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리산 천왕에서 나 홀로.  

 

  - 산행일시 : 2004. 10. 6.

  - 산행코스 :  중산리-법계사-천왕봉-장터목-중산리

  - 함께한 사람 : 나 홀로. 
 

  새벽3시

새벽3시에 잠에서 깨어나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의 순간이 환상이었을까?

꿈에 반야의 마고할멈이 나타나신게다. (아마 산신령 비슷한 옷차림) 삼베옷 비슷한

하얀 옷에 커다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시며 하신말씀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그들을 막아달란다.

그리고 나서 이상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에게 멀어져갔다.

꿈이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4시 10분이었다.

분명 꿈속에서는 천왕봉의 1915m 표지석이 있었는데 반야의 마고할멈이 그곳에

나타나셨으니... 어떤 조화인지 몰라도 현실과 연결시켜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잠자리에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원래는 오늘 설악에 초생달님. 마라톤. 일출님과

함께 단풍산행하기로 10여일 전부터 계획했던 산행날짜이다. 그런데 회사근무 schedule 상

일이 묘하게 꼬여 초생달과 마라톤 둘이서 그곳 산행을 하게 되었다. 어찌됐건 간에

미안함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 저녁 23:00에 근무마치고 퇴근 때까지도

산행계획은 전혀 없었는데........

배낭이야 항상 먹을 것만 챙기면 그대로 들고 갈 수 있게끔 정리 되어 있으니,

수첩을 꺼내 들고 기차시간표를 확인하고

아직 세상모르고 꿈속의 세계를 달리는 마누라에게 잠시 산에 갔다 온다고 하니

그야 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께라. 여간 뒤가 캥기는게 아닌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갑자기 산에 간다고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 남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괴팍한 남편 취미생활 때문에 다투기도 몇 번이고 하였건만...

사실 미안 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여보 미안하오.) 
 

<집을 나서며...>

순천에서 새벽 6시 진주행 열차를 타기위해 첫 버스를 타야한다.

5시 10분 버스에 올랐을 때 텅 빈 버스 안은 나 혼자 전세 내어 어둠을 가르고

연신 하품을 품어대는 기사양반은 흘깃흘깃 내 모습을 훔쳐본다.

2600원짜리의 나 혼자의 지금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던지 못다 이룬 잠을 청해보지만

몇 십 년대의 흘러간 테이프속의 가요가 내 귀를 거슬리게 한다.

(얼마나 사모 치나 그리움이여..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연..)

뭐 이렇고 이런 내용의 제목인 불나비 인 것 같다. 
 

<순천 역에서 진주행 06:00 기차에 몸을 맡기고>

역 대합실은 초가을의 이른 새벽만큼이나 썰렁하기만 하였다.

몇몇의 등산객들이 눈에 보이지만 그들은 나와 코스가 다른 남원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만은 차디찬 한기가 느껴졌고 옛날 비둘기호를 연상시키면 쉽게 이해가 된다.

정거장 마다 섰다가다 할 때마다 시골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가을걷이를 장날에 내다

파는 것으로 봐서도 어린시절 나의 고향장터를 떠올리게 한다.

6시30분 섬진강을 가르고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하동백사장과 하동포구 80리길이 강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정취가 내 마음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윽고 하동 역에 도착한다.

순천에서 잽싸게 올라타면서 하동 가는 기차냐고 물었던 젊은 친구가 건너편 좌석에서

세상모르고 주무시고 있다. 깨우고 싶었지만 왠지 심술을 부려보고 싶었다.

기차가 이쯤이면 떠나겠지 할 무렴, 큰 소리도 아니고 아주 기어가는 목소리로

‘하동입니다’ 라고 하였을 때 젊은이는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마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자리를 뛰쳐나갔다. 아마 내 목소리를 듣고 일어났을까?

스스로 나오는 웃음을 억제하면서 젊은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만 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열차 안은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출근하는 사람들이며, 학생들이며... 그럴수록 열차는 무척이나 힘든 모습으로

긴 한숨을 토해내면서 소리 지른다.

기차길옆 감나무와 대추나무에 열려있는 가을은 만추의 계절의 상징인양 저마다

제 색깔을 띠고 있으며, 참깨 밭 사이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수수의 수줍음이

정녕, 세월의 수줍음인가? 누렇게 퇴색되어버린 황금벌판에는 익은 벼가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대원사로 갈까? 중산리로 갈까?>

망설이다가 오늘 이왕 널널산행 하기로 한 이상 시간상 여유로운 산행코스인 중산리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버스주차장 운전기사 식당에서 4000원짜리 백반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중산리 8시 5분 버스에 몸을 던졌다. 늦은 시간이어서일까?

등산객은 나를 비롯하여 7명, 그 외 시골아주머니 할아버지 몇 몇 분이다.

이 버스 또한 널널한 주행이었다.

사람이 세워달라면 어느 곳에서나 타고 내릴 수 있는 마음착한 운전기사이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친절히 인사드리고

또,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크락숀 눌러 ‘추석 잘 샛는교?’ 인사드리고 안부 묻고,

타는 손님 놓쳤다 싶으면 아무 불평 없이 back하여 다시 태우고, 그러나 여느 때 같으면

버럭 화도 낼만 하지만 오늘만은 전혀 그런 생각도 없고 오히려 이게 정말 정겹고

즐겁게 느껴지는 것을 아마 우리 인간이 어떻게 맘먹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 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골의 정취를 짙게 풍미하며 1시간20여분 만에 이곳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중산리에서 천왕을 바라보며...>                

 

  <중산리에서>

사실 이곳 중산리는 천왕봉이 최단코스로써 작년부터 지금가지 선택하지 않았던

미완의 코스였다. 이유는 언제쯤 가족과 함께 산행하면서 천왕봉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에게 어떤 성취감을 심어주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껴둔 코스였다.

 

                                              <중산리계곡의 모습:아직 단풍은...>

 

<이제 산행은 시작 되리라>

법계교를 건너면서 왼편 자연석의 宇天 許萬壽 추모비가 자신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리산의 산신령으로 널리 알려진 우천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나 역시도 지리산을 알고

난 뒤 그분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의 지리사랑이 얼마나 거룩하고 위대 하다는 것과 자연을

진실로 알고 몸소 실천하시며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선생님의 희생정신과 위대한 품성 앞에

몸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이룬 이러한 지리사랑과 자연사랑이 후답자인  우리가

십분의 일이 아닌 백분의 일이라도 실천하였으며 하는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태조 이성계의 전설을 안고있는 칼바위>

 

 

                                                          <망  바  위>
 

  10:10 칼바위~망바위

태조 이성계의 전설을 안고 있는 칼바위를 지날 때까지 코스는 별로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중산리 계곡을 왼편으로 끼고 이따금씩 펼쳐지는 노오란 단풍잎 사이로 초가을의 파란 하늘이

열려 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낙엽송이 물들어가는 시점과 침엽수의 건장함이 함께 어우러진 코스는 오솔길 마냥 한적하기 그지없다.

칼바위 아지트를 찾아서 빨치산의 행적을 재현 시켜보지만 이내 납득이

안된다. 몇 번의 큰 호흡이 이어지고 반복되더니 이내 망바위에 도착한다.

능선상에 꾀나 거대한 바위가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이 마치 초계병의 망루 같기도 하여

망바위라 하였을까.

 

                                                               <로타리 산장>

 

 

                                           <법계사와 3층석탑:보물 제 473호>

 

11:10 로타리 산장과 법계사에서

로타리 산장이 가까워질수록 시끌벅쩍한 소음이 나기 시작한다.

어느 고등학생들의 천왕 등정과 어느 산악회의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소음은 자신을

법계사로 향하게 하고 있다. 로타리 산장에서 순두류 코스만 확인하고.........

유유자적한 목탁소리가 恨 많은 우리 속세의 고뇌를 씻겨주는 것만 같았다.

얼 키고 설 킨 우리 인간관계가 언제부터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는가.

한순간의 영욕을 찾기 위해 또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이성을 잃은

날카로운 짐승으로 변해 버렸는가. 서로의 이익을 쫒아 명예를 차지하려고 또는, 副를

찾기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오늘도 우리는 생존경쟁에 존재하고 있구나.

여기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오랫동안 굶주리는 하이에나처럼...

내가 살기위해 남의 불행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비열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연의 법칙을 순응하기위해 잠시나마 따스한 지리의 품안에서 내 마음의 靜化를

외치고 싶다. 세상 모든 걸 잠시나마 잊고 싶구나.

아무리 위대한 영웅도 불노초를 그렇게 찾아 헤맨 진시황도 결국, 죽음 앞에 한 낯 미물에

지나지 않은 동물과 다름 아닌 인간인 것을.....

왜 그리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는지 모르겠구나.

자연 앞에 우리 인간 모두는 평등하다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배우고 싶다.

그리고 깨우쳐 주고 싶구나.

 

                                                            <개선문의 아쉬움>

 

 

                                                  <천왕샘 근처에서 조망을...>

 

   12:00 개선문과 천왕샘의 아쉬움.

서쪽의 통천문과 함께 천왕봉을 오르는 주요 관문이다.

원래는 좌우측에 비슷한 높이의 바위기둥이 서 있어 독특한 느낌을 주었는데 지금은 우측 편

기둥이 벼락 맞아 무너져 없어졌다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천왕샘은 거대한 천왕봉 암괴 아래편에 있는데 우리 남한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샘으로써

덕산 두류 산악회에서 석공을 동원하여 물이 고이도록 홈통을 팠다는 설과 로타리

산장 관리인이 개인적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물 때는 수맥이 끊어지는 아쉬움이 있단다.

그래서 고여 있는 천왕샘의 물맛을 확인하고 싶어서 한모금의 갈증을 풀어보지만.....

 

                                                 <붉게 물든 천왕 주변의 단풍>

  

12:20~13:10 천왕에서.

혹시 반야의 마고할멈이라도 만날까 하는 기대로 천왕에 올라섰다.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이곳에 도착한 나는 너무도 커다란 충격에 혼란스런 머리를 식이기 위해 나의 안식처를

찾았다. 로타리 산장에서 만났던 학생들과 산악회 회원들의 어지러움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나이 많은 어르신께 젊잖게 충고를 하였으나 막무가내다.

천왕봉에서 담배 피는 모습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소음은 어느 시장 통을

방불 캐 하여 자리를 뜰 수밖에... 그리고 꿈속의 마고할멈의 진실 된 말씀은 과연 무엇을

의미 할까는 이곳에서 와서야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강산 후손에게 깨끗하게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이곳 숙제 많은 천왕봉에서 나 홀로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발원지인 이곳에서 성모석상의

많은 사연들을 생각하고 찾아보려 하였으나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천왕골 한적한 곳에서

가을의 視像을 즐긴다.

 

                                                <제석봉의 아픈 현실>

  13:45 제석봉과 장터목에서.

제석봉 이곳에 올 때 마다 앙상한 모습으로 황사 시켜버린 우리 인간들의 소행이 얼마나

많은 세월의 아픔을 잉태 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곳.

원래의 제석봉을 생각해본다. 아름드리 전나무와 잣나무, 구상나무 등이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하게 덮여있을 그때를....

빨갛게 타오른 초원지대에서 며칠 전에 다녀간 연하봉과 일출봉을 가슴에 담는다.

장터목에서 우연찮게 같은 회사 직원을 만났다. 그들은 1박2일로 종주를 하고 있었다.

결국, 꿈속의 마고할멈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기는 만나는 것 같구나.

그들은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나는 유암폭포를 찾아 나섰다.

 

                                                                 <유 암 폭 포>

   14:35 유암폭포.

중산리에서 법계사코스와 유암폭포 코스가 아마도 지리산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등산로일 것이다.

그것은 천왕일출을 보기위해 최단거리의 등행로 이기 때문이다.

병기막터교를 지나 조금 내려오면 유암폭포가 시야에 들어온다.

상류부는 언제 망가졌는지 무너져 내리는 흔적이 역력하며 검고 넓은 암반위에 큼직한

바윗덩어리들이 어우러져 있지만 수량이 극히 부족한 탓인지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저 멀리 보이는 통신골과 천왕의 모습 佳景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 질뿐이다.

계속 너덜지대를 지나 널널산행은 이어지고 있었다.

법천폭포를 찾아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거기까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15:20 법계사와 장터목 코스의 갈림길에 도착하고 15:50 진주행 버스를 타기위해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부지런히 걷기 시작하였지만 주차장까지는 시간 안에 도착

하기란 무리였다. 이왕 늦은걸 16:55 차를 타기로 하고 여유 있게 걷는데 내 앞에 닥아

서는 승용차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병기 막터교 아래에서>

  <에필로그>

혹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한번쯤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마음의 부는 물질적인 부에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욕구에 반비례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욕구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살아가는데 힘들어 질 때 한번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멀리 서 있는 자신을

찾아 나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보세요.

이만 산행기를 마칩니다.

 

                                       <법계사 극락전에서 조망을 :중산리를 바라보며>

 

-코스별 시간

05:10 여천 시외버스 터미널.

06:00~07:33 순천역~진주행 기차.

08:05 진주~중산리버스.

09:25 산행시작.

09:45 매표소.

10:10 칼바위(장터목4.0/법계사2.1)

10:45 망바위(천왕3.0/법계사1.0/중산리2.4)

11:10 로타리 산장/법계사(중산리3.4/천왕봉2.0)

12:00 개선문(중산리4.6/법계사1.2/천왕0.8).

12:20~13:10 천왕봉.

13:45 장터목.

14:10 이정표(중산리4.3/장터목0.6)

14:35 유암폭포.

15:20 갈림길(법계사/장터목 코스).

15:50 산행종료.


 

                                2004.  10.  11.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