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5월 8일 (토)


누구 : 산강 혼자


배경 :


이제 거의 매일 6시15분이면 자동으로 일어난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2년쯤 된 것 같다. 그 전엔 ‘10분만 더’를 두 번 정도는 외쳐야 일어 났었는데, 이게 나이 탓인 모양이다. 2년 전에 선배 한 분이 내게 꼭 같은 얘기를 했었다. 나도 그 선배를 그대로 나이차이 없이 따라 가는 모양이다.


어제 저녁 마눌과 도봉산 가기로 약속하고 잠을 청했는데 마눌의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니, 아침에 일어나서는 목소리까지 잠겨버린다. 그래도 어렵사리 산행을 해 보겠노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준비한다.


갑자기 이른 아침에 전화벨소리, 마눌이 받더니 안색이 별로다. 처가 친척 할머니의 부고 소식이다. 친정 오빠에게 연락하더니 오후 5시나 6시 경에 함께 문상 다녀오면 되겠다고 한단다.


얘들 깨우고 학교 보낼 준비를 마치니 7시 45분이다. 산행준비를 하는데 마눌의 행동이 더디다.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더구나 내일 있을 할아버지 제사 준비도 걱정인 모양이다.


나는 마눌의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나의 토요일 산행에 마눌을 데리고 가려고 무척 노력하는 중이다. 지난번 마눌의 가슴 시술도 완전한 것이 아니라, 걱정도 되지만 어쩌랴. 최선을 다했으니, 기다리는 수 밖에.


결국에는 마눌이 못 가겠단다. 마눌도 무척이나 가고 싶을 텐데, 힘이 너무 부치나 보다. 나 홀로 산행을 준비하고 보니 8시 35분이다, 너무 늦었다. 오늘 포대능선 빠져 나오는데 한 시간은 걸리겠다. 한달 전 마눌과 포대능선 Y계곡을 넘는데 (신선대쪽에서 북쪽으로 포대진지 방향으로) 30분 정도 걸렸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마눌에게 아침에 꼭 병원에 다녀오라고 일러 놓고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탔다. 8시 45분이다. 오늘은 도봉 매표소, 도봉 산장, 마당바위, 관음암, 칼바위, 신선대, 포대진지, 다락능선, 원도봉 매표소로 운행하기로 계획 세워 본다. 지하철 두 번 갈아 타고 도봉산 역에 내리니 10시15분이다. 역 앞은 많은 산님들로 꽉 차버렸다. 건널목 파란 신호 들어오기가 무섭게 산님들은 물 밀듯이 쭉 이동한다. 길 양 옆에서는 김밥이다, 막걸리다, 아줌마 목소리가 정겹다.


봄철 복장이라 핸드폰 갖고 다니기가 까다롭다. 바지주머니에 넣으면 바지가 축 처진다. 상의에는 호주머니가 없으니 휴대폰 주머니에 넣어 배낭 멜빵고리에 채우니 걸음걸이에 따라 덜렁거린다. 다시 바지 벨트에 채웠다. 배낭의 허리 벨트를 끼울 때 약간 걸리적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닐 만하다.


 


산행 시작 :


10시 30분, 도봉 매표소를 통과하며 신발끈 다시 조이고 산행 시작이다. 작년 가을 정기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전, 친구랑 설악산을 갔다가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는데 친구가 나보고 첫오름에서 리듬 잃어버리면 그날 산행은 망치는 것이라고, 나의 걸음이 빨라질 때마다 일러준 적이 있어, 이후로는 산행 시작 처음 한 시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려 한다. 이 말이 산행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도봉 산장을 지나 천축사에 들러 들고 온 자갈주머니를 내려 놓고 잠깐 합장하고, 마당바위에 도착하니 11시 15분, 마눌의 전화다. 친정 오빠의 스케줄이 변경되는 바람에 정오에 만나 문상을 다녀올 것이라 한다. 내가 함께 못 가서 어쩌냐 하니까 할 수 없다며 오빠 따라 간단다. 마눌은 병원에 가긴 했으나 오빠의 시간에 맞추느라 진료도 못 보고 그냥 나왔단다. 그래도 진료는 보고 나왔어야 했는데……


너른 바위에서 배낭을 내리고 잠시 땀을 식힌다. 커피 한 잔과 비스킷 몇 조각, 향기가 개운하다. 사무실에서 마시는 커피는 왜 그리도 덥덥한지 모르겠다. 업무와 연관된 것이라면 모든 게 다 그리 느껴지는 것일까?


그런 고요한 음미를 깨뜨리고 말았다. 중학생들인가? 등산반 친구들이 특별활동시간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음료수 깡통이 굴러다니고, 갖고 온 오렌지를 던지며 서로 주고 받다가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오렌지는 한참을 굴러 마당바위 아래로 떨어지고, 누구도 그 오렌지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선생님인 듯한 분이 있긴 한데 주변 상황에 관심이 별로다. 자기들의 얘기에 열중이다.


오늘 아침, 아들놈도 특별활동으로 분당의 불곡산을 간다고 했다. 아들놈의 행동이 내가 보고 있는 그 학생의 행동과 너무나 똑 같을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그 학생을 나무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주변 정리하라고 외쳐대지만 학생들은 움직일 생각이 별로 없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에는 먹다가 내팽개쳐진 숟가락, 플라스틱 물통, 음료수 깡통 등이 아직 남아 있다. 아들 놈을 대신하여 쓰레기를 주워 배낭에 넣는다.


마당바위를 떠나기 전 주변을 조망한다. 날씨가 흐리긴 하지만 보문능선과 도봉 주능선이 늠늠하다. 우이암을 줌으로 당겨 사진 한 장 찍고, 관음암 방향으로 출발하니 11시 35분이다. 여기서 칼바위까지는 처음 가는 길이라 조심한다. 관음암 왼쪽 위에는 천장바위 밑에 수백은 될 성 싶은 작은 불상들이 모여 있다. 잠깐 합장하고 능선길을 재촉한다.


그런데 길이 좀 이상하다. 가다 보니 왼편으로 아주 심한 비탈 오르막이 나오고, 산님 한 분이 내려오고 있다. 길을 물어보니, 계속 오르면 칼바위와 뜀바위(?) 사이의 안부라고 일러준다.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어수선한 분위기에 지도를 챙겨오는 것을 잊었다. 지금 와서 별 수가 없다. 그냥 계속 오르는 수 밖에는.


한 10여분을 오르니 위험구간 (칼바위) 표지판이 나온다. 도봉주능선에 당도한 것이다.지난번 오봉에서 올 때에도 오르지 못하고 우회하여 이곳에 당도하였던 것 같다. 12시 05분이다. 시간적으로도 많이 헤매고 다닌 결과다. 숨을 고르고 물 한 모금 마신다. 관음암에서 떠온 물 맛이 시원하다. 오늘은 칼바위, 뜀바위의 모양이나 위치를 지도와 일치시켜 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북동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또 위험 구간이다. 바위 이름이 없다. 우회 표지판이 있으나 바위 구경이나 하자며 접근해 본다. 약 3미터 되는 수직 크랙이 있고 그 양 옆으로 홀드를 파놓아 조심하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번 마눌과 왔을 때에는 올라가볼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었다. 신발끈, 배낭끈을 다시 한번 조이고 크랙을 손으로 잡고 첫 발을 조심스레 올려본다. 오른발을 올리고 왼발의 홀드가 너무 작은 느낌이지만 조심하며 오른손으로 큼직한 홀드를 잡고 죽 당기니 다음 발의 홀드 이동이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간다. 첫 고비를 넘기고 암릉을 요리조리 올라가니 넓직한 바위다. 조망이 좋다.


언젠가는 칼바위에도 올라보고 싶다는 일념에, 건너편의 칼바위에서 내려오는 길을 찾아보지만 내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반대 편에는 뜀바위가 늠늠하게 서 있고, 신선대가 왼편으로 삐죽 나와있다. 뜀바위 오른쪽 아래에는 주봉이 홀로 외롭다. 오늘은 꼭 뜀바위도 한번 올라 보리라 다짐하며, 내려가는 길을 찾아보나 잘 보이지 않는다. 이미 와 계신 산님 두 분께도 물어보지만 그분들도 초행이란다. 큰일이다. 동쪽(뜀바위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다시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다. 다시 올라온 길로 내려가서 우회 길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암반을 조심조심 내려와서는 결국 조금 전 올라올 때의 그 수직 크랙에서 온 몸이 떨린다. 밑에서는 우회 길을 지나치는 산님들이 나를 보고있다. 몸을 돌려 바위를 배에 깔고 조심스레 발로 홀드를 찾아 보지만 쉽지 않다. 밑에 계시던 산님 한 분이 여기저기 홀드 위치를 가르쳐 주신다. 너무 고맙다. 10센티미터만 더 내리면 안전할 발이 그 10센티미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시간을 허비한다. 산님은 조금만 더 내리라고는 하지만 매달려 있는 나는 왜 그리도 두려운지???


바위 위의 산님들도 나를 따라 같은 길로 내려온다. 밑에서 보는 나는 조금전의 그 떨림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산님 두 분이 못 찾는 풋홀드가 안타깝다. 다가가서 손으로 그 분의 발을 옮겨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간사한 마음을 부족한 수양의 탓으로 돌리려 하니 너무 뻔뻔해 보인다. 내려오는 요령을 가르쳐준 산님께 물어보니 이 바위는 배꼽바위이고, 뒤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더 안전하다고 하신다. 단련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쉽다는 길도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산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뜀바위로 가기 위해 배꼽바위를 왼쪽으로 우회한다. (이때부터는 긴장한 나머지 시계 보는 것을 잊어버렸음.)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무계단 우회 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다시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뜀바위 앞이다. 위험구간 안내 표지판도 서있다. 그래도 한 번 접근해 본다. 오늘따라 올라가는 길은 조금 보인다. 여기서도 지난번 마눌과 왔을 때에는 우회했었다. 오늘은 한번 올라 보자. 뚜렷한 크랙이나 큰 슬랩은 아니지만, 홀드 잡기가 까다롭다. 몇 군데는 홀드가 있긴 하나 미끄럽다. 네 발로 더듬더듬 내딛으니 조금씩 올라간다. 숨을 가다듬고 조심조심하며…… 와, 드디어 올라왔다!!! 날씨가 흐리니 조금은 갑갑하다.


눈앞에는 신선대가 엉 버티고 있다. 어, 신선대 오름길에 와이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네!! 이전에는 신선대에는 자운암쪽 안부에서 로프를 잡고 오르는 길로만 올라가 보았었다. 그렇다면 나도 뜀바위를 내려서서 곧 바로 신선대로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늘 뜀바위와 신선대를 우회하여 자운봉 사이의 안부에서만 신선대로 올라 갔었으니까 뜀바위쪽 와이어 로프가 보일 리가 없지!!! 신선대 방향으로 내림 길을 찾아 보지만 선명하지 않다. 더듬더듬 내려서기도 하고 되돌아 오르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겨우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내리막 틈을 발견하고 몸을 돌려 오르는 자세로 내려간다. 그래도 풋홀드를 눈으로 볼 수 있어 조금 전의 배꼽바위 내림 길 보다는 훨씬 낫다. 와, 다 내려왔다!!! 배꼽바위에서의 떨림을 기억하면 훨씬 수월하게 내려온 것이다. 나는 내가 내려온 이 길이 보편적으로 산님들이 다니는 길인지 알지를 못한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온몸의 땀을 훔쳐간다.


오늘은 신선대를 다른 방향에서 오를 수 있다는 기쁨이 있다. 조금 전 뜀바위에서 봐둔 와이어 로프 쪽으로 접근한다. 큰 무리 없이 로프를 잡아 당기며 올라간다.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금 급한 경사의 바위들이다. 요리조리 조심조심 올라간다. 올라오는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은데, 이 길로 내려간다는 생각을 하면 상당히 힘들 것 같다.


신선대의 삼각점을 확인하고 주변을 조망한다. 스치는 바람이 너무너무 신선하다. 자운봉, 만장봉이 넘넘하다. 자운봉과 만장봉 꼭대기에는 언제나처럼 산님 두어 분이 계신다. 어떻게 올라 갔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분들이 안전하게 내려오길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자운봉이나 만장봉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 뜀바위 정도 오르내릴 수 있으면 일상 산행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선인봉은 만장봉 뒤에 숨어 있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북쪽으로 포대능선이 오르락 내리락 훌륭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다시 남서쪽으로 뜀바위, 배꼽바위, 칼바위, 주봉이 나를 호위하는 듯하다.


이제 내려가야 할 차례, 지난 번 올라와 본 적 있는 자운봉쪽 안부로 내려간다. 로프에는 올라오는 산님들이 많아 로프를 잡지 않고 옆으로 조심조심 내려간다. 생각보다 수월하다. 물기가 있으면 위험할 것 같다. 안부에 도착하니 위험구간 표지판이 있고, 여기서 오른쪽 급한 비탈길로 내려가면 마당바위로 가는 길이다. 지난 번에는 이 길로 올라 온 적이 있다. 오른쪽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철 난간을 붙잡고 내려가면 신선대의 북쪽 오름길에 당도한다. 이 길에도 신선대로 오를 준비를 하는 산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포대진지 쪽으로 조금 지나치면 막걸리 쉼터. 막걸리 한 잔에 목을 축인다. 김치가 유난히 맛있다. 오늘은 수염 난 아저씨가 사탕까지 내어 준다. 나중에 맛보려고 배낭의 허리춤 주머니에 넣어 둔다.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좀 참기로 하고, 우선 포대능선 Y계곡을 지나가기로 한다. 어, 그런데 오는 산님들이 별로 없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산님은 연세가 좀 드신 부부뿐이다. 그분들이 먼저 철 난간을 붙잡았다. 내가 뒤따르며 오르막, 내리막, 다시 오르막 한꺼번에 다 와버렸다. 어, 5분도 채 안 걸린 것 같다. 아침에 늦게 출발하면서 걱정하였던 일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다닐 수 있는 길도, 산님들이 많아 지체되면 왜 그리도 짜증스러운지, 급한 성미를 다스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밉다.


포대진지 직전이다. 몇 번 지나다니면서 보아둔, 작은 바위 동쪽 옆으로 가니 수락산쪽 전망이 희미한 안개 속에 가늠된다.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 상을 차렸다. 컵라면 하나, 김밥 한 줄, 오렌지 한 개를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배가 든든하니 시계 볼 생각이 난다. 벌써 2시가 넘어서고 있다. 처음 올라보는 배꼽바위, 뜀바위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한 모양이었다. 식후의 따뜻한 녹차 한 잔에 온몸이 스르르 녹는다.


마눌에게 전화하니 문상 중이란다. 매사에 조심하라고 일러두고, 2시 35분 배낭을 꾸려 포대진지로 향한다. 삼각점(지도상에는 716.7봉)을 확인하고 뒤돌아보는 정상부위를 다시 한번 머리에 입력시킨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신선대에서 보았던 만장봉의 모습이 어느 것인지 아리송하다. 자운봉에서 갈라진 새끼 자운봉의 모습과 실제 만장봉은 보는 각도에 따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새끼 자운봉보다 조금 더 왼쪽으로 머리가 네모진 모양으로 서 있는 바위가 만장봉이 맞을 것이다. 선인봉은 만장봉 왼쪽 뒤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다락능선으로 접어든다. 점심후의 운행이라 발걸음이 더디다. 왔던 길을 가끔씩 뒤돌아보며 정상부의 위용에 감탄한다. 능선 내리막을 내려와 조그마한 바위에 서면, 산인봉의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만장봉과는 어깨를 붙이고 있다. 선인봉 아랫도리는 깊은 계곡에 그 뿌리를 묻고 둘러친 치마자락이 너무나 곱고 매끈하다. 그 치마자락을 붙들고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자기의 삶을 즐기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하는 것인지 헬멧을 쓴 산님들이 여럿 매달려 있다.


만월암으로 내려가는 이정표를 지나 능선을 따라 계속 내려간다. 간간히 철 난간도 지난다. 은석암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서 작은 바위에서 다시 정상부위를 바라보면 새끼 자운봉은 큰 자운봉에 포개져 꼭 하나의 봉우리처럼 보인다. 선인봉에는 매달려 있는 산님들이 더 많아졌다. 선인봉 아래 절 표시가 보이는데 어느 절인지 모르겠다. 짐작으로 천축사는 아닌 것 같고 석굴암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선인봉 밑으로 붙어 있다. 집에 가서 지도를 확인해 봐야겠다.


다시 길을 재촉하는데 또다시 길이 이상하다. 낙엽이 쌓여있고 길은 길인데 자주 다니는 길은 아닌 듯하다.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내가 조금 지친 듯하다. 배가 불러서 그런가? 그냥 내려가보자고 생각한다. 가는 나뭇가지에 얼굴이 스치기도 하면서 내리막을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가 나오고 바위 위의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만월암에서 내려오는 그 골짜기인 것으로 짐작된다. 어디선가 하모니카 소리가 흘러간 옛노래를 구슬프게 읊조린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내려 서니 물줄기 건너 오솔길이 등산로와 연결된 것이 보인다. 이제 안심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계곡에서 잠시 휴식이다. 최근 들어 계곡의 물이 점점 맑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강제적인 요소가 있긴 하겠지만 환경보호운동의 결과라 여겨진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니 10초를 견디기가 힘들다. 수고해준 발이 고마워 발바닥을 여기저기 주물러 준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신선대 막걸리 아저씨가 준 사탕 한 개가 길 잃고 불안했던 마음을 달래준다. 오늘 계획했던 다락능선을 따라 원도봉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수정할 수 밖에 없다. 다음 기회에 실천해 보는 수 밖에. 머리가 나빠 몸만 고생한 경우다.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분간을 못하겠다. 지도를 보며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관음암에서 떠온 물이 아직 남아 있다. 그 한 모금이 이렇게 시원할 줄이야. 배낭을 챙겨 오솔길로 접어드니 곧바로 등산로와 연결된다. 조금 내려가니 길이 눈에 익다 싶더니 도봉 산장이다. 계속 하산 길을 재촉하는데 걸음이 느릿느릿하신 분이 계신다. 왼손에는 쓰레기 봉투, 오른손엔 집게를 들었다. 길 양 옆으로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모두 주우신다. 회색 점퍼를 입으신 분인데 관리소 직원은 아닌 듯하다. 쓰레기 봉투 두 개를 길옆에 놓고 개울가 쪽의 쓰레기를 일일이 다 주우신다. 내 뒤에서 내려오던 산님 부부가 그 쓰레기 봉투 한 봉지를 갖고 내려 가시겠단다. 먼저 지나온 나는 왜 그런 생각조차 못했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길바닥에 앉아 블루스 곡을 연주중인 아저씨의 색소폰 소리를 뒤로하고 광륜사를 지난다. 벌써 4시를 지나고 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지 못한 마눌이 은근히 걱정이다. 전화하니 이제 문상 마치고 출발하려 한단다. 안산에서 오려면 한시간 이상 걸릴 텐데. 어쩌면 나와 거의 비슷하게 집에 도착할 것 같다. 토요일이라 진료 못 받아서 어쩌냐 하니까, 약국 약으로 해결하겠단다.


도봉산 역으로 내려가며 막걸리 한 잔이 하고 싶으나, 앉으면 시간을 지체할 것 같아 그냥 지나친다. 마눌보다는 먼저 집에 당도하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잠시 눈을 감아본다. 봄바람에 짙은 화장내음이 고요한 잠을 깨운다. 젊은 여자 아이 두 명이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복장이 가관이다. 왜 깨끗한 티셔츠를 세로로 갈기갈기 찢어 배꼽은 드러내고 다니는지? 오늘 내가 배꼽바위를 다녀와서 그런가? 내 딸아이가 저러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눌한테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다. 그래도 젊음이 좋기는 좋다.


집에 도착하니 5시30분이다. 마눌에게 전화하니 수퍼에 들러 내일 제사 준비를 해야겠단다. 자기 몸 아픈 줄은 모르고 조상님 섬기겠다고 정성이다. 이런 고마움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마눌에게 물어본다, 왜 그리 조상님께 정성이냐고. 마눌 대답은 ‘그래야 자식들이 잘될 것 같아서’란다. 결국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인 모양이다. 나도 아파트 단지 내의 수퍼로 가서 마눌과 함께 장을 본다. 약국에 들러 약도 꼭 지어오고……


 


산행 후기 :


두 번이나 길을 잃었는데 관음암에서 칼바위 안부까지는 어떻게 잃은 건지 잘 모르겠다. 지도를 봐도 오봉능선에서 오는 길과 만나야 하는데 그 길을 만나지 못했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산행이 뒤따라야 하겠다. 관음암에서 도봉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어려운 길도 아닌데, 뭔가에 홀렸던 듯하다.


다락능선에서 잃고 헤맨 길은 아마도 휴식년제로 금지된 길의 일부인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휴식년제 표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어려운 길에서 방향을 잃었나 보다. 그러니 휴식년제 표지도 없었지. 다음 산행에는 원도봉에서 다락능선을 거꾸로 올라봐야겠다. 아니면 녹야원, 은석암을 통한 길로 오르든지 확인 산행은 있어야겠다.


또한 집에서 지도를 보니, 선인봉 아래의 절이 석굴암이 맞는 것 같은데 확인을 위해 석굴암 쪽으로 다시 한번 올라봐야겠다.


 


재미없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SOLO - 도봉산 메니아이신 모양입니다. 경기교외로 조금만 나가시면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행 즐기실 곳이 많을 것 같은데요. 주말에 북한,도봉은 겁나더라구요..넘 산님들이 많아서요.. 즐산하십시오..
▣ 김찬영 - 저는 서울근교산을 자주찾지만 오른던길과 내려오는길 방향만 바뀌어도 헤메이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안전산행하시기를....
▣ 산강 - 처음 올리는 서툰 글, 보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일요일은 너무 붐비는 것 같아 토요일 산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산하에서 많은 것 배우고 있습니다. 댓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미시령 - 길잃어 헤맨 얘기는, 쓰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참 재미도 있고 배우는 점도 많은 것 같네요. ㅎㅎㅎ 계속 안산하시고 좋은 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