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억새의 하얀물결 - 민둥산


그동안 혼자서만 열심히 산에 다니며 즐긴 것 같다.
미안한 마음에 주말이 다가오면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가족들을 설득하여 억새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봉사임을 분명히 내세우며 가을산 억새의 멋진 장관을 보여주겠다고 해도 아내와 딸은 오히려 시큰둥 하다.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는 표정이 얼굴 가득이다. 반은 봉사고 반은 강제로 가족산행을 하기로 한다.
산행지는 억새로 유명한 정선의 민둥산으로 정했는데.. 거리도 거리라 1박 2일을 추천했으나.. 아내가 경제적인 것을 이유로 당일 산행을 하자고 한다.

양평에서 열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산행코스 및 시간은 증산역(12:00) -> 민둥산 입구(12:40) -> 억새 능선(14:10) -> 정상(14:40) -> 발구덕(16:00) -> 증산역(17:20)


산행전 바라 본 민둥산 (2004.10.10)


양평에서 8시 45분에 출발한 열차는 12시가 다 되어 증산역에 도착한다.
억새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열차가 붐빌것으로 예상했는데 오히려 한산하다.
차창밖의 논은 아직 절반이상이 추수를 마치지 못하고 있다.
잠깐 눈을 붙일까 했지만 간만의 열차여행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
증산역에 도착하니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모두가 등산복 차림이다.
열차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꽤나 많은 사람들이 억새를 보기 위해 멀리까지 왔다.

증산역에서 바라 본 민둥산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억새를 즐기기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에 올라 온 사람들만 억새를 즐길 자격이 있다는 것인지.. 증산역에서 본 민둥산은 억새의 모습을 산속에 감추고 있다.

산 입구에 도착하기까지 함께 열차를 타고 온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간다.
속에서는 빨리 가자고 외치지만 오늘은 봉사하는 날.. 참을 인(忍) 자를 가슴에 새기며 나의 인내력을 시험한다.


능선에서 본 두위봉 (2004.10.10)


정상까지 억새 능선 (2004.10.10)


억새로 만든 움막(휴식처) (2004.10.10)


산행은 증산초등학교 정면의 산 입구에서 시작한다.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이고 총 산행시간도 4시간이라지만 여유있는 산행을 위하여 열차시간을 6시간 정도의 산행에 맞추었다.
처음부터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시작한다.

아내도 그렇고.. 딸도 그렇고.. 산행 20여분이 지나자 바로 지친다.
쉬지않고는 채 50m 전진하기가 바쁘다.
그래 오늘은 봉사하는 날.. 얼굴에 미소(?).. 속은 끓고.. 천천히 가자를 연발하며 가족들의 믿음을 사기에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렇게 급경사길을 1시간정도 오르니 임도와 만나는 휴게소가 나온다.
잠깐 숨을 돌리고.. 가져 온 소세지와 귤을 주며 힘들어 하는 딸을 열심히 칭찬하며 위로한다.
다시 산행.. 드디어 급경사의 숲길이 끝이 나고 앞이 확 트이며 억새가 모습을 드러낸다.
힘들게 오른 아내와 딸이 역시 더 좋아한다.

뒤돌아 보니 올 봄에 가족들에게 철쭉을 보여주겠다고 큰 소리치고 함께 왔다가 때 이른 철쭉 몇송이만을 보고 내려와야 했던 두위봉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이번 산행은 공약한 대로 억새를 보여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상에서 (2004.10.10)


억새능선이 시작되고.. 중간 중간에 억새에 취해 사진도 찎고.. 억새능선부터 정상까지는 힘들다는 소리 한번을 하지 않고 잘도 오른다.
억새움막이 있는 곳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정상에 오른다.

아직 초가을이지만 억새는 한창이다.
정상에서 본 민둥산은 동,서,남,북 온 산이 억새의 하얀색으로 뒤덮혀 있다.
바람이 불면 하얀색의 억새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생각 같아서는 억새 숲에 들어가서 팔베게를 하고 낮잠 한잠 즐기면 좋겠건만...

점심식사를 하고.. 쉬면서..
딸은 음료수로.. 아내는 커피로.. 나는 맥주로.. 정상에 오름을 축하하는 건배를 한다.
그렇게 정상에서 40여분을 억새에 취했다가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한다.


카르스트 지형 (2004.10.10)


억새 한 가운데서 가족 (2004.10.10)


정상을 지나 지억산쪽 능선 (2004.10.10)


하산길에 (2004.10.10)


하산길은 카르스트 지형이 있는 곳을 지억산쪽으로 우회하여 발구덕으로 내려가는 길..
올라온 쪽의 억새보다 이 곳 능선의 억새가 더 아름다고 잘 자란듯이 보인다.
억새길이 끝이 나고 잠깐의 급경사길이 지나면 임도와 만나고 이 곳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비뚤이 길이다.

오늘 산행에서 아내와 딸이 억새에 취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그동안 가족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아직 열차가 출발하기까지는 2시간이 남았다.

증산역 앞에서 따끈한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피로를 풀고 열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