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결에 선택한 하봉 산행

 

-언제: 2006.01.10.

-누구와: 토목님

-어디를: 지리산 하봉.


<하봉에서 조망>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조개골로 가자면서 달려 가지만

광양 IC 에서 들어서면서 반야봉으로 갈까요 하는

토목님의 제의에 그냥 조개골로 가지 합니다.

코스선택은 산행 하면서 하자는 나의 저의는 지난 봄

산행시 내 나름대로 찍어둔 코스가 있었길래 여유를 부려 봅니다.

한가지 고민인 것은 러쎌이 되어 있느냐 입니다.


  

  

<하봉에서>

 

<대화>

새벽을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둘만의 대화는 이어집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부서가 다르기 때문도 하지만

근무구조가 다르다 보니 얼굴보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우연히 그가 산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얻고서부터

스스럼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자리는 쉽게 허용되었고

결국 오늘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을 주제로 이어진 우리들의 이야기는 단성을 지나 대원사

그리고 새재까지 와서도 이어지고 있으니

아마도 오늘 하루 모두를 알고 싶은 대화의 목마름일까

역시 취미가 같다는 공감대의 형성이 우리 스스로의 마음의

문을 열면서 조개골로 향합니다.

 

  

<하봉에서 암봉을>


 

고도 700을 넘는 이곳 아침공기는 차가움으로 시작됩니다.

겨울산행이 언제나 그랬듯이 차 밖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을 억제

하면서 산행이 시작됩니다. 서로가 앞서라고 양보 하는 것은

아마도 산행 스타일을 파악 하려는 심리전(?)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들어 나의 산행 스타일이 速步(속보)에서 여유산행으로

바뀌었는데도 함께 산행 하자면 겁부터 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쉬울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창기 때는 솔직히 앞만 보고

달리다시피 산행을 하였으나 지금은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하고

찍고 하면서 내 나름대로 산행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철모 삼거리와 산죽밭 그리고 샘터 삼거리에서>


 

20여분 올랐을까.

철모 쓴 이정표에서 오늘의 산행코스가 결정되었습니다.

다행이 청이당터로 향하는 길은 열려있었습니다.

잠시 후 너덜길이 나오더니만 이내 산죽밭으로 우리의 모습이

사라지기를 반복 하더니 된비알의 오름 길이 시작 됩니다.

등로는 확실히 나 있었으며 계곡을 끼고 있는 음지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러쎌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청이당터에서>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독바위와 조개골>

 

<청이당터>

산행시작 1시간이 좀 흘러 청이당터에 닿습니다.

너무도 싱겁게 올라서인지 허탈한 기분까지 듭니다.

토목님께서 아 여기가 청이당터야 하면서 너스레를 뜹니다.

태극종주 때나 동부능선 산행시 많은 산꾼들에게 갈증을 해소

시켜주는 아주 소중한 위치의 청이당 입니다.

샘터 삼거리를 다시 확인 하고 싶어 능선으로 오릅니다.

능선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내려 옵니다.

한번 갔던 길은 좀처럼 사양하는 나의 스타일이라……

 

<오늘 함께한 토목님>

 

  

<하봉 가는 길에서>

 

가다가 조금만 쉬면 또 다시 식어버린 땀으로 한기를 느낍니다.

고도 1600을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심설산행이 시작 됩니다.

러쎌은 잘 되어 있었지만 잘못 들어선 곳에서는 어김없이

무릎까지 차고 들어 오는 차가움은 있었지만 견딜만하여

스패츠를 사양 하다 안되겠다 싶어 결국 착용합니다.  

고도 1600고지 암봉에서 잡목들을 헤집고

조망을 즐깁니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조개골과 비둘기봉

그리고 저 멀리 달뜨기능선이 가슴으로 와 닿습니다.

 

  

<하봉 가는 길과 하봉에서>

  

<중봉과 천왕봉을 바라보며>

  

<하봉>

잠시 후 국골사거리와 하봉묘지 사이의 옛길에 닿습니다.

많은 눈이 쌓여 그곳인지는 모르겠으나 感(감)이 옵니다.

선답자 누군가에 의해 러쎌된 눈길을 밟습니다만

그 분의 보폭이 크면 나도 크게 잡아야 하고 왼발에 맞춰서

내 왼발을 그곳에 끼워 넣어야 합니다. 그게 눈길 산행의 원칙입니다.

능선에 많은 눈이 다져있어 잡목들의 키 높이가 자꾸만 나의

두 뺨을 여지없이 후려 치기를 반복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키 큰 게 죄 입니까.

 

<바래봉 능선위의 운해를 바라보며>

<반야봉을 바라봅니다>

  

하봉능선에서 자꾸만 셧터를 누르다가 산행속도가 느려집니다.

앞서가는 토목님께 미안함이 밀려옵니다. 사색의 심설산행의

여유를 부리면서 오르는 그를 붙잡고 두류능선을 배경으로

한방을 날립니다. 12:00가 다 되어 헬기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 치밭목으로 하여

내려서자니 산행코스가 너무 짧을 것 같기도 하고 중봉 걸쳐

써래봉으로 갈까 하는 생각은 샘터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 하기로 하였으나 웬걸 샘터는 이미 눈 더미로 휩싸여

앉을만한 공간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올라 갈려고 하였으나

내려왔던 게 아쉬워 치밭목으로 향합니다.

 

  

<하봉샘에서>

<하봉 헬기장에서 바라 본 반야의 모습>


 

<치밭목에서 대화>

점심을 먹고 나서 민대장님과 대화가 이어집니다.

20년을 넘게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분이 지리의 역사와 산꾼들의

눈만 봐도 뭘 요구 하는지 뻔히 알고 있을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지리산의 태극종주의 의미 천왕봉 중봉 하봉의 역사와

현재 우리나라 산 정상에 세워진 정상석들이 일제시대 우리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정상에 쇠말뚝을 막는 이치와 같다는 논리이고

보면 그도 그럴법한 이치인 것 같기도 합니다. 계속 이어진 대화 속에

내가 이해 못할 부분도 있었고 또는 우리 산 꾼들이 진심으로

배우고 느껴야 할 부분에서는 할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하봉샘에서>


 

많은 대화 속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갈 길을 향해 내려 갑니다.

그렇게 다녔을 이 길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무제치기 폭포의 위용이 자못 위축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겨울이라는

계절의 변화만은 아닐 것인데, 한참을 내려 가다가 스틱을 두고 온

나는 오늘 알바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옵니다.

새재마을을 3.0KM 남겨두고 아이젠을 할까 생각 했지만 그냥 오는

바람에 6~7번의 엉덩방아를 찧고 더군다나 토목님은 단 한번의

미끄러짐으로 고가인 스틱을 날려 버렸으니……(아깝습니다)

 

<치밭목 가는 길에서>

<무재치기폭포에서>

<치밭목 산장에서>

  

<에필로그>

어쩌면 지금 산행기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것은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분의 부탁말씀도 있고 하여

나의 가슴에 묻어두고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는

그날이 오리라 생각 됩니다. 산을 내려 오면서 치밭목에서

민대장님의 말씀중의 일부분이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풍깁니다. 끝으로 오늘 산행을 하면서 토목님과의 진솔한

대화는 또 다른 어떤 의미를 남겼습니다. 함께하신 토목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하면서 이만 산행기를 마칩니다.

  

                               2006. 01. 14.

 

                                    청 산 전 치 옥 씀.

 

<무재치기폭포>

  

<돌아오는 길에서:대원사>

  

<일정정리>

08:20 산행시작(새재마을)

08:40 조개골 삼거리(이정표: 매표소8.0)930

09:30 청이당터(1280)

09:48 고도 1380 휴식

10:20 1600 전망바위

10:30 하봉능선과 만남(1685)

10:55 하봉 묘지(1775)

11:50 하봉헬기장(1775)

12:15 이정표(천왕봉2.6/치밭목0.9)

12:23 삼거리(조개골/치밭목)

12:25~13:30 치밭목에서 점심과 휴식

14:30 삼거리 1130(새재3.0/치밭목1.8/대원사5.9)

15:20 산행종료(새재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