니 여기니 스러질 듯 쓰러지지 않으며 내리막길을 달렸다.
마라톤이 생각났다. 다 지친 상태에서 나중엔 정신력 하나만으로 달린다는.. 다리가 마비된 듯 내 뜻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내 달으니...앞으로 전진이 되었다. 몇 개의 오르막에서는 기어가듯이 걷다가 또 드러눕고.. 다시 걷기를 반복.. 암봉을 지나자 내리막에서...정신이 몽롱해져 안되겠다는 생각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또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하늘은 하얗게 변해 있고 둥근 달이 떠 있고..나뭇가지들은 앙상한 뼈다귀들처럼 까맣게 변해 있었다. 달이 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래도 희미하게 길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죽밭을 다 지나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일어났고 뛰었다.. 몇 차려 그렇게 반복을 하며 소리도 질렀다. 저만치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소리를 쳐서 걸음을 멈췄다는 것이었다.

"괜찮아?.."
"응, 누웠었더니, 조금"
"그럼 같이 갈까?"
"아니, 어둡기 전에 먼저 나가서 구조요청 해. 난 나갈 수 있는데 까지는 나갈 테니까."
"나가려면 아직 멀었나?"
"응, 소나무가 식재된 송림하구. 산죽밭하구, 그리고 철쭉길 지나면 거기가 석개재 바로 위 첫 봉우리.. 삼각점이 있는 1008.9봉이잖아. 거기만 넘으면 돼"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 난 그냥 길만 보면서 와서 모르겠는데.."
"난 다 살피면서 다니잖아. 시간도 기록하고, 특징 같은 것도...아마 이십분 정도면 나갈텐데.. 빨리 가 봐. 어두워지면 안되니까..산죽밭을 빨리 지나야 해. 컴컴해서 잘 안보이면 배낭에 헤드랜턴 있으니까 그걸 사용해"
아내는 서둘러 자리를 떴고 난 좀 더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핑,, 도는 어지러움.
막 달리며 나무들을 헤치고 얼마를 나아가니 송림이 나타나고 산죽밭이 나타나고.. 소리를 지르며 나아갔다. 마지막 봉우리 하나만 남은 것이다. 저만치 석개재를 넘는 도로의 하얀 암석 절개지가 달빛아래 눈에 띄었다. 마지막 정신력을 다해 1008.9봉을 넘어섰다. 아내가 저만치 서 있는 모습이 또 보였다.
다리가 많이 아픈 모양이다.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앞장서서 미끄럼 타듯이 주위의 나무를 잡아가며 내려갔다. 그러자 아내도 용기를 내어 따라 내려왔다. 작은 봉우리 한 개만 넘으면 석개재 도로에 내려서는데 마지막으로 한번만 쉬자고 하였다.


힘겹게 석개재에 내려서자 안도감이 돌았고 한참을 앉아서 쉬니 힘이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 (18:00)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세워서 신세를 지고 싶었으나 통행하는 차량이 없었다. 저 아래에서 도로를 따라 석개재까지 올라와 도착했던 시각을 보기 위해 수첩을 꺼내 살펴보니 한시간 반 걸렸다... 그럼..내려가는 길이 조금 빠르다 해도 지금의 이런 소진된 체력과 무릎통증으로는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는 것은 그리 쉬워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어 내려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걸을 생각을 하니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오가는 차량은 한 대도 없고.. 춥기만 하였다. 내가 미안해하며 아내를 쳐다보자 내 등을 두르려 준다. 이나마 다행이라고.. 좋은 경험했다고... 그러니 초행길은 조심하라고... 난 잘 견뎌준 아내의 체력이 대견스럽기만 하였다. 그러나 무리한 산행에 무릎이 많이 아픈 듯 싶어 그것이 걱정되었다. 몸이 추워지니 도로를 따라 걸어가자고 하여 결국 풍곡까지 하산하는데 한시간 삼십분 걸려 내려왔다..
컴컴해진 석개재에서 달빛 하나만을 의지하여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정말 지루하고 허기까지 겹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다리가 아파 쉬기도 하며 뒷걸음으로 걷기도 하며...
그러나 산 속에서처럼 그런 두려움은 없었으니 다행이었다.
외삼방의 가옥에서 비치는 불빛과 응봉산 자락 너머 바다인지 산위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반짝거리는 불빛.. 석개재 위로 유난히 크게 반짝이던..별.. 집에 홀로 남아 있던 영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용차에 도착한 시간을 보니 19:30분
산행을 시작한 시간을 기점으로 총 8:20분 걸린 참으로 죽을 뻔한 산행이었다.
우리는 먼저 생라면을 부수어 허기를 채운 뒤 마을의 구멍가게에서 우유를 하나 씩 마셨다.
집까지 돌아오는 데는 딱 한시간 걸렸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을 푹 이루니 나는 살 만해 졌으나 아내는 아직 무릎의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는 심상치 않은 상태다.


등산제의는 아내가 했지만 섣불렀던 산행지 선정과
산중에서의 나의 잘못된 판단이 미안하여 머리를 들 수가 없다.

아, 생각만 해도 어지러운 여덟 시간 반


면산(1245.2m)...

면산 산행지도

2004. 1. 4


▣ 이송면 - 님의 어려웠던 산행이 실감이 납니다. 그래도 계속 휴양소 하산길을 찾지 않으시고 되돌아 서신것은 참으로 잘 하신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산속에서 고립이 되었다고 느꼈을때는 정말 겁이 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근처에 있다고 느끼면 더 당황스럽고 공포가 밀려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은데 님께서는 잘 하신 것 같습니다. 겨울산에서 누어서 쉬는것도 참으로 위험하지요. 천천히 움직이더라도 계속 몸을 움직여서 체온을 뺏기지 않아야 된다고 배웠기에.... 저도 12일 혼이 났습니다. 하하.. 부인의 무릎이 빨리 정상이 되어야 할텐데요... 늘 건강하고 행복한 산행 하십시오.
▣ 구본식 - 님 의 산행기를 읽으며, 숨이 차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고생하셨군요. 이번 겨울에 아들녀석을 데리고 또다시 지리산이나 덕유산에 갈 생각인데, 이송면 선생님의 글과 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산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산은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님을 통해 정말 좋은 대리 경험을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울러 부인의 무릎도 빠리 정상화 되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허경숙 - 나무님! 무인지경에 사경을 헤매다 탈출하셨으니 지금의 나무님 보다 더 뿌리 깊고 튼실한 영원한 나무가 되실 것 같아 님의 힘듦을 알면서도 뿌듯해짐은 어인일인지... 여리게 다가오는 아내라는 이름의 여인이 참 아름답고 장하다 느껴집니다. 때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강할 때가 있지요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가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배 영훈이도 더욱 멋있게 자랄 것 같습니다. 아내의 무릎은 조금만 지나면 나을 것입니다. 이 아침 님들의 화이팅에 박수를 보냅니다.
▣ 산초스 - 정말 다행이었군요. 산은 항상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지 미리 섣불리 예단하고 준비를 부실하게 하고 자만하면 댓가를 치르게 되는것 같습니다.아내께서 무서워하지 않으시고 먼저 하산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고 빨리 무릎이 나시기를 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산너머 - 고생했습니다.
▣ 산짐승 - 님과 부인 두분 모두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부인의 무릎이 하루속히 나으시기를 빌며....
▣ 포도사랑 - 예전에 저도 설악 서북능에서 비슥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지만 예전에는 젊은 혈기에 몸으로 때우던 때 였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내리는 눈은 길을 모두 지워버리고 바람은 더욱 세차지고 희미한 손전등 하나로 2시간여를 헤메다 결국 비박을 했던 경험이 있지요...항상 체력관리, 철저한 산행준비 그리고 과감한 탈출 결단 등이 겨울철 안전 산행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 dbnr -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님의 어려운 산행은 의지력과 싸움에서 이긴것입니다
▣ 김정길 - 1)출발 방향, 2)너무 늦은 11:10,출발, 3)휴대음식상태, 등은 면산 원점회귀 산행에 있어서는 정확하게 사고를 지참한 산행이었다고 봅니다. 그나마 생환은 첫째는 부인의 정신력과 체력으로 부인께서 더 오래 버텨준 덕이며, 둘째는 이송면님의 말씀대로 가신 길로 되돌아 오신점이라고 봅니다. 여자는 약하나 아내는 강했습니다. 부인께 찬사를 보냅니다. 마지막에도 석개재 에서는 전화가 터지며 석포면 개인택시가 있는데..... 석개재에서 휴양림입구3거리 6km, 석포면소재지10km, 입니다. ((**** 참고로*, 면산 원점회기산행은 먼저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산행이어야 합니다. 석개재로 해서 오르면 하산로를 한번 다니고도 전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 김정길 - 석개재에서는 면산 묘봉 모두 정상은 안보이며 보이는 건 정상의 앞에 있는 낮은 봉우리입니다. 그리고 면산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습니다. 임께서 정상으로 판단하신 지점 근처에서 산죽 사이로 자세히 보면 서남쪽으로 삼방산(1175.4m)을 거처 석포면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산로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7-10m에 서너평의 공터와 정상 삼각점이 있습니다. 높이는 비슷합니다. 생환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커피 매니아 - 듣기만 해도 다시 가고픈 동활,풍곡입니다. 치바위산도 가보고싶고 제가 그리워하는 고장에 사셔서 부럽고 , 판단력과 부인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