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웅령(040327)

0909(모라중) - 0940∼0950(거북바위) - 1020(범방산/272m) - 1054(사거리/불웅령 1.3km)) - 1106(아래삼거리) - 1117(윗삼거리/불웅령500m) - 1123(윗샘터) - 1202(등산로 정비시작) - 1315(정비종료) - 1416(백양산/498m) - 1513(백양터널요금소)

지난 해 6월부터 수 차례에 걸쳐 구포에서 불웅령 오르는 옛길 찾기에 나섰다가 실패를 본 뒤 다소 맥이 빠져 있다가 이번 연휴에는 뭔가 의미 있는 산행을 하고 싶어 녹음이 우거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불웅령 오르는 옛길 찾기 시도를 하였다. 옛길 찾기라 해봐야 숙제로 남아 있는 2백 여 미터 가량의 불웅령 연결로를 찾는 일이다.

쉬운 것 같지만 이 곳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숲 속에 묻힌 산길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만은 아니었다. 여러 번 실패를 하며 얻은 감으로 오늘은 나름대로 불웅령 오르는 옛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혹시 필요할 지도 몰라 무기로 분류한다는 스위스제 칼까지 챙겨 넣었다.

설마하니 네 시간이면 돌아 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간식도 준비하지 않고 약수터에서 물 담을 페트병만 챙겼다. 시간이 일러 철물점 가게문은 열려있지 않아 뒤에 사는 친구 집에 가서 비닐 끈을 얻어 나뭇가지에 묶을 수 있는 알맞은 길이로 잘랐다.

날마다 해 뜨기 전 등산로에서 띄엄띄엄 마주하던 음산한 진달래와는 달리 햇볕을 듬뿍 받으며 화사하게 피어있는 진달래가 봄이 한층 무르익었음을 실감나게 해준다. 오늘은 뜻 있는 산행이 될 지도 모르는데 이런 뜻 있는 날은 뜻 있는 산행 코스를 정해야겠다 싶어 모처럼 아침마다 오르는 능선의 옆 능선에 있는 거북바위를 거쳐가기로 하였다.

어느 재벌 건설회사가 토취장으로 사용한다며 무지막지하게 훼손한 채로 방치되고 있는 능선을 넘으면 물개 형상을 한 바위 아래 암굴이 나오는데 새벽에 촛불 켠 모습을 본지가 오래 되었는데 주변 청소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암굴을 차지하고 있던 수도자는 득도를 하여 저승에 놀러 갔나 보다.

거북바위 남쪽 계곡의 손바닥만한 체력단련장 아래에 있는 약수터 물통에는 며칠 전에 온 비 때문인지 물이 철철 넘쳐흘러 모처럼 이 곳 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페트병에 오늘 먹을 물을 한 통을 가득 채웠다.

거북바위로 오르는 길은 이 곳에서 출발하여 능선 쪽으로 몇 미터 올라가서 능선을 바로 치고 올라가는 코스와 능선을 넘어 능선 왼쪽 사면을 따라 올라가다가 거북바위 근처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능선을 바로 타고 올라가는 암릉 코스가 바위를 타는 묘미가 있어 좋기는 한데

그 길은 알려지지 않아 그 쪽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드물고 간혹 우회 코스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 것도 근래의 일이고 전에는 거북바위에 바로 올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거북바위 위의 바위를 타고 오르면 구포로 뻗어 있는 범방산 주능선까지 바로 올라 갈 수 있는데 이 바위를 타 본 사람이 아니면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대개 거기서 북쪽 사면으로 다시 내려가서 주능선으로 올라간다.

거북바위는 가까이서는 거북의 형상을 볼 수 없고 낙동강 쪽에서도 거북바위의 형상을 볼 수 있지만 범방산 정상에서 서쪽인 김해로 뻗은 8부 능선에 있는 전망대에서 거북바위를 건너다 보면 거북의 형상을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거북이 동쪽 중천에 놓인 먹이를 먹으려고 노려보는 형상으로 구포라는 이름이 이 거북바위에서 유래되었으며 이 거북바위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지각변동이 있은 후 몇 만년 동안 그 자리에 그렇게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거북바위는 범방산 주능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그 곳 사정에 밝은 사람이 아니면 주능선을 타더라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재선충에 감염되어 거북바위 주변에 있던 소나무 몇 그루가 말라죽는 바람에 전망이 틔어 요즘은 그래도 찾기가 조금 수월한 편이며 다른 곳에는 재선충에 감염되어 베어낸 소나무를 자른 무더기에 비닐로 감싸서 훈증 소독을 했는데 여기서 벤 소나무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이 것 때문에 감염이 확산되지 않았을까 신경이 쓰인다.

거북이 먹이 뒤에 있는 바위는 범방산에서 조망이 가장 뛰어난 곳인데 묵은 쓰레기가 더러 버려져 있어 언제 또 올지 알 수가 없어 당초 불웅령 고갯길을 찾고 난 뒤 치르려던 행사 계획을 변경하였다.

저 아래 방치된 토취장은 당초 아파트 부지를 확보하려던 흑심은 포기하였는지 파헤치다 만 능선과 중장비가 올라 다니던 길까지 눈가림으로 앙상한 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신경 써서 가꿀 사람이 있을 턱이 없으니 나무가 제대로 자랄 것 같지도 않고 장마철이 되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해오지 않았는데 여기서 시간 지체를 너무 많이 하여 이러다가 시간이 없어 오늘 불웅령 탐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또 걱정이 된다. 범방산은 높이가 272미터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구포라는 이름을 짓게 된 상징인 거북바위를 품고 있는 모산이며 맑은 물이 샘솟는 약수터가 즐비한 골산으로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만만찮은 거산이다.

그런데 도로공사와 아파트 건축 공사를 하느라 산을 훼손하여 산의 수족은 무참하게 다 잘려나가고 몸통만 겨우 남아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다. 운수사 초입의 산불 감시인은 공공용 마대가 넘칠까 봐 걱정이 되는지 언사가 곱지 않다. 마대에 적힌 구청의 담당 부서로 전화를 하여 오늘 근무하시느냐고 물으니 근무는 안 하고 비상근무자라고 하였다.

미안하지만 담당 부서 직원에게 공공용 마대를 교체해 달라고 좀 전해 달라고 하였더니 전화 받는 태도가 여간 겸손하지 않다. 헬기장을 지나 임도 입구에 갔더니 처음에는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놓고 자그마하게 노점상을 하던 할머니가 그 장사로 재미를 좀 보셨는지 오늘도 한 몫 잡으려 너무 많은 자리를 독점하고 있어 미관 상 좋지 않아 가졌던 동정심 마저 사라졌다.

산불 감시를 하는 싱겁이 아지매는 오늘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산행객들에게 잘 갔다오시라며 일삼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불웅령은 구포 배수지에서 백양산 능선에 올라 불웅령 고개를 넘어 만남의 광장으로 내려가서 초읍으로 넘나드는 길이다.

사상에서 불웅령으로 가려면 구포에서 운수사로 넘어가는 고개의 임도 진입로에서 200여 미터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난 임도를 버리고 왼 쪽으로 난 샛길로 가거나 백여 미터 전방의 송전탑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백양산 주능의 독수리 바위에서 시작하는 모라지능의 꼬리를 넘어서 간다.

갈림길에서 십여 분을 가면 외나무다리를 만나는데 지난 해 나무가 썩어 내려앉아서 5미터 가량의 마른 계곡을 건너느라 여간 거북하지가 않았는데 지금은 누가 근방의 참나무를 베어 다시 외나무다리를 놓았는데 그 정성이 고맙기는 하나 나무 벤 것이 마음에 걸린다.

첫 갈림길의 나무로 된 방향 표지판이 땅에 떨어져 있어 톱날과 칼로 나무 가지를 다듬어 말목에 끼워 표지판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을 하였으나 오래 갈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접착제나 못으로 단단히 고정을 시켜야 든든할 것 같다.

수십 개의 돌탑이 있는 너덜겅 주변에는 산수유 꽃이 일부러 심은 것 같이 빙 둘러 피어 있다. 혹시 내가 산수유를 잘못 알고 있나 싶어 말 붙이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권위 있는 얼굴로 올라오시는 노인장에게 "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저 게 무슨 꽃인지 아십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인근 대학의 학장이나 되시는지 수행비서 쯤이나 보이는 노인장에게 "저 게 무슨 꽃이지요"하고 물으니 "자료에 보니 산수유로 되어 있더라"며 잔뜩 자세를 낮추어 학문적으로 대답을 하신다.

이 골짜기는 백양산 주능과 모라지능과 구포지능 그리고 범방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외부로 통하는 통로라고는 북쪽의 덕천로타리로 빠져나가는 길 밖에 없었는데 근년에 백양터널이 뚫리며 운수사 고개를 넘어 터널 입구로 내려가는 산길 하나가 더 생겼다.

그런 지세로 인해 이 골짜기는 멀리서 보아도 천연 요새나 다름이 없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사방으로부터 불어오는 외풍을 막아 주어 골짜기가 아늑하여 겨울이면 이 근방의 새들은 죄다 이 골짜기 에 모여드는지 겨울에 이 곳에 오면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사람의 혼을 빼어 놓는다.

겨울이 살풋 지나고 봄에 접어들었는데도 텃새들인지 더러 이 곳을 떠나지 않고 눌러앉아 짝을 유혹하는 소리에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오늘 불웅령 탐방은 배수장에서 불웅령으로 오르는 등산로와 운수사에서 초읍 만남의 광장으로 백양산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산책로와 만나는 사거리에서 시작하는데 이정표에는 불웅령 1.3km 배수장 400m로 되어 있다.

이 곳에서 위 삼거리까지 네 곳의 너덜겅을 지났는데 너덜겅 주변에는 어김없이 산수유가 피어 있다. 숲 속에는 산수유가 없고 너덜겅 주변에만 산수유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산수유는 햇볕이 잘 들고 공기 유통이 좋은 곳에 잘 자라는가 보다. 꽃이 만발한 산수유 가지 하나를 잡아 당겨 냄새를 맡아보니 예닐곱 먹은 계집애 몸에서 나는 것 같은 파릇하고 비린 향내가 은근히 묻어 나온다.

불웅령 오르는 길이나 옥천에서 백양 공룡 중간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경사가 급하여 지그재그로 길이 나있다.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10여분 올라가면 운수사로 넘어가는 아래 삼거리를 만난다.

초읍 만남의 광장에서 백양산 산허리를 가로질러 오다가 백양 공룡에서 덕천로타리 방향으로 내려 뻗어있는 구포지능에 있는 마지막 쉼터인 제5쉼터를 지나서 300여 미터 가량 오면 운수사로 가는 길이 둘로 갈라진다.

아래로 난 길은 체육 공원을 거쳐 불웅령 오르는 사거리를 지나 임도를 거쳐 운수사로 가는 길이고, 위로 난 길은 옥천을 지나서 불웅령 오르는 아래 삼거리와 위 삼거리를 거쳐서 모라 지능을 넘어 운수사로 가는 길이다. 불웅령 아래 삼거리에서 모라 지능을 향하여 오른 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는 운수사로 넘어가는 길로 올라가면 불웅령 500미터라고 적혀 있는 위 삼거리가 나온다.

바로 가면 운수사로 넘어가고 왼쪽으로 270도 가량 방향을 틀어 백양산 주능을 향하여 비스듬히 10여 분 올라가면 샘터를 만날 수 있고 옆에는 누가 가는 통나무로 만든 투박한 벤치 하나가 놓여 있다. 이 샘터는 백양산에서 제일 높은 해발 500미터 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양산 주능에 있는 억새와 나무들이 머금었다가 나누어주는 물로 날이 가물지 않을 때면 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시원한 물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백양산 주능선을 향하여 우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고 불웅령을 향하여 똑 바로 난 어슴프레한 길이 있다. 오늘 산행의 목표는 여기서부터 불웅령으로 연결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오른 쪽 주능선을 향하여 1백여 미터 가량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 보면 경사가 급하여 맨 몸으로 다니기도 불편하고 근래에 길을 내어 사람들이 넘나드는 바람에 등산로가 형편없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곳으로는 사람들이 짐을 이고 지고 넘어 다닐 수 없는 길임을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작년 6월 불웅령 오르는 옛길이 잘못 알려져 있다는 확신을 가진 후 길을 찾기 위하여 여러 차례 답사를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샘터에서 불웅령 쪽으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감을 잡을 수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능선으로 연결되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을 찾느라 능선 바로 아래 잡목 숲을 헤쳐 다니기도 하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을 헤매고 다니기를 거듭하다가 겨울에 들어서자 하절기에는 도저히 뚫고 나갈 수 없었던 풀숲과 잡목 덤불이 맥을 추지 못하게 되자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위치도 대충 가늠할 수 있었고 잡목 숲을 헤치고 다니기도 수월하였다.

동절기가 되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게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가 않았다. 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살펴보면 도저히 길이 날 만한 지형이 아니어서 적이 실망만 하고 길 찾는 것을 포기하다 시피 하였다가 오늘 어쩌다 다시 마음이 동하여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답사를 시도하는 것이다.

일단 샘터에서 불웅령을 향하여 1백여 미터 가량 가는 것까지는 맞는 것 같은데 평탄한 주능선이 끝나고 불웅령으로 오르는 바윗길 초입까지 길이 연결되려면 그 곳을 향하여 길이 비스듬히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 선상에는 땅의 높낮이가 심하고 잡목이 우거져 도저히 길이 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이 길 찾아서 무엇에 쓰겠는가하고 포기를 하였다가도 아니지 그래도 그렇지 지금까지 들인 공이 아까워서라도 이렇게 쉽게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살펴보아도 불웅령으로 길이 연결될만한 곳을 가늠할 수 없었다.

적이 낙담하여 불웅령으로 올라가는 능선이 끝나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터벅터벅 가 보았다. 그런데 그 끝 지점쯤에는 비록 갈비가 두껍게 쌓여 바닥의 상태를 정확히 짐작할 수 없기는 하지만 능선을 향하여 도랑처럼 길게 골이 패인 흔적이 또렷이 나 있었다.

이상하다, 방화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로가 날 곳도 아니며 산사태가 날 곳도 아닌데 왜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도랑처럼 길게 파져 있을까. 그렇다.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다져져서 주변보다 낮아졌다가 비가 와서 물이 길 따라 흘러 길이 파였을 수도 있다.

얼마 동안 물길 역할을 하다가 갈비가 쌓여 물길이 막히고 골이 진 곳도 아니어서 물도 모여들지 않아 자연적으로 수로의 역할을 다한 것 같은 도랑 흔적을 따라 배낭을 벗어 놓고 정신 없이 헤치고 올라갔더니 지금까지 몇 번이나 능선에서 내려와 아래 길로 연결되었을만한 통로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돌아갔던 낯익은 곳이 눈앞에 나타났다.

만세! 또 만세! 드디어 불웅령 오르는 길을 찾았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 곳에서 연결로를 찾지 못했던 것은 커다란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내려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고 만덕 고개로 자동차 길이 열리고 난 뒤 몇 십 년 간 이 길을 다니지 않아 잡목으로 길이 막혀버렸으며,

설마하니 주능선에서 직선으로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90도 꺾여서 길이 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불웅령 초입에서 위 샘터까지 길이 비스듬히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해 왔기 때문에 길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길을 막은 잔솔 가지는 톱으로 자르고 솔밭까지 침투해 들어온 잡목을 꺾으며 깊게 쌓인 갈비를 걷어낸 다음 가져온 붉은 리본을 매달아 길을 찾기 시작한지 두 시간만에 불웅령 오르는 옛길을 개통하였다.

이백 미터 남짓한 이 길을 찾느라 작년 6월부터 9개월 동안 고생도 숱하게 했지만 그래도 길을 찾았으니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이제는 샘터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백여 미터를 폐쇄하여 더 이상 산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며 오늘 찾은 불웅령 넘나들던 길을 복원하여 옛길이 잘 보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비록 산세를 읽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길을 내어 산을 훼손하기는 하였으나 옛길을 찾으려 노력한 다른 분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불웅령 오르는 옛길을 찾은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이 늦어 바로 내려갈까 하다가 당초 예정대로 불웅령 고갯길 복원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길을 찾은 즐거운 마음에 배고픈 줄도 모르고 보물찾기 작업에 들어갔다.

백양산 정상에서 내려서는데 몸이 부한 환갑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께서 "나 같은 사람은 산에 와서 어질기만 하는데 선생님 같은 분은 치우는 일을 하시는군요'. 웬만하게 준비된 마음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말씀을 순간적으로 자연스럽게 하셨다. "아이구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어질어 놓았던 것 오늘 주워 가는 겁니다. 좋은 산행 되십시요." "그래요, 잘 내려가요".

오십대 후반 가량의 부부가 정상을 향해 올라오시다가 "여기서 제일 빨리 내려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느냐" 기에 "저 아래 헬기장으로 해서 저기 보이는 운수사로 내려가셔서 백양 터널로 내려가시거나 포장 도로를 따라 구포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제가 지금 그리로 갈 예정이므로 저와 같이 가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더니

"우리는 걸음이 느리니 우리 걱정은 마시고 먼저 내려가십시오." 아마 물어물어 내려가실 모양이다. 나는 워낙 많이 쫓아 다녀서 길을 훤히 알고 있는 백양산 이지만 처음 오시는 분에게는 두려울 수도 있다.

이십 년 전쯤 나도 길을 몰라 저 아래 삼각봉에서 계곡을 따라 지금은 대학이 들어선 마을을 향하여 낮은 포복하듯 잡목 숲을 헤치며 무작정 내려간 적이 있었지. 운수사 뒤 산행 들머리와 백양 터널 입구 산행 들머리의 아지매 산불 감시원들은 때때옷 차려 입은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모처럼 산에 올라온 상춘객들에게 며칠 먼저 본 백양산 봄소식을 주어 섬기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 비비추 - 저는 백양산을 자주 오르는데 산수유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3월말경엔 노오란 생강나무가 백양산에 많이 피었습니다. 아마 산수유와 구별이 잘되지 않습니다. 산수유는 그보다 조금 이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