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의 가지산과 운문산을 가기로 두어 주 전에 작정을 하였다. 경남,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두 산줄기를 비롯하여 그 밖의 몇 개의 산을 더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리운다고 한다. 해발 고도가 1,000m를 넘는 봉우리가 여럿이니 제법 고산다운 면모를 지녔을 것이고 아마도 이 지방에서는 가장 그럴 듯한 산군을 형성하여 산꾼들을 불러모으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와 산행기 등을 섭렵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만만치 않은 산행이리라. 엊그제 중부지방에 쏟아진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상태라는데, 귀경 교통편도 여의치 않아 어차피 부산 숙소에서 주말을 보내야 할 터이고, 날씨가 궂더라도 산에라도 가지 않으면 긴긴 주말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영남알프스로 간다.


일자 : 2004. 3. 7(일)


산행시간 : 8시간


주요경로 : 가지산 석남사 주차장(07:25) – 석남고개위 갈림길표지판(08:23) – 갈림길표지판 가지산1지점(08:47) – 가지산 정상(9:35/40) – 갈림길표지판(10:53) – 아랫재(11:35/55) – 운문산 정상(12:50/55) – 갈림길(13:08) – 석골사(14:55) – 24번국도 버스정류장(15:23) – 히치하이크, 석남사 주차장(15:46)


참가자 : 권영석, 나


 


06:00 용원 아파트 숙소 출발. 어제 오후 일과 후, 권 차장과 부산에 드라이브 나갔다가 얼떨결에 송도라는 곳에 들러 산책을 하였다. 말이 산책이지 바닷가 바위절벽을 끼고 도는 절경, 차가운 겨울 바람, 막힘없이 펼쳐진 시원한 수평선 등의 눈요깃거리와 함께 상당한 뻐근함을 무릎에도 남겼다. 용원 숙소에 돌아와 대충 씻고 일찍 자리에 누웠으니 한 밤중에는 잠이 깨어 자다깨다 하다가 오늘 산행에 대한 기대, 걱정 등으로 아예 4시 경에는 일어나 앉았다. 권차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떼우고 베낭을 메고 아파트를 나선다.


07:08 서 울산IC도착. 용원에서 하단을 거쳐 551번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서울산IC에서 빠져나온다. 언양읍이다. 밀양방면 24번 국도로 진입한다.


07:25 석남사 주차장. 차를 세우고 신발끈을 여미는데 젊은 주차관리인이 다가온다. 등산객이나 관리인이나 부지런하기는 마찬가지이군. 주차비는 2,000원이란다. 입장료를 물어보니 1,700원이란다. 어디 다른 길은 없냐니까 노점 뒤로 가면 바로 등산로라는 반가운 답을 듣는다. 주차비를 무는 대신 3,400원 벌었네 하며 바로 노점 뒤로 오른다. 노점 곁의 등산 안내도를 살펴보니 석남사로 들어가는 길은 쌀바위로 해서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이 노점 뒷길은 석남고개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서 가지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일기예보에 밀양 최저기온이 영하8도라는데, 기온도 차고 바람이 분다. 마음 단단히 먹고 산길을 오른다.


08:23 갈림길 표지판. 좌 석남터널, 후 석남사입구, 우 가지산 정상. 처음으로 만나는 표지판이다. 만만치 않은 길을 쉬임업이 꾸준히 걸어올랐다. 우리가 오른 길도 중급경사정도의 능선길이었는데, 좌측에서 오는 길은 석남고개에서부터 오르는, 밀양과 울주군을 가르는 경계능선인가보다. 멀리 아스라히 가지산 정상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쪽의 제약산 신불산 인 듯한 산군들이 펼쳐진다. 쌓인 눈이 강풍에 휩쓸리며 눈보라처럼 휘몰아친다. 강풍에 빰이 얼얼해지더니 너무 아프다. 견디기 힘들다. 이러다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08:47 두번째 갈림길 표지판. 좌 석남터널(밀양방면), 후 석남터널(울산방면), 우 정상. 가지산(1)지점.


 기온도 낮은데다가 바람마저 불어대니 온 얼굴이, 손이 시렵고 아프다. 눈은 발목보다 더 쌓여있어 신발 젖을세라 앞사람 디딘 자국만 밟고 간다. 다행히 오름길이라 아직 아이젠은 하지 않아도 괞찮다. 조금 더 오르니 전망 좋은 봉우리에 닿는다. 눈 앞에 가지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내리막이 조금 있으니 이제야 아이젠을 찬다. 바람도 불다말다 하니 조금 살 것 같다. 겨울 산행에는 빰까지 가리는 모자를 필히 준비해야겠다. 객지에 나와있다보니 이거 저거 없는게 많아 간밤에 궁여지책으로 모자에다가 양말을 대충 덧대 꿰메어 귀와 빰을 요긴하게 가리기는 했는데, 참 쪽팔리는 행색이다. ㅋㅋㅋ


09:35/40 드디어 가지산 정상 1,240m. 오늘의 첫 목표지점을 밟는다. 영남알프스 산군중 최고봉이다. 동쪽으로는 쌀바위를 거쳐 능선따라 산이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운문산이 우뚝하다. 그 너머로도 능선이 즐비하고 남쪽으로는 아마도 날 풀리면 내가 가고 싶어할 신불산 취서산 제약산이 아스라히 펼쳐진다. 참으로 장쾌하고 거침없으며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마도 이래서 이 곳 산꾼들이 영남알프스라 이름 붙였나보다. 게다가 때 아닌 폭설로 인해, 산 높은 곳은 모두 흰 눈을 덮어쓰고 있으니 알프스라는 이름이 과연 명불허전이다.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견디기 힘들다. 정상석 곁의 태극기가 미친 듯이 펄럭인다. 아고 숨쉬기도 힘드네… 으~ 손 시려라… 서둘러 운문산 방향으로 내려간다는 게, 바로 아래 헬기장이 뻔히 보이는데도 눈에 덮여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조금 알바를 한다.


10:53 갈림길 표지판. 직 아랫재 1.29km, 좌 제일관광농원 2.5km, 후 가지산 2.58km. 가지산 정상에서 운문산으로 가는 평이한 능선길이다. 고도 1,000m정도의 능선으로, 10~20cm이상 눈이 쌓여있지만 다행이 바람이 잦아들어 좌우의 환상적인 조망을 즐기며 진행한다.


11:35/55 아랫재. 직 운문산 1.2km, 좌 남명초등학교 3.91km, 우 운문사 7km, 후 가지산 3.87km. 평이한 능선을 따라 걷다가 아랫재로 20여분 정도 뚝 떨어진다. 아마도 3~400m 이상 급하게 내려온 듯 하다. 아까 능선 상에 “남명리”라는 작은 표지가 있고 표지기가 그 쪽에도, 직진방향에도 어지러이 달려있어 운문산방향으로 직진해서 내려왔는데, 길은 맞는 듯한데, 러셀이 안 되어있어 권영석차장이 앞장서 길을 만들어 내려왔다. 급경사 내리막이라서 결국은 권차장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약 3m 정도 미끄러졌다. 워낙 급경사라서 아이젠이 돌아가버렸나보다. 부상을 입지않아 천만 다행이다.


아랫재에는 부서진 건물이 있고 긴 나무의자가 있다. 준비한 떡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페트병에 물이 조금 얼어있다. 마게를 여니 입구에 얼음이 마치 코르크마게처럼 얼어있어 손가락으로 미니 쏘옥하고 페트병 내로 빠진다. 물이 차가워 조금만 마신다. 여기서 운문산 정상까지는 급경사로 한 시간 거리이다. 고도차 460여m를 차고 올라야 한다. 밀양 산다는 젊은이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이 건물은 자기 아는 사람이 고시공부하던 곳인데, 계속 시험에 떨어져 요즘은 약용으로 쓰는 무슨 나무를 인터넷으로 팔아 돈을 번다던가…


12:50/55 운문산 정상 1,188m. 드디어 두번째 목표를 달성하다. 아랫재에서 마음 단단히 먹고 중경사의 오름길을 한걸음씩 묵묵히 오르다보니 바위암릉을 지나 드디어 정상이다. 역시 사방 전망이 환상이다. 아! 운문산. 구름의 문이라…


낮시간이라 그런지 등산객들도 많고 저 아래 양지녁에는 라면 등을 끓여먹는 단체산행객들이 여럿이다. 오늘이야 산에 온통 눈이니 산불 날 리야 없겠지만, 보통 때 초목이 바짝 마른 때에도 버젓이 버너로 조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추울 때, 위급할 때 더운 음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더구나 산 속에서 조리해 먹는 그 기막힌 맛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어차피 산을 즐기고 호연지기를 기르고 신체단련을 하러 산에 올랐다면, 보온병이나 간편식 정도만을 준비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야하는 게 아닐지… 아차 실수하면 큰 불을 낼 수 있는 화기 사용을 보면 마음이 언짢다.


요즘 워낙 등산에 취미를 붙이는 사람들이 늘어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산에 많이 오르다보니, 전체적으로 보아 예전보다 산행객들의 차분함이랄까 겸손한 모습이 조금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단체로 몰려다니며 들떠 떠든다든지, 비싼 옷 자랑에 침이 튀는 사람들이라든지… 인자요산이라고 무릇 어진 사람들이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부득이 불을 사용하시는 분들께서는 부디 조심 들 해주셨으면…


아무튼 우리는 이 지역에 자주 올 일이 없을 터이므로 어찌 기념사진을 찍지 아니하랴. 운문산 정상석에 기대어 사진을 찍는다. 북서쪽으로는 억산 구만산이 이어진다는데 저거련가?


13:08 하산길 중 첫 갈림길. 직진하면 능선따라 딱발재로 해서 운문사나 억산을 갈 수 있을테고 우리는 좌측길로 상운암, 석굴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후 지루한 계곡 하산길이 이어진다. 아이젠을 풀었다 신었다 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지루하고 미끄럽고 위험한 계곡길을 내려온다. 높은 고도차를 짧은 거리로 내려오므로 무릎에 상당한 통증을 느낀다. 며칠 전부터 운동한답시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300여 회씩 했는데 이게 오히려 악영향을 주나 보다. 괜히 안하던 짓 해서…


계곡의 깍아지른 벼랑이 매우 특이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위들이 “늙었다”. 북한산이나 다른 산의 바위들은 표면이 매끄럽고 시원스러운데 이 곳 바위들은 희끄무레하고 잔금들이 매우 많고 아주 늙어보인다. 전체적으로 산은 매우 힘차고 급하고 수려한데 군데군데 바위절벽들은 참 특이하다. 색깔조차 검거나 단색이 아닌 희끄무레… 그러나 산의 하늘금은 절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14:55 석골사 도착. 하산에 두시간이 걸렸다. 시간운행상 특이한 점은 등산지도에 표기된 시간에 비해 오르막길은 훨씬 덜 소요된 반면, 내리막길에서는 훨씬 더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가지산 정상에서 아랫재까지 지도에는 1시간 40분으로 표기되어 있어 대충 1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하려니 했는데 정확히 2시간이 소요되었고 운문산정상에서 석굴사까지의 하산길도 지도에는 1시간 30분인데 우리는 2 시간이 걸렸으니 눈길임을 고려하더라도 지도상 시간표기가 너무 빡빡한 건지, 우리가 너무 버벅대었느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눈길, 빗길, 진창길에는 하산시간을 넉넉히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류 맑은 물이 인상적이다. 권차장은 여름에 이런 데 놀러오면 딱 좋겠단다. 밀양시 산내면 석골사… 잘 기억해 두셔!


15:23 버스 정류장앞. 석골사에서 개울따라 마을길을 걸어내려온다. 평화로워보인다. 밀양에서 석남사까지 하루 7번 정도 시외버스가 운행하는데 어제 알아본 바로는 3시 반경에 통과할 게다. 다음차는 5시 반경이고. 시간을 간신히 맞추긴 했다. 운좋게 버스정류장 바로 못미쳐 석남사방향의 자가용차를 얻어탄다. 고마운 분.


15:46 석남사 주차장. 얻어탄 승용차를 타고 24번 국도를 따라 영남알프스의 산자락을 다시 훑어본다. 눈에, 가슴에, 몸 속에 꼭꼭 담는다. 정말 아름답다. 석남터널 근방에는 등산객들이 즐비하다. 야~ 여기서부터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겠구나.


석남사 주차장에서 차를 빼 다시 오던 고갯길로 올라가 본다. 울산 12경 신불산 억새 어쩌고 하는 도로표지판을 따라 배내고개에 올라 본다. 능동산, 재약산, 간월산, 신불산 방향을 바라보며 새로운 그리움을 마음에 새긴다. 아마도 멀지않아 이 곳에 또 오리라.


18:30 24번 국도로 언양, 35번 국도로 양산, 부산 하단 거쳐 진해 용원 도착.


 


정말 감동적인 산행이었다.


최저기온이 영하 8도라는 예보에 며칠 전부터 불안해 했는데, 과연 때늦은 겨울날씨에 저온에 강풍에 내 뺨과 손과 몸은 힘들어했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고 어찌할 수 없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던 순간도 있었다. 다행히 출발 두어시간 지나서부터는 기온도 올라가고 바람도 불다잦다하여 그럭저럭 산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석골사 하산길에는 무릎통증도 살짝 재발하였으나 무사히 하산을 하였다.


과연 영남 알프스란 이름을 붙일 만 하였다. 가지산 1,240m, 운문산 1,188m, 신불산 1,209m, 취서산 1,092m, 재약산 1,108m, 재약산 사자봉1,189m 등 높이 1,000m를 넘는 산군들이 무리지어 이리저리 능선을 그어 이어지며, 능선은 수평한 듯한데 산록은 거의 급경사로 쏟아내려진다든지… 참으로 수려하고 호쾌한 곳이다. 골고루 다 돌아다니려면 사나흘로도 어림없을 듯하다. 넓고도 높게, 그리고 엇비슷한 높이로 능선을 주욱 이어지는게 참으로 특이하다.


날이 풀리면 아마도 영남알프스의 또 다른 산자락을 타게 될 터이고, 그 때는 차분하게 마음으로 음미하며 더 여유있는 산행을 해보리라 생각한다. 이 번 어려운 산행에서 서로 격려하며 소중한 추억을 공유하게 된 권 차장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기록을 마친다.


석남고개위 능선에서 바라본 가지산 능선1



석남고개위 능선에서 바라본 가지산 능선2(정상)



석남고개위 능선에서 바라본 가지산 능선3



석남고개위 능선에서 바라본 가지산 능선4



가지산 정상에서 권차장



가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쪽 능선



가지산 정상에서 바라본 운문산



눈꽃 터널을 지나며1 (권차장)



눈꽃 터널을 지나며2



벼랑위 멀리 재약산



남쪽 멀리 신불산, 취서산



운문산 정상 아래 암봉



운문산에서 내려다본 산내면, 멀리 재약산



운문산에서 바라본 가지산



운문산 정상석을 바라보는...



운문산 정상에서



석골사 (권차장도 살짝...)



사진이 1200x1600으로 찍어 원래는 선명한데, 다른 서버에 올려 카피를 하니 파일이 축소되어 희미하네요. 선명한 원본 파일을 올리도록 다시 알아보지요.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영근 - 멀정한 한사람 또 망가뜨리셨군요. 아무쪼럭 정상정복을 추카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 김창권 - 멋진 글! 산행기가 사실적이고 느낌을 생동감있게 잘 썼습니다. 나도 신불산, 가지산과 석남사 등을 자주 가봐서 더욱 더 그 느낌을 잘 와 닿는가 봅니다. 아뭏튼 고생했어요. 권차장도 고생했구요. 사진만 봐도 가고 싶은 곳. 가지산, 취서산.... 멀리서 안부를 전합니다.
▣ 山용호 - 산행기랑 멋진 영상들 잘보고 갑니다....
▣ 산사랑 - 사진잘보고 감니뎌
▣ 윤길 - 산행기...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글쓴는에 소질이 있는 듯하니 전국 각 산의 산행기를 책으로.....
▣ 원소영 - 오빠의 멋진 산행~ 감동적입니다. 산보다 더 넓은 마음을 지닌 분이시겠죠? 무릎 안 아프게 건강관리 잘 하세요*^^*
▣ manuel - 좋은 글, 더없이 맑은 사진입니다. 늘 애독하겠습니다. 산길에서 꼭 뵙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