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청량산 산행을 하며.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십이봉이라 하지 않고 육육봉이라 한 것에 대해 학자들은 "과거엔 시란 곧 노래로서, 어감이 좋아서 취한 말일 것" 이라 추측한다. 퇴계의 저 유명한 국문 시가인 도산십이곡도 실은 전 6곡, 후 6곡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무튼 이 육육봉 꼭대기에 올라 산의 바깥을 바라보든, 아니면 안쪽을 들여다보든 청량산은 두루 경치가 뛰어나다.
이런 산은 그리 흔치 않다. 심지어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중에도 둘 중 한 가지는 별반 신통치 못한 것이 있으니, 청량산처럼 안팎으로 절경인 산은 정말 희귀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산지사방으로 포장도로가 난 지금에도 어딘가 오지스런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곳인 봉화 땅에서도 남동쪽,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라져 나간 지점 아래의 우묵하고 깊은 곳에 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천 년 세월 전인 신라 때부터 사람들이 찾아 갔던 것은 그만큼 이 산의 경치가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 명필 김생을 비롯해 최치원, 이황, 주세붕 등 역사에 이름이 전하는 많은 인물들이 이 산을 탐했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 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이러한 암자터였음 직한 자리들과 6.6봉 정상, 그리고 그 봉우리들 중턱의 8대는 곧 뛰어난 조망처가 된다. 좋은 조망점이란, 조금 과장하면 '좋은 경치'의 거의 모두다. 풍경의 좋고 나쁨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이 조망점이다. 육육봉과 8대와 많은 암자터를 가진 청량산은 그러므로 옛적부터 명산으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산은 얼마나 작은가. 해발 870m에, 넉넉하게 넓혀서 자리잡은 도립공원 면적이 고작 48.76㎢로서 북한산 국립공원 절반 정도이며, 암봉군이 밀집한 지역만 따지면 단 5~6㎢로 줄어든다. 한 손 안에 들것 같은 그 좁은 공간 안에 무수한 암봉들이 몸을 비비대며 들어앉으며 이 일대의 경관은 특히 밀도가 높은 것이 된다.
이런 청량산에서 몇 시간만에 어디로 어떻게 주파했다느니 하는 자랑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뿐이다. 퇴계 이황과 같은 진성 이씨 집안 사람인 이창경씨(예천교육청 관리과장)는 이세창씨와 함께 주세붕의 1544년 저술 인 <유청량산록>과 이세택의 <청량지>(1771년), 그리고 이만여가 편집한 <오가산지>(1901년)를 바탕으로 한 소책 <청 량산고증>을 펴냈다. 이 책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오래만에 지방산을 아내와 함께 산행을 하기위해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선다. 서울에 도착 그곳에서 출발하는 산악회 관광버스에 탑승(06시30분)한다. 경부와 영동, 중앙고속도를 통과 풍기IC로 나와 부석사로 가는 도로를 거쳐 청량산 주차장 도착(10시55분) 했다. 다리를 건너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청량골 포장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담양의 도담삼봉 축소판 같은 높이 2m쯤 의 검은 바위봉인 입석 이 있다. 이 입석 맞은편(북쪽)으로 청량사 가는 오솔길이 나 있다. 바로 옆에 등산로 안내판도 서 있다. 입석 바로 아래 도로변에 작은 주차장에서 내려 여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 청량산 매표소 입구 ▷ 청량산 안내도
▥【입석-웅진전】
이제 가을이 다 가버렸다고 한다. 성급한 사람들은 겨울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나무는 그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있다. 가지 끝에 몇몇 남지 않은 잎을 매달고 있기도 했지만 얼마전만해도 곱게 물든 나뭇잎들이 온 산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는데... 앙상한 모습으로 자신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림으로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가을도 이렇듯 겸손할 수 있다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우선 청량사까지의 오름길은 두 가닥이다. 청량골로 난 도로변의 작은 저수지(육각정)에서 시작되는 급경사 찻길 그리고 입석에서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빠르고 편하기는 계곡 찻길이겠지만, 응진전쪽의 절경을 놓치고 만다.
입석 등산로 입구의 안내판을 보며 청량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을 목적지로 삼고 산행에 들어간다.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를 때면, 자연의 품에 안긴다는 설렘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내와 함께 운치있는 늦가을 청량산을 산행할수 있어 더 더욱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한다. 언제나 산행들머리는 산친구들과 함께하지만 산행 내내 혼자 내달음쳐 나 혼자만의 산행이었는데...
오늘 산길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걸으며 산을 음미할까한다. 산행을 할수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삶의 연속인가.
처음부터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 건너편으로는 축융봉이 있는 능선이 이어진다. 늦가을 낙옆이 쌓인 가파른길 산길은 땀이 날즈음 끝나고 산허리를 도니 왼쪽으로 산 중턱을 길게 가로질러 나아간다. 능선을 하나 감돌아들면, 곧 저 앞으로 기암봉이 나선다. 기암이 몇 개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서서 하나의 커다란 암봉을 이루고 있다. 기암봉 바로 아래의 작은 암자가 응진전이며, 그 기암봉을 포함한 봉우리 전체가 금탑봉이다. 웅진전 도착직전 바위와 산이 접하는 골짜기로 오르는 희미한 산길에는 "등산로아님"이란 팻말과 줄을 쳐놓았다. 널찍한 암반을 이루고 있는 곳엔 웅진전이 세워져 있고, 암자 앞쪽으론 넓은암반에서 남쪽능선이 이어지고 12봉중 하나인 축융봉이 뽀죽하게 보인다.
어느 산행기에 "남녀가 관계하는 형상으로 보인다"라는 내용이 있어... 축융봉쪽을 자세히 보았지만 전혀 내겐 그런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이 축융봉 산형세가 수도자의 마음을 흐트러뜨린다고 하여, 과거 응진전 요사채의 축융봉쪽으로는 출입문이나 창문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응진전에는 고려 공민왕의 부인 노국공주가 국가 안녕을 기원하며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산행을 함께한 아내와 동생은 가정의 안녕을 위해 웅진전에 들려 기도를 하고 나온다.
▷ 산행들머리 입석 ▷ 웅진전전경
▥【응진전~어풍대-삼거리-산꾼의집-삼거리-김생굴 】
응진전 앞을 지나면 내청량 울안으로 드는 셈이다. 금탑봉~경일봉~보살봉~자란봉~연화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안쪽, 둥근 함지박 형상의 골짜기를 내청량, 그 능선의 바깥쪽을 외청량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응진전을 한때는 외청량사라 부르기도 했다. 응진전 옆의 금탑봉 능선 허리를 지나 내청량 안으로 들어가노라면 우선 오른쪽으로 어풍대라 씌인 팻말이 보인다. 어풍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량사 모습은 어디에서나 보는 그런 절이 아니라 풍수지리상 최고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절이라한다. 이곳에서 청량사를 배경으로 여러장 사진을 찍고 오늘 산행코스는 어풍대에서 김생굴을 들렸다 다시 경일봉갈림길로 되돌아와 경일봉으로 오르게 되어 있지만...
난 오늘 산행은 산행 자체가 길지 않기 때문에 어풍대를 지나 치원대에서 탐승로를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윗길은 암봉 종주길인 경일봉 가는 길, 왼쪽 아래로 갈짓자의 가파른 길로 내려가면 오산당이다.
단청을 하지 않아 한결 맛이 고풍스런 오산당 옆에는 이씨 문중 사람으로서 영양 산악계의 대부역을 해왔던이대실씨가 『산꾼의 집』을 꾸며 살고 있다. 청량산은 손바닥처럼 훤한 사람이니, 길을 잘 모르면 이 산꾼의 집부터 들를 일이다. 산꾼의 집 앞, '약차 한 잔 거저 들고 가시라'는 팻말에는 아무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 팻말 그대로 약차 한 잔 마시고, 제 손으로 씻어두고 되돌아나오면 된다.
다행히 내가 『산꾼의집』을 들렸을때 이대실씨가 그곳에 계셨다. 한국의산하에 산행기를 기재하는 산꾼 금낭화라고 소개를 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전에 산에서 여러번 만난 분과 같이 포근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셨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를 권하니 혼쾌히 승락해주시고 사진 찍을 장소도 이곳보단 저쪽이 더 나을거라 하시며 손수 안내까지 해주신다.
방명록에 "산이좋아 산을 찾는 금낭화 청량산에 찾다"라고 몇자 적고나서 정성스레 달여놓은 차한잔 마시고나니 그윽한향기의 은은한 맛이 입가에 맴돈다. 아쉬운 작별한다.
청량사엔 들리지 못하고 다시금 내려온곳으로 올라 응진전~산꾼의 집 사이의 삼거리에서 북쪽 윗길로 가노라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김생굴, 오른쪽이 경일봉 가는 길이다. 길목에서 김생굴까지는 아주 가까우므로 김생굴 구경부터 하도록 한다.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수행했던 곳으로 전한다. 다가가노라면 우선 반원형의 큰 굴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굴이 또 하나 있는데, 위쪽에 야트막한 돌담을 쌓아둔 곳이 김생의 수도처로 전한다. 이 좁고도 궁벽한 곳에서 무려 10년간을 서도에 정진했다는 김생은 왕희지에 필적할 만한 천하명필이자 헤동서성(海東書聖)으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 어풍대에서 본 청량사 ▷ 김생굴 전경
▥【김생굴-경일봉-보살봉-탁필봉-연적봉 -뒤실고개】
김생굴을 보고 삼거리로 되돌아와 급경사 길을 오르면 금탑봉 북쪽 안부다. 안부에 도착하니 등산객 세분이 휴식을 취하고 잇다. 여기서 남쪽 금탑봉 정산 방향 길, 안부를 꼴깍 넘어 응진전으로 가는 길도 폐쇄 팻말이 붙어 있다. 그러니 왼쪽의 경일봉쪽 능선길뿐인 셈이다. 능선길임에도 불구하고 산 자체가 위낙 가파르다보니 짝궁이 힘들어 한다. 안부를 떠난 지 가파른 능선길과 철계단을 20여분 오르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바위지대가 나온다. 올 여름 월악산 국립공원 박쥐산에서 본 노송 나무에 일제시대 송진을 얻기위해 깊게 나무에 상처를 입힌 모습이 이곳 소나무에서도 똑같은 모습을하고 있다. 바로 아래는 절벽이라 전망이 좋다. 이곳 에서 조금만 더 가면 경일봉(750m) 라 새겨진 표지석이 선 곳에 다다른다.
경일봉 표지석이 선 곳을 출발, 초록 쇠사다리를 지나 밋밋한 봉 정상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841m봉 전의 안부다. 이후 841m봉 정상으로 가는 도중 왼쪽으로 좋은 조망터가 있다. 841m봉 정상에서 5분쯤 간 지점의 안부에는 기역자 모양의 안내팻말이 왼쪽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자소봉 직전 봉우리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난 길을 접어들면 밧줄을 잡고 올라오는 바윗길이 있는데 조심을 해야한다.
이곳에 오르니 일행중 한명인 산친구 석산봉 왈 배가고파 힘이든다고 한다. 오늘 점심은 탁필봉을 지나서 795m봉 사이에서 할 예정이었는데.... 자소봉 직전 우측 샛길로 접어들어 지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공터에서 가지고온 맛나는 짐을 하나하나 풀어 놓는다. 아무래도 날씨가 싸늘한 계절엔 따뜻한 국물이 최고... 오늘은 산행거리도 길지 않고해서 1.5L 보온병에 뜨거운물을 가득 담아 배낭에 짊어지고 오는데 무겁기는 했지만 이 순간을 위해 조금 내가 희생을 하면 오늘 함께한 아내와 동생, 석산봉 또한 나도 산중에서 최고의 진미 라면맛을 보고 뜨거운 커피한잔도 .....
얼마간 점심과 휴식을 한후 곧장 직진하여 가파른 암릉을 밧줄을 잡으며 지나도 되지만, 우측으로 우회길이 나있어 그곳으로 진행한다. 보살봉 바로 아래에서 정상까지 약 30m 구간에는 스테인리스 난간을 한 쇠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보살봉 직전 점심을 먹어 오르기가 힘들다한다. 보살봉 정상은 다음을 기약하고 탁필봉 향해 발길을 이어간다. 탁필봉에 도착하니 앞에 우뚝 붓모양 같은 암봉이 버티고 있다. 암봉은 오를수 없고 암봉 옆으로 탁필봉을 알리는 석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탁필봉 바로 다음의 연적봉은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있어 경치를 구경하기엔 더 좋다. 연적봉 정상 쇠사다리를 내려서면 뒤실고개. '119구조요청 표지판8' 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여기서 종주를 마치고 그만 청량사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산행코스가 의상봉 정상으로해 전망대와 두들마을쪽으로 하산하기에....
▷ 자소봉과 탁필봉전경 ▷ 자소봉모습
▥【뒤실고개-자란봉-선학봉-의상봉-전망대 -두들마을-하청량】
뒤실고개에서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자란봉(795m) 꼭대기다. 이 봉을 넘자마자 앞에 깊은 안부가 보이고 그 뒤에 높은 절벽을 가진 암봉이 섰는데, 그것이 선학봉(821m)이다. 폭이 겨우 1m 남짓 되는, 굵은 동앗줄이 설치된 좁은 바위 협곡지대에 이어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직전 안부다. 여기서 앞을 보면 거대한 자란봉 암벽이 숲과 어울려 앞을 막고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100m쯤 내려가면 갈림길목이 나온다. 물론 오른쪽으로 가야 의상봉이다. 왼쪽은 계곡으로 하여 청량사 찻길 입구(작은 저수지의 육각정자)로 이어지는 길이다. 길목엔 '<-의상봉 0.6km, 40분.자소봉(보살봉)->1.3km, 1시간30분, 육각정자'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 길목에서부터는 또한 만만찮은 경사의 돌길이 시작된다. 폭이 2~3m 바위 협곡에 이어 쇠사다리를 10분 남짓 오르면 앞이 트이는 능선 위다. 여기에 다다르면 왼쪽 능선으로 난 길이 제길 같지만, 절벽으로 막힌다. 능선 너머 바로 앞으로 널찍한 내리막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잠깐만 내려가면 안내판이 선 안부다. 안부에서부터 정상까지도 또한 급경사 길. 정상은 평평한 평지를 이루었으며, 등산로 안내판과 의상봉 (870.4m)라 새겨진 표지석도 서 있다.
그러나 주변은 숲에 가려 조망이 별로이므로 정상 지나 곧장 100m쯤 더 내려가본다. 정말로 거기에 기막힌 조망터가 있다. 청량산 남서쪽 일대의 기암들과 가파른 산록, 그리고 푸른 낙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조망된다.
조망대 옆의 그늘 좋은 소나무에서 동쪽으로 산길이 잘나 있는데, 이 길을 따르면 된다. 처음에는 경사가 상당히 가팔라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급경사 구간은 그리 길지 않으며, 곧 남쪽 조망이 괜찮게 열리는 게곡을 따르게 된다. 조망터에서 15분쯤 내려가면 아까 정상 조망대에서 내려다보였던 두들 마을에 닿는다. 두들마 마을에서 그 아래 청량골 포장도로까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하청량에 도착해 오늘 산행을 마감하며...
산벗 석산봉, 산들바람 영원한 나의 짝궁과 함께한 청량산 산행 뜻깊은 산행이었고 수고들 하셨습니다.
항상 이렇게 떠나오고, 떠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청량산의 늦가을 정겨운 추억을 생각하며.....
산이좋아 산을찾는【금낭화】
▷ 전망대에서 본 두들마을과 하청량
산이좋아 산을찾는 금낭화 |
꼼꼼하게 작성하신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바위아래에 위치한 웅진전의 모습이 아름다우며
김생굴의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다가오는 동절기에 늘 안전산행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