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지 : 광암리에서 남한산성 일주

2. 산행일시 : 2004. 10. 28(목) 14:55 - 18:20

3. 산행자 : 나홀로 터벅

4. 산행코스

14:55. 광암리 정수장 앞 - 16:09. 남한산성 연주 옹성 - 16:47. 동장대 - 17:05. 동문 - 17:28. 남문 - 17:53. 서문 - 18:20 학암리(비호부대 옆) - 마천동

***산행거리 : 약 12km)

***산행시간 : 약 3시간 25분

▶▶▶ 남한산성은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남한산성)를 일컬어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 4대 요새 중 하나였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 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9.05km, 성곽의 높이는 약 7.3 m이다.

원래 2천여 년 전 고구려 동명왕의 아들이며 백제의 시조였던 온조왕 때 쌓은 토성이 있었으나, 이를 신라 문무왕 때 다시 쌓아 '주장성'이라 불렀고, 그 옛터를 활용하여 후대에도 여러 번 고쳐 쌓다가, 조선조 광해군 때(1621)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고 한다.
석축으로 쌓은 남한산성의 둘레는 약 8km이며, 자연석을 써 큰돌을 아래로, 작은 돌을 위로 쌓았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문과 문루, 8개의 암문을 내었으며, 동서남북 4곳에 장대가 두었다. 성안에는 수어청 및 관아와 창고, 행궁을 건립했다. 유사시에 임금이 거처할 행궁은 73칸, 하궐 154칸으로 모두 227칸을 지었고, 80개의 우물, 45개의 샘을 만들고 광주읍의 행정처도 산성 안으로 옮겼다.

산성이 축조되고 처음으로 시행(인조 17년, 1639)된 기동훈련에 참가한 인원만 해도 1만 2,700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곽과 동.남문 및 서장대, 현절사, 문무관, 장경사, 지수당, 영월정, 침괘정, 이서 장군사당, 숭렬전, 보, 루, 돈대 등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중 4대문과 수어장대, 서문 중간쯤의 일부 성곽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남한산성은 사적 제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근래에는 산성을 일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하남시 검단산에서 남한산성까지 종주코스의 하나인 광지원 3거리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하남시 광암리 정수장 앞에서 올라오는 코스도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 월요일부터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 온 후 오늘은 일찍 퇴근을 했다.
어제 수요 산행을 못한 숙제를 오늘 마치려고 부리나케 차를 집에 가져다 두고 산을 찾는다.
버스를 타고 올림픽 공원 앞(올림픽 선수촌 상가 앞)에서 다시 하남시 가는 30-1번 버스를 타고 광암리 정수장 앞에서 내렸다.(요금 600원)


<↑ 산행 들머리>
광암 정수장 정문을 지나서 하차를 하면 앞쪽에 상일동 가는 길과 고골 가는 고갯길의 갈림길 안내판이 보이고
오른쪽에 『외딴집』안내판 옆으로 따라 올라간다.

<↑ 하남시 방향>
일자로 늘어선 능선 길을 따라 남한산성 방향(남쪽)으로 송전탑을 네 개쯤 지나 계속 진행하다 보면 조망이 좋은 곳이 나타난다.

<↑ 고골 방향>
춘궁동?, 상,하사창동 모두를 예전부터 『고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앞쪽 산 넘어 저멀리 검단산의 모습이 보인다.

<↑ 길 1>
낙엽이 깔린 길이 정겹게 느껴진다.

<↑ 길 2>
제 멋대로 자란 소나무 능선 길에 사람들 마저 없으니 이렇게 좋을수가?!!!!

<↑ 길 3>
산성이 가까워질수록 길바닥이 반질반질하다. 나는 수풀 우거진 길보다 이런 길이 정말 좋다.
누가 처음 이 길을 내었을까?
남들이 간 길을 내가 가고 또 남들이 따라 간다.
발길은 길 따라 길게 이어지리니...

<↑ 연주 옹성
새로 복원한 옹성 이 멋지다.

<↑ 남한산 단풍>
단풍이 마지막 용(?)을 쓰고 있었다.

<↑ 성벽>
성벽 바깥쪽을 따라 북문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잡목으로 우거진 성벽이 바라보기 안타까웠다.

<↑ 월담금지 안내판>
군데군데 월담을 하기 쉬운 곳에는 '지금 혹시 월담을 준비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라는 말이 씌여진 안내판이 서 있다.

<↑ 산성의 안과 밖 1>
계속 성벽을 따라 바깥으로 돌아 간다.
성안의 길은 대로이지만 성밖 오솔길은 옹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여름철보다는 수풀이 덜 우거져 다닐 만 하다.

<↑ 산성의 안과 밖 2>
최근에 성곽을 보수해서 말끔해졌다.
아랫쪽에도 군데군데 하얗게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 지나온 길>
뒤돌아보니 어느새 먼 길을 돌아 왔다.
해를 등지고 한참을 가야 성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 성벽>

<↑ 지나온 능선>
저 멀리 광암리 정수장에서 산성까지 올라 온 능선이 보인다.

<↑ 동장대 돌탑>
누가 언제 무슨 마음으로 쌓았을까?

<↑ 지 홀로 빨갱이>

<↑ 동문>
드디어 광지원 삼거리에서 올라오는 찻길과 만났다.

<↑ 남문 가는 길에 바라 본 수어장대 방향>
이쪽 능선은 단풍이 한창이다.

<↑ 수어장대 가는 길>
남문에서 수어장대 방향으로 오름 길에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 수어장대 가는 길에 바라 본 저녁노을 1>
성곽에 올라 저녁놀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바라보던 그 태양이지만 오늘은 웬지 새삼스럽게 보인다.

<↑ 저녁 노을 2>
해가 진다. 오늘이 또 간다.

<↑ 저녁 노을 3>
해가 진다. 오늘이 정말 간다.
어제가 갔던 것처럼...

<↑ 굳게 닫힌 서문매표소>
입장료 천 원을 받아내기 위해 아침부터 눈알 돌리던 그 누구(?)도 이제는 가고 없다.
시간이 늦어 시원한 막걸리 파는 분들도 모두 철수해 버리고 없다.

오늘따라 랜턴을 준비해 오지 않았더니 마천동으로 내려오는 길에 금방 어두어져서 길 바닥이 보이지 않아 잠시 더듬거렸다.

***오늘 산행 끝***


▶▶▶산행 후기

정말 오랜만에 산행기를 썼다.

그러니까 지난 8월 25일 설악산 산행기를 쓰고 난 후 처음이니 벌써 두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 버리고 말았다.
주위에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많다는 핑계로 산행기 쓰기를 미루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산님들이 쓴 주옥같은 산행기 보는 것마저도 잊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동안 산행을 멈추거나 미룬 적은 없었다.
10월중에도 산행은 계속되었다.

3 (일) 남설악 한계령 길 - 가리봉 - 주걱봉 - 옥녀탕(똘배님 만남)
6 (수) 검단산
10 (일) 한계령 - 적백운 - 수렴동계곡 - 백담계곡 - 용대리 (한국인님 만남)
13 (수) 검단산
17 (일) 구봉산(산하가족 합동산행)
20 (수) 검단산
23 (토) 광지원 삼거리 - 남한산성 한봉 - 동장대 - 북문 - 서문 - 서하남 광암 정수장 앞
28 (목) 서하남 광암 정수장 앞 - 연주 돈대 - 북문밖 - 동장대 - 동문 - 남문 - 서문 - 학암리 - 마천동


그러고 보니 산행하느라 너무 바쁘게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지난 해에는 59회 산행을 했었다.
올해 목표가 70회 산행이었는데 벌써 오늘까지 크고 작은 산을 71회 올라서 목표를 초과했다.
다시 목표를 85회로 수정했다. 횟수가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마는...

요즘은 날씨가 산행하기에 아주 좋다. 그래서 오늘은 한 번도 엉덩이를 붙이고 쉬지 않았어도 힘이 들지 않았다.
올 여름 무더운 날에 산행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은 천국인 것만 같다. 그 때는 머리에 동여맨 머릿수건을 따라서 땀띠가 많이 났었는데...

순대국 한 그릇 시켜놓고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으니 정말 좋다.

어느새 10월의 마지막 밤도 코앞에 다가서는 것을 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늘어나는 흰머리를 보며, 줄어드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 10월의 마지막 밤 ♣


우리의 시간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 아니었음을
여기서 끝나지 않음을
마지막을 헤이는 오늘 밤
우리는 배워야 한다


누군가에게 나누어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야 했음을
누군가가 절절히 그리운 이밤에
알아야 한다
이 밤을
불꽃으로 태워서
그 누군가의 의미가 될 수만 있다면
이 밤은 결코 외롭지 않으리


외로운 이 가을의 청춘 같은 밤
재가 되어
불사조의 꿈을 꾸는 밤
우리의 시간이
우리의 사랑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기에
슬퍼도
너무나 아름다운 밤


이 밤을 보냄도
다시 돌이킬 수 없음도 정녕
슬퍼할 수 없는 밤
기쁘게 보내야 하는 밤
아, 밤은 깊어만 가고
잠들지 못하는 10월의 마지막 밤은 지네


- 윤순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