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12성문을 둘러보며

 

일    시 : 2005년 12월 3일 (토)
날    씨 : 산행 최적의 날씨 오후 늦게 부터 올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옴
이동경로
▷ 5시30분 방화동 출발(161번) ▷서대문 금화초교 앞 환승(704번)
▷북한산성 입구 도착(07시)

 

예전에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거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산행을 해야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나는 이것이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수단이 되기 전 까지 끊임없이 다른 방법을 강변하는 반대파의 입장을 줄곧 견지해왔었다. 산행 전날 잠자리에 들면서 3대신께 祈雨를 바라며 마지막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었다.  

지금도 물론 산행 전날 3대신 + 조상님께 기도를 드린다. 이렇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건강한 육체를 주시고, 하루 동안 가용해도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를 드리곤 한다.
이번에는 한 가지 더 감사를 드렸다. 내가 언제라도 2시간만 투자하면 갈 수 있는 곳에 삼각산이라는 명산을 점지해 주셨음에.......

서설이 늘어졌다
일전부터 벼르던 12성문을 무대로 삼각산을 둘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과 컵라면 누룽지 떡2팩을 챙겨서 길을 나선다(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산에서 느낀 감상이나, 풍광은 기억이 안 나는 경우도 있지만, 결코 잊지 않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무엇을 어떻게 먹었다는 것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선배님들의 산행기를 봐도 굉장히 본능에 충실한 내용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07시 북한산성 입구 도착
사위가 조금씩 밝아오는 북한산성 입구에 하차하여 효자리쪽으로 다리를 건너서 우측 식당 단체안내판을 따라 산객들의 인구에 회자되는 미미가든쪽으로 충실히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원효봉 능선 품에 안기게 된다.

 

07시30분 시구문
12성문중 제일처음 만나는 시구문(내심 07시가 지났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 그분이 나오시지 않은 관계로 무임 통과)
초장의 비알을 조심조심 올라가다 보니 절이라기 보다는 민가 같은 원효암을 우측에 남겨두고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원효봉에 도착하여 오늘 가봐야 할 산성 주능선과 의상봉 능선을 둘러보며 글로코사민 100mg이 들어 있다는 양갱을 하나 맛나게 맛본다.

 

08시40분 북문
이중문으로 되어 있는 북문을 등뒤로 두고 눈으로는 갈 수 있지만 발로는 아직 갈 수 없는 염초봉을 흩겨보고는 산성매표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상운사 입구에서 상운사쪽으로(이정표에는 등산로 없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진입해서 상운사 일주문 앞에서(백운대 방향이 표시된 사제 이정표 있슴) 모노레일을 건너서 대동사 방향으로 건너가 본다.

 

09시20분 위문
대동사를 지나 본격적인 너덜지대가 나오고 몸이 드디어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난 이런 느낌이 아주 좋다 몸이 아파서 나는 열이 아니라 내 몸이 살아있다는 얼마든지 덤벼보라는 자신만만한 외침이 아닌가- 바로 이러한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몸을 학대하는 것이 아닐까?)
초겨울의 협곡이지만 의외로 능선 위 보다 햇빛만 안 들 뿐이지 견딜 만하다. 사방이 막혀 있어 바람이 불지 않아서 인 듯, 체감온도는 바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약수암에서 낙엽 띄운 약수 한 잔 마시고 내쳐 올라가보니 어느덧 위문이 깡충 맞게 서있다. 날씨가 화창한 관계로 환상적인 조망을 기대하며 백운봉(최근에 북한산 백운대가 삼각산, 백운봉으로 제이름을 찾았다)을 올라가 보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님께서 비닐우의를 둘러쓰시고 백운봉 정상을 교당 삼아 열심히 기도를 하고 계신다.(대충 연말에 1억원을 헌금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인지, 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맙다는 건지 모르지만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종교는 없지만 타인의 종교 행사를 방해할 수 없기에 주변에 쪼그라져서 우리 동네 주변산인 문수산, 계양산에게 눈인사하고 맞은편 의상봉에게 기다리라는 협박을 하고는 터덜투덜 내려오다가 오리바위 옆 양지 편에 자리를 깔고 어정쩡한 식사를 한다. 컵라면에 누룽지를 넣고 먹으니 든든한 것이 괜찮다 아마 당분간 내 겨울산행용 주메뉴가 될 것 같다. 커피 한 잔하고 위문을 출발하니 10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12시 문수봉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아쉬움을 뒤로하고 백운봉을 내려와서 수월하게 산성주능선상의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을 지나 대남문에 도착한다.
날이 추워서인지 의외로 산객들이 보이지 않더니 대동문 지나서부터 삼삼오오 모여 있는 분들과 막초냄새가 심심찮게 후각을 자극한다. 북한산성 대피소에서 옹달샘물 한바가지를 마시니 옆에 계신 산객이 짐짓 무서운 말씀을 하신다 "수질 검사표도 안붙어있는데 뭘 믿고 마시냐"고, 찜찜하기는 하지만 난 내 본능을 믿기로 한다 입과 몸속에서 거부반응이 없으면 문제가 없기에( 그래도 나는 공장에서 나오는 바코드 찍힌 물보다는 삼각산이 퍼주는 샘물에 더 믿음이 간다, 수질을 오염시키는 것은 샘물이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자세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늘어나는 산님들과 교차하며 하릴없는 상념에 젖어 미친 짓(혼자 울다가 웃다가) 하다보니 어느덧 태극기 휘날리는 문수봉, 검은 장미 초콜릿 만드는 회사 단체산객에게 쪽수에 밀려서 의상봉 능선으로 접어든다.

 

14시 대서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겨울 산행의 좋은 점은 숱 없는 머릿속처럼 산길이 훤히 잘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바의 위험이 그만큼 감소한다는 것인데 일전에 비봉능선에서 문수봉을 우회하여 청수동암문으로 가려다가 무심코 716봉으로 올라 부왕동암문까지 간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어디서 누가 뭔짓을 하는지 속속들이 보이니 엄한 짓도 못하겠다(사실 볼일이 보고 싶어 한참을 참다가 시간차를 이용하여 해결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언제나 장단이 분명한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나한봉에 올랐다가 쇠난간 지대를 지나 나월봉 우회로상의 홈통바위(어느 분은 에스컬레이터 바위라고도 하던데)를 재미있게 기어올라가 조심스럽게 비알을 내려서니, 부왕동암문이 발아래 에 나타난다(의상봉 능선 상에는 나월봉만 우회하면 사실 위험하거나 어려운 구간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온몸으로 하는 산행이 싫은 사람은 절대로 이 코스로 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왕동암문에서 증취봉까지의 짧은 오르막을 오르고, 증취봉에서 무난한 길을 가면서 건너편 응봉능선상의 귀여운 강아지바위와 눈맞춤도 하고 용혈봉을 지나 마지막 쇠사다리를 오르면 용출봉이다. 장쾌한 의상봉능선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고 가파른 바윗길에 허우적대면서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니 가사당암문, 가사당암문에서 잠시 국녕사쪽으로 해서 갈까하는 유혹을 받지만 애써 떨쳐내고는 의상봉을 올라선다 정상에서 잠시 오늘의 나의 이동경로를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급경사 쇠줄지대를 지나치는데 부부산님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말을 건넨다 "아저씨 이 길은 계속 이렇게 줄잡고 올라야만 하나요?" 사전 정보 없이 올라오신 것 같아서 진정시키고는 국녕사로 가는 갈림길을 안내해 드리고 나니, 차후에라도 매표소 입구에 산행코스의 난이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의상봉코스는 쇠줄구간 몇 개 설치되어 있어서, 자녀를 동반하거나 팔 힘이 부치는 분들은 피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의상봉을 내려서자 마자 만나는 삼거리에서 이정표상 산성매표소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서 용암사입구에서 셔틀버스의 매연을 맡으며 어슬렁거리고 올라가 대서문에 입을 맞추니 정확히 14시를 가리킨다.   

 

10월22일에 지리산 당일 종주이후 먹고사느라 제대로 걷지 못해서 금단증상에 주말마다 와이프를 괴롭혔는데 이제는 약을 한 번 썼으니 당분간은 잠잠할 것 같다 (점점 약발 유효기간이 짧아지고, 더 강한 약을 원하고 있지만) 이렇게 두발로 북한산성의 능선상의 12성문을 이어가며 거창하게 국운을 걱정하지는 못했지만, 소소한 일상사를 정리할 수 있었고 뻐근하게 걷다가 돌아가서 샤워할 수 있는 집과 가족을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 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기에 만족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