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산은 언젠가 한번 쯤 가 보고 싶었던 산이다. 그러나 웅장하고 가파른 산세에 긴 산행시간, 산 깊숙이 들어가면 만일의 경우에 탈출로 확보도 어려운 드넓은 면적의 큰 산이라서 망서려 왔는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기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 가 보기로 작정한다. 최근에 간 민둥산도 해발 1119 미터라고는 하지만 증산초등학교의 들머리가 해발 650 미터인 데에 비해 해발 1267 미터의 명지산은 들머리가 해발 200 미터 안팎에 불과한 곳이어서 실제로 오르내리는 높이는 민둥산의 갑절 이상이 되는 것이다.

산행일은 10월 23일(토요일). 6시 30분에 집을 나와서 김밥 네 줄을 산 후에 창동역에서 성북역까지 전철로 가서 성북역에서 가평행 경춘선을 탄다. 7시 17분에 정시 출발한 경춘선은 4분 연착한 8시 29분에 가평역에 도착한다. 수분 만에 가평 시외버스터미널로 걸어가서 9시에 출발하는 용수동행 버스를 기다려서 1900원의 현금을 내고 승차한다. 버스 안에서 아침으로 김밥 두 줄을 먹는다. 9시에 출발한 버스는 목동을 경유해서 익근리의 명지산 입구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다.

산의 낮은 부분은 아직도 단풍이 화려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9시 50분에 매표소에서 명지산 군립공원 입장료 일천원을 내고 들머리로 들어선다. 들머리에서 7분 만에 승천사의 일주문에 도착하고 일주문에서 5분 만에 작은 규모의 절인 승천사로 들어선다.


 


익근리의 명지산 입구 버스정류장.


 


익근리의 명지산 입구 주차장에서 바라본 명지산.


 


명지산 들머리 - 익근리 매표소.


 


명지산 승천사 일주문.


 


승천사의 전경.


승천사를 지나니 발목에 부담을 주는 울퉁불퉁한 돌밭길이 이어진다. 그런데 명지폭포 못미처에서 산행을 중도에 포기한 듯한 남자산행객이 가끔 한명씩 서너명이 풀죽은 모습으로 등로를 내려온다. 다른 산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승천사에서 30분 만에 이정목이 있는 명지폭포 입구에 닿는다. 좌측의 가파른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명지폭포가 나타난다. 명주실이 한타래나 들어간다는 명지폭포의 깊은 소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십여분간 이 곳에서 지체하다가 다시 등로로 올라와 수분 후에 나무다리를 건너 가파른 등로로 오른다.


 


명지폭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명지폭포의 깊은 소.


 


명지폭포.


 


다리 건너의 가파른 등로.


명지산은 육산이지만 돌이 많은 곳이다. 익근리의 승천사에서 오르는 길이나 귀목고개에서 귀목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돌밭길을 자주 보게 된다. 따라서 긴 산행 중에 발목이나 무릎에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단풍이 화려한 익근리 계곡의 정경은 계곡 자체보다는 단풍의 화려함에 눈길이 간다. 그런데 명지폭포에서 직진하여 명지 1봉과 명지 2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는 지도상에 700 미터에 불과한데 경사로를 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삼거리는 보이지 않고 이른바 공포의 나무계단도 보이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자신들도 초행이라서 잘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쪽으로 오르고 있단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명지 2봉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시간상으로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계속 진행하다 보니 명지폭포에서 올라온 지 한 시간 하고도 삼분이 지난 시각에 공포의 나무계단에 도착한다. 나무계단을 오르니 사람들이 힘들어서 내는 신음소리가 이따금 귓전에 들린다. 자신도 힘이 들기는 하지만 9월 초순 이후로 산행을 자주 해서 그런지 스틱을 잡은 오른 팔에 힘을 주면서 박력있게 오르게 된다.


 


익근리 계곡의 모습 1.


 


익근리 계곡의 모습 2.


 

 

가파른 나무계단이 시작되는 곳.


 


지루하게 이어지는 나무계단.


가파른 나무계단을 지나니 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돌밭길이 나오고 그 길을 오르니 상대적으로 완만한 지릉길을 밟게 되고 12시 30분에 화채바위라고도 불리우는, 해발 1079 미터의 명지 4봉에 도착한다. 그제서야 자신이 제 길로 왔음을 확신하고 힘이 솟구친다. 삼거리는 아마 못 보고 지나쳤나 보다.

높이 오를수록 단풍은 이미 져 있고 머지 않아 낙엽이 될 시든 잎들만이 처량하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수북히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도 높이 오를수록 많아진다. 군데군데 화려함을 뽐내는 붉은 단풍잎들도 명지 4봉 이후로는 거의 볼 수 없다. 다시 나타난 나무계단을 7분 이상 오르니 드디어 명지산 정상의 이정목이 기다리고 있다. 인고 끝의 환희의 순간이다. 가슴 벅찬 성취감을 홀로 만끽한다. 이정목을 지나서 정상에 오르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올라 있어서 사진 촬영은 뒤로 미루고 먼저 식사를 하기로 한다. 배낭을 여니 900 밀리리터의 수통은 이미 비어 있다. 점심으로 김밥 두 줄을 먹고 나니 1.5 리터의 생수도 삼분의 이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기온이 많이 내려갔는 데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땀을 많이 흘려서 물을 많이 먹게 된다. 점심을 먹고 해발 1267 미터의 명지산 정상표시석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정상에 오른지 40여분 만에 명지 2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명지 4봉인 화채바위 - 해발 1079 미터.


 


완만한 지릉길.


 


다시 나무계단길.


 


명지산 정상의 이정목.


 


명지산 정상표시석 - 해발 1267 미터.


명지산 정상을 떠난지 40여분 만에 해발 1250.2 미터의 명지 2봉에 도착한다. 정상표시석의 측면에는 가평군 북면 도대리 산 1번지라고 표기돼 있다. 40분 전에 내려온 명지 1봉이 조망된다. 그리고 저 멀리 군사시설이 있는 화악산이 조망된다.


 


명지 2봉 정상표시석 - 해발 1250.2 미터.


 


명지 2봉에서 바라본 명지산 정상(명지 1봉).


 


명지 2봉에서 바라본 화악산.


명지 2봉에서 사진을 찍으며 십여분간 쉬다가 다시 명지 3봉으로 향한다. 명지 2봉에서 내려서면 삼거리가 있는데 좌측은 명지폭포를 거쳐서 익근리로 내려가거나 백둔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명지 3봉을 거쳐서 귀목고개나 아재비고개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측길을 택해서 명지 3봉 쪽으로 간다. 명지 2봉에서 30분 만에 닿은, 기상관측소가 있는 암릉지대가 해발 1199 미터의 명지 3봉이다. 그런데 이 곳은 올라 봤댔자 철조망이 가로막혀 있고 암릉이 험해서 진행하기가 애매해진다.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좌측의 우회로로 가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가서 10분 후에 명지 3봉 삼거리의 이정목이 있는 곳에 닿는다. 이 삼거리는 좌측으로 가면 아재비고개에서 직진하여 연인산으로 오르거나 아재비고개에서 좌측으로 꺾어져 백둔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귀목고개에서 직진하여 귀목봉으로 오르거나 귀목고개에서 좌측으로 꺾어져서 상판리로 하산하는 길이다.


 


명지 3봉 - 해발 1199 미터.


 


삼거리 직전의 암릉에서 올려다 본 명지 3봉.


 

 

명지 3봉에서 10분 쯤 내려오면 나오는 삼거리.


이 삼거리에서 우측의 귀목고개로 진행한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바위 틈을 통과해야 하는 곳이 나온다. 어렵지 않게 바위 틈을 통과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참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이 길은 자연스럽게 귀목봉을 내려다 보며 진행하게 된다. 이름 때문만이 아니라 삼각뿔 모양의 뾰족한 정상과 그 정상에서 급하게 휘어져 굽이굽이 갈라져 내려오는 능선들의 모습이 귀기가 서린 음산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해가 질 때 쯤에 보면 더 음산하게 보이리라. 그러나 귀목고개에서 50분 만에 귀목봉 정상에 오르게 된다는 등로는 완만하고 부드럽다고 하니 언제 한번 오르고 싶어진다. 산의 낮은 부분에는 아직도 단풍이 한창이다. 시든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귀목봉의 모습을 다시 한번 찍는다.


 


바위 틈을 지나야 하는 등로.


 


귀기가 서린 귀목봉의 모습 1.


 


산의 낮은 부분에는 아직도 한창인 단풍.


 


귀기가 서린 귀목봉의 모습 2.


귀목고개로 내려가는 가파른 등로는 지루하게 이어진다. 익근리에서 오를 때와는 달리 명지 2봉부터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명지 3봉 부근에서 한 무리의 산행객들을 보고 그 밑의 삼거리 부근에서 부부 한 쌍을 본 것 외에는 하산할 때까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익근리에서 와서 다시 익근리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하기 때문일 게다. 확실히 익근리 쪽의 등로는 험하더라도 넓고 분명해서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는 데에 비해 상판리 쪽의 하산로는 등로의 정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고 등로를 놓치게 되기 쉬운 부분이 있다. 명지 2봉에서 명지 3봉 밑의 삼거리로 진행하는 등로와 그 삼거리에서 바위 틈을 지난 후의 등로에서 정상적인 등로를 놓치고 엉뚱한 곳으로 진행하기 쉬운 부분이 한 군데씩 있는데 주의해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혹시 귀목고개를 지나쳐서 귀목봉 쪽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삼거리에서 한 시간 20분 만인 16시 40분에 귀목고개에 도착한다. 등산 지도에는 한 시간 10분 소요라고 적혀 있지만 아까 나무계단 위의 바위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십분 정도 쉬었으니 시간이 얼추 맞는 듯하다. 해발 775 미터의 귀목고개 사거리는 직진하면 내리막에서 오르막으로 바뀌면서 귀목봉으로 오르게 되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적목리로 가게 되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상판리로 가게 된다. 이정목에는 상판리까지 2.5 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이 곳에서 상판리로 가는 좌측의 나무계단길을 한참 내려가니 지루하게 이어지는 돌밭길이 나온다. 명지산은 하산길도 날머리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길이다. 귀목고개에서 30분을 넘게 내려오니 나무다리를 건너서 걷기 편한 등로가 이제사 나타난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침엽수림 사이의 오솔길을 상쾌한 마음으로 걷다가 상판리의 귀목마을에 닿는다.


 


귀목고개의 사거리 - 해발 775 미터.


 


귀목고개에서 상판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길.


 

 

지루하게 이어지는 돌밭길 1.


 


지루하게 이어지는 돌밭길 2.


 


침엽수림 사이의 등로.


현리로 가는 버스가 종점에서 17시 50분에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 시계를 보니 17시 31분. 마침 트랙터를 몰고 가는 농부를 만나서 버스 종점까지 걸어서 가는 시간을 물으니 일이십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걸음을 빨리 하여 명지산의 날머리인 귀목마을의 이정목이 있는 곳에 닿는다. 그리고 그 근처에 넓은 빈 터가 있어서 이 곳이 버스 종점인지 물어 보니 외지인이라서 모른다고 한다. 마침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버스 종점이 나온다고 한다. 걸음을 빨리 하여 상판리의 다락터마을에 있는 버스 종점에 닿으니 현리행 버스 출발 5분 전인 17시 45분이다. 버스에 올라 교통비 1650원을 지불한다. 17시 50분에 출발한 버스는 20분 만인 18시 10분에 현리에 도착한다.

다시 현리에서 청평으로 가는 18시 20분발 버스표를 1200원에 끊는다. 18시 20분에 출발한 버스는 주말의 자가용 행렬에 밀려 거북이 걸음을 하다가 19시 3분에야 청평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그 곳에서 길을 물어 도보 5분 거리인 청평역에 가니 19시 30분발은 입석 밖에 없다고 해서 20시 4분발 표를 끊고 근처의 식당에 들러 여유있게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 경춘선으로 성북역까지 와서 다시 성북역에서 전철로 갈아 타고 귀가하니 21시 30분 경이다. 용문산보다 더 힘든 산행이었고 집에 와서 옷을 벗어 보니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산 조끼와 배낭의 등받이 부분에까지 땀이 농축된 하얀 소금기가 영광의 상처처럼 군데군데 얼룩져 있었다.


 


상판리의 귀목마을.


 


명지산의 날머리 - 귀목마을의 이정목.


 


버스 종점으로 가는 도로.


 


상판리 다락터마을의 버스 종점 - 버스 출발 5분 전에 도착.


 


오늘의 산행로 - 약 12 킬로미터의 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