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산에 불이나니 못다 핀꽃 다붙는다.(황매산)

“삼촌 이거 입어봐요.”
뜬금없이 큰형수님이 웬 등산 조끼를 내민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형수님은 추칠월 장작개비같이 뻣뻣한 시동생에게 늘 주의 복음을
전하려 애를 쓰지만 우이독경에 마이동풍인 객이 뭐가 이뻐 늘 이런 선물을 안기는지...

모초럼 비슬, 앞산의 신록을 즐기려 하였는데 창원 큰형수님의 전화 한통으로 허사가 되고
말았다. 진주에 거하는 동생의 쌍둥이 녀석들의 돌이라며 열외 1명없이 진주로 집결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홀애비 과수댁 부엌 살피디끼 쇠눈깔을 굴리며 이리저리 산행 시간을 맞춰 봤으나 답이 없어 산걸음 못한 곁의 체력도 살피고 황매산 철쭉의 방화 시기도 알겸해서 부득불 향골
산행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곁에게 늦어도 11시까지는 악견,금성을 다녀 올테니 중화 맛있게 준비해 오매불망 하라 이르고는 맑고 서늘한 아침 기운을 가르며 악견으로 달린다.
손바닥 만한 주차장 공터엔 신록을 쓸어안는 바람만 가득할뿐 사위 적막해 오늘도 무주공산을 도차지 한다는 기쁨에 수십차 오른 산이언만 도임상 벌어지게 받은 원님의 기분으로
히벌쭉거리며 신들메를 단단히 한다. 상큼한 여린 잎새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러는 오름길은 송알송알 땀방울을 뱉게하며 풀어놓은 여인의 치마끈처럼 굽이굽이 감돌아 간다.

왼쪽 사면을 비스듬히 지치노라면 위압적인 암릉이 우편으로 버티었고 날등에 이르면 조망이 트이면서 푸른 철계단이 위태한 길을 돕는다.
향골호의 파아란 물빛 바람이 개기름 번드레한 목덜미에 써언하게 와닿고 자칫 고꾸라지면 저아래 합천호에서나 몸을 찾을 듯 아슬한 철계단을 부여잡아 오르는 감칠맛 나는 길은 아무리 무지한 산중 문외한이라도 감탄이 절로 일게한다. 곳곳이 조먕대요, 처처이 쉼터가 널렸는지라 한발걷고 뒤돌아보는 미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른 절경이 길을 맞는다.

아마도 초행인 산님이라면 선경에 취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갈길을 근심하지 않을겄이다. 누군가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했다지만 여기 악견에 이른다면 주저함이 있으리라. 길아래 산사면엔 꼭 이팝나무 같은 예쁜 나무들의 꽃잎이 수백석의 쌀을 흩뿌려 놓은 듯 흐뭇하고 은은한 내음은 온산을 진동시켜 향골호의 잔잔한 미풍을 불러낸다.
석달 굶어 젯밥 만난 토째비처럼 달가운 산희열을 진정시키며 허위허위 오르노라면 훈도시의 침입에 한송이 붉은꽃으로 악견의 품에 스러졌던 호국 영령의 산실 악견성이 향골의
기개를 대변하고 소나무 총총한 공터는 향골의 인심을 넉넉히 얘기한다.

혼자 즐기며 걷던길이 어느덧 정상에 닿아 눈을 씻어 쇠기러기 구슬픈 북쪽을 바라니 오두산이 결기를 삭이지 못하는 듯 우뚝하고 뒤로 남도 대회전 장소인 의상봉이 애기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 소담스럽다. 아쉬운 발길 접어 신들메 다시 고쳐 천리마 높이 앉아 봉화산(금성산)으로 향한다.
풍경소리 쟁쟁한 대원사를 지나노라니 노스님이 잠시 쉬어가라며 발길을 만류한다. 내려올때 들르마 겸손히 사양하니 스님의 허리가 패이도록 깊은 합장으로 배웅해준다.

빽빽한 수림을 가르는 길은 이리저리 갈피를 못찾는 꽃뱀의 초리처럼 앵돌아 흐른뒤 골짝
깊은 곳에서 머리를 곧추세워 능선으로 달려간다. 숨질이 제법 가빠올즈음 연청색 꼬맹이
스웨터가 하릴없는 보릿자루처럼 길에 떨어져 있어 혹여 선객이 래했나 싶어 귀를 후비니 햇살이 신록에 부딪혀 흩어지는 소리에 쓸려 저위 어드메서 두런거리는 인적이 희미하다.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궤장처럼 짚으며 흔들흔들 올라서니 꼬맹이 넷을 동반한 객또래의 헌칠한 두부부가 가느니 못가느니 언쟁이 자못 볼만하다.

이제 겨우 서너살 돼 보이는 예삐들은 힘겨운 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 옷을 돌려주며 어쩌자고 이렇게 무리한 길을 무릅썼냐며 타박 됨직하게 나무라고 간식용 오렌지와 물 한병을 내어 예삐들의 갈증을 달랜다. 거참 지난번 백운산 산행때도 이런 일을 겪더니... 쯧.
새내기 산꾼들을 지나쳐 깔딱숨을 두어번 헉헉거릴 참이면 능선 안부에 닿는다.
왼편으로 조금 나서면 시원한 전망 바위가 기막히게 자리하고 있어 초행자는 꼭 둘러보고
가야한다. 능선 우편으로 두어굽이를 짖쳐 오르면 왼편에 방석바위가 노닥 거리며 놀기엔
더할 나위가 없고 조금 더 오르면 정상 아래 삼거리가 반긴다.

금성산 정상은 봉화산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옛날 봉수대로 이용될만큼 조망이 뛰어나 무에 하나 거칠 것 없이 활달하고 기운차다. 객의 서투른 입정으로 가리산 지리산 해봐야
오도방정 밖엔 나올게 없어 그만 두는게 한결 유리할겄 같다.
시계를 보니 곁과 약속한 시간이 지척이다. 좀 서둘러 내려가니 아까 만났던 새내기 산꾼들이 능선 안부까지 올라왔네. 사탕몇알로 서운한 작별을 고하고 쉼없이 내려서니 대원사 으름에서 한무리 산꾼과 마주친다. 사탕을 모두 꺼내어 정력 대보탕을 환으로 지은거라며
몰밀어 주고는 로시난테를 업고 집으로 온다.

좀체 화장을 잘 하지 않는 곁이 진달래 아린 꽃물을 입술에 드린 듯 제법 해사하다.
갑자기 산이 가기 싫어진다. 곁의 채근에 떨어지기 싫은굽을 떼어 덕만 주차장으로 되짚어 오르니 수많은 차량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황매 철쭉의 명성을 실감케한다.
주차장 한켠에 자리한 노점상에서 핫도그 하나를 집어 뱃속의 허기를 달래는데 신랑이 총각
같다는 주인 아지매의 말에 곁은 내심 억울한가보다. 시집와 고생만 한 자기는 할매가 다 되었다며 투덜거린다.

모산재로 오를까 했으나 인파의 부대낌이 괴로울겄 같아 철쭉 제단길로 길을 잡아나간다.
동동주에 신이 난 꾼들의 에야디야 소리에 목이 컬컬해져 곁의 눈총에 자라목이 되면서도
기어이 동동주 낱잔을 마시고서야 걸음이 자리를 잡는다.
더 먹고픈 욕심에 자꾸만 뒤를 쭈뼛거리니 진주 돌잔치는 어떡할거냐는 곁의 지청구에 그만
코가 쑥빠져 복날 개달리듯 질질 끌려간다. 제단길 오름짓에 은근히 곁이 걱정되었으나 무리없이 잘도 올라간다. 되려 객이 끙끙대며 이앓는 소리를 내니 땀을 딲아주며 쉬었다 가잰다. 그참 똥장군 진놈이 똥바가지 든놈을 걱정하니 주객전도도 이만하면 실하렸다.

팍팍한 골짜기를 올라 등날에 서면 완만한 능선이 제단으로 뻗쳐 오른다.
비가 적었던 탓에 먼지가 풀풀거려 오만상을 찡그리는 과히 아름답니 못한 풍경이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가관인데 제단 주위엔 수많은 사람들로 설자리가 협소하고 지천의 철쭉은 잘타다 여문 화톳불의 불씨처럼 빠알간 망울이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윤선생님이 계셨다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셨을까.. 아날로그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입들이 만개치 않은 꽃에 불만이지만 곁도 객도 이구동성으로 만개한 꽃보다 훨씬
아름답다는데 기탄없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베틀봉까지 좀더 황홀경에 빠지고 싶었으나 꽃보다는 사람 구경이 더 장할겄 같아 미련없이
모산재 안부로 하산을 서두른다. 그러나 내려 가기도 쉽지가 않다. 모산재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유산객들로 걸음이 영 지난이다. 안내판이 선 삼거리로 되돌아와 돌돌거리는 개울 한켠에 중화를 풀어 놓는다.
잘 걸어주고 잘 먹어주는 곁이 너무 이뻐 금슬지락을 찬양한 옛시 한편을 폼나게 읊는다.

옥으로 함을파서
너와 나를 넣은뒤에
금거북 자물쇠로
엇슷비슷 잠가다가
천상이 우리뜻 받들어
열쇠없이 하고져...

곁의 가시돋힌 화답이 돌아온다.
“그기 단란주점 강양인가 뭔가 하고 들어가지 왜 나하고 들어가? ”
“................”
어참, 참 진땀나는 오후다. 와 이리 덥노.......

2004년 4월 25일. 끝

#각 구간별 도달 시간.
*07시 35분...악견산 입구.
*08시 26분...정상.
*09시 25분...금성산 입구.
*10시 06분...정상.
*10시 40분...다시 입구.
*11시 45분...덕만 주차장.
*13시 50분...다시 덕만.

#유의 사항.
*철쭉 만개 하지 않았읍니다. 다음주에나 되어야...
그러나 다음주엔 철쭉제가 열립니다.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 김정길 - 강양이 짝사랑하는 아우님, 저는 25일요일에 운해아우님과 산악회 따라서 남산제일봉 댕겨왔습니다. 5/2부부동반이죠?
^^^부부동반이 어려울겄 같습니다. 건강 조심 하십시요.

▣ 이송면 - 어쩌다 단란주점 강양을 들켰더랬습니까?...ㅎㅎㅎ. 지금 빨간 망울이라 하시면 이 비 그치고 나면 터져나올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29일 이나 30일 쯤 한번 가볼가 생각이 납니다. 곁님의 건강이 많이 회복된것 같아서 좋습니다. 부부동반의 정 많은 산행 하시길 .. 늘 건강하십시오
^^^예. 아무래도 그때쯤이 적일거라 사료 됩니다. 오시면 연락 주십시요.

▣ 브르스황 - 선배님의 문장실력은 과연 탁월하십니다. 조선조의 한 대학자가 쓴 글을 읽는것 같은 착각에 빠진것 같습니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감칠맛나는 선배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체력도 대단하십니다. 하루에 세개의 산을 오르시다니....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아이구 건조한 촐첨지를 많이 부담 스럽습니다. 좋은 산행 많이 하십시요.

▣ 물안개 - 아직 덜 피었군요.우리는 5월초에 갈 예정인데...어떨지..개화시기를 맟추기가 쉽지않지요...늘 건강하세요
^^^부부동반 이신가요? 좋은 산 많이 가시는 님의 건강 기원합니다.

▣ 구자숙 - 5월11일 갈려고 생각하는데.,....어이하면 좋을가요? 강양은 누구시길래?ㅎㅎㅎ
^^^ 오시오 ! 강양 뵈드리리다. 언제든지 환영..

▣ 윤도균 - 존겨하는 맹익님 구수하고 토박이 사투리의 산행기를 읽으며 어떤대목에선 이해가 쉽지않어 되풀이해서 몇번을 읽은후에 어렴풋이 내용을 알듯말듯 이해를 하고 참 그양반 산행기한번 기가막히게 쓴다 생각을하고 옥으로 함을파서 너와나를 넣은뒤에 금거북 자물쇠로가 나올때 얼씨구 하고 추임새도 넣었는데 느닷없이 곁님이 단란주점 강양인가 뭔가 이야기에 난 맹익님의 바르지못한 처신에 웃고말았습니다 얼마나 가슴에 닿으셨으면 곁님의 마음이 그리도 상하셨을까 맹익님 우리모두 반성합시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많이 반성하고 회개 했읍니다. 선생님의 말씀 명심하여 이후 그런 실수가 없도록 노력 하겠읍니다.

▣ 빵과 버터 - 하이고매....비슬산에서 입이 맵고 짠 그 사람이 좋타! 좋타! 하면서도 황매산 타령이더니 저는 언제나 교주님 발자취를 더듬어 볼려나....교주님 뽄 받을려면 단란주점을 자주 댕겨야하는디...사모님. 반갑습니다.
^^^더 부끄럽게 하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 어서 오소서..
.
▣ 김석기 -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곁님도 많이 회복된듯 하니 다행입니다. 두분이 예전처럼 다정히 산행하는 모습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격려에 늘 힘을 내고 있읍니다. 건강 하십시요.

▣ 산초스 - 산하가족 산행기 올리시는분 중에서 가장 향토적이고 재미있게 쓰시는 산행기라고 생각됩니다. 일요일 의상봉에서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저역시 의상봉 만남을 기대하고 있읍니다. 그때 뵙겠읍니다.

▣ 운해 - 글에서 묻어 나오는 향기가 참을 곱습니다. 형수님의 마음과 같이..........
^^^황매산 구름바다도 대단합니다. 오십시요.

▣ 산사랑방 - 그노므 황매산 일년 열두달넘게 간다간다 하면서도 아직 못가봤네요 올해는 철쭉보러 필히 가야할텐데 또 시간이 될려나.. 마음만 부풀리고 갑니다 의상봉에서 쌓였던 그리움들 다 쏟아냅시다.
^^^어서 오이소 . 대구서 예까지 멧발 된다고..

▣ 이수영 - 정말 대단한 체력이십니다. 악견,금성,황매 3개의 산을 하루에 오르시다니요! 나는 글을 읽다가 이기 무신 소리고?? 했답니다. 정말 고수님이시네요..더블헤드가 아닌 트리플 헤드 산행이라..허~~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산이 낮아 그리 대단할건 없읍니다. 고맙습니다.

▣ 곽향섭 - 고향을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하십니다.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시는지? 부럽고 존경스럽네요. 항상 건강하시기를...
^^^격려 감사 드리며 님의 건승 기원합니다.

▣ 이수영 - 0오늘(5월2일) 진맹익후배님을 만나서 나서,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경악(?) 했습니다. 그동안 후배님의 글을 읽었던 모든 네티즌님들이 님을 상상하기로 연약하고 영감스타일을 상상했는데..이게 어찌된일입니까? 우리 눈앞에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나타났으니.. 놀랄 수 밖에요.. 저런 몸(?)으로 어떻게 이런글을 쓸 수 있다니 정말 불가사의 한 일입니다. 나는 여태까지 저런 몸(?)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구수한 글을 쓴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히 안가거든요..헛..참.. 이제 후배님이 하루에 3개의 산을 가볍개 탄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치..그리고 딸기 잘먹었습니다. 얘기 듣기로 직접 따온 것이라 하던데..
^^^감사 드리며 좋은 만남 이였읍니다. 즐산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