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04.2.28 오전 8시 40.

느닷없는 소요산 산행이었다.
출발까지만 해도, 아니 감악산 산을 올려다 볼 때까지만 하더라도 감악산 임꺽정봉을 생각하며 떠난 길이었다.
적상을 지나 동터오는 계곡을 달리다보니, 산골의 새벽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 그지없다.
범륜사 절에 오르는 입구를 지나 매표소 입구에 도달하는 순간 앞에 내걸린 현수막이 아찔하다. “입산금지” 5월 초순까지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어쩌나. 누구한 테 물어볼래야 사람하나 구경할 수도 없고. 내친김에 범륜사 경사길을 올라 절까지 가 보았으나 조용한 절간이라 했던가. 너무도 조용하고, 사람하나 구경하기 힘들다. 물소리 따라 내려가니 운계폭포가 그나마 힘있게 나를 반긴다. 높이도 높이려니와 갈수기임에도 수량이 적지않다. 한동안을 폭포속에서 무아를 경험한다.
내려와 전화로 주변 식당들 전화를 눌러보나 받질 않는다. 양주시청에 전화해보니 알 수 없단다. 감악산 반대편으로 와 보니 여기도 마찬가지. 봉암사에 전화해보니 발화물질만 내어놓고 가면 될 것이라 하나 매표소 직원이 없다. 좀 더 알아보지 못하고 출발한 내 잘못이니 어쩌랴.
포기하고, 소요산으로 향했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동두천시내를 외곽으로 돌아 소요산으로 진입한다. 아침 여덟시 반, 헤매고 헤맨 길이었으나 일찍 나선 터라 아직도 일러 사람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신발을 등산화로 바꾸어 신는다. 오랜만에 신는 신발의 감각이 좋다. 가볍게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스팔트 길을 거슬러 오른다. 주변의 잔디에 서려있는 서리가 아직은 봄을 맞기에 이른 때 임을 알린다.
일주문을 지나고, 원효대에 이른다. 원효폭포가 수줍은 듯 약간은 비스듬이 비껴 내려치는 폭포물이 갈증된 마음을 말끔히 씻어 낸다. 계단을 돌아 폭포위로 오르니 계곡이 깊어지고, 그 함지박안에 자재암이 자리하고 있다. 지나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산사는 고요하고 옥류폭포의 고요를 찟는 일성만이 나를 반긴다. 가파른 길을 오른다. 가파르기는 하나 소요산은 그리 험하지는 않다. 생각지 않은 산이라서 그런가. 서둘러지지 않는다. 여유자적이다. 하백운대 못미쳐 절벽 어디 바위에 걸터 앉아 골뱅이를 꺼내 먹는다. 산에 어울리지 않는 음식 같으나 맛있다. 단풍이 절정일 때 올랐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요란하지는 않으나 수수한 맛에 이끌렸던 기억이 난다. 산등성이의 차가운 바람을 이마에 받으며 하 백운대에 오른다. 민둥민둥한 삼거리를 지나 소나무 받친 바위들. 능선의 묘미인 좌측우측의 조망을 즐기는 사이에 중백운대를 오른다. 바위위에 자리잡고 서 본다. 절벽이기에 시원한 전망, 오랜세월 갖은 위기를 지나며 자리하고 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소나무들,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앙상한 소요산은 속내를 다 드러내고 있다. 감출 것도 감출 수도 없는 겨울의 혹독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삼거리를 지나 상백운대로 오른다. 능선길은 산책길처럼 오밀조밀 힘들지 않고 편안하다.
상백운대를 지나고, 칼바위 능선에 들어선다. 바위가 칼날을 세워놓은 듯 뾰죽뾰죽하다. 발걸음 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어 참 아름다운 길이다. 발 아래 오른쪽으로 시커먼 물체들이 지난다. 얼굴을 돌려보니 커다란 독수리 예닐곱 마리가 바람을 타고 활공을 하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른 독수리 같은 데 어른 양팔벌린 크기의 독수리가 줄지어 나르는 모습이 자못 멋있다. 바쁠 것 없으니 여기서 좀 쉬어가자. 복숭아 통조림을 꺼내 달콤하게 전해오는 복숭아의 맛을 즐긴다.
그리 서두른 길이 아니라서 다리도 몸도 피곤치 않다. 추위도 그리 매섭지 않고.
샘터로 내려선다. 흙길이나 아직은 얼어있어 괜찮다. 계곡에 내려서자 바위 이곳 저곳이 얼음으로 채워져 있다. 고드름 하나 떼어서 만져본다. 차가운 얼음의 느낌이 손바닥에 흐르는 물을 통하여 그대로 내 몸에 전해져온다.
얼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모양은 기세가 있으나 밑이 텅 비어있다.
동장군의 아름다운 자연의 작품도 소녀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다가오는 봄의 입기운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바위와 앙상한 나무로만 지켜진 소요산의 겨울도 이렇게 봄 앞에 무너지고 있었다.
자재암에 이르니 염불소리 요란하다. 그냥 고요한 산사가 더 낫지 않나 생각하며 일주문을 나서니 주말을 맞아 선지 가족들끼리 산행에 나선 여러 가족들이 보인다.
시간을 보니 열한시 사십분. 세 시간여 걸린 산행이었다. 생각지 않은 산행이었으나 폐속이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