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강따라 길따라 (III)

 

                    물금 오봉산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2004년 12월 19일

 

 

                                                 코스

 

         오봉산 정상-물금역-양산천 하류 낙동강합수지점-금곡-화명-구포대교-대동수문-

         대동면 월촌리-월당양수장-대동수문-대저동강변로-명지주거단지 간척지-신호대교-

         화전동-녹산교-둔치도-조만교-가락IC-낙동대교-사상구

 

 

 

 

 

<1. 양산시 물금읍 오봉산에서>

 

물금.

 

처음 알았을 때 부터 어감이 좋았다.

머리땋은 16살, 옛 강촌 처녀의 이름처럼.....

 

낭만과 정의의 시대를 꿈꾸던 스무살 때, 학교로 부터 꽤나 머언 시골이었던 물금 간이역은

그 어감의 친근함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역사와 철길을 따라, 길고 길었던 강변 둑길은 세월

따라 기억에서 바래지기 시작하더니, 산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끔 이 길을 다니게된다.  그

때의,  유리가루 같이 예리하게 빛나던 젊은 웃음들이 생각나는 길이다.

 

한문으로 물금(勿禁)은 지난날, 관청에서 금지한 일을 특별히 풀어 주던 일을 일컫는 말이라

갑자기 느낌이 달라지지만 어원을 추적해보면 여러가지가 배경이 있음직하다.

 

원래 구미라는 이름은 강이 굽이쳐 흐르는 마을에 위치한 옛이름이라, 물구미를 한문으로 옮

겨 놓은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수해가 잦은 지역에 물금(勿禁:水禁)

이라는 물을 금기시(禁忌視)하는 땅 이름을 지었다는 고증을 들이미는 주장도 있다.

 

어원추적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라 어느 것이 맞다고 할수는 없지만, 16살 강촌 소녀의

그렁그렁한 검은 눈동자를 떠 올리게 하는 '물금'의 느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오봉산.

 

낙동강 조망의 최고의 조망터로 꼽는 오봉산 임경대는 확실히 표기되어 있지 않는 곳이라 대

부분의 산행기들이 이곳이려니하고 짐작하는 것 같다. 한울타리님의 최근 오봉산산행기도 이

곳에 이르는 들머리를 '삼전아파트' 쪽으로 잡는 것이 좋겠다고 정리하였다.

 

이에 한치 어긋남이 없이 삼전아파트 건너편 산길로 길을 잡았다.  어지러운 밭두렁을  지나

그물로 차단을 해둔 곳에 이르렀으나 망설임 없이 건너 길을 찾아 가는데, 자꾸만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이쪽으로 가면 한울타리님이 오르셨던 신기마을 쪽인데.... 하지만 막상 왼쪽으로 꺾어진 길

이 나오지도 않으니 어쩔수 없이 계속 갔다. 각오하고 있었지만 예상대로 용국사가 나오고 제

법 가파른 암자길을 오르니 서너군데 기도처를 지나 능선과 마주쳤다.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을 이어가는 영남알프스는 영취산 시살등 염수봉을 솟구치며 남으로 내리닫다가 양산군 양산읍 어곡리의 매바위 못미쳐서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가닥은 남서로 뻗어 토곡산(양산 원동면, 해발 855m)을 토한 뒤 낙동강에 첨벙 뛰어들었다. 나머지 한 능선은 동남으로 방향을 잡고는 매바위를 지난뒤 남쪽을 향하다 화제고개에서 남서로 휙틀어 오봉산(五峰山) 줄기를 이루고는 살며시 낙동강으로 기어들었다. 왕성하고 힘찬 내달림을 하던 영남알프스는 오봉산에서 그 끝막음을 했고 토곡산은 큰 곁가지일 뿐이다. 토곡산과 오봉산은 마주보고 있는데 북은 토곡산, 남은 오봉산이고 그 사이에 낙동강에 연한 화제들판이 펼쳐졌다(행정구역상 양산 원동면 화제리). 오봉산의 남쪽은 양산천을 낀 물금들이고 그 건너편에 금정산이 솟았다(양산 물금면).

    물금에 오봉산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이 오봉산에 임경대(臨景臺)가 있다는 것을 아는이는 더욱 드물다. 물금면과 원동면 경계를 이룬 오봉산은 말 그대로 5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능선이다. 530.8m의 제1봉이 낙동강 바로 동쪽에 자리잡았고 그 반대편 북동쪽 양산읍 부근 화제고개 못미쳐 제5봉(449.9m)이 있어 산줄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낮은 봉우리에서 마지막에 높은 봉우리를 이룬 셈이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의 7푼능선에 있는 암봉으로 낙동강과 그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 중의 하나이다. (오르고 싶은 산, 타고싶은 그 능선-물금 오봉산 1993. 발췌 인용)

 

(아래사진 : 오봉산 능선 바위쉼터,  짙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려 쾌청한 조망이 아쉬

웠지만...  원동쪽에서 내려오는 낙동강의 굴곡이 부드럽다.)

 

 

1봉 쪽으로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오봉산 상봉이 너무 멀었다. 지도가 없는 초행길 산행을

하니 순간판단이 뭉개지기 시작하였다. 가만?!.... 오봉산이 우찌 생긴거야. 상봉 바로 앞 약

간 삼각봉처럼 보이는 곳이 혹 1봉 아닌가?  갑자기 혼란이 생겨 난감하였다. 현재 위치가 가

늠되지 않아 차라리 일단 주봉우리에 올라 사태를 판단하자!하여 다시 되내려와버렸다.

 

조금 더 진행하니 안부가 나오고 공터 체육시설지와 송전탑이 나온다. 역시 그쪽이 1봉이 맞

았다. 하지만 1봉과  제2상봉의 거리가  멀어 어째 억지 5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어느 정도 호흡을 고를 수 있는 능선을 지나니 경치 좋은 세군데의 암

반이 차례로 나타난다. 1봉의 임경대가 얼마나 좋은 지 몰라도 이런 전망이면 오봉산의 품격

을 결코 가벼이 메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사진 :  아침 안개어린 흐린 날씨 속에 왼편으로 금정산. 그 자락에 닿아 굽이치

낙동강 흐름. 앞쪽 조그만 산이 임진왜란시 왜성이 축조되었던 증산산.)

 

 

(아래사진 : 오봉산 정상 533 미터, 정면으로 토곡산 의젓하다)

 

 

(아래사진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연봉들의 능선. 우측 뒤로 천성산이 후덕하다.)

 

정상에서 삼원농장(골프장 공사터) 인근의 중계소도 어렴풋이 보이니, 염수봉을 헤메던 지난

달의 열기가 되살아 오르는 느낌이었다. 되내려 하산을 서두르니 얼마지 않아 송전탑을 지나

고 안부에 내려서게 되었다. 일단의 산행객들이 연이어 오르고 있었다.

 

좌측으로 하산길이 뚜렷하지만 아까왔던 길을 되밟아 1봉으로 향했다. 잡풀길을 수분간 걷다

가 우측으로 꺾어 1봉 능선을 오른다. 쉽게 정상부위를 오르니 이제부터 능선을 따라 차근차

근히 임경대를 찾아야만 했다. 

 

 

(아래사진 : 1봉을 오르다가 되돌아본 오봉산. 아까는 오봉산 전위봉이 보여 저곳이 1

봉인줄 알고 잠시 혼동을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도 5봉이 되겠다고 아내가 혼잣말로 촌평^^)

 

정상인듯 한 곳에서 조금만 내려서니 우측으로 낙동강 상류쪽이 트이는 조망터가 보이는데

한분이 조용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가벼운 기척으로 상념을 방해하는 양해를 구하는데 의

외로 무척 반기시었다.

 

임경대를 여쭈었으나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전에 오봉산 정상은 한번 왔었지만 오늘은 다만

강따라 산행을 계속 해볼련다고 하시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으잉?? 강따라 산행...?!

 

더 이상 대화없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약간 내려가는 느낌의 부드러운 능선길을 이어가니 좌

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는 하산로가 보였다. 아래로 삼전 아파트가 바로 보이니 이 길이 바로

삼전 아파트 쪽에서 1봉에 오르는 길이렷다.(잠시후 우리의 하산로로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행하니 사방이 틔이는 절벽 같은 암반에 서게된다.

 

임경대! 그곳에 서다.

 

 

 

(아래사진 : 낙동강은 금정산 아래 금곡동에서 굽이를 치고 정남행으로 선회한다. 바

로 앞에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남양산-대저 고속도로다. 도로가 끝나는 곳이 맞닿

은 산이 월당 양수장과 각성산(130m)이다. 다리를 건너다보면 이쪽을 바라보는 경치

가 일품이다.) 

 

 

"1봉의 8부 능선상에 위치한 최고의 조망터"라는 곳이 맞다면 이곳이 임경대라는 확신은 자연

스러운 것이다. 나중에 다시 확인을 해보니 한울타리님도 이곳에서 여기려니 하였다.

270도를 넘는 시야각의 장관에 입이 벌어졌지만  봄날 습기처럼 뿌옇게 둘러쳐진 터라 사진맛

이 실망이다.

 

(아래사진 : 임경대에 서다. 아내는 원래부터 낙동강하류의 유장한 흐름을 좋아했다.)

 

 

하산 그리고 물금읍

 

임경대에서 강쪽으로 바로 하산하는 길이 있다. 그렇다면 이 길로 올라와야 가장 바람직한 등

로인 셈이다. 확인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후답자의 몫으로 남기고 차량회수를 위해

삼전아파트 쪽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하산로는 경사가 무척 급하고 미끄러웠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쌓여, 갈수록 희미해졌

으나 걱정말라는 듯이 두 사람이 마주 오르고 있었다.

 

물금역사에서 확성기로 음악을 틀어 놓으니 온 물금 읍내에 조용한 음악이 울려퍼졌다.  

산 위로 부드러운 샹송이 은은히 번져온다. 시골 간이역사에서 울려퍼지는 샹송이라.....

미소로 들으며 하산걸음을 맞추었다.

 

아래로 물금읍내가 보인다. 가운데 동산이 증산이다. 이곳에는 왜성이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있던 사도성이 이곳이 아닌가 한다. 임진왜란시 왜병은 이곳에 성을 쌓고 금정산 아래의 왜성

과 김해의 왜성 , 서생의 왜성을 비롯해 여러 곳에 특유의 성벽구조를 남겼다. (아래사진)

 

 

(아래사진 : 왼쪽 아래에 삼전아파트가 보이고 우측 중간 가장자리에 물금역사가 보인다.)

 

 

 

<2. 하산, 물금에서 구포로>

 

 

하산 후 물금 역사 옆으로 둑길로 올랐다. 언제부터인가 흙길이 포장이 되었고, 이제는 완행

열차보다 KTX 가 빈번히 다니는 철길이 되었다. 부산 쪽으로 계속 가니 물금 취수장으로 부

터 부산으로 식수공급을 하는 배수관이 엄청나다. 저기를 통해 부산시의 식수 25 퍼센트가 공

급된다고 한다. 강건너에는 매리 취수장이 있다.  

 

 

 

 

 

(아래사진 : 비옥한 증산리 강변 농지. 산에서 보았던 남양산 고속도로 다리가 기나길다.)

 

양산천

 

양산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는 양산과 부산의 경계에 내려보았다.

취서산 동릉 북쪽에 있는 가천, 작수천은 태화강으로 흐르고, 내석, 어곡천과 내원사 계곡수

는 죄다 양산천으로 흘러 낙동강의 마지막 물줄기에 힘을 더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무릎을

쳤다.

 

하지만 각성의 기쁨도 잠시, 양산 물은  양산천으로 흐르고 울산 물은 태화강거쳐 울산바다로

흐른다는 간단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고 혼자 우스워했다.

 

바보스러워진 나의 시각을 충격적으로 자극한 것은 양산천 하류의 무거운 배들이다.

낙동강 하구언이  바다로부터 강으로의 자연스런 연결을 철저히 봉쇄하였는데 저 배들은 원

래 민물 배였단 말인가......(사실 이제는 낙동강을 거슬러 바다로 부터 들어 올려면 하구언의

수문을 번쩍 들어올려야 가능 할 것이다. 수문이 그만큼 들릴까? 저 배들은 정말 그런 방법으

로 민물로 진입한 것일까)

 

유래와 용도가 궁금하기기만 한 검은 괴력(힘이 넘쳐보이지 않은가)의 선박들의 정체가 궁금

하다.(누구 아시는 분 없는지....)

 

(아래사진 : 양산천과 낙동강의 합수)

 

 

 

(아래사진 : 민물로 진입한 용도모를 선박. 낙동강에 바지선을 제외한 철선은 이미 사

라진 줄 알았는데..... 문득 먼 바다에서 회귀한 우람하고 노쇠한 연어가 생각난다.)

 

 

(아래사진 : 가운데 낮은 다리는 03년 9월14일 태풍 매미로 상판이 내려 앉은 옛구포다리

좌측 구포대교로 강서구로 진입하여 낙동강 서안을 오르내리기로 한다.)

 

 

(아래사진 : 태풍매미로 상판이 내려 앉은 그때 사진. 인명피해는 없었다.)

                                                 중앙일보/BKJOIS.COM인용

                                       

 

구포와 김해군 대저면 사이에 나룻배로 왕래하던 불편함을 덜어 주었던 구포다리는 1930년에 착공하여 1933년 3월에 준공되었다. 그 당시 전국에서 가장 긴 다리로서 낙동장교(洛東長橋)라고 했는데 다리를 놓는데 구포쪽에서는 소극적이었으나 김해쪽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사비 중 군민의 부담금까지 자진 납부하는 등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낙동장교가 가설된 후 구포 나루터는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상경기(商景氣)도 다소 쇠퇴하게 되었다. (인용)

 

바로 그 낙동장교가 구포다리다.

                                     

금곡 화명 지나 구포대교를 건너 강서구청 방향 대저땅으로 향했다. 잠시 들렀다 되돌아 나올

곳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늘 가고 싶어해서 어렵사리 찾았던 곳. 각성산 아래 월당 양수장 아

래 나루터. 

 

(아래사진 : 다시 강을 거슬러 물금의 맞은 편 낙동강변으로 향한다. 화명 신시가지

아파트가 즐비하고 오른쪽 파류-상계봉이 웅장하고 멀리 금정산 고당봉이 뾰족하다.

-조눌리 강둑아래 하우스단지에서.) 

 

 

 

<3. 월당 양수장에서 다시 오봉산을 바라보다.>

 

월당 양수장

 

물금 취수장 건너편이 매리이다. 매리에서 강변 따라 원동 용당나루 건너편까지 길은 포장 공

사 중이고 그 옆으로 중앙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그 구간은 일전에 가 본적이 있어 오늘

은 월당 양수장까지 진행하여 하류(남양산 고속도로와 금정산)와 상류쪽(물금 오봉산) 풍경

에 취했다.

 

 

(아래사진 : 대동면 월촌리 월당 양수장 앞 나루터에서 상류 쪽 바라보기)

 

 

 

(아래사진 : 월당 양수장 나루터에서 본 장군봉-고당봉,  남양산 고속도로 다리)

 

 

그리고 건너편. 오봉산!

 

강건너 오봉산이 물위에 떠 있다. 

1봉은 앞으로 다가와 그 강쪽 상단 8부 능선 즈음에 임경대를 이루었고

상봉인 2봉부터 연봉을 이루는 모습이

이곳에서는 그저 깜찍하기만 하다.

 

산 위에서는 동산이었던 증산.

여기서는 제법 고지를 이루니

16세기 임진왜란 전투에서는 전략적 고지였음직하다.

 

(아래사진 : 오봉산) 

 

반복하자면 아래사진에서

다리 옆 강 부위에 분홍빛 체크를 한 곳이 월당 양수장 앞 나루터이다. 

산에서의 마주보기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4.대동 수문 지나면 주 낙동강과 서낙동강으로 갈린다.>

 

강변도로를 따라 하류의 끝 명지주거단지 간척지까지

 

강건너 삼락, 덕포, 감전동을 보면서 강서구 대저 강변을 달린다. 나의 생활권으로 들어섰기

때문인지 한결 마음이 편하다. 스치어 지나도 느낄 수 있는 곳. 젖은 날 산행이 어려우면 우산

쓰고 찾기도 하는 이곳이다.

 

 

건너편 도심지 강변도로는 구포에서부터 다대포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면서 달리기를 하는 사

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는 둑길인데, 이곳 강서구 둑길은 흐린 저녁에 혼

자서 걸을라치면 너무나 인적이 없어 한번씩 화들짝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마치 야간산행하

는 것 처럼.....

 

 

 

 

 

조금전에 거슬러 올왔던 대동수문 앞에 다시 도착하였다.

여기서부터  낙동강이 강서구 전체를  섬으로 만들면서 두 갈래로 나뉜다.

잘 알다시피 바르게 곧게 내려가는 강흐름이 낙동강 본류다.

 

대동 수문에서 90도로 서쪽으로 크게 휘돌아 가는 흐름이 서낙동강 이다.

서낙동강은 이곳 대동 수문과  하류쪽 녹산 1,2수문으로 아래 위가 막혀 있다.

 

낙동강에 대해 워낙 과문한 지라.....

일제시대 전 까지 서낙동강이 본류였고 지금의 본류가 폭 50 미터의 지류였다는 사실을 이번

에 처음 알았다. 광대한 경작지를 개간할 목적으로 일본인들이 두개의 수문으로 본류의 흐름

을 조절하였고, 지금의 본류 양쪽에 장대한 둑길을 만들어 놓았다.

 

구포다리 공사와 함께 같이 진행된것이 낙동강 제방 공사였다. 낙동강 하류지역인 구포와 사

상, 그리고 김해군 대저면 명지면에 이르기까지 강의 동서 양쪽에 강폭을 넓히고 김해 대동쪽

과 녹산쪽에 수문을 설치하여 강 본류의 흐름을 구포 사상쪽으로 돌렸다. 1931년에 착공한

제방공사는 5년만인 1935년에 완공을 보아 낙동강 하류지역이 물난리에서 벗어날수 있게 되

었다.(아래사진과 함께 북구의 역사-북구홈페이지인용)

 

 

 

 

그리하여 지금의 낙동강 본류는 폭 1000 미터가 넘는 광대한 강폭을 가진 강으로 도도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말없는 낙동강도 침략사의 상흔이 깊게 파여져있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적

겨지고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낙동강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내 자신의 가슴을 치고 싶었다.

 

물론 그들의 개발과 건설은 모두 경지이용 수탈과 침략적 수탈적 운송 목적하에 행해진 제

국주의 지배전략이었다. 일차적 피와 땀은 몰락한 조선의 국민들이 흘린 것임을 어찌 모르

랴.   

 

 

(아래사진 : 대동수문과 서낙동강 입구에 서글픈 배추더미 - 그냥 가져가세요......라고 

써 있다. 혹 많이 가져가실 분 있으면 한포기 200원에 가지러 오세요라고 하였다. 가격

락에 출하할 엄두도 못내는 농심에 또 한번 가슴이 메인다.)

 

 

(아래 사진 : 상심의 서낙동강변)

 

 

수많은 전쟁과 가까이 민족상잔의 상흔 뿐 아니라 일제의 침탈사는 낙동강 따른 철길과 제방

에도 뚜렷히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물론 그 당시 강을 끼고 살았던 사람들의

시대적 요구이기도 했고, 사회의 진전과정에 당연한 개발과정이기도 했지만.....

 

 

과거를 청산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일본이 20세기 초에 세계적 주류로 성장해간 역사적

배경과 근원의 힘에 대한 냉정한 각성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바로 오늘 이 시각, 우리

민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래사진 :  흐름이 끊긴 강은 이렇게 쇠락하는가.)

 

 

 

삼락동 둔치를 바라보며

 

 

삼락동 앞에는 거대한 둔치가 넓게 펼쳐져 있다.

유두리로 알려진 이곳은 지금은 체육공원과 주말농장으로 시민들과 친숙하지만 옛날부터 땅

이 기름져 일제말기부터 우기를 피해 딸기를 재배하였고 해방이후 1970년대까지 삼락 딸기

밭은 봄철에 낙동강 제방을 찾는 부산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였다. 그래서 삼락동의

지명을 강상청풍(낙동강 위의 맑은 바람), 노전낙조(갈대밭의 저녁 노을), 누하표전(원두막

아래의 딸기밭)의 삼락으로 칭송하였다고 한다.

 

 

높이 솟은 승학산 능선이 보이는가 했더니 강건너 을숙도가 모래섬처럼 강위에 낮게 엎드려

있다. 어느듯 강의 끝, 명지 아래간척지다. 

 

 

 

 

 

<낙동강의 끝에서>

 

명지방호제를 지나 강서구의 끝에 도달하였다.

을숙도의 낙동강 하구둑을 이미 지나왔으니 이곳은 강이기도 하고 바닷물이 섞인 곳이기도

하다. 종일 구름낀 날씨라 벌써 어스럼한 날씨에 구름이 두텁다.

 

 

여정은 사실상 마무리 되었다.

3번 밖에 안되는 낙동강 중류이하 탐색이었지만 산행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해준

경험이었다.

 

 

한국의 산하가 강(江)과 산을 낀 대상을 다룬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무리한 글을 세번이나

실어 송구하기 짝이없다. 경박한 알음알이를 널부려놓은 만용도 이해를 바란다.

스스로 얽메임으로 즐거웠으나, 가볍게 된 바가 적지 않다. 내실을 위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래사진 : 비강비해-非江非海)

 

 

 

(아래사진 : 靜 과 動)

 

 

 

주 여정은  마무리하였지만 귀로는 서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인간들이 만든  수문 단 두곳으로 주류의 자리를 물려 준 서낙동강.

이제 이곳은 르노삼성자동차를 비롯한 신호공단과 명지주거단지 개발을 통해 다시 옛날의

영광을 꿈꾸고 있다.

 

 

(아래사진 : 명지주거단지와 신호공단을 연결하는 신호대교)

 

 

 

(아래사진 : 화전동 강둑에서 신호대교를 바라보며)

 

 

서낙동강 하류를 틀어막은 녹산 제1수문이다.

녹산교 부근도 참 아름다운 풍치를 가졌다. 민물장어를 굽는 비릿한 내음만 없다면 능엄사와

강가 갯가가 어울리고 옛 낙동강 역사가 어우러진 좋은 산책코스다.

 

(아래사진 : 반영)

 

 

 

(아래사진 : 그리고 능엄사와 제2수문, 능엄사가 있는 자리는 쪼그만 바위섬인데 1,2

수문으로 연결되었다. 능엄사와 뒷산은 불이영한님의 소개로 이미 유명해진 바 있다.) 

 

 

 

(아래사진 : 서낙동강 "둔치도"에는 다리공사가 완료되어 둔치도 내의 도로와 포장연

결 중이다. 지류인 조만강이 평온하기 그지없다. - 다리위에서 - )

 

 

 

산하가족 여러분!  연말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