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산 산행기

ㅇ 일시 : 2004. 11. 20(토)
ㅇ 위치 : 충북 괴산, 경북 문경(문경새재)
ㅇ 코스 : 조령산휴양림-제3관문-조령산-이화령(12km, 4시간)
ㅇ 찾아간 길 : 중부고속도로 - 증평 I.C - 수안보 - 조령산휴양림

  

  산행 짐을 챙기는데 아내가 뒤에서 한마디 던진다. 일부러 못들은 척 하고 계속 짐을 챙기는데 두 세 번 연속하여 강속구가 들어온다. 안되겠다 그냥 넘어 갈 것 같지는 않고--- 어떻게 이 고비를 넘길까? 이리저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몇 달 동안을 주말엔 거의 집에 있어 본 적이 없으니 아내로서는 당연한 불만 일게다. 젊어서는 술자리에 남편을 빼앗기고 이제 조금 철이 드니까 산에 또 빼앗기나 싶은 아내의 마음을 어찌 모르랴! 할 수 없다. 이번 주에는 그냥 쉬어야지. 배낭을 챙기다말고 산행포기를 이야기한다. 아니야 다녀와!! 강속구를 던질 때와는 달리 힘없이 자신의 감정을 접는 아내. 물론 이야기는 그렇게 하였지만 내가 내 욕심을 접고 그냥 집에 있어주길 무척이나 바랬으리라. 그런 아내를 뒤로하고 산으로 무심하게 떠나는 나의 발길. 미안하다! 아내야. 어느새 산에 오르지 않으면 무릎이 아프고 등줄기가 쑤셔오는 것을 어쩌겠냐!

  

   약속한 장소에 나가 버스에 오르자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보통 산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옷에서부터 장비, 진지한 분위기까지---알고 보니 `ㄷ' 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는데 오늘은 비회원까지 접수를 받아 산행을 한다는 것이다. 잘됐다. 산행다운 산행을 해보겠군---

  

    8시20분 대전 I.C를 빠져나와 조령산 휴양림에 도착하자 10시 30분. 오는 길 내내 안개가 잔뜩 끼고, 날씨가 흐리다. 조망이 시원찮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자칫하면 비를 만날 것 같은 분위기다. 역시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했나---은근히 후회가 된다. 6시간 30분 정도의 산행과 암릉구간이 많으므로 주의하여 달라는 총무님의 말씀을 뒤로하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서둘러 산행길로 접어든다. 선두를 이루어 내달리기 시작하는 10여명의 백두대간팀. 출발부터 다르긴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의 뒤에 조금 뒤쳐져서 산행을 시작한다.

  

   제3관문까지의 길. 우측으로는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길가에는 잎을 떨군 단풍나무들의 늘어서 있어, 얼마 전 까지 만해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것 같다. 30여분 오르자 매표소가 나오고, 제3관문을 통과하여 우측으로 난 길을 통해 산행을 시작한다.
  
   약 20여분의 오름질을 하자 능선이다. 주흘산과 부봉, 가야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뿌연 안개에 쌓여 예상대로 조망이 시원치 않다. 마치 동양화의 먼 산들처럼 윤곽만이 어스름하게 드러날 뿐이다. 조망이 좋으면 꽤 괜찮은 풍경 같은데----

  

   풍경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나 했더니 바로 암릉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거 보통 암릉이 아니다. 산행정보를 이곳저곳에서 뒤지면서 암릉이 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암릉은 흡사 유격훈련장보다도 심하다는 느낌이다. 10여미터의 비탈길을 줄을 타고 오르는 것은 보통이고, 어떤 암릉에는 줄도 시원치 않아 미끄러지기 일수다. 아슬아슬하게 바위 위를 걷는데 갑자기 커다란 바위가 앞길을 막아 자세히 보니 떨어질둥말둥하게 옆쪽으로 간신히 길이 나있다. 정말이지 이런 등산로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은 누구일까?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는 암릉길이다. 길이도 짧지가 않다. 약 2시간 30여분 이어진다.

  

    암릉길 내내 오르고, 내리고,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가는데 날씨가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이런 암릉길에서 비라도 만난다면 큰일인데---발길은 무겁지만 멈출 수가 없다. 이곳저곳 바위들 모습 담으랴, 보이지 않는 백두대간팀 따라 잡으랴, 비는 곧 쏟아지려하고, 길은 험하고, 아! 힘들다. 헉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산이 높지는 않지만 험하고 험하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이런 천혜의 요새를 버려두고 신립장군은 어찌하여 탄금대를 선택하였을까? 암릉길이 힘이 들자 갑자기 임진왜란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요새를 버려 두고 신립장군은 왜 배수진을 선택하였을까? 군사들이 도망가려 해서? 왜군이 너무 강해서? 꿈속에서 본 여인의 예언을 따라? 지도자의 잘못된 선택은 한순간 이지만 그로인하여 겪게 되는 민초들의 고통은 얼마나 길고 심한 것이었던가! 얼마나 많은 민초들은 부초가 되어 생각지도 못하였던 인생의 막다른 길을 떠돌아야 했던 것인가!  암릉길 내내 떠나지 않는 신립장군의 선택---  암릉길 내내 떠나지 않는 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IMF. 그리고 지금. 부안 군민들과 연기 군민들의 모습---정책이야 추진하다 말면 그만이라지만 그로인하여  찢겨지고 상처받은 저들의 가슴은 그 어떤 따뜻한 손길이 쓰다듬은들 봉해질 수 있단 말인가?

  

   암벽훈련장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기어이 운무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간혹 비가 내리기도 하고, 싸래기 눈이 내리기도 하고, 엄청나게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도 한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김밥 몇 개를 집어먹다 얼른 다시 길을 나선다. 산을 탈수록 산이 무섭고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봉우리들을 마치 집어삼킬 듯 덮치는 운무. 능선을 마치 물어뜯을 듯 타고 넘는 운무. 그리고 잔뜩 겁먹고 몸을 바싹 웅크리는 봉우리들. 마침내 캄캄하게 뒤덮이는 안개의 세상---

  

    끝이다. 오늘 산행의 재미는---이제 이 안개와 암릉과 험악한 날씨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정신없이 안개와 암릉길을 헤쳐 나간다. 힘들고 숨이 가빠와도 큰호흡 몇 번하고 다시 오른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고,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달리듯 발길을 서두를 뿐이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앞쪽에 산행대장과 백두대간팀이 보인다. 어느새 내가 이들을 따라 잡았구나. 뿌듯해 할 틈도 없이 그들을 앞서간다. 그렇게 다시 1시간여를 오르고, 내리고, 나무에 부딪히고, 미끄러지고, 헉헉대며 안개 속을 헤치고 나자가 어느새 눈앞에 조령산 표석비가 나온다.

  

    조령산 1,017미터 표석비. 안개 속에 나지막하게 서 있다. 옆에는 지현옥추모비가 소복을 입고 서 있다. 조망도 전혀 되지 않고, 별다른 바위도 없는 평범한 봉우리. 험한 암릉치고는 너무도 재미없는 정상이다. 그래도 반갑다. 유일하게 증명사진을 한 장 박으며 잠시 숨을 돌린다. 이제 암릉은 끝이고, 하산길만 남았겠구나. 이제는 비가와도 괜찮겠구나---그래도 정상주는 마시지 말아야지. 끝까지 조심하여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정상을 조금 지난 헬기장에서는 날씨만 좋으면 훌륭한 조망이 가능하련만 안개 때문에 전혀 조망이 되지 않는다. 아쉬움에 한바퀴 휘--돌아본 후, 터벅터벅 너무도 평이하고 한산한 흙과 낙엽의 등산로를 내려와 이화령에 도착한다.

  

    산행을 마치자 백두대간팀이 거하게 하산주를 준비한다. 커다란 찜통 가득 신김치와 두부, 돼지고기를 넣어 얼큰한 찌개를 끓이고, 맛좋은 막걸리를 대두한통 내놓는다. 산행으로 고생한 산님들이 막걸리 몇 사발씩을 쭈--욱 들이키고, 뜨끈뜨근한 찌개를 몇 수저씩 퍼 넣는다. 어--좋다. 막걸리 잔을 찌끌이며 한마디씩 하는 산님들. 정말 속이 시원하고 맛좋은 하산주다. 추위와 힘든 산행 뒤의 하산주라 더욱 맛이 좋았는가 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뻐얼건 국물에 끓인 라면---아! 지금도 입안에 침이 가득 돈다. 이렇게 맛있는 하산주를 준비하여 주신 넉넉하고 훈훈한 산님들의 마음을 산행길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서 만나 볼 수 있을까--- 날씨만큼이나 험한 세상의 인심이지만 산에서 만났던 저 따뜻한 마음만큼은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슬쩍 가슴에 새겨본다. 

  

   암릉과 험한 날씨. 그리고 아내의 말을 따르지 못한 후회. 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조령산이다. 산행이 즐겁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언제나 조심하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조령산은 새삼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으려나 조령산은---

    
 

(암릉풍경)


 

(암릉오르는 모습)


 

(조령산 능선)


 

(조령산 정상)


 

(암릉바위)


 

(안개에 덮히고 있는 봉우리)


 

(암릉바위)


 

(암릉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