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한 설악산

■ 목 적 지 : 설악산 대청봉
■ 산행일자 :  '04. 8.6~8.7
■ 산행인원 : 본인, 아들 및 회사C과장
■ 산행경로 : 백담사-수렴동대피소-봉정암-소청-중청(1박)-대청-천불동 계곡-설악동 소공원

◆ 출발에 앞서
7월 중순. 매일 PC앞에서 거의 폐인이 다된 대학생 아들녀석에게 방학을 이용한 설악산 산행을 주문하니 그러자 합니다. 아마도 아빠의 말이니 그렇지, 제가 좋아서 OK 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짐짓 모른체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설악의 산행이 결정되었지만, 근교 주변산도  4~5시간 정도 산행시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것 때문에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 회사 산악회에서 한라산에 갈 때에도 가고 싶지만 그래서 포기했었는데....

8월 5일 밤 10시 30분에 안양을 출발합니다. 조금 가다 보니 차 앞이 조금 이상합니다.
정지선에서 앞차에 비춘 제차를 보니 아뿔싸! 왼쪽 전조등이 캄캄.  전구가 out된 겁니다.
주로 낮에만 운전을 하게 되다 보니(전조등을 켤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길가에 세우고 예비전구로 교체한 후 11시경 출발합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문을 열면 오히려 짜증이 납니다. 열대야는 도로위에서 그 위력을 더욱 발휘합니다. 외곽도로에는 늦은 밤에도 차들이 많습니다. 휴가철을 실감합니다. 팔당대교를 지나 44번 경강국도를 타니 강바람이 조금은 더위를 식혀 줍니다.
GPS를 믿으며 속도를 냅니다.  중간 휴게소에서 두어번 쉬고 그대로 용대리로 향합니다.

◆ 용대리-백담사 (07:00 – 08:00)
용대리에 2:30에 도착해서 같이 간 직원과 간단하게 팩소주 1잔하고 3시경 차에서 잠시 눈을 붙입니다. 모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잠깐 조는가 했는데 눈을 떠보니 5시 입니다.
차문을 열고 나가보니 공기가 너무나 상쾌합니다. 주차원이 다가와 주차비부터 징수합니다.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하고 직원과 아들을 깨우고 배낭을 정리한 후 산행 준비에 들어갑니다.
7시에 출발하는 셔틀 버스를 타니 차 안에는 봉정암에 가는 신도 몇 분만이 있습니다.
등산을 위한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듯 합니다. 7분후 강교 회차장에 도착하고 7:55에 백담사에 도착합니다. 경내에 들어가 약수 한사발 들이키고 나와 300m 뒤에 있는 백담산장으로 향합니다.
아침을 준비하고 해결합니다. 설악의 다람쥐를 처음 봅니다. 건빵을 주니 가까이 다가와 재빨리
낚아챕니다. 너무나 귀여운 모습입니다. 약 한시간 정도 휴식 후 9시경 산장을 출발합니다.

◆ 백담산장-수렴동대피소(09:00 – 10:30)
백담산장에서 대피소 가는 길은 편해서 좋습니다.  계곡옆길로 계속 이어진 산길은 산책하기에도
좋은 길이라 생각됩니다. 봉정암 신도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행을 합니다.
대부분의 신도분들이 나이가 연로하십니다. 구부린 어깨엔 큼직한 배낭을 메고 계십니다.
보기에도 꽤 무거워 보입니다. 길이 편하다 해도 자갈길이 많은데 그 연세에 그런 험한 길을 가시는걸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약 한시간 정도 가니 영시암이 나타납니다.
이 사찰은 너무나 고즈넉합니다. 길 옆의 약수터에서 한 모금 물을 마시고 조금 가니 마등령과 수렴동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에 산행하시는 분들 일부가 휴식하고  있습니다.
20여분 정도를 더 가니 수렴동 대피소가 나옵니다. 이곳에는 늦은 아침을 해결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때가 10:40경입니다.
10여분 쉬면서 오늘의 진행목표를 다시 한번 살펴 봅니다.
이미 다녀가신 분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부터가 지루하면서도 험한 경로로 되어 있는데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 수렴동대피소 – 봉정암( 10:50 – 14:50)
개인적으로 제일 힘이 들었고 고생을 했던 구간으로 생각이 듭니다.
대피소를 나오자마자 험한 급경사길이 보입니다. 확실히 이곳 구간은 만만치 않은 길입니다. 바윗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생각만큼의 험로는 아닙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가면 되는 그런 길입니다. 계곡 옆 경치는 너무나 좋습니다.  내설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라 생각됩니다. 2 시간 30분여 정도 갔을때 더운 열기로 다리 힘이 조금씩 풀리면서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젊은 친구들이 물속에서 알탕하는 모습이 너무나 시원하게 보입니다. 나무그늘을 찾아 잠시 취하니 갑자기 잠이 쏟아집니다. 나보다 위쪽에 앉아 있는 아들녀석을 보니 배낭을 맨 채로 졸고 있습니다. 나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잠이 자꾸만 옵니다. 아마도 전날 밤새 운전한 것과 잠을 제대로 못잔 것 그리고 아침도 밥맛 없어 대충 먹은 게 이제야 후유증이 오는듯합니다. 조금 이동을 해보는데 식은땀이 비오듯 하면서 현기증이 오는 게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약 10여분간 차가운 물로 머리를 식히면서 가져간 식염포도당을 2알 먹고 더 누워 쉽니다. 두 사람은 배고프다고 하지만 난 배가 고픈줄 모르겠더군요. 탈이 난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 40여분을 쉬고 나니 그제야 배고픔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점심을 하고 나니 정신도 맑아지고 힘도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서 약 10여분을 가니 봉정골 입구라는 표시가 있더군요. 이때가 14:20경이었습니다. 이 표식을 보는 순간 힘이 쭉 빠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힘든 구간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목적지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봉정골입구는 소위 깔딱고개라 불리우는 곳인데 경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왠지 힘이 들지도 않았고 시원한 남풍이 불어와 오히려 상쾌한 기분까지 들 정도 였습니다. 그렇게 20여분을 오르니 사자바위라는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봉정암까지는 약 20분정도가 걸렸습니다. 참으로 힘든 구간의
끝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빈 물통을 채우고 법당 옆에 걸쳐 앉아 20분 정도 휴식 후 뒷편으로 오르는 소청봉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 봉정암-소청산장-소청봉-중청대피소(15:10-17:00)
봉정암에서 소청산장으로 향하는 산길 입구에서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분이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리에 근육경련이 일어나 걷기가 어렵다고 하시며  맨소래담이 있는지 물어오시는데, 제기 가지고 있는 것은 에어파스밖에 없어 그걸 환부에 뿌려드리고 출발을 합니다만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아들 녀석도 힘이 드는지 자꾸만 쳐지기 시작합니다. 나도 힘이 들지만 저기가 능선이다, 다 왔다 하며 재촉을 합니다.
더군다나 불교수련회를 온 대학생들의 하산 행렬 때문에 산행지체 또한 가중됩니다. 힘이드는지 아들녀석은 포카리스웨트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갑자기 나도 콜라가 마시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40여분을 오르니 갑자기 오른쪽 어깨위로 집이 나타납니다. 소청산장입니다. 그런데 쇼케이스를 보니 시원한 포카리가 많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비싼줄은 알지만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콜라와 포카리를 사서 북쪽 공룡능선을 바라보며 마시니, 이런 꿀맛은 다시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 밑에서 근육경련때문에 고생하신분이 올라오십니다. 어떠시냐고 물으니 다행히 지나가시던 분이 침을 놓아 좋아지셨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쉬고 나서 소청봉으로 향하는데 개활지로 오르는길엔 햇볕이 그대로 비추니 여간 더운게 아니었지만 오르며 보이는 각 능선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아들녀석은 디카로 연신 장관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중청의 둥근 공모양이 뚜렷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아들에게 저기가 목적지다. 조금만 가면 되니까 힘을 내자 하니 힘이 나는 모양입니다.
조금 가니 전망대처럼 만든 곳이 나오고 사진 찍는 사람들이 여럿 보입니다.  바로 소청봉입니다.
동쪽방향으로 천불동 하산로가 보입니다. 이곳을 오니 편한 능선길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고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산길에 오니 이제야 산에 온듯한(?) 느낌이 듭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중청봉 바로 밑에 오니 실로 장관이 연출됩니다. 대청봉과 중청대피소 사이로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인데 장관입니다. 구름이 끼었나 싶으면 어느새 없어지고..산길을 우측으로 접어들어 대피소의 지붕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나도 해냈구나라는 생각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두 무릎이 얼마나 고마운지 조금은 센티멘탈해집니다. 대피소 앞마당에 도착한 시간이 17:00입니다. 출발부터 10시간이 걸린 셈 입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요했을지라도, 제게는 첫 산행을 한 아들과의 짧은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자리를 배정 받고 밖으로 나오니 여기는 가을입니다. 노을 지는 산장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산행 중간에 off 한
전화기를 켜니 메일이 옵니다. 아침에 집사람이 보낸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많이 힘들겠지만 견뎌 내실거라 믿어요.파이팅!!” 8/6 오전 10:58  .
괜히 가슴이 찡해옵니다. 그렇게 설악산의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