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錦山 보리암, 사천 와룡산 산행기(1)


2004. 4. 3. (土)~ 4. 4.(日)
한아(HANA)관광[02-732-7900] 버스(서울 70바5291)
22 : 10 동대문 종합상가 주차장 출발
01 : 10 인삼랜드[금산](통영방면) 휴게소 20분 정차
02 : 45 산청 휴게소 15분 정차
04 : 10 보리암 입구 여관촌 주차장 도착

바야흐로 꽃구경 철이라 좋은 행락철이 시작된 것이다. 더군다나 황금의 연휴가 이어져 행락객이 수직으로 증가하는 바람에 도로마다 차량이 북적이어 마치 전국이 주차장이 된 듯하다. 우리도 예상보다는 많이 지체되어 남해 보리암 상주리 여관촌 입구 산행 기점에 도착한 것이다.

벚꽃이 일찍 피면 풍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계절 진행이 평년보다 빠르다는 것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일찍 발달하여 기온이 높아지기 때문인데, 북태평양 고기압이 계속 발달하여 기온이 높을 때 작물 성장을 촉진할 수 있어서이다. 또한 복숭아꽃 피면 맑은 날 3일도 못 간다는 말도 생각나는데, 복숭아 꽃이 피는 3, 4월은 날씨 변화가 심해서 3일 이상 맑은 날이 계속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예전의 우려와는 달리 날씨가 무척 좋아 모처럼의 휴일을 만끽하게 해 주어 하늘에 감사하다. 다만, 금산 정상과 단군성전, 상사바위에서의 영하의 날씨를 보여 손이 꽁꽁 얼어붙고 고인 물에 살얼음이 끼도록 한 것은 양념이었지만....

청암산악회(02-2246-4858) 대장 류제천님(011-9972-4858)의 자세한 설명과 김총무님의 친절한 안내가 퍽 인상 깊었다. 14살부터 산을 타셨다는 대장님은 진정한 산꾼이었다. 분위기가 무척 조용하게 유도하셨다. 버스에서는 술이나 먹고 떠들도록 하지 않으시고, 일찍 소등하여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신 점이라든지, 올라올 때도 쓸데없이 술을 버스에서 마시며 마냥 떠들게 하는 산악회와는 달리 일찍 쉬게 함으로써 여러 회원들의 휴식에 만전을 기하게 하여 이튿날 생업에 돌아갈 때 지장이 없도록 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더욱 좋은 것은 회원들의 뜻에 따라 정말로 좋은 식당을 예약하여 반찬 하나하나까지 손수 챙기셨다는 점이다. 회원분들 면면도 대단하였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의 임원이신 일본인까지 동반한 산행이었던 것이다. 이런 훌륭한 면면의 분들과 함께 한 산행은 의미가 꽤나 깊어 늘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특히 오늘은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남해 금산과 사천 와룡산의 두 산을 한꺼번에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여간 기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지형도를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아서 자세히 대조해 보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금산/보리암 산행기]


위치 : 경남 남해군 이동면, 상주면

산행시간 : 약 3시간(04 : 20 ~ 07 : 30).

산행거리 : 약 6km


금산 산행은 복곡저수지 주차장에서 보리암 뒤까지 보리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8부능선에서 하차하여 올라가도 금방(20여분) 정상에 이르게 되고, 승용차로는 보리암까지 바로 오를 수 있어서 산행하기에 아주 쉽고,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온갖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금산의 참맛을 느끼면서 금산의 절경을 고루 보고, 산행의 재미를 100배로 즐기기 위해서 아래와 같이 여러 코스 중에서 상주해수욕장 못미쳐 있는 여관촌 주차장/상주매표소를 기점으로 하여 정상을 거쳐 다시 상주면 매표소 쪽으로 하산하는 제1코tm 원점회귀산행을 하였다. 정통적이고 유명산악인이 이끄는 산악회라, 우리는 자존심도 살려야 하기에 그런 약은 수는 쓰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보리암 위 설법전 기와 불사 접수처에서 좌측 넓은 길로 수많은 인파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또한 승용차도 많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마 그들이 그 방향으로 올라온 모양이다. 다만 정상에 오른 후 상주면 매표소 쪽으로 원점회귀하여 하산하는 바람에 다른 코스를 답사하지 못한 것이 다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① 제1코스 (왕복 내지 원점회귀 산행) : 상주면 매표소 - 쌍홍문 - 보리암 - 정상 - 보리암 -상주면 매표소/주차장(3시간), ② 제2코스 : 상주면 매표소 - 쌍홍문 - 보리암 - 정상 - 보리암 - 보리암 셔틀버스 정류장 - 이동면 복곡저수지 매표소/주차장(3시간), ③ 제3코스 : 이동면 복곡저수지 주차장/매표소 - 보리암행 셔틀버스 - 보리암 - 정상 - 보리암 - 쌍흥문 - 상주면 매표소 -상주면 매표소(3시간), ④ 제4코스(보리암 관광코스) : 이동면 복곡저수지 주차장(매표소) - 보리암행 셔틀버스 - 보리암 - 정상 - 보리암 - 셔틀버스 - 복곡저수지 주차장(매표소).

금산은 한반도의 중앙 최남단에 위치한 남해도에 있으며, 그 남해도 중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남해도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금산은 또한 백두대간에서 낙남정간으로 이어지면서 하동 땅을 거쳐 남해도의 끝자락에 솟구쳐 오른 산으로 조물주의 걸작품인 명산이다. 푸른 한려수도에 치솟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은 가히 선경이라 할 수 있고, 아름다운 바다와 아름다운 산의 동거는 '맑고 밝음'을 가져다 주는 듯하다. 더구나 보리암에서 며칠을 묵기만 해도 마음의 눈(心眼)이 열릴 것 같다. 비록 해발681m의 그리 높지 않고 규모도 작은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산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아름다운 해안, 쪽빛 바다와 초록빛 들녁과 맞물려 절경을 이루고 있는 명산이다. 가히 삼남 제일의 명산이라 할 만하다. 힐끗 보이는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보니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진다. 동물 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동물원으로 불리기도 하는 등,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보니 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수식어가 무척이나 많은 산이다. 기암절벽과 해안의 절경이 어우러진 조화를 내려다보면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만큼 금산은 바다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한겨울에도 포근하여 겨울등산 코스로도 좋아 보인다. 그리고 산중턱에 보리암이 있어 신성스러운 산으로 느껴진다. 한려해상공원에 속해 있어 아름다운 해안풍경과 산 자체가 가진 기암괴봉들의 아름다움을 함께 볼 수 있어 좋을 뿐만 아니라, 산의 발치에 미조항과 상주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어 싱싱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어 더욱 좋다. 공기가 무척 좋다. 샘터를 지나서 힘든 코스가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리 힘든 코스도 아니어서 오를 만한 산이다. 정상에서 보는 산자락과 남해바다도 다른 산들과는 특이한 맛이어서 감탄이 절로 난다. 우리나라 바닷가에 인접한 산 중에 가장 아름답고 영험한 산답게, 정말 볼거리가 많았다!!! 그런데 연인끼리 꽃이 만발할 때 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유자동동주를 마시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금산은 가파르기로 유명한 산이다.
금산은 수많은 절경이 있어 하루 중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보려니 지나친 것이 많아 무척 아쉽다. 특히 많은 유적지와 관광지를 보유한 문화유산의 보고인 남해 주변의 것들까지 두루 살펴보고 싶은데 말이다. 금산은 가족단위 또는 연인끼리든, 개인이든간에 충분한 여유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답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 또한 훗날 함께 넉넉한 일정으로 다시금 꼭 찾고자 숙제로 남겨 두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금산의 원래 산 이름은 보광산이었다. 원효 대사가 신라 문무왕 3(663)년에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그렇게 산이름을 붙였다. 보광산이란 이름은 조선 건국과 함께 이성계가 바꾼다. 이성계가 조선의 개국을 앞두고 전국 명산을 돌며 왕이 되기를 기도하던 중 이성계가 천운을 바라며 백두산에 들어갔으나 산신이 받아주지 않았고, 두 번째로 들어간 지리산마저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이성계는 이곳 남해섬 보광산(금산의 옛 이름)에 들어와 1백일간 기도를 올렸는데, 임금이 되게 해주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주기로 산신령과 약속하였는데, 백일기도가 효험이 있었던 탓인지 결국 조선이 자신의 뜻대로 개국되자, 그 보답으로 이 산을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하여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막상 조선의 개국 후 임금이 되고 보니 이 넓은 금산을 비단으로 다 두를 수가 없어 고심하던 중에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 중신들과 회의를 가졌을 때, 기민하고 재치있는 중신 중 한사람이 "우리나라에는 그 큰 산 전체를 덮을 만한 비단이 없고 그만큼의 경제가 허락지 않으며, 비단으로 산을 감싼 이후에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곧 썩거나 누더기가 되므로 썩지 않는 빛나는 이름을 하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니, 산 이름을 ‘금(비단 금)산(뫼 산)‘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이를 받아들인 이성계가 보광산을 금산이라 고쳐 부르게 함으로써 약속을 지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렇듯 금산은 이성계를 왕위에 오르도록 도와준 산이다.

금산은 산 내외의 풍광이 위와 같이 아름답고 아담하여 38개의 절경이 있다. 금산 38경은 1. 망대, 2. 문장암, 3. 대장봉, 4.형리암, 5.탑대, 6.천구암, 7.이태조기단, 8.가사굴, 9.삼불암[태조 이성계의 건국신화가 담겨있는 부처님 좌상 같이 생김], 10.천계암, 11.천마암, 12.만장대, 13.음성굴[돌로 두드리면 장고소리와 같은 풍악소리가 들린다고 함], 14.용굴[용이 살다 승천했다고 함. 길이 50m], 15.쌍홍문, 16.사선대, 17. 백명굴, 18.천구봉, 19.제석봉, 20.좌선대, 21.삼사기단, 22.저두암[두 마리의 돼지를 닮음], 23.상사바위, 24.향로봉, 25.사자암, 26.팔선대 , 27.촛대봉, 28.구정암, 29.감로수, 30.농주암[용과 호랑이가 구슬을 가지고 노는 형상], 31.화엄봉, 32.일월봉[두 개의 바위로 층암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층암으로 되어있는 바위가 가까이서 보면 날 일(日)이고, 멀리서 보면 달 월(月)자 모양을 하고 있다], 33.흔들바위[한두사람이 흔들어도 쉽게 흔들거리는 35t무게의 신비한 바위], 34.부소암, 35.상주리 석각, 36.세존도, 37.노인성, 38.일출경 등을 말한다.
이중 37경은 먼 남쪽 섬나라 남해의 별밤을 말한다. 밤하늘에 셀 수 없을 만큼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발하는 어마어마한 별빛은 흡사 개똥벌레들을 하늘에 무더기로 뿌려놓은 것 같아 낭만적이다. 이 별빛을 38경에 넣은 것이 매우 이채롭다. 언제 한 번 와서 꽃봉오리 필 적에 금산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을 감상하고, 바다가 들려주는 잔잔한 세레나데를 듣고 싶어진다. 남해에 잠길 듯 수면 가까이 내려앉는 노인성을 바라보면 장수한다는 전설이 있고, 실제로 근처에 장수촌으로 소문난 두 마을이 있다고 한다.

금산 제 38경 일출경도 압권이다. 비단을 둘러놓았다 해서 금산이라고 불려진 금산의 그 아름다움은 일출의 장관이 있기에 더 빛나는 것이다. 산행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출까지 맞이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을 것 같다. 남해에서 1박이라도 할 예정이면 반드시 해뜨기 전 금산에 올라가 볼 것을 서슴없이 권하고 싶다. 이처럼 기막힌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흔하지 않다. 천지신명의 조화를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퇴장하려는 하얀 달과 등장하려는 붉은 해가 서로의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없으니만큼, 하얀 달은 조용히 태양에 자리를 내어 주고 사라진다. 그 힘겨룸의 현장을 이 곳 금산 하늘에서 바라보니 감회가 깊다.
해는 떠오르는 동안만큼은 장난꾸러기처럼 보인다. 한시도 얌전히 있지 못하고 펄떡펄떡 살아 솟아오르고 있는 듯하다. 금산에서 제일 높은 망대나 금산 정상 부근의 암자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은 해와 바다 그리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금산이 빚는 최고의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사람을 취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마음을 정돈하여 인내심있게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의 힘든 일을 다 잊어버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떠오르는 해를 마음껏 맞는다. 염원을 이루어 달라는 기도와 함께 ... 어둠을 서서히 밀어내고 수평선 아래에서 손톱만큼 빠끔히 올라온 태양은 곧 온 남해 바다 수면 위에 그 찬란한 빛을 흩뿌리면, 바다는 살랑살랑 파도를 치며 화답하면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새들도 아침을 노래한다. 이를 시샘이라도 하듯 심술궂은 구름의 훼방이 잦지만 구름도 일출의 아름다움에는 압도되는 듯, 어느 새 스스로도 붉은 태양빛으로 변화되고 만다.


(1) 상주리 주차장(2.3km) - 망대


04 : 20이 되어 류 회장님은 미리 깨어서 적응을 하게 할 요량으로 기상시킨다. 그리고 보리암까지 오르는데 약 1시간 10분, 하산시 50분, 총 2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과 다시 원점회귀 산행하여 버스로 복귀해야 하니 빈 몸으로 후래쉬와 사진기만을 지참하여 올라가고, 물도 군데군데 있으니 물도 지참하지 말라는 상세한 설명에는 형과 같은 우애를 느끼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침을 사천시에 나가서 먹고 와룡산 산행을 할 계획이니 일출만 보고 되도록이면 빨리 하산하여 줄 것을 주문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날씨가 예상외로 조금 쌀쌀하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걸려 있다. 소금기와 바다 냄새를 머금은 바다 바람이 상쾌하게 얼굴을 스치니 상쾌하다. 주차장 우측에는 남해창선으로 이어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고, 좌측으로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가게들과 여관촌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가에는 벚꽃 나무들이 서 있는데. 예년보다 좀 빨리 핀 꽃들은 일부 지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남동 방향으로 진행한다. 화장실과 깃대들이 보이고, 이어 한려해상국립공원 안내문이 크게 걸려 있다. 그리고 우측에는 ‘국제로타리 372지구 남해로타리크럽’에서 세운 ‘4가지 표준’을 새긴 비가 이색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 내용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너무 좋아서 이참에 모든 분들에게 전파하고 싶어서 옮겨 놓고 싶다.
“로타리인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1. 진실한가? , 2. 모두에게 공평한가? , 3. 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 4. 모두에게 유익한가? ”

이어 재두산장 식당 안내 광고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금산 정상 2.3km" 이정표가 있다. 그 좌측에는 잔디밭 공터가 넓어서 쉬거나 휴식하기에 좋을 듯하다. 뒤편 뚝에 개나리꽃이 보기좋게 피어 있다. 이어 이정표가 나오는데, ”단군성전 2.2km, 보리암 2.3km, 도선바위 1.2km“란다. 계단길이 된다. 넓은 신작로 같이 잘 다듬어져 있어 인상이 좋다. 주변은 해송숲이 울창한데, 꽃을 만개한 벚나무도 더러 있다. 이어 조그만 상점이 있다. 동동주 등이 입맛나게 한다. 술 3병을 밖에 둔 채로 문을 잠갔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신성한 보리암에 오르는 사람은 그만큼 마음까지 정화된 것인가 보다.

이어 한려해상 국립공원 금산매표소에 이른다. 개인은 성인 금1,600원, 청소년/학생/군경은 금600원, 어린이는 금300원이고, 단체는 성인 금1,400원, 청소년/학생/군경은 금500원, 어린이는 금250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직원이 없어 공짜로 오른다. 송림속으로 돌을 깐 보도가 이어진다. 길은 역시 널찍한 게 좋은 편이다. 이어 쉼터에 이르니 안내도가 있다. 이내 3거리에 이른다. 김해김씨 묘가 있다. 우측 길은 자연관찰로이라고 되어 있다. 좌측으로 오른다. 곧 좌측에 큰 돌탑 2개가 주위에 많은 작은 돌탑들을 거느리고 있는 곳에 이른다. 산딸나무와 붉은 꽃을 달고 있는 동백나무도 보인다.

오르는 길이 넓고 잘 정비되어 있는데다가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힘이 안 들어 연인끼리나 가족 나들이에 아주 좋아 보인다. 꼭 권해보고 싶은 산이다. 더구나 소원성취의 기도도 올리며 일출을 감상하기에도 아주 안성맞춤이니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벌써부터 목탁 소리가 우둔한 중생들을 압도하듯 들려오는데, 마음이 깨끗해져 오는 것 같다.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도 듣기 좋다. 억겁의 세월 동안 불었을 바람 소리일진대, 오늘따라 그 소리가 아주 좋게 들리니 이상하다. 들고양이 한 나리가 숨죽이며 바위 위에 엎드려 있다. 두 눈에 나는 광채가 괴이하다. 지팡이로 쿵 치니 멀리 도망간다. 별로 기분이 좋지 않게 하는 야생 고양이....

“정상 1.6km, 입구 500m”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이른다. 이어 우측에 낮은 묘가 있다.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잔디가 좋으며, 공터가 있어 쉬기에 좋을 듯하다. 이내 사고신고 및 구조 요청 말뚝이 있다. “한려 01-01, 신고처 055-863-3522(사무소), 055-862-0119(119 구조대)”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우측(북동)으로 틀어 둔덕을 넘어 내려간다. 팽나무가 보인다. 이내 개울가에 이른다. 맑은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정겹다. 봄임을 실감나게 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작년의 태풍 피해의 흔적이다. 많은 세월에 걸쳐 살아남아 커 온 나무들이기에 몹시 안타깝다.

개울을 건너 오른다. 계단이 나오는데, 말뚝과 줄이 설치되어 있다. 팥배나무가 나오는 곳에서 길이 조금 좁아지며 가팔라진다. 이어 통나무 계단이다. 길 주변의 여러 바위 위에는 돌을 얹어 놓거나 돌탑을 쌓은 모습이 목격된다. 불심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이어 큰 바위가 나온다. 그 우측에는 사람주나무가 있다. 이제 염불소리도 뚜렷이 들린다. 이어 좌측에 벤취가 나오는 곳에서 약간 우측으로 휘어 오른다. 우측에 쉼터가 나온다. 길다란 벤취도 2개나 보인다. 이어 좌측으로 오르니 곧 계단이 잠시 끝난다. 자연스레 잘 다듬어져 있는 돌길로 바뀌게 된다.

이내 사고신고 및 구조 요청 말뚝이 있다. “한려 01-02”. 암반길을 지나니 다시 돌길이 이어진다. 이윽고 “마지막 화장실” 안내문이 있다. 좌측이 화장실이다. 바로 위에 샘터가 있다. 물이 아주 말고 맛있다. 의무적으로 한 번 마시는 게 좋을 듯하다. 샘터 주변은 넓은 암반인데, 벤취도 설치되어 있는 쉼터로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다. 큰 키의 나무들도 운치를 더해 주어 좋다. 이내 이정표가 나온다. “정상 1.15km, 쌍홍문 0.8km, 입구 1.15km". 그러니 입구와 정상간의 꼭 절반이 되는 지점이다.

샘터를 지나 한 차례 계단길을 가파르게 오른다. 이제 소나무숲이 완전 활엽수림으로 바뀐다. 위로 보이는 사선대와 보리암 주변의 바위 봉우리들이 압도적이다. 뒤를 돌아다 보니, 움이 크고 있는 나무들 사이로 상주해수욕장과 남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춤을 춘다. 시원스러운 풍경이 가슴속을 기분좋게 파고든다. 위로는 벼랑에 걸려 있는 듯한 보리암의 건물이 아슬아슬하다. 좌측으로 휘어 완만한 곳에 이른다. 이어 우측으로 오른다. 돌 무더기 큰 것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오르면서 보니, 이 오르는 길을 내느라고 부득이 나무뿌리가 드러난 것이 있었을 것인데, 그런 나무들의 뿌리를 보호하고 토사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석축을 잘 쌓아 두었음이 관찰된다. 참 노고가 크며, 그 아이디어가 존경스러워 보인다. 이 모범적인 사례를 좀 전파되었으면 하는 것이 진정한 바람이다.

이어 약간 좌측으로 오른다. 바위들이 많은 지대라서 길이 돌길이 된다. 쉼터를 지나 좌측으로 오른다. 이 길을 오르던 수많은 선답자들이 생각난다. 무슨 생각을 품고 올랐을까? 이제는 만만치 않은 길인 것을 .....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지형일 정도로 명승인 것을 감상코자 하거나, 아들을 얻기 위해, 연인을 얻기 위해, 복을 빌고 소원성취를 빌기 위해, 아니면 자연보호를 위해서 등등일 것이다.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할까. 올 여름에 로키산맥에나 다녀올 수 있게 해 달라고 시간을 주십사하고 빌어야겠다.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좌측으로 오른다. 좌우측 위로는 커다란 바위들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본격적인 바위 군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도 사위어져, 사위는 조용하기만 한데, 오르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거친 숨소리,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 소리, 바람소리 등만이 들릴 뿐이다. 잠시 평탄한 곳에 이른다. 이어 우측으로 오른다. 전방 위로 큰 바위 절벽이 아찔하게 서 있다. 길에는 돌이 깔려 있다. 운동화를 신고는 힘들 것 같다. 다시 평탄한 곳에 이르니 쉼터이다. 벤취 1개도 있다. 사고신고 및 구조 요청 말뚝이 있다. “한려 01-03”. 약간 좌측으로 오른다. 길은 역시 돌길이다. 좌우 전방으로 바위 절벽과 암봉 연릉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어 좌측으로 오른다. 우측 위에 가파른 바위 절벽이 서 있다. 길은 역시 돌이 깔려 있다. 이내 두 개의 안내문이 있는데, 좌측은 “사선대”, 우측은 “쌍홍문”의 안내문이다. 좌측으로 보니 바위들이 절묘하게 서 있는데, 그것이 사선대란다. 四仙台는 해상사호, 즉 동사남북에 흩어져 있는 신선이 이 암봉에서 놀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말 사선대의 바위들의 오묘한 모습에 조물주의 솜씨에 그저 감탄을 금하지 못할 지경이다.
雙虹門의 안내문을 소개해 둔다. 『 아득한 옛날 석가세존이 石舟를 만들어 타고 이 쌍홍문의 우측으로 나가면서 멀리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어 나갔기 때문에 하나의 큰 해상동굴이 뚫어졌다고 전해져 오는데, 조선조 11대 중종시대 한림학자 주세붕 선생도 금산에 홍문이 있으므로 일부러 올라왔다고 刻字까지 한 名筆蹟도 있다. 이 문은 금산 38경 중의 제1경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것이며,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절경이다.』좌우 위로도 바위지대 절벽이 절경을 이루어 있다.

이어 계단을 오른다. 쌍홍문 입구 바로 전에 좌측에 공터가 있는데, 가 보니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데, 넓어서 쉬기에 좋다. 돌탑도 보이고 물이 떨어지는 작은 굴도 있다. 쉼터에는 바로 “장군암”과 “송악“이 있어 감상할 만하다. 안내문을 보니 장군암은 장군이 칼을 짚고 東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이란다.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一名 守門將이라고도 한단다. 자세히 보니 그럴 듯하게 생겼다. 그런데 이 장군암에는 바위인지 나무인지 모를 정도로 기묘하게 뿌리를 박고 살면서 푸르른 잎을 싱싱하게 달고 있는 송악이 거대한 줄기를 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채 바위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이 송악은 선운사의 것보다는 그 세력이 못미치나 그래도 대단한 편이다. 송악 안내문에는 『학명 Hedera rhombea Bean, 영명 Ivy. 두릅나무과이고 덩굴식물로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며, 가지에서 나는 작은 뿌리가 암석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성장한다. 녹황색의 작은 꽃들은 10월경 가지끝에 여러 개가 모여 산형(흩어진 모양)으로 피며, 둥근 형태의 열매는 익년 5월 경에 검게 익는다. 』라고 적혀 있다. 하여튼 고창 선운사에서 본 송악을 이곳에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이 공터에서 올라가면 보리암으로 갈 수 있는 바위 문이 하나 더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하였다. 이 곳으로 상사바위와 단군성전과 좌선대로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쌍홍문을 쌍문이 아닌 3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제 쌍홍문을 들어선다. 쌍안경 같이 생긴 2개의 둥그런 큰 굴이 웅장한 천연바위에 뻥 뚫려 있어 특이하며 신비경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해골모양을 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자연조각 같아 웬지 으스스하기도 하다. 동공을 땅 위에 빼꼼히 내놓고 으스스하게 금산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쌍홍문을 들어서면 바로 바위 전시장이다. 굴속은 여름에도 서늘한 바람이 분다. 안에는 몇 곳에 발을 만들어 설치해 두었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 곳인 모양이다. 나쁜 마음이나 불길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굴이 무너질까봐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분위기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 석굴이 다시 위로 뚫려 능선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 정말 기묘하게도 생겼다. 이 바위굴은 안으로 뚫려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금산의 보리암이나 대장암으로 갈 수 있도록 누가 뚫어놓은 듯이 코스대로 뚫려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혹은 같은 크기의 굴 두 개가 마치 거인의 커다란 두개골 해골에 뻥 뚫려있는 두개의 눈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한 쌍굴이다. 높이는 약 7~8m 정도이다. 굴이 둥근 형태이어서 ‘한 쌍의 무지개’라는 별칭도 있다. 굴 속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바다의 조화도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 안에는 샘도 있다. 금산의 여러 개의 등산 길은 여러 개가 있으나, 雙虹門이 그 정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부처님의 보리암의 일주문으로 미리 만드신 게 아닌가 싶다. 이 쌍홍문은 석가 세존이 금산에서 득도를 하고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인도로 가기 위해 무념무상으로 걸어가는데 산이 가로 막고 있다가 갑자기 웅장한 바위에 무지개 같은 구멍이 생기면서 석가세존이 가는 길을 열어 주어 세존도를 통하여 인도로 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석가세존은 오른쪽 무지개 빛 바위 문으로 나가 40km나 떨어져 있는 세존도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갔는데, 이 때 세존도 한복판에는 해상동굴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쌍홍문에서 상주해수욕장과 바다를 바라보니, 상주해수욕장이 초승달 모양의 라인을 그리며 그윽하고, 몇 개의 섬을 넘어 넓게 펼쳐지는 바다가 시원하다. 섬 전체가 쭉쭉 뻗은 바위로 빚어져 남해의 부속 섬 중에서는 제일 아름답다는 세존도가 손끝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온다. 쌍굴 속에는 조그마한 굴이 여러 개 있어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또 다른 두 개의 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니까 쌍홍문은 속인들로 하여금 보리암 관음보살의 품에 안기기 전에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관문인 셈이다. 쌍굴이 어찌나 아름답게 뚫렸는지 그저 신비로울 따름이다. 굴 위쪽에 구멍이 파여져 있는데 그곳에 돌을 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굴을 나와서 좌측으로 오른다. 다도해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상주해수욕장과 쪽빛 남해 바다의 물이 반짝이고,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풍경화처럼 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금산구역 안내도”와 이정표(단군성전 0.3km, 보리암 0.3km, 도선바위 0.3km)가 있다. 또 조그만 안내도가 있는데, 그 앞에서 사람들이 안내도가 잘못되어 있어 옥신각신이다. 우측 위로 보리암이 보인다.
쌍홍문을 지나자 몇 십 미터도 못 가서 오른쪽으로 보리암의 탑대 아래쪽에 동굴이 마주 보인다. 두개의 굴은 용굴이고, 용굴로 들어가는 왼쪽 편에 음성굴이 있다. 높이 2m에 길이5m의 음성굴에 들렀다가 용이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굴로 들어간다. 깊이가 15m 이상 되어 보이는 굴은 서서 들어갔으나 점차 높이가 낮아져 마지막에는 앉아서 들어간다. 굴이 끝나는 지점에 촛불이 켜져 있고 조그마한 석조 불상도 놓여 있다. 돌연히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용굴을 지나면 바로 보리암 관음보살상 앞이 된다.

이어 우측(북동)으로 오른다. 3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오르면 단군성전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우측으로 오른다. 공터에 이르니 3거리인데, 좌측으로 흔들바위와 좌선대로 오르는 길이 있다. 흔들바위는 비스듬히 누워있는 큰 바위 끝에 조그마한 돌이 얹혀 마치 자라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라바위라고도 하며 두 사람 정도가 힘을 가하면 흔들린다고 한다. 보리암에서 5분 거리인 좌선대가 있다. 좌선대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앉아서 수도했다는 곳이다. 사람이 앉아 있도록 홈이 패어졌다고 한다. 좌선대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겨보고 싶으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 그냥 지나친다. 좌선대 옆에 여관이며 음식점인 금산산장(055-862-6060)이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비구니 절터였던 이곳에 50년전 둥지를 튼 김월신(78)할머니가 아직도 여행객을 맞는다. 해뜨기 전 새벽 산길을 더듬어 오른 뒤, 일출을 보고 나면 산행으로 배가 이내 출출해진 사람들은 이곳에서 그 가족들이 내놓은 아침 밥상은 더 이상 꿀맛이 없을 정도의 산장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데, 밥값은 6천원이고, 산나물과 시래기 된장국이 일품이라 한다. 직접 빚은 전통 쌀막걸리 맛도 혀에 착착 감긴다고 한다. 방은 2~4인용 5개, 6~10인용 2개이고, 오래된 석조건물에는 35명까지 한꺼번에 잘 수 있는 단체손님방도 있다. 2인 1박 2만원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산장에서 일부러 자는 사람들이 많단다. 보리암과 거의 같은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별장처럼 고즈넉하여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하룻밤을 보내면 꽤 운치있을 것 같다. 특히 이 여관에서 묵으면서 정상 망대에 올라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고, 아침과 저녁 나절에 내뿜는 보리암의 그윽한 향기를 맛보는 정취는 환상적일 것이라 한다. 주인장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지게로 찬거리를 날랐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반찬뿐 아니라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다는 곳이다.

이어 이 삼거리에서 역시 우측으로 오른다. 요사채를 지나니 시멘트 계단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시멘트 계단이 부조화스럽다. 돌계단으로 하면 더 운치가 있을 듯한데, 아쉽다. 우측 아래 큰 마당에는 큰 불상이 조성되어 서 있고, 사람들도 많이 있다. 시멘트계단을 올라서니 범종각이 나오고 이어 보광전이 나온다. 그 앞에는 역시 시멘트로 넓은 인공마당이 조성되어 있다. 일출맞이 관광객을 위한 배려이긴 하나 자연과 친화되지 않은 듯하여 다소 아쉽다.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도 여기에도 많이도 운집하여 있다.
보리암(055-862-6115, 862-6500)은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절벽위에 지어져 있어 국내 어느 사찰보다도 조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장암, 형리암, 화엄봉, 일월봉, 삼불암이 절을 옹위하듯 둘러싸고 있고, 앞쪽으로 멀리 상주해수욕장의 둥근 방풍림과 남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마치 제비집처럼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한 곳이다.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065에 위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13교구에 속한다. 목탁소리는 이곳 산행객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보리암의 보리는 '도를 이루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보리암은 보광사의 부속암자였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는데, 금산의 비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엉켜있는 사이사이에는 낙락 장송과 조릿대들이 청정하게 서 있고, 산 밑으로는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남해의 벽파(碧波)에 발등을 씻으며, 허리에 구름 띠를 두르고 서 있는 금산의 이마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망망한 남해의 하늘 끝을 내려다보고 있어 조망이 좋다. 대부분의 유서 깊은 사찰들이 울창한 산림 속에 있으나, 보리암은 신선이 노닐었을 법한 영봉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며 따라서 고장의 자랑이 되어 왔다. 보리암은 1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으로서 우리나라 3대 해양 기도처이자,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 서해의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음 기도도량으로 불릴 만큼 효험이 높다고 소문난 사찰이다. 대한민국 불자치고 남해 보리암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곳이 터가 좋고 기도발이 좋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관세음보살이 바닷가에 상주한다고 믿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는 바닷가 쪽에 관음성지가 몰려있게 된 것이어서 그 관음성지는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저절로 일출이나 일몰 명소로도 소문이 난 것이다. 설악산 봉정암(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음), 팔공산 갓바위와 함께 우리 나라 3대 기도처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여기 보리암도 사시사철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깨달음의 종교이지만 구원의 종교인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불교의 수행자들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어려운 수행에 힘쓰지만 대부분의 중생은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처님이나 보살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이렇게 중생의 깨달음을 도와주는 불보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널리 숭배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관세음보살이다.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늘 외우고 항상 마음 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예배하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되며 현세에서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관음신앙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퍼져 나가기 시작해 서기 6세기말에는 신라 백제 등 삼국에 모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 시기부터 관음보살상이 대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삼국유사' 등에도 관음신앙의 기록이 많이 발견된다.

보리암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①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중인도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허황옥 공주의 삼촌인 장유선사의 창건설이다. 그런데 중인도의 아유타국 공주가 허씨성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아유타국이 멸망하여 인도와 인접해 있는 중국으로 옮겨와 있을 때, 중국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공주의 삼촌인 장유선사가 인도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김수로왕과 허황옥(許黃玉) 공주 슬하에 10 왕자를 낳았으나 그중 7명의 왕자를 장유선사가 모두 데리고 출가했는데, 영남일대에 그 장유선사의 유적이 널려있다고 한다. 그 중 김해 장유암이 그 확실한 사적지이고, 가야산과 지리산의 7부처가 모두 장유선사의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장유선사가 처음 찾아든 곳이 가락국이 자리잡고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이 금산 보리암이라는 것이다.
남해안에서 가장 잘 보이면서도 산의 수려한 자태와 구름이 스쳐 지나가면서 하늘과 산 바다 위에서 일으키는 천태만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장유선사는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님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님이 바로 그것이란다.
② 신라 원효대사의 창건설이다. 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여행하다가 금산의 승경에 끌려는데, 온 산이 마치 빛을 발하는 듯 해, 원효대사는 감탄하며 보광산이라 이름을 붙이고 초옥을 짓고 수행을 하던 원효는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에 보광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고려 말에 이 보광사에서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드린 후 조선왕조를 개국하자. 그에 보답코자 온 산에 비단을 둘러준다고 하여 錦山이라 부르고 절 이름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라 신문왕 3년(683)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보광사는 폐사되어 사라지고 없고, 지금은 보광사의 부속암자이었던 보리암 뒤에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잠시 3층석탑과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는 전망대 마당으로 다녀오기로 한다.
보리암 앞 해수관음상 바로 옆에 있는 3층 석탑은 1974. 2. 16.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의 형태로 보아서는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온갖 비바람을 이기면서 천년을 견디어 낸 우직함이 그저 고맙다. 이 석탑은 여러 가지 전설과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 가야국의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태후가 인도 아유타국에 갔다가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건너오지를 못했는데, 허태후가 탄 배에 파사석(인도에만 있는 석재)을 싣고 오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건너오게 되었으며, 이때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이 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탑신에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재질은 화강암으로 상륜부 이상은 약간 파손되었으나 후에 복원되었다. 석탑은 1층부터 3층 옥개석(탑의 맨 위쪽에 있는 덮게 돌)까지 높이는 1.8m이고 1층 한쪽의 길이는 1.2m이다. 3층 탑신에는 우주(隅住)가 새겨져 있고, 상륜부(相輪部)에는 귀한 구슬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그런데 부처의 진신사리의 조화인지, 먼 바다를 건너오면서 방향을 잃어 버렸는지, 아니면 먼 바다를 건너 온 인도의 돌이 조화를 부리는지는 모를 일이나, 탑신 가까이에 가서 나침반을 들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나침반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자기난리' 현상(석탑의 남서쪽 모서리에 나침반을 놓으면 남쪽을 가리켜야 할 바늘이 북쪽을 향함)을 나타내어 제구실을 못한다고 한다. 즉 나침반을 놓는 곳에 따라 북쪽을 가리켜야 하는데도, 나침반을 놓는 방향에 따라 동서남북이 모두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원리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는 모른다. 일부 풍수학자들은 탑 아래로 우주의 지기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방향을 못 잡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는 탑 안에 사리가 있기 때문에, 혹은 온천수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삼층석탑을 경계로 사방 1m정도로 경계석이 둘러처져 있어 더이상 접근을 금지하고 있어 실제로 확인해 보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보리암이 비록 천년고찰이라 하지만 이 3층석탑을 제외하면 그럴듯한 문화재가 없는 것이 조금은 기이하기도 하다.
이 3층석탑 앞은 금산의 제1전망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암자 전체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 한려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다.

3층석탑 옆에는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다. 상주해수욕장과 망망한 대해를 내려보면서 은은하고 인자한 미소를 품고 있다. 기도 또는 일출 감상 등 목적을 불문하고, 어렵게 이 관음보살상 앞에까지 올라오면 땀방울을 식히면서 눈앞에 펼쳐진 남해의 비경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이 해수관세음보살상은 우리나라에만 있고, 우리 민중에게만 숭상되어져 온 관음이다. 이 해수관세음보살상을 보리암에 모신 것은 많은 중생들에게 더 없는 기도도량이 될 것이라는 오고산 스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 석조관음보살을 봉인하던 날 3시경 헬기가 해수관음보살을 모시고 보리암으로 넘어오던 때 광채가 관음상을 비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수관음의 이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보리암에는 참배 기도객들이 부쩍 많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수관음보살상은 보리암에 오는 많은 중생들이 소원을 풀기를 바라는 뜻에서 모신 것이다. 해수관음보살상은 조성된 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보리암의 상징처럼 되었다. 관음보살상 앞에서 보는 보리암 뒷편의 바위 봉우리가 웅장하고 위엄있다. 그래서 이름도 대장봉이다. 보리암은 이렇게 대장봉 벼랑 아래에 절묘하게 걸쳐 있다. 이런 자리를 풍수가들은 선인대좌형국(仙人大坐形局 =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절경에 선인이 내려와서 남쪽의 바다를 감독하는 영원무궁한 선계의 표상‘)이라 한다. 대장봉 왼쪽으로 농주암, 화엄봉, 일월봉, 제석봉, 그리고 더 멀리 상사암 등 여러 가지 모양의 바위 군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앞쪽으로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남해 바다가 쪽빛으로 반짝이고 일망무제로 광활하게 펼쳐 있어 신비롭다. 이 남해도를 둘러싸고 있는 조그마한 섬들이 형제들처럼 정답게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여행을 목적으로 보리암까지 올라왔으면 관음보살 앞에 3배만 올리고 보리암만 대충 둘러보고 가지 말고, 요사채 밑으로 난 대숲(혹은 보리암 우측 극락암 아래로)을 약 200미터 정도 헤치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삼불암을 만난다. 직립한 큰 암벽 위에 서 있는 세 개의 바위가 마치 부처와 같다 해서 삼불암이라 한다. 삼불암 앞에는 이성계가 기도를 하는데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닭은 없고, 닭을 닮은 바위만 있어 천계암이라 불렀다는 바위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조선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한 뒤 등극했다는 `이씨기단`[태조 이성계가 기도하던 단]이 나온다. 금산이란 명칭을 탄생시킨 곳이기에 꼭 둘러 볼 것을 권한다. 금산에서 제일 유명한 듯하여서 그러하다.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는데 문화재적 가치가 없더라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기단 내부와 인근에는 중생들이 불공을 드렸던 흔적이 어지러이 널려져 있다. 기단 앞 넓은 바위에 앉아 남해를 조망해 보니 장관이며, 고개를 돌려 금산을 올려다보니 이 역시 기암괴봉의 절경에 감탄스럽다.

이 보리암 巖茶[큰 바위 차를 말함]가 있다. 靈山인 금산 절벽 사이에서 흐르는 석간수에 우려낸, 생각만 해도 목구멍이 시원해져 오는 유명한 차이다. 본래 깎아지른 절벽위에 자라는 이 차나무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잎을 딸 수가 없어 잘 훈련된 원숭이를 시켜 따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무이암차(武夷巖茶)가 그 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 암차가 바로 보리암에 있으니 이채롭다. 이 차나무가 해발 630m에 위치하는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서 자생하며, 눈 아래 툭 트인 남해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어 반갑기까지 하다. 한 두 그루가 절벽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암차나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김해로 갈 때 이 남해 금산에서 잠시 정박했었는데 이때 가지고 온 차씨를 이곳에 심은 것이라는 설화도 있기도 하고, 신라 때 원효대사가 보리암을 세울 때부터 있었다고 구전되어 내려온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보리암 주지는 "김수로왕의 7 왕자를 데리고 온 장유화상도 지리산 칠불암에 가기 전까지 여기서 공부하며 이 차를 마셨다고 하데요. 원효 스님도 이 차를 마셨고 태조 이성계가 이 위에서 기도를 하면서도, 또 사명대사도 여기서 공부하며 이 차로 모두 득도를 했다고 하지요. 기록이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뭐, 직접 현장에 가서 뿌리를 보면 수백년이 넘은 것임은 초심자라도 쉽게 알 수 있지요." 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요사채에서 왼쪽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면 절벽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막아 만든 샘이 나온다. 그 주위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에워싸고 있는데 대낮이라도 조금 어두울 정도이다. 서쪽 대나무숲 사이로 보리암 가는 길이 있고 동쪽으로 북쪽으로 가로막힌 절벽의 갈라진 틈새에도 차나무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차나무 뿌리는 굵기가 어른의 팔뚝 만큼 굵다. 절벽에 있으니 정말 암차를 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차의 향은 무겁고 그윽한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그곳 스님들 말로는 딸 때의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손이 떨려 주전자에 차잎을 넣을 수 없을 지경이란다.

다시 보광전으로 되돌아온다. 이어 약 200m 떨어진 큰 바위 아래에서 이성계가 기도하던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나 공사중이라면서 폐쇄되어 있다. 이어 보리암 종무소 건물이 있다. 보광전과 종무소 건물 사이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에 이른다. 산신상이 점쟎게 자리하고 있다. 까마귀가 짖으며 창공을 날아가고 있고, 절 주변으로는 진달래, 여러 형태의 바위들, 대나무의 푸르름, 멀리 남해 바다의 만경창파와 아름다운 다도해의 섬들, 상주리 해수욕장의 풍경 등이 모두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보리암이 기묘하게도 들어서 있는 것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경이다. 다시 내려와 종무소 옆으로 나아가니 공터에 감로수가 있다. 목을 축일 수 있어 좋다. 그 옆에 큰 건물인 극락전이 있는데, 불상이 만개나 있어 만보전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랫 층에는 숙박하는 신도들이 있는지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기도객들을 위한 그 객사는 항상 만원을 이룬다고 한다. 극락전 앞 난간에는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샘터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계단길이다. 이내 큰 마당이 있는 절 건물에 이른다. 여기도 넓은 마당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가장자리에는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 놓아 이채롭고, 보기에 좋다. 마당에는 일출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북동쪽에서 올라오는 넓은 도로가 있었는데, 그리로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아마 신전리로 해서 올라오는 길인 모양이다. 마침 그 건물 앞에는 설법전 기와 불사 접수중이었다. 1장에 1만원이란다. 그런데 이 신선한 곳에 차량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어 꼴사나웠다. 굳이 차를 타고 오지 않아도 될 것을....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앗아가면서 이렇게 혼자만의 편리를 도모하는 야속한 마음일진대, 굳이 일출을 보며 기도해 봐야 소원성취가 될까 싶다. 정상 부근에서 어떤 자들이 야호를 외치고 있다. 남의 사색하는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아주 저질스러운 행동이 아닐 수 없어 그냥 혀가 차질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벌써 일출이 이루어졌으나 해무가 잔뜩 끼어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말을 흘린다. 문득 시계를 보니 06 : 15이다. 아쉬운 마음에 계속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과연 구름 사이로 손톱만큼 조그맣게 붉디붉은 빛의 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무슨 소원이냐 하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단지 올해는 어떻게 해서든지 록키산맥 종주에 나설 수 있게 시간이 나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맑았으면 처음부터 완전히 보았을 것을... 아쉬운 마음이지만 완전히 드러나며 솟을 때까지 나의 소원을 빌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산행을 하면서 무수히 맞이하던 일출이지만 영험한 보리암에서의 일출을 맞이하며 기도를 드리면 이루어질 것 같아서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감회가 새롭다.

여기서 좌측으로 오른다. 류대장님은 일출만 보고 내려오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신신당부했건만, 산에 올라 절경에 취하다 보니 그 말이 저 멀리서 메아리쳐 소멸해 버린 듯, 발길은 어느덧 정상 쪽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큰 바위 아래에 남해금산 안내문이 서 있다.
『 해발 681m. 한려해상공원 중에서 유일하게 산악공원에 해당한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이라서 내륙에 있는 산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예전부터 남해의 소금강이라 알려져 있다. 원래 이름은 보광산이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성계가 이 산에서 200일간 기도한 후 산신의 영험을 받았으며, 자신이 왕이 되면 온 산을 비단으로 감싸 주리라 약속했다고 한다. 마침내 왕이 된 이성계는 산신과의 약속에 따라 산의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산의 정상부는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며, 우거진 숲과 철따라 수려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자연석굴인 쌍홍문을 비롯한 38경은 소금강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지었다고 하는 보리암에는 인도에서 제작되어 용왕의 호위를 받으며 이곳까지 왔다고 전해지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그 영험 때문인지 오늘날에도 이곳은 전국에서 으뜸가는 기도처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또 보리암 앞에는 가락국의 김수로 왕비가 인도에서 배로 실어 왔으며, 그 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묻었다고 하는 3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 위에서는 나침반이 정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하니 신비할 따름이다. 금산은 많은 전설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멀리 상주 해수욕장과 더불어 이 고장 최고의 명승지이다. 』해발 높이도 틀리고, 과장된 부분도 있는 듯한 안내문이나, 금산은 역시 절경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이어 잘 만들어진 나무 계단을 지나니 통나무 계단길이 이어진다. 이어 능선에 이른다. 여기가 화엄봉인가? 삼거리가 나 있다. 좌측은 단군성전과 상사바위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이정표에는 “단군성전 265m, 정상 130m, 보리암 200m”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오른다. 바위들이 있고,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란 대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운치가 좋다. 대나무 숲에는 앉아서 쉬었는지, 사진을 찍었는지 사람들의 머문 흔적이 역력하다. 이어 통나무 계단이 나온다. 다시 송신소 건물이 나오고, 우측으로 넓은 암반에는 많은 사람들이 쉼터에서 절경을 감상하며 즐기고 있다. 이어 우측으로 휘어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로 오른다. 조금 올라가면 대장암이 보인다.
이어 정상에 이른다.


(2) 망대(0.75km) - 상사바위


정상 주변은 큰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어 볼 만하다. 다만 영하의 날씨라 추운 게 흠일 뿐이다. 남해 금산 봉수대 안내문과 망대 안내문이 서 있다. 망대는 금산 제1봉이다. 주봉이며 정상인 망대를 중심으로 왼편에 문장봉, 대장봉, 형사암이 있고, 우측에 삼불암, 천구암 등 기암괴봉들이 오밀조밀하게 솟아 있다. 관음봉과 화엄봉, 일월봉, 자리바위, 상사암, 좌선대 등도 보인다. 온갖 전설을 지난 38경(그 중 쌍홍문, 사선대, 상사바위, 암불암 등이 대표적 명소임)과 기암괴석, 남해의 만경창파와 일출의 장엄함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신의 조화라고나 할까 싶다.
망대는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여 조망이 아주 좋다. 그래서 굳이 망대라 이름지었나 보다. 그리고 금강산을 빼어 닮았다 하여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동쪽으로 북곡저수지 쪽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보인다. 주차장에 많은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금산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인다. 북서쪽으로 호구산(617m)과 더 멀리 망운산(785m)이 보이고, 북동쪽으로 남해도 다음으로 큰 창선도의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올망졸망한 섬들과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남해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쪽의 지리산, 서쪽의 여수반도, 동쪽의 통영과 거제도도 보인다. 그리고 금산의 자태와 노량해협의 해안과 기암괴석의 절경과 넓고 다도해로 이루어진 거침없이 널려진 드넓은 남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어서 좋다. 이곳 망대와 망대에서 본 일출의 모습을 제1경과 38경으로 치는 것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미조 앞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해돋이의 모습은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면서 아침햇발이 금산의 이곳저곳을 비추는 일출 모습은 어떤 화가도 뽐낼 수 없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희망과 진취적 기상을 심어주는 일출과 향수와 추억을 가져다 주는 일몰을 모두 즐길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금산은 동쪽과 서쪽에 모두 바다를 끼고 있어 일몰 또한 장관일 것 같다. 그저 황홀감에 빠진다. 그래서 주말이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곳 일출을 보는 모양이다. 3대가 좋은 일을 해야 이곳 일출을 본다는데 나도 오늘은 어지간히 재수가 좋은가 보다. 여느 정상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정상과는 달랐다. 옹기종기 해변을 품은 마을들과 한 점 한 점 찍어놓은 듯한 섬들이 유명한 화가라 한들 그 아름다움을 전하진 못할 것이다. 정상에서 이처럼 기쁨과 주변경관의 황홀함을 실컷 감상하며 남해 금산을 가슴으로 맞이하였던 것이다.

봉수대에 올라보니 견고하게 축조되어 그대로 남아 있고, 옛날 봉화를 올렸을만한 자리인 가운데는 움푹하게 조성되어 있다. 중간 크기의 돌들로 쌓여진 봉화터가 주변경관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로 변모되어 있었다. 고려 의종(1147-1170) 때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했던 우리나라 제2봉수로의 최남단 봉수대 역할을 했으니, 우리나라 역사상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 되었다 한다. 여수에서 온 봉화 연기가 이곳을 거쳐 창선면 '대방산 봉수대'를 거쳐 진주로 연결된다. 다시 진주에서 순차로 한양 목멱산 봉수대까지 연결되었는데, 남해부터 한양까지의 전달 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였다니 몇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당시로서는 참으로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지금이야 전화 또는 핸드폰 한 통화이면 수분만에 연결되지만 말이다.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에 다섯 개의 봉수망을 가졌었다. 당시에는 봉수꾼만 40명이 있어 3교대로 근무했다고 하니 이 봉화가 얼마나 중요한 연락 수단인지를 알 만하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하여 적의 침입을 신속하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평소에는 한 개의 연기를, 적이 나타났을 때는 2개 등등 그 위급함에 따라 갯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어 시계가 제로일 경우에는 봉수꾼이 말을 타고 가거나 직접 달려가서 다음 봉수대 관원에게 알렸다고 한다. 지극히 원시적인 통신 수단이었다.

망대 옆에는 장화처럼 생긴 '문장암'[일명 '명필바위']이 보인다.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풍류를 즐기다가 남해에 있는 금산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아서 쌍홍문을 통하여 이곳 정상까지 올라와 보니 과연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함에 감탄하여 이 바위에다 ' 由虹門 上錦山'(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에 오른다는 뜻)이라는 한자 글씨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런 글씨가 새겨져 문장암이라고 했던 것이다. 바위를 자세히 보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글씨에 힘이 실려 있고 살아 있는 듯하다. 세붕도 쌍홍문을 지나면서 그 인상을 강렬하게 가졌던 모양이다.

한참을 기암괴석의 절경과 남해의 한 눈에 굽어보며 조망을 즐기다가 조금 전의 3거리로 되돌아 내려온다. 이어 우측으로 내려간다. 통나무 계단길이다. 사고신고 및 구조 요청 말뚝이 있다. “한려 01-04”. 이내 단군성전 입구 4거리에 이른다. 좌측은 보리암, 우측 70m 지점에는 단군성전, 직진하면 상사바위(0.4km)로 이어진다.
잠간 단군성전에 다녀오기로 한다. 망대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중심으로 좌측(남쪽)에는 보리암이, 우측(북서)에는 단군성전이 위치해 있다. 단군성전은 1995년 일문 김연섭 선생이 건립한 것으로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꽤 큰 편이다. 단군성전 주변 근처에는 아마 성전을 관리자가 개간한 듯한 밭이 있고, 부드러운 흙산이어서 옛 고향 동네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다. 단군성전의 위치는 앵강만이 바라보여 전망이 좋았다. 근래에 지은 대부분의 사적들과 마찬가지로 단군성전의 건물에서도 덩치만 컸지, 성전다운 엄숙함 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그러나 단군성전이 있다는 것은 이 산이 신성함을 대변하는 데에 보탬이 되는 것 같다.

이어 다시 능선상의 4갈림길로 올라오니, 여기에서 청암산악회 가이드 분과 회원들을 만났다. 그분들과 함께 직진하여 상사바위로 가기로 한다. 4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이내 헬기장이 나온다. 공터가 넓고 잔디고 좋으며, 잘 관리되어 있어서 쉬거나 식사하기에 좋다. 한 귀퉁이에는 “영산금산산신제단”이란 비석이 서 있다. 이어 완만히 오른다. 3갈림길이 있다. 우측 길은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유배되어 살았다는 전설을 가진 부소암(400m)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좌측으로 간다. 여기서 상사바위는 380m라고 한다. 우측 부소암으로 가는 길은 자연보호를 위하여 임시 폐쇄되어 있어 부소암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어 조그만 채전이 나오는데, 채소가 새파랗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정겨워 보인다. 누가 먹기 위해 가꾸는 것일까? 더구나 국립공원 내에서 말이다. 이상했다.

이내 산길이 되면서 내리막이 된다. 이내 3갈림길에 이른다. 이정표에는 “단군성전 0.4km, 상사바위 0.2km, 보리암 0.5km"라고 되어 있다. 우측 길로 내려간다. 이내 큰 바위 아래에 일단의 사람들이 있는데, 국제산악회 강회장님도 보인다. 아침을 하는 중이었는데, 번거로워 하실 것 같아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또 3갈림길에 이르는데, 여기도 이정표가 서 있다. “단군성전 0.5km, 상사바위 0.1km, 보리암 0.6km". 물론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간다. 이어 평탄지대를 지나는데, “단군성전 0.6km, 상사바위, 보리암 0.7km"라 적힌 이정표가 있고 이내 좌측에 하산로가 보인다. 그 하산로는 통제되어 있다.

이어 오르막이다. 바위로 이뤄진 곳이다. 이어 올라서니 온통 바위들로 이뤄진 평원 같다. 그 끝으로 나아가니 널찍한 암반이 있고, 여러 개의 커다란 구멍이 파여 있는데 거기에는 물이 고여 있고, 살얼음이 끼어 있다. 이 일대가 상사바위인데, 높이 80m의 수직벽을 이루고 있어 웅장하고 볼수록 신기한 모습이다. 터가 넓어서 쉬거나 식사하면서 조망을 즐기기에 아주 그만이다. 금산에서 가장 우뚝하고 큰 바위이다. 상사바위의 오른쪽에는 향로처럼 생긴 향로암과 촛대 모양의 촛대봉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도 앞으로는 해금강, 뒤로는 만물상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경치가 좋다. 절벽이 앞으로 톡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병풍을 이루고 있는 금산의 기암절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신이 만든 오묘한 작품을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앞쪽으로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선경이 펼쳐진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상주 해수욕장과 그림 같은 송정 해수욕장이 한 눈에 보이고, 저 멀리 미조항이 아늑하게 쉬고 있다. 서쪽으로는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가 그의 한을 삭이고 있다.

상사바위에는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전설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 전라남도 돌산에 사는 청년이 남해로 머슴을 살러왔다. 주인은 남해의 양반집의 과수댁(혹은 규수처녀라고도 함)이었는데, 그 자태가 빼어나고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만 그 주인마님 과수댁을 짝사랑하였으나, 신분차이로 혼인도 할 수 없어 애간장을 태우다가,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상사병은 약도 없는 병인지라 청년은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과수댁은 가엾이 여기고 사람이 없는 금산으로 돌쇠를 불러내었다. 금산의 벼랑, 이 바위 위에서 돌쇠는 그녀와 소원대로 상사를 풀게 되었고,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신분을 뛰어넘는 에로틱한 전설이 그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바위에 와서 소원을 빌면 상사병을 풀게 하고,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 전설을 들으면 돌산도 사람들은 기분 나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왜 하필 상놈으로 표현된 것인지 말이다.
상사암에는 또다른 상사병에 걸린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도 전해 온다. 『옛날 돌쇠라는 머슴이 주인집 딸을 짝사랑하여 애를 태우다가 죽어 구렁이가 되었다. 이 구렁이는 주인집 딸을 휘감고 풀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주인의 꿈에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나타나 금산에 있는 높은 바위에서 굿을 해보라고 한 뒤 사라졌다.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구렁이가 된 돌쇠는 마침내 딸을 풀어주고 자신은 그만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실수로 떨어진 것을 그렇게 미화한 것은 아닐지....
지금은 그저 평온한 바위들의 군락인데, 전혀 그렇게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지 아니할 바위인 듯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3) 상사바위(2km) - 상주리 매표소 주차장


깊은 상념에 잠긴 채 발길을 돌려 내려선다. 이내 평탄한 지점에 이르러 우측으로 하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폐쇄된 길이나 무시한다. 길이 비교적 뚜렷하기 때문이다. 다시 보리암으로 되돌아가 온 길로 내려가는 것이 편할 것이나, 산꾼은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길로 도전한 것이다. 여러 분들과 함께였다. 혼자 먼저 내려가 용무를 보고 싶었으나 그들과 어울려서 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잡목숲인데, 아침 햇살에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린 모습이 화사해 보인다. 이어 바위길이 나온다. 우측에 상사바위가 우뚝한 게 장엄하다. 날씨도 추워서 그 밑에서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생각에 불현듯 허기를 느낀다. ‘월배 한마음산악회’의 표지기를 위시한 표지기들이 제법 눈에 띈다. 우측 위로는 여전히 상사바위가 위용을 부리고 있고.... 어떤 이는 남자 같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아이를 밴 여인 같다고도 한다. 그러나 난 분간이 안 간다.

이어 가파른 암반지대가 나온다. 잘못 실족이라도 하면 큰 사고가 날 것 같다. 아찔하다. 여기서 우측으로 조심스레 진행한다. 이어 좌측으로 내려간다. 나뭇가지마다 새싹이 움터 나오는 광경은 가히 경이스럽다. 긴 겨울의 혹독함을 이겨내고 내가 여기 있노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여자 분들도 그런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침의 옅은 햇빛을 받으니 그 연초록의 색깔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특히 동백나무 잎은 그 윤기가 일품이었다. 태양이 오르니 기온도 따라 오르는 것 같다. 추위가 조금 누구러지는 것 같다. 큰 나무들이 많아 넉넉한 마음이 들게 한다.

이어 우측으로 잠시 내려간다. 건천이 나온다. 돌들이 마구 뒹굴고 있다. 건천을 건너 사면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에도 나무들이 많이도 쓰러져 있다. 태풍 피해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어 나무 피해가 점점 심해지더니 마침내 길까지 막고 있다. 이어 나뭇가지들이 매우 걸리적거린다. 생강나무 꽃은 이미 진 상태이고, 산벚나무는 예쁜 꽃을 달고 있다. 수요산악회, 대주산악회, 맨산악회 등의 표지기가 보인다. 귀한 엄나무도 보인다. 우측으로 계속 나아가다가 좌측으로 오른다. 이내 보리암으로 오르던 큰 길로 나온다.

우측으로 큰 길로 내려간다. 이내 긴급신고 및 구조 안내 말뚝 ‘한려 01-01’이 나온다. 내려오다 보니 매표소는 아직 비워져 있고, 그 바로 아래 상점이 문을 열고 동동주라도 맛보고 가란다. 생각이 굴뚝 같고, 아직 아침식사 전이니 애써 자제했다. 이어 입구에 내려오니 류대장님이 직접 마 음료를 사서 한 컵씩 나누어 준다. 정이 그 손길에 듬뿍 담겨 있다. 향기가 나는 게 맛이 있다. 마침 그 옆에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보리새우, 돌미역, 멸치, 해캄 등을 팔고 있다. 사는 분이 있어 조금 얻어 먹었더니 맛이 좋다.
주차장에 돌아와서 금산을 올려다보니 금산 정상은 울창한 숲 위에 온통 갖가지 바위를 이고 서 있는데, 금강산을 보는듯한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우리를 압도하는 듯도 하다. 산아래 입구에서도 금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볼수 있었다. 그 중 상사바위가 제일 크고 우뚝하다.



그 후


07 : 50이 되어서야 버스에 탑승이 완료되어 삼천포항으로 진행한다. 도중에 좌측으로 상주해수욕장이 보인다. 약 2km에 걸쳐 몽돌로 이루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길가에는 가로수로 벚꽃 외에도 동백나무가 보인다. 활짝 핀 벚꽃이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아름다운데, 바람이 불 때면 꽃잎이 함박눈 같이 떨어져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게다가 대장님의 말에 내다보니 붉은 꽃 외에도 흰색도 보이는데 특이하고 이채롭다. 마늘밭도 매우 푸른 색깔을 띠고 있어 싱그러워 보이고, 유채꽃들도 만개하여 보기 좋다. 한참 후에 금평천이 나온다. 여기서 금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로도 있는 모양이다. 여하튼 그 코스는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이어 금평천을 건너 오르다가 고개를 넘어 내려간다. 이어 주변으로 보이는 농촌 마을과 보리밭 및 마늘 밭이 녹색으로 채색된 듯하여 별천지 같다. 남해군이 마늘로 유명하다더니 실감이 난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랑이논의 푸릇푸릇한 보리, 올망졸망한 집들, 그리고 남해바다의 풍경이 정겹고 평화롭다.

삼동면을 지나는가 하더니 이어 창선, 삼천포 대교가 나온다. 연육교로서 아름다운 다리이다. 그 기술에 탄복한다. 우리 기술도 이제는 수준급이 된 것 같아서이다. 다리 명칭을 두고 남해군과 사천시가 엄청 신경전을 벌인 결과로 이상한 형태의 다리 이름이 생긴 것이다. 지자체의 발족으로 인한 기이한 현상의 하나인 것이다. 씁쓸한 심정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창선연육교는 남해대교가 이 땅에 세워진 지 딱 30년째가 되는 2003년 봄에 그 역사적인 개통을 하여 그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1995년에 착공하여 8년만이었다. 육지와 섬만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최초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것이어서,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명물로 기대되는 '창선연육교'는 남해 창선도와 삼천포를 연결하는 다리다. 4개의 섬을 5개의 다리를 연결한 것이다. 5개의 다리 모두가 다른 공법으로 만들어져 제 각각의 개성을 뽐내니 이채롭다. 여수에서 남해까지 연육교도 계획 중이라는데, 그것까지 완공되면, 보성-고흥-순천-여수-남해-삼천포-고성-통영-거제까지 한려수도 벨트가 형성되는 셈이 되어, 바다가 반이고 육지가 반인 도로를 달릴 수 있을 날도 곧 올 것 같다.

이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류대장께서 예약하신 08 : 40에 하차하여 “서울쌈밤(055-833-8979)” 식당에 들어선다. 한정식 집인데, 가정집 같다.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 있다. 술꾼들의 주정이 싫어서 낮에만 영업을 한다는 주인 마님의 말씀이 남의 일이 아닌 듯 뇌리에 들어와 비수처럼 꽂힌다. 술도 음식일진대 좀 우아하게 마실 수는 없는 것인지.... 이어 차려진 상차림을 보고 놀란다. 호남지방만 반찬이 많다고 하지만 여기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너무 많아서 일부러 헤아려 보니 무려 20가지나 된다. 좋은 곳을 안내해 주어서 대장님께 감사한다. 멸치젓, 고등어, 서대어 찌개 등을 위시한 해산물, 파김치. 배추기 및, 미역 등 채소, 두릅 등 모두 내가 좋아하는 식단이다. 일손이 없으니 대장님이 손수 나르기까지 하는 모범을 보이신다.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너무 분위기가 좋은 산악회임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시간이 되면 자주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너무 맛있어 과식한 듯하는 분들이 많이 나온다. 산행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측도 있다. 드디어 09 : 20 식사를 마치고 와룡산 산행을 위하여 이동한다.

끝으로 바라는 바는 금산에는 이정표나 안내문, 해발 등이 일치하지 않은 점이 다소 있는 듯하다. 하여 향토산악회에서는 솔선수범하여 모두 재정비하여 줄 것을 감히 제언드리는 바이다. 아무쪼록 좋은 절경이고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곳을 잘 지켜 나가는 현명한 군민이 되어 그 자랑스러움과 자존심을 드높이 누리기를 기원도 곁들이는 바이다.



주변의 볼거리 2개만 소개 :


1. 러브 쿠르저

이제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바다 위를 떠다니는 작은 점들의 유람선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는 바다와는 달리 노량이나 상주에서 운항하는 유람선을 타고 바다의 더 없이 좋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남해읍에서 20분정도 거리. 가족관광지로 이름 난 상주해수욕장 동편 선착장에는 환상의 유람선 러브 크루저 호가 대기하고 있다. 총톤수 250톤으로 승선인원은 420명이다. 유람선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매점, 식당, 나이트, 노래방 시설 등이며, 2층은 객실, 3층은 야외홀이다. 러브 크루즈 호는 각종 선상 토론회나 선상 결혼식장으로도 이용된다. 상주해수욕장이 가족휴양지로 유명하므로, 유람선 관광과 함께 송림에서 휴식도 취하고, 주변절경에 깊이 빠져보는 것도 좋아 보인다. 러브 크루저를 타면 상주해수욕장을 한바퀴 선회한 뒤, 쪽빛 바다로 빠져 나온다. 주변 경치에 취하다 보면, 러브 크루저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 것도 망각하기도 한다. 배 양켠으로 하얀 물보라가 일며 햇살이 부서져 고운 7색 무지개를 그린다. 1층 나이트크럽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신명나게 춤을 추고, 2층에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즐비한 기암 괴석의 해안선 풍광에 연신 탄성을 터뜨린다. 전망대가 있는 3층은 단연 젊은이들의 공간인데, 난간에 기대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청춘남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러브크루저호는 남해안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용이 승천했다는 비룡계곡을 거쳐 메주바위, 스핑크스, 쌍용굴 등 해안선 비경을 따라 한바퀴를 돈다. 출발시간은 성수기 때는 09시, 11시, 13시, 15시이고, 비수기에는 11시, 13시, 15시이다. 요금은 1인당 10,000원에서 20,000원(코스별 구분)이다. 운행코스는 서포 김만중 유배지로 유명한 상주면 노도와 다도해의 비경을 보여주며, 미조상록수림, 활어위판장이 있는 미조항을 거쳐 상주로 돌아온다.

2.상주해수욕장

상주면 상주마을 앞바다에 있는 천연적인 해수욕장이다. 뒤편으로 한 폭의 병풍처럼 소금강산이라고 일컫는 남해금산의 절경이 둘러싸고 있다. 금산 양편으로 쭉 뻗어 내린 산세는 두팔을 벌리고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을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유명한 해수욕장은 모래와 숲과 맑은 바다의 3가지 조건을 가져야 한다. 상주해수욕장은 이를 모두 완벽히 갖추고 있다. 더구나 전국 3대 기도도량 중의 하나인 보리암과 절경을 자랑하는 금산을 하루 코스로 다녀올 수 있다. 바다 밑은 기복이 없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수심은 채 한길도 안 될 정도로 얕아서 어린이들의 물놀이에도 알맞다. 가까운 곳에 강물이나 다른 바다공해에 오염될 것도 없어 바다 밑바닥 모래알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 백사장은 48,400평이고, 송림면적은 2천 700평, 해수욕이 아니라도 송림에서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힐 수 있다. 바다 수온은 23℃∼25℃, 수심은 0.5m∼4m로 적절하게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관광지이다. 해변에서 마주보는 나무섬과 돌섬이 남해 먼 바다의 거센 파도를 달래듯 해안을 막고 서 있는데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상주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면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 새벽에 금산에 올라 일출의 장관을 보고, 금산 38경을 두루두루 돌아본 뒤, 시원한 상주해수욕장의 깨끗한 바닷물에서 해수욕을 즐기거나 해변을 산책하면 최상의 여행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 山용호 - 제가 사는 와룡산과 그리고 바자건너 남해까지 다녀가셧군요 산행기 여행기 잘 읽고갑니다..
▣ 이우원 - 서울에서 멀리오셨군요. 이곳 부산에서는 가까워서 자주 찾는 곳입니다. 시원한 다도해를 바라보며 산행을 즐길수 있는것도 행복이지요. 먼길 다녀가신 님들의 앞날에 시원한 다도해처럼, 빠알간 동백처럼 활짝 꿈이 영글어 가시기를 빕니다. 잘 읽었습니다.
▣ ▣ 강성호 - 안녕하세요? 이종환님 오랜만입니다. 제가 사는곳에서 가까운 좋은산을 조용히 다녀가셨군요. 이곳 저곳 자세히 설명된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오랜만에 이종환님의 산행기를 대하는 군요 산행기 자주 부탁드립니다.
▣ 이종환 - 山용호님, 이우원님, 강성호님 안녕하세요. 님들처럼 좋은 곳에서 사시는 것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향토산을 잘 아끼는 모습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운이 무궁하시고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