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위험하고 어리석은 산행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글을 올립니다
제 가족의 등산경력이라고는 금년 5월부터 북한산 4회, 태백산 1회가 고작인 상태에서 6월 26일 당일에 설악산 마등령을 넘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0. 산행 참가자 : 본인(42세), 처(39세), 아들(13세), 딸(10세)
0. 일정
6. 26 06:15 동서울터미널 출발
09:30 백담정류장 도착
10:00 백담 매표소 도착
10:20 셔틀버스 승차하여 종점 도착
10:50 지나가던 사찰차량에 편승, 백담사 입구까지 도착
11:10 백담사 관람후 산행 시작
11:45 백담산장에서 아침겸 점심식사후 출발
13:00 영시암 통과
15:00 오세암 통과
17:00 마등령 도착
21:10 비선대 도착
22:30 설악동 숙소 도착

0. 산행기

몇차례 산에 다니면서, 바쁜 업무와 음주행각속에서도 체력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한 후 가족들을 설득하여 설악산에 다녀오기로 하고, 50리터 매낭과 디카도 새로 장만하고 시외버스와 숙소도 예약하는 등 준비를 마쳤습니다

출발전일 가졌던 친구들과의 주석이 새벽 1시까지 이어진 데다, 새벽에 전화하여 민원을 호소하는 친구가 있어 여기저기 전화하다 보니 3시반에 잠들었습니다. 5시에 겨우 일어나 챙겨놓은 배낭을 지고 가족들과 동서울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백담정류장에 도착해보니 갈아신을 샌들을 담았던 배낭을 차에 두고 온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냥 동서울터미널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결과적으로는 배낭을 놓고 내린 것이 짐을 덜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백담사까지는 셔틀버스와 비구니스님께 얻어탄 승합차를 이용하여 시간을 단축하고 체력소모도 막을 수 있어 출발이 좋다고 생각했지요. 백담산장 야외식탁에서 라면과 햇반으로 근사하게 식사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가족들과의 첫 설악산행을 마등령으로 정한 것은 20년전 대학시절에 친구 3명과 백담사에서 마등령을 넘어 설악동까지 불과 6시간만에 넘은 적이 있는데, 그때 감흥이 무척 좋았고 힘들었다는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선뜻 이 코스를 정한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길이어서 속도는 느렸지만 오세암까지는 별 무리없이 올랐습니다. 오세암에서 20분을 쉬고 본격적인 마등령길로 접어드는데, 세상에 우리와 같은 코스로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알고 보니 너무 힘든 코스이기 때문이랍니다

오세암이후부터는 집사람이 심한 무릎통증을 호소하여 제가 집사람 배낭까지 앞으로 지고 마등령을 겨우 올랐습니다. 비가 내리기 직전의, 습도가 아주 높은 날씨여서 모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마등령에 오르니 가득한 운무로 인해 능선이든 계곡이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5시밖에 안되었는데 어두워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재빠른 하산외엔 아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지요

그런데 하산길이라는게 수직에 가까운 암릉이거나 온통 너덜지대여서 집사람의 무릎통증은 심해져 가고 저도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 무릎은 괜찮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기어코 딸아이가 넘어져 정강이를 다치고 아들도 미끄러져 꼬리뼈를 돌에 부딛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아이들은 그러지 않아도 힘들고, 어두워져 무서운데 다치기까지 하니 울고불고 난리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도 울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운무로 인해 급격히 어두워져 내려가는 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해 속도를 전혀 낼 수가 없는 데다, 마등령코스는 어쩌다 있는 조난위치 표시목외에는 이정목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얼마나 남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 정말 조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19신고를 해야 하나...

빗방울까지 떨어져 기온은 급강하하고, 더욱 무서워하는 가족들을 겨우 달래며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가장으로서 너무나 무책임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책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남은 음식은 500밀리 반병의 물과 초코렛 1개뿐이었고, 판초우의 2개외에는 비박장비가 없음은 물론 후래쉬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금강굴로 짐작되는 암벽근처까지 오니 절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원래 산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가 부인과 함게 그냥 동해안 관광을 마치고 7시에 비선대에서 만나기로 했던 대학동기였습니다

친구는 8시가 넘어 어두워져도 제가 내려오지 않자 다른 사람들에게 제 가족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하산길에 저를 앞서갔던 3팀이 모두 큰 걱정을 하면서 빨리 후래쉬를 가지고 올라가라 해서 황급히 올라왔던 것이지요. 구세주가 따로 없었습니다

완전히 어두워진 산길을 '생명의 빛'후래쉬로 비추며 조심조심 걸어 9시 10분이 되어서야 비선대에 내려오니 가게주인이며 다른 산님들께서 하나같이 걱정과 위로를 해주셔서 이제 겨우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0. 반성하고 있는 점

집사람과 아이들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고 20년전의 기억만을 더듬어 제 위주의 무리한 산행계획에 집착했습니다. 마등령은 '말이 넘은 고개'라는 뜻인데 이번에 보니 말이 아니라 '마귀가 넘은 고개'인 것 같았습니다

산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등산로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수집하지 않은 채 지도에 나와있는 평균 소요시간만으로 늦어도 7시면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자만했지요

위험에 대비한 장비를 전혀 챙기지 않았습니다. 비박장비와 간단한 로프, 스틱은 물론 후래쉬조차 없었고 비상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산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지나쳐 아이들이 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나버렸습니다. 회복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0. 저와 같은 초보산님들께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자주 들어와 고참산님들의 산행기를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여기에 글을 올리는 선배님들은 저와 같은 실수가 결코 없겠지만 이제 막 산에 입문하는 초보산님들은 제 경험이 좋은 약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재주가 없어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전하지는 못합니다만 정말 무섭고 힘든 하루였습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갔다가 조난당하는, 가장으로서 참으로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일이 현실화할뻔했니까요

이번 일요일에는 북한산에 올라 지난 주의 피로를 풀어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또 산에 갈 궁리를 하는 걸 보니 저도 대책없는 산병에 들어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젠 마등령의 악몽을 거울삼아 산의 높이와 관계없이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계획으로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할 작정입니다

저와 같은 코스로 마등령을 넘거나 등산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께 저의 실수가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제넘게 글을 올립니다

즐거운 산행은 안전한 산행에서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모든 분들이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안전한 산행되시기 바랍니다


▣ 브르스황 - 정말 큰일 날뻔하셨군요. 무사하게 하산을 하셔서 다행입니다. 산행계획을 너무 무리하게 잡으셨네요. 코스를 가야동 계곡으로 잡으시고 수렴동 대피소에서 1박을 하셨으면 고생을 덜하셨을텐데... 친구분 아니었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뻔하셨습니다. 친구분이 정말 노련하신 산꾼같습니다. 친구분께 큰 은혜(평생 갚기 어려운)를 입으셨습니다.
▣ sol - 읽으면서도 가슴이 졸려
▣ sol - 는데 본인은 어떠했겠습니까?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 산초스 - 정말 다행입니다. 백담사에서 마등령-설악동을 가족동반으로 너무 늦은시간에 출발한것 같은데 천만 다행입니다. 저도 큰애8살,작은애 5살때 설악동-금강굴-마등령을 하루종일 걸려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침일찍 출발하여 시간은 충분하였지만 제생각만 하고 5시간정도면 왕복할줄 알았는데 거의 두배가 걸린적이 있었지요. 친구분 덕분에 마지막에 구조되었다고 봐야겠네요. 이슬이 한잔 찐하게 사주셔야겠습니다. 가족의 은인인데^^**
▣ bogo - 오세암에서 마등령 가파릅니다. 사람도 잘 다니지 않고 좀 을씨년 스럽지요.. 큰산에 갈땐 램프 필수품 조난대비 간단한 비상식량 하루치 필수 입니다. 탈진 허기가 사고를 유발합니다.
▣ bogo - 장마철 우의도 필수 입니다...무사하셨으니 다행입니다..
▣ 적과의동침 - 설악산을 너무 무시하고, 코스도 이상하게 잡으셨네요!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 양창순 - 참으로 다행입니다. 노파심 삼아 한 말씀... 저는 한낮의 근교 산행-예를 들어 청계산/관악산/북한산 때도 랜턴과 예비 밧테리, 구급약통은 가지고 다닙니다. 좀 우습죠? 그래도 습관이 되니 괜찮습니다. 아무튼 늘 건강하시고 언제나 안전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 맷돌 - 맞아요 저도 낭이좋아도 우의,구급약,랜턴,에비바뎃리 가지고 다니죠 좋은 경험하셨네요 위험했지만....
▣ 김주남 - 님에 가족의 두려움이 눈앞에 선하여 나의 두려움으로 다가 옵니다.무사하셔서 천만 다행입니다.
▣ 아차산 - 네 첫째도조심 주의 준비 둘 셋 넷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안네요 어짜피 살자고 하는짓 조심 주의 준비하시어 즐산 안산하시길
▣ 의암 - 참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하산하셔서 다행이네요.
▣ 이수영 - 사람이 살다보면 맑은날도 있지만 궂은날도 있지요. 무모하리만큼 계획성 없이 산행에 나섰지만 나름대로 친구분과 연락이 되겠금 고리를 만들어 놓으시는 바람에 화를 면하셨네요. 좋은 실전경험을 하셨습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 산행을 하시는데 좋은 보약이 될겁니다. 무탈 귀환을 축하(?)합니다. (1.렌텐 2.우의 3.나침반 4.산행지도 5.휴대폰 6.비상식량 은 필수)
▣ 똘배(山梨) - 공감이 갑니다. 고생많으셨네요. 저도 작년과 올해 두번 설악을 다녀왔는데 오세암에서 마등령 오르는 길이 상당히 힘들고 특히 작년 10월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으로 내려가다가 5시 정도 되었는데 칠흑 같은 어둠에 휩쌓입디다. 헤드랜턴만 가지고는 등로 찾기도 쉽지 않고 고생끝에 비선대로 내려온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애들과 큰사고 없이 하산하신것이 참 다행스럽고 추후 산행시 산행준비 철저히 하시길.. 저도 그이후로 배낭이 무겁더라도 평상시 많이 짊어지고 다닌 답니다.^^
▣ 장안산 - 설악산의 실종 사건과 조난 직전의 가족 산행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자연 앞에 겸허` 해야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큰 경험이 평생의 교훈이 되리라 봅니다.
▣ 장안산 - 설악산의 실종 사건과 조난 직전의 가족 산행기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자연 앞에 겸허` 해야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큰 경험이 평생의 교훈이 되리라 봅니다.
▣ 설악 - 금강굴에서 비선대까지 길 좃같습니다 저도 어두워져서
▣ 설악 - 거기서 실 을 잃고 토막골로 빠져서 넘어지고 딩굴고 암벽하는 사람들이 구해주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친구분이 않 왔으면 다 죽었을겁니다
▣ 설악 - 설악에서 저처럼 헤드랜턴 없고 마등령 내려오다 해꺼지면 죽는겁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시오 가족들 다 죽일뻔 한 무책임한 가장
▣ 수객 - 교훈이 되는 산행기 입니다.다른 분들께 도움이 될수맀도록 올려주신 님에게 감사드립니다.저도 2년전에 조난 직전까지 간 경험자로 님의 느낌 생생하게 다가옵니다.더욱 노련한 산꾼으로 거듭날 계기가 되는것 같습니다.
▣ 정상 - 어린아이들에게는 너무무리한 산행이었네요
▣ 적교 - 무식, 무모, 무책임한 산행기를 부끄러움도 모르고 올린 것은 저와같은 실수가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이렇게 많은 선배님들께서 격려와 애정을 보여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산행기를 읽으면서 절로 존경심이 들게했던 많은 어르신들의 충고와 조언을 가슴깊이 새기고 더욱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운해 -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하겠지만 이왕 있었던 일 잊어 버리시고 좋은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위 이수영님 지적대로 등산시 비상용품은 항상 휴대를 하여야함은 산악인의 기본 입니다. 아이들이 경험한 상처가 깊을텐데 빨리 치유되도록 세심히 보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 권경선 - 우리가족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산행기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여러 선배님들의 지적처럼 상비용품을 항상 챙기시길 바라고 철저한 준비로 즐거운 가족산행 계속되길 기원합니다.
▣ 김지훈(심마니) - 큰 경험하셨으니 담엔 잘되겠죠, 우선 랜턴부터 챙기세요, 당일산행도 랜턴과 비상식은 필수입니다. 마등령 - 비선대쪽 금강문 가기전 왼쪽에 가늘게 물이 떨어집니다. 물맛 좋고.. 위에 대구의 운해 맞는지
▣ 친구 -
▣ 한울타리 - 참으로 고생하셨네요. 항상 방심이 불행한 사태를 불러오지요. 산은 겸허한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산이 험할 수록 더더욱... 전 대낮 산행때도 2중, 3중으로 랜턴과 비상약품, 그리고 초코렛등을 가지고 다닙니다. 일부러 먹을 필요는 없지요. 항상 넣어다니면 언젠가는 필요할 때가 있을거니까요.
▣ 피러팬 - 저두 그날 비선대-마등령(13시)-공룡능선-천불동으로 돌았는데..비선대에서 마등령 올라가는길이 엄청 급경사더라구요..더구나 오후에는 비까지 뿌려서 미끄럽기도 해서..더힘들었을것 같네요..하여간 다행이네요.
▣ 미시령 - 저는 미리 등산지도 보며 경로와 시간을 외우듯이 예습합니다. 특히 시간을 세밀히 검토합니다. 배낭에는 항상 헤드랜턴, 예비건전지, 비상식이 있습니다.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무게때문에 사실 고민이 많기는 하지요... 저도 적교님 코스를 거꾸로 간적이 있는데 하루종일 걸리던데요... 아무튼 큰 탈없이 내려오셔서 정말 다행이었네요... 이젠 즐거운 산행기도 남겨주세요...
▣ 이강현 - 아까 만나 말씀으로 듣던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군요 , 덕유종주 하실때는 준비단계에서 저와 전화 한통화 꼭 , 하시고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 후래쉬배달부 - 2주 후 가족과 함께 저녁 초대받았습니다. 푸짐하고 맛난 식사에 술도 맘껏 먹었습니다. 폭탄주 파편이 다음날 아침까지 남아서 출근이 어려웠습니다. 암튼 산에 갈 때, 가져갈 것은 가져갑시다.
▣ 이소 - 남편의 무모함과 용감함에 다시 한번 가족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아주 값진(?)산행이었습니다. 이튿날은 무릎인대가 늘어나 걷지를 못했는데, 신기하게도 3일정도 지나니 또다시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제 자신을 보며 놀랐습니다. 가족들에게 신기하고 귀한 체험을 하게끔 기회를 준 남편에게 진한 사랑을 보내며 앞으로도 열심히 산을 찾는 그런 가족이 되기위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