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7월 24일(토요일)
누구랑: 나와 울프 그리고 하이디(친구부부)
어디로 :갓바위--노적봉--선본재--신령재--염불봉--동봉--수태골(8시간. 휴식 포함)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누구나 자기 가슴속에는 가고 싶은 곳, 오르고 싶은 곳, 사랑하고 싶은 것들을 품고 살겠지만 나에게 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팔공산이라 말하고 싶었다.
나에게 사무치도록 그리운 산이 바로  팔공산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여태까지 내 향땅을 지키고 섯는 당당한 모습을 보노라면 언제나 가슴속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가슴이 벅차 오르기까지 한다.
그 산 너머로 해가 지면 밤이 오고 또 다른 날이 찾아왔고, 구름이 짙게 걸리면 어김없이 우리 마을에는 비가 내렸고, 구름이 걷히면 비가 멋었다. 요술을 부리는 산 같았다.
겨울이면 하얀 눈을 산꼭대기에 이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던 산이 바로 팔공산이다

 


어릴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줄 알았고, 저 산 너머는 다른 나라고 누가 사는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산이다.
초등학교 교가 마져 " 태백산맥 줄기로  팔공산 아래"이렇게 시작 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무작정 산이 높이 솟아있고 그 속에 묻힌 사람들은 산을 의지해 사는 줄로 알았고 언제 한번 올라 보아야 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불혹이 지나 그 산이 그렇게 오르고 싶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그리움 때문일까?


2004년 여름(夏)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보따리을 꾸렸다.  
며칠을 고향집에 머물면서 팔공산 일대의 유적과 팔공산정상을 밟아 보기 위해서 였다.
나와의 인연이 모질게도 깊은 산.
7월 24일 산행을 마음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같이  동행하고 싶다며 의사를 타진한다.
몸이 아파 고생을 많이 한 친구라 같이 산을 오른다는 것, 그것도 먼 거리를 걷는 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을 텐데 흔쾌히 동행을 허락한다.
둘은 고등학교때 불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관봉에 있는 약사여래불에 열심히 다닌 기억이 난다.
그때는 교통도 불편했는데 불심하나로 올랐다. 그곳이 팔공산 자락이었지만 더 이상은 걸어가 보지 못했는데 20년이 지나 그 길을 걷겠다고  다시 만났다.


서투른 폼에 큰 물통하나 들고 내 앞에선 울프와 하이디(부부)
우린 갓바위 주차장에서 장비 점검을 하고 출발을 하였다.
약사여래불을 향하여!
이제는 불심이 그때만 못하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약사여래불이기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특히나 계곡에 즐비한 두부집은 명물중의 명물이었는데 정비 사업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난날의 추억들을 얘기하며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가니 관음사 마당이다.
관음사는 고교시절 거북 약수에서 물을 먹으며 우물속의 동전을 건져 음료수를 사먹은 생각이 난다. 나쁜짓인 즐 알았지만 부처님의 이름을 빌려 돈을 빌렸다고 자위를 했다.

언제가는 그돈의 몇갑절을 갚아야 겠지?
관봉으로는 길을 아직도 돌계단이다.
꼭 운동이 될만한 거리에 앉아서 세상을 굽어보고 계시는 부처님.


30여분 땀을 흘리니 관봉이다.
많이도 변해버린 봉우리 모습에 오히려 눈살이 지푸러 진다. 기복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관봉.
수많은 신도들이 제각각의 소원을 들고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옛 생각을 떠올리며 삼배를 하고 오늘의 무사 산행을 빌었다.
 이제는 인의 장막에 가려져 버렸고 철조망에 가려져 버린 불쌍한 부처님을 뒤로하고 선본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선본사 암자는 옛 정취를 잃어 버린지 오래가 된 것 같았다. 절은 절다운 맛이 있어야 하는데 요즈음 절들이 자본에 물들어 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리막 길을 걸어가다 보니 왼쪽으로 등산로 표시가 있다.
"용현씨 이번호만 따라가면 종주를 할 수 있어요" 하이디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등산로는 비교적 안내 표시가 잘 되어 있었고 일정 거리마다 번호가 부착된 팻말이 꽂혀 있었다.
길잃어버릴 걱정은 안해도
잘 다져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10년만의 더위라 시위라도 하듯 태양을 머리위로 사정없이 쏟아 졌다.
 노적봉에 올라서니 좌우 조망에 가슴까지 시원하다.
왼쪽아래 팔공컨트리 클럽이 흉물스럽게 누워있다. 인간의 이기에 천혜의 경관이 훼손된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오른쪽으로 아득한 능선끝 자락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사는 이름 모를 촌락들이 다도해처럼 펼쳐져 있다. 산이 많아 골이 많고 골을 일구고 살아가는 선조들의 지혜로운 모습들을 보는 듯 하다.
아직 내 고향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동봉 4.8km 안내판을 만났다.
아직도 어디가 동봉인지도 모르고 터벅터벅 걷기만 한다.
울프도 하이디도 아직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위때문인지 속도가 나질 않고 땀비 비오듯 쏟아졌다..
능선재에 도착(20번)
능선재는 은해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은해사까지는 5.5km. 반가운 절이다, 초등학교때 소풍다니던 단골 장소였다.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수많은 추억들이 산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의 소풍.


은해사---치일 저수지--백흥암--중암암----능선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잘 정리되어 있다.(3일전 이곳으로 중암암 까지 올라 만년송 그늘아래서 차 한잔을 마신 기억이 떠오른다)
능선재를 지나 헬기장 까지는 내리막길이다. 반갑지만은 않다. 내려가면 내려간 만큼 올라가야 하기에 울프는 짜증까지 낸다. 이제 피로가 서서히 엄습해 올 시간이 되었다. 배도 고프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밥을 먹어야 한다.
헬기장을 지나 능선을 오르는데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 산행 중 제일 시원한 바람을 만났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밥과 과일 몇 조각, 삶은 감자 그래도 오늘 점심은 특식이다.
잠시간의 꿀맛같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안부다.
좌측이 동화사 가는 길이고, 우측은 팔공 약수터이다. 산길에서 만나는 약수는 반가운 친구같은 느낌을 준다. 비록 100여 미터를 내려가야 하지만 첫 샘이자 마지막 샘이란 생각이 들어 물도 보층할 겸 내려갔다.
잘 자란 억새길을 헤집고 내려가니 수줍게 앉은 샘이 우리를 반긴다.
길손을 기다리는 작은 표주박 하나......
벌컥 벌컥 물을 마신다.


산에서 마시는 물은 색다른 맛이 있다. 아마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맛을 모를 거다.
13:35 가파른 능선길을 올라 서니 48번 신령재에 도착을 했다.
정겹게 들리는 이름이다. 원래는 신(新)녕(寧) 이다.
공산폭포 3km. 동봉 2.7km. 동화사 3.5km
공산 폭포는 팔공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폭포다. 내고향 마을이 어렴풋이 고개를 내민다.
내어리 적 팔공산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불혹이 넘긴 나이가 되어서야 팔공산에서 내고향마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어본다.
고향을 떠나보지 않으면 고향이 가지는 의미를 모르고 살수도 있겠지만 고향을 떠나 있으면 마음은 언제나 수구초심이 된다.
59번 안내판을 지나는 길은 꼭 계방산을 오르는 길같이  잡목이 우거지고 능선이 유순하다.
길이 다시 가파른 능선길로 접어들었다. 66번을 지나면서부터는 제법 가파르고 바위가 앞을 막기도 했다.


15:20 염불봉 도착(거대한 바위다)
바로 아래 동화사가 보인다.
염불봉에서 바위를 타고 92번으로 오른다.
16:00동봉이다.
팔공산 정상(비로봉)을 대신하여 지금 정상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팔공산 정상을 밟는 순간이었다.
산아래 멀리 내 고향 마을이 지라하고 있다. 너른 들 가운데 떠있는 한척의 배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고향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 또 이곳에 올라 고향마을을 바라보게 될지 모르지만 눈속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보고 또 보았다.
동봉의 정상은 두어평 바위로 되어 있었다.


건너편 비로봉에는 3개의 버섯집이 있다. 난 흰색인줄 알았는데 국방색이다(고향에서 보면 흰색)
그렇게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이곳에서 보니 흉물처럼 앉아 있다.

그 옆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송신탑은 또 어떻고. 
산은 깍이고 허물어지고 지쳐있는 듯하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체 비바람에 노출되어 있다.

흉한 모습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벗겨진 몸체에서 나무가 자라고 풀이 자라는날이 올수 있을련지?
나내가 또 다시 이곳에 올라 고향 마을로 한없는 마음을 던져 볼 수 있을지?

아쉬워하는 마음을 달래며 수태골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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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하산 길에 체력이 모자람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 산행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에 자리 잡을 것 같다.

30년지기 친구부부에게(수환, 현숙) 이 자리를 빌어 사랑한다고 말을 전하고 싶다.

오랫동안 산을 오르며 건강을 다지고 사는 친구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