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5. 11. 24. (목)
누구랑 : 으니공주와 둘이서
산행코스 : 내원사주차장 - 산하동계곡 - 상리천 - 대성골 - 대성암 -
               정상 - 임도 - 가사암입구 - 상리천 - 산하동계곡 - 내원사주차장
산행시간 : 휴식포함 7시간

정족산(700m)의 鼎은 솥 정이요, 足은 발 족이니, 솥발산의 다른 이름이다.
산 정상에 길게 뻗은 바위 모습이 가마솥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천성산 제2봉, 천성산(옛 원효산)과 함께 북에서 남으로 하나의 긴 산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천성산의 명성에 가려 어찌 보면 다소 서러운 신세의 산인지도 모르겠다.
3주 전, 천성산 공룡능선을 타면서 녹록치 않아 보이는 산세를 조망하며
멀잖아 반드시 찾으리라 눈도장을 찍었던!

으니공주와의 산행은 준비과정이 각별하다.
산을 전혀 모르던 그녀를 동행시키면서
나의 여벌 등산복과 신발, 양말, 장갑까지 죄다 동원되고
적절히 분배한 짐을 채운 베낭도 두 개다.
다행인 것은 그녀와 나의 몸매무새, 체격이 비슷하다는 것!
그렇게 산을 향한 걸음이 어느 듯 오늘이 9번째로
가지, 신불, 간월, 영축, 금정, 무척등 그녀는 이제 제법 산행의 묘미도 알고,
1,000고지 이상의 산도 척척 소화해내는 씩씩하고 기특한 공주이다.
막중한 가장의 역할 감당하느라 언제나 마음뿐인 대장님에게 내가 그랬다.
큰 공주, 작은 공주가 정족산으로 또 떠난다고!

느낌만으로 전진하며 곧잘 좌충우돌하는 나이지만
오늘은 국제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고이 모시고(?) 출발한다.(10:10)
가구수가 몇 안되는 한동마을을 지나 곧장 닿게되는 노전암에선
오늘도 웬 염불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나온다.
산을,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겐 소음으로 다가올 뿐 일진데......
노전암앞에는 어설픈 이정표가 서 있으니
천성산에서 늘 느끼는 것은 주차비(2,000)와 입장료(1인당2,000)는
꼬박꼬박 내지만, 등산안내 이정표는 너무나 부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상7.2km라는 표시가 정족산인지, 천성산 제2봉인지,
천성산(옛 원효산)인지 가늠이 잘 안된다.
조금 더 가서 나오는 이정표에도 천성산 제2봉 방향은 나와 있지만
몇 키로라는 표시가 없어 거리는 알 수가 없는 식이다.
시그널이 주렁주렁 매달렸을 뿐, 공룡능선 초입을 누가 능히 알 것이며
가사암 입구를 어찌 쉬이 헤아릴 것인가?

단풍은 이미 빛바래었지만, 상리천은 청량한 물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낮은 폭포, 沼에다 바위들이 어우러진 터에
특별히 산새들의 화음까지 가세하니, 숲 속 자연 음악회인양 하고,
언제나처럼 쉬엄쉬엄 평안한 걸음 잇는다.
거의 평지 수준인 계곡길을 1시간여 걸어
상리천과 대성골이 만나는 계곡 합수점에 이르러
왼 쪽 대성골, 오름길로 길은 이어지고
등에도 적당히 땀이 베어난다.
이어지는 계곡 물소리와 함께 시시로 푸드덕 꿩이 날고
다람쥐, 청설모가 조르르 달음박질에다
뭇산새들의 쪼르릉 합창은 그치질 않으니,
적지 않은 산들을 누볐지만 정족산은 참으로
자유로운 새들의 낙원이란 느낌이었다.
바람없고 푸근한 날씨탓에 우린 겉옷을 벗고
공주는 장갑마저 벗어 버렸다.

오름길 1시간만에 드디어 대성암에 도착하니
웬 걸? 암자 한 켠에 줄지어 선 승용차들!
깊고 높은 산 속에서의 자동차는 그야말로 공해덩어리!
해묵은 아름드리 감나무에 잎은 다 져버리고
진주홍빛 감이 무수히 열려 마지막 가을 햇살 흡입중인데
암자가족들이 긴 장대를 들고선 하늘높이 매달린
감을 수확하느라 힘겨운 씨름을 한다.
아름드리 돌로 치장한 원통전옆엔
생명력있는 큰 나무뿌리 밑동에서
신기하게도 샘물이 좔좔 흘러내리고 있었다.
목을 축이고선 다시 오름길을 잇는데
물소리도, 새소리도 끊긴 인적없는 길에
고지를 눈앞에 둔 마지막 고행길을 전진하다가
내가 "거의 다왔어. 정상까지 20분이란다." 하니
"정말이에요? 딱 20분만 가면 돼요?"
축 쳐져 뒤에서 걷던 으니가 갑자기 생기넘치는 목소리가 된다.
더러 철잊은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머리 위 우뚝 솟은 암봉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데
잡아주고 당겨주며 드디어 정상엘 당도하니(12:50)
정족산 정상엔 그 흔한 번듯한 표지석 하나없이
삼각점만이 새겨져 있는 서러운 신세였다.
맞은 편엔 거대한 천성산 자락이 보란듯 위용을 드러내는데!

조심조심 정상을 벗어나 2인용 반석위에서 푸짐히 식도락을 즐기는데
군에 있는 장남의 전화가 연결되고 녀석 왈,
"엄니!~~ 제발 으니 똥배 들어가게 해주세요." 한다.
임도를 걷다가 다시 잡목 우거진 산길을 종횡무진 전진하는데
두 어번 사람 키보다 큰 산죽이 터널을 이룬 곳을 뚫으며
우리는 절로 경탄을 쏟아내고!

가사암 입구가 애매모호하였다.
안내판 어디에도 가사암이란 용어는 없어
달랑 매달린 국제신문 시그널 하나만 믿고
우측으로 꺾어 포장된 임도를 한참 내려가니
목장승이 나오고 왼 쪽 골짜기에 가사암 건물이 허름히 눈에 들어왔다.

본격적인 하산길......
산허리를 따라 이어지는 낙엽 수북이 쌓인
사람발길 닿지 않은 구불구불 오솔길을
행여나 다칠세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잇고
늘 그랬던것처럼 으니는 내리막을 더 힘들어한다.
난 아무래도 오르막이 힘드는데!

부시럭대며 꿩 한 쌍이 종종걸음으로 달아나고
어느 지점부터인가 다시 물소리, 새소리가 다가온다.
금새 눈앞에 펼쳐지는 대성골 입구의 계곡 합수점을 지나
눈에 익은 상리천 계곡길을 편안히 걸어 내려왔다.  
오늘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17:10), 돌아 오는 길 고깃집에서
그녀가 원하는 삼겹살을 지글지글 구우며, 나의 넋두리

"산에서 0.5kg 빼고, 하산 후 1kg 다시 찌우네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