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청량산 산행기가 줄지어 올라오고

가족들의 가을청량산 사진은 저를 추억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아직 추억을 먹고 살 나이는 아닌데 말입니다.....

 

7월이 되면 선남선녀들의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는 부풀어 오르고

저에게도 예외없이 머릿속에 아련한 환상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89년의 여름은 29살에  애인하나 두지못한 총각에게도

불시에 찿아들어 외로움을 극에 달하게 하였습니다.

 

제가다니던 직장에 실습나왔던 처자가 있어 눈여겨 보아두고

실습이 끝난후에도 개인적으로 사소한 부탁을 하며 조금은 친해진

처자에게 사심(?)없이 전화를 걸어 휴가 같이 가자고 하니

싫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 아!   나도 여자와 단둘이서 휴가를 가나보다...."

 

전통가옥에 관심이 많던 나는 학술여행 떠나듯이

안동하화마을을 촬영하기로하고

논문준비도 할겸 하회마을로 촬영가자고 하였더니

의도가 순수해 보였는지 좋아라하였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문경새재를 넘어 가는데

풍경은 들어오지도 않고 옆에있는 처자에

신경이 쓰이고 웬지 가슴뿌듯하여 스치는 옥수수밭풍경도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

 

저의 본관인 안동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내리니

우리 둘을 쳐다보는 어르신들의 눈빛이 곱지 못합니다.

아직유교의 전통이 남아있기도 했겠지만

그 당시 우리의 차림은 안동분들에겐 낯설어 보였나봅니다.

 

패션디자인을 하던 처자가 선물한 현란한 문양의 짧은 반바지 커풀룩

빨간두건, 썬글래스.......

서울에서는 첨단패션이었는데 안동에서는 통하지 않고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처자는 제뒤에 숨어 다리를 감추고 수줍어 하였지요.

 

저녁이 되어 허둥지둥 숙소를 찿으니

전국체전 관계로 시내의 숙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방을 두개 구하려고 했으나 하나도 구하지못해

주변분에게 물어 보니 안동댐근처로 가보라고 하여 택시를 타고

안동댐으로 향하였습니다.

 

여름밤은 덥기도 하거니와 댐주변이어서인지

습도도 대단하여 몸은 끈적이고 동네 불량배인듯한

사람들은 짧은 반바지차림의 남녀를 힐끗힐끗쳐다보며

불량스런 눈길을 보냅니다.

 

찿아든 숙소마다 방은 없고 지하가 캬바레인 여관에

겨우 방하나를 구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의도와 상관없이 방을 하나만 구했지만

처자도 상황을 아는지라 하루밤 묵기로 하였습니다.

 

방은 20명이 자고도 남을듯하고 창문으로는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형형색색으로 비추어 오고

저는 처자와 한방에 들어와 여장을 풀었습니다.

 

잠시후 노크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주인아주머니가 필요한것 없냐고 물어보고

처자는 이불한채를 더 달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재차확인하더니

이불을 주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그 넓은 방에 저는 아래 처자는 위에 각자 이불을 펴고

누우니 캬바레밴드의 약간은 촌스러운 음악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제 머리와 함께

어지러웠습니다.

 

그날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 새웠습니다.

( 아 중간에 같이나가 술은 좀 마셨지요.   그리곤 이상무!!   숙맥같으니라구~)

 

이침을 먹으며 주변에 좋은산이 있냐고 물어보니 청량산이 좋다고하여

다시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청량산으로 향하였습니다.

 

논과 밭사이로 난 비포장도로는 도저히 버스가 지나갈 수 없을것 같은데

버스는 잘도 달리고 가끔씩 서는 정류장에서는 시골할머니들이

보따리를 이고, 들고 타시며 안동특유의 사투리를 쏟아 내십니다.

 

모처럼 정겨운풍경에 요동이 심한 버스임에도 즐거웠습니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다시 거꾸로 가서 비교적 넓은곳에서 교차통행하기를

여러번하더니 차는 멈추어 섰습니다.

 

논한가운데가 정류장일리도 없는데 말입니다.

운전기사분은 펑크가 났으니 타이어 바꿔끼울동안 내리라 하였습니다.

논으로 흘러가는 도랑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니 송사리들이 노닐고

하늘엔 흰 뭉게구름이 흘러 그 작은 수면에도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제말 한마디 믿고 따라와 준 처자는 생경한 풍경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고 그런 모습을 보는 저는 지아비가 된듯한 책임감을 일순간

느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차는 다시 출발했는데 야산과 너무나 평범한 농촌풍경....

도저히 높은 산이라곤 보이지도 않습니다.

체념하듯이 처자와 덜컹거리고 시끄러운 차안에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강이 나오고 차는 강어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강을 배경으로 직벽처럼 산이 있고 그곳에서 미역을 감는 아이들이

시원함을 느끼게했습니다.

차는 옥수수밭가운데로 달리더니 밭옆에 멈추어 섰습니다.

차표를 파는 집이 한채.....

그곳이 종점이었습니다.

 

무거운배낭과 카메라를 매고 다리를 건너 청량산으로

걸어 올라가니 그늘없는 길은 폭양으로 인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며 힘들어 하는 처자의 손을 잡아주니 설레임으로 가슴까지 뛰었습니다.

 

근처 개울에 들어가 땀을 식히고 물을 마신다음 다시오르니

처자의 이마에서도 땀이 송글송글하며 앳된얼굴에 힘들다고

하지않고 잘도 따라오는 처자가 대견해 보였습니다.

 

처자의 배낭을 앞에 메고 힘든 내색하지않고 앞서나가는데

정말이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소나기라도 한차례내렸으면 하고 바랬으나

잠깐씩 구름속으로 들어간 태양은 잠시를 못참고 이내 나와

모처럼 처자와 단둘이 산행하는 저를 심하게 질투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금더 오르니 작은 마을이 나오고 인공폭포같은 폭포수가

쏟아집니다.

그늘에 앉아 쉬면서 더 오를 수 있냐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입니다.

 

정자에 도착하여 밥먹을 곳을 찿으니 개울옆에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가 한그루 서있고 아래엔 평평한 바위가 있는 명당을 찿아 내려가서

버너에 밥을짓기 시작했습니다.

 

구수한 밥냄새가 코를 간지럽힐때 까지 물에 발을 담그고

주변에 지천인 새빨간 산딸기를 따서 먹으니 저에게는 과분하고

처음인 행복이 밀려와 주었습니다.

 

다시 오르며 산세를 보니 암릉이 기기묘묘하고

마치 마추빅츄를 찿아나선 느낌입니다.

 

처자는 다리가 아픈지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쉬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내려오시는 분들한테 물어 보니 정상은 아직 먼듯하고....

처자는 주저앉아 저 혼자만이라도 다녀오라고 하는데

아쉽지만 포기하고 계곡의 숲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쉬다가 하산하기로

하였습니다.    

 

정상은 저기인데.......

 

역순으로 내려오는 길은 힘들지도 않았고

어느새 손을 마주잡고 정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다시 안동으로 돌아와 하루를 더 묵고 다음날 원래 계획인

하회마을을 찿아 촬영도 하고 느티나무그늘아래에서 쉬면서

그해 여름을 만끽하였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시외버스 맨뒷자석에 우리는 앉았고

문경새재쯤에서 노을이 내려와 춘양목의 실루엣을 금빛으로 만들었습니다.

 

잠시 후

처자는 흐느끼는 듯 하더니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합니다.

이제 그만 만나자고....

너무 황당하여 이유를 물으니 한참을 있더니

창피해서 못만나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무슨짓을 하기나 했냐고 물으니

남자와 한방을 쓴게 창피하다고 하였습니다.

 

전국체전관계로 방을 2개 못구한건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고

다 알지 않냐고 달래니 그때서야 눈물을 그치고 청량산과 하회마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해는지고 별이 총총한 차창밖을 바라보며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래 이여자야 !!    결혼해야지!!!"

 

그 후 치밀한 작전에 돌입하여 결혼에 이르렀고

지금은 슬기라는 딸아이를 두고 오순도순 잘 살고 있습니다.

 

그 무덥던 여름의 청량산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선물을 한 고맙고도 다시가고픈

마음속의 산입니다.

 

이가을 청량산사진을 보다

사적인 얘기를 무례하게 써 봅니다.

 

* 기억속의 청량산을 일깨워 주신 허허님, 산사랑방님, 청산소요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