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7월 31일(토) 새벽 ~ 8월 1일(일) 낮, 1박 2일

산행코스 : 화엄사 - 노고단 - 반야봉 - 연하천산장 - 벽소령산장 - 세석산장(1박) 
              - 장터목산장 - 천왕봉 - 치발목산장 - 유평리 - 대원사 

              (산행길이 : 약 47km, 산행소요시간 : 약 25시간)

[제 1 부]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 홀로 야간산행(공포체험), 길잃은 산행객 구조, 무척이나 힘겨웠던 코재 오르기 
 
금요일밤 서대전역에서 11시 47분에 떠나는 기차를 타면서, 나의 지리산 종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끊임없는 지리산 종주길의 악전고투의 순간들을 전혀 예감하지도 못한채
단지 떠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설레임만 안고서 열차에 올라탔다.
역시나, 떠나는 마음.. 그 마음은 언제나 기쁘고 들뜨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달리는 기차안은 지리산 산행객들이 대부분이었다.
짐받이 선반위에는 대형배낭들이 즐비하였으며,
갖가지의 등산장비들을 챙기고 등산복을 차려입은 산행객들이
그들만의 지리산 산행을 꿈꾸며 같은 객차안에 동행인이 되었다.
 
영양섭취를 위해 야식으로 구운계란 3개짜리(1,000)를 사먹었다.
밤기차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야간산행할때 덜 피곤할텐데,
잠이 전혀 오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밤기차에서 2시간 30분을 뜬눈으로 보냈다.
기차는 남원역을 지나 구례구역에 예정시각인 2시 31분에 정확히 도착하였다.
 
구례구역앞에는 이미 수많은 택시들이 대기하며, 손님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성삼재를 가는 산행객들인데, 성삼재는 구례구역에서 택시 1대당 30,000원이었다.
그러니깐, 5명이 한차를 타면, 3만원 나누기 5명 해서 일인당 6,000원만 부담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화엄사로 가는 동행을 찾았는데, 어째 전부다 성삼재 가는 이들 뿐이다.
결국 혼자 화엄사 가겠다고, 택시 아저씨 한테 얘기했더니, 미터요금으로 10,000원이란다.
허걱.. 화엄사는 성삼재보다 훨씬 가까운데 이렇게 많은 요금을 요구하다니..
하지만 화엄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 택시 기사 아저씨도 화엄사 동행을 찾기 위해 기차역 광장앞에서 화엄사를 열심히 외첬지만,
동행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어떻게 3명을 델고 오긴 했는데, 성삼재 가는 등산객들이었다.
그러니깐. 성삼재 가는 중간에 나를 화엄사에 내려놓고, 나머지 3명은 성삼재까지 가자는 건데.
결국 나한테 만원, 그 세명한테 3만원(성삼재 요금), 도합 4만원으로 성삼재에 가는 거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한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이렇게 합승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구례구역에서 출발한지 6분만에 화엄사 주차장 도착해서 내릴 때,
아저씨 한테 5천원에 해달라고 한번 부탁해봤는데, 냉정히 거절당했다.
기분이 상당히 꿀꿀해진다. 30분 넘게 꾸불꾸불 올라가는 성삼재가는 요금보다
6분만에 도착하는 화엄사 요금이 더 많이 나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2시간 30분동안 서대전역에서 구례구역까지 오는 기차요금이 8,000원이었는데,
6분만에 10,000원이라. 이런 기가막힐 노릇이 있나.. (단, 기차요금은 학생증으로 청소년 할인적용)
 
어찌 되었던 간에, 화엄사 주차장에서 택시기사 아저씨 말대로 도로따라 쭉 걸어가면 된다해서,
그렇게 포장도로를 따라서 가니, 금방 화엄사지구 매표소가 나왔다. 
(지금부터 시각 기록 시작 03:00 통과)
매표소에 보니, 화엄사 지역 입장료는 국립공원 탐방료 1,600원과 문화재 관람료 2,200원을 합하여, 3,800원 꽤 많은 금액이었다.
당연히 새벽 3시에는 입장료를 받을 일은 없겠지만, 
일출전/일몰후 2시간 이내 이외에는 야간산행을 금하며,
적발시 과태료 50만원에 처한다는 경고문을 보고 잠시 뜨끔하였으나,
워낙 지리산 지역에 범법자들이 많으터라 아무런 꺼리낌없이 범법행위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길은 매표소가 지나도 포장도로가 쭉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걸어가는 사람 하나 없고, 지나가는 차 한대 없으며,
단지 옆에 화엄사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만 한밤중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주말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지리산 산행에서
이렇게 나홀로만의 산행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혼자 산행해서 한적하고 조용해서 좋지만, 밤이다 보니 혼자라는 사실이 무섭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가는 중에 택시한대가 도로를 따라 신나게 질주한다.
이런.. 안그래도, 택시기사한테 돈 많이 뜯겨서 기분 드러웠는데,
이 기나긴 포장도로를 마냥 걸어가게 만든 그 기사가 마냥 원망스러워진다.
그렇게 포장도로를 하염없이 걸어간지 20분 만에 화엄사입구에 도달하였다.


위에 보이는 산행안내 표지판과 함께, 본격적인 지리산 종주산행이 시작되었다.
화엄사를 왼쪽에 끼고 계곡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는데, 본격적으로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화엄사 마저 지나고 나니, 온통 어둠뿐인 등산로를 헤쳐나가는데,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공포체험이었다.
혼자 걸어가다가 귀신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초긴장속에 산행을 계속하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이 올라가는 내내 뒤에서 길을 비추어주는 가운데,
밤에는 사람도 없고 사방이 고요하여 바람소리와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린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 교각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셀프샷!
그렇게 홀로 밤길을 헤치며 올라가기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서,
올라가다가 숲속 부근에서 조그만 불빛이 보인다.
호기심에 그 쪽을 향해 해드 램프를 비추어 보면 또 사라졌다가, 또 나타났다가 하는 것이..
조금 불안스럽기도 하다. 혹시나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자, 내가 본 그 불빛은 헛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저씨, 거기 등산로 맞나요?" 이 물음에, "예!, 맞는데요" 답해주었다.
"저희가 길을 잘못들어, 등산로를 못찾고 헤매이고 있거든요.." 이런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숲속 길을 헤치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명의 남자가 있었는데,
촛불밝기 밖에 안되는 작은 랜턴 하나 들고 길을 못찾아 숲속에서 그렇게 헤매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야간산행에서는 밝기가 뛰어난 랜턴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두사람을 뒤에 이끌고 나의 랜턴으로 다시 정상 등산로 진입한 후에
그들 앞에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이것참 황당한 일이. 그 두사람은 여기 등산로가 초행이 아니고 두번째인데,
오히려 내가 초행이니 그들이 나를 데리고 가야 정상인데 그 입장이 뒤바뀐거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랜턴이 있어, 두명중에 랜턴 없는 사람에게 빌려주고,
그렇게 3명이서 노고단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오르다 보니 힘든지도 모르고 올라간다.
더구나 재미있는 사실은 그 두사람이 바로 내가 그 포장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적에
택시로 편하게 지나간 이들로, 그 두 사람은 택시비로 12,000원, 그러니깐 일인당 6000원을 부담했단다.
나까지 합승했더라면 일인당 4,000원에도 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역시나 길은 혼자가는 것보다 얘기 상대가 있어야 심심하지 않고,
더구나 밤길에는 무섭지 않아 좋다.
 
그런데, 그 아저씨들 1시간쯤 따라오더니, 자기들은 쉬엄쉬엄 올라갈테니, 나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아무래도 길 찾느라 여기저기 휘젖고 다니느라, 물에도 빠지고, 발도 삐고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마침 새벽 5시쯤 되니 날도 훤해져서, 더이상 나의 랜턴에 의지하지 않고도
길을 헤깔릴 일은 없을 듯 하여, 그들을 뒤로 하고 먼저 올라섰다.
 
멀찌감치 보이는 능선길. 눈앞에 다다를 듯 한데, 오르는 길은 왜이리 가파르기만 한건지.
그래서, 코재라 이름 붙였나보다. 오르는 길이 땅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파르고 힘들다하여 붙인 이름 코재.
그 악명높은 코재를 오르는 것이 얼마나 버겁던지, 나의 등반력에도 한계가 오려한다.
왼쪽다리 장단지와 오른쪽 넓적다리에 쥐가 살짝 온다.
한번 쥐가 느껴지면, 정말 고달픈데, 나의 종주산행이 쉽지 않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렇게 죽을힘 다해서 끙끙대며 올라오기를 2시간 40분가량.
성삼재에서 노고단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05:38)

 
여기에 오르고 나니 어찌나 반갑고 힘이 솟구치던지..
이제 지리산 종주 다한 것 같은 뿌듯함과. 성삼재에서 걸어오는 이들을 보며,
화엄사 오름길 코재의 매운맛을 보지 못한 이들에 대한 자부심마져 느껴졌다.

 
예정된 시각인 06:00 정각에 노고단 고개에 다다랐다.
주능선상에 올라서보니 날씨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하늘위에는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여,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조망되니..
그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었다.

 
노고단 정상을 배경으로 한 컷!
실제 노고단 정상(1507m)은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노고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사전예약을 거쳐야만 한다.

[제 2 부] 지리산 종주능선의 계륵.. 반야봉에 오르다.
- 수많은 야생화 사이로 올라갔던 반야봉의 탁트인 조망 -
 
계륵이라 하면, 닭의 갈비뼈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로서, 중국의 삼국시대에 위나라의 조조와 촉나라의 유비의 전쟁사에 고사가 유래되어 나온 말이다.
지리산 종주능선상에 계륵에 해당하는 곳이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반야봉이다.
 
반야봉은 높이가 무려 1732m에 이르는 고봉으로
독립된 봉우리중에서는 주봉인 천왕봉(1915m)에 이어 지리산의 제 2의 봉우리이다. 
구름과 안개가 낀 날은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다우며, 5월이면 정상에 철쭉과 야생화가 많이 핀다고 한다. 또한,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지리산 10경에 하나로 손꼽히는데,
어느 시인은 이 휘황찬란한 황금빛 낙조를 '자연이 만든 가장 장엄한 잔치'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야봉은 주능선상에서 약간 북쪽으로 빗겨나와 있기 때문에
반야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왕복 2km의 오르내림을 해야 하는데,
일반인 기준으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 걸린다.
따라서,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은 거의 대부분 이 봉우리를 지나쳐간다.
그러나, 나는 여기를 오르고 말았다. 그 이유는 당일치기 종주를 결국 포기했기 때문이다.
 
노고단까지는 예상된 시각을 맞추어 올라섰으나,
노고단고개를 넘어 종주능선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고 나니.
화엄사에서 코재를 넘어온 후유증인지 다리가 천근만근같고, 후들거려서 제대로 걷기가 힘들정도였다.
오늘같이 유난히 쾌청한 날에 지리산의 종주능선을 후딱 지나가며, 스치지 말고..
하나 하나 살펴가며 보라는 신의 계시인지.. 나의 산행 속도는 그렇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돼지평전을 지나는 이길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길 양옆에 핀 야생화는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모든 종류의 다섯배는 되는 듯 싶다.
 
길을 걷는 데 배가 너무 고파서, 임걸령 샘터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임걸령 샘터의 물이 가장 시원하고 맛있다고 어느 후기에서 읽어본 듯 했는데,
역시나 그 말 그대로 그 물맛의 시원함과 달콤함에 어느덧 취하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빵 2개다. 어제 학원에서 저녁 간식으로 나온 것을 몰래 빼돌린 것^^
간밤에 열차안에서 먹었던 구운계란 3개에 이어 두번째 영양보충인데,
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먹고나니 이제 좀 살만했다.
(임걸령 아침식사 07:12 ~ 07:30)

 
임걸령에서 아침식사후 한 컷!
소나무 뒤로는 노고단쪽에서 뻗어나간 능선이 부드럽게 남쪽방향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빵으로 영양보충을 한지 얼마되지 않아 나의 체력에 드디어 한계가 왔는데,
밤에 한숨도 못자고 코재 올라오느라 진을 빼서 그런지,
걷는 중간 중간에 눈이 감기고 슬슬 졸려온다.
 
결국은 노루목 가는 길목 어느 곳 평평한 곳에, 판쵸우의 밑에 깔고 그대로 뻗어 누웠다.
녹다운(Knockdown)이란 표현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25분쯤 눈감고 잤다. 그 동안 모기와 벌레들이 잠시 성가시게 굴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제 좀 살만하다.
일분 일초가 아쉬운 이 마당에 이 낮잠으로 인해
당일치기 종주에 대한 거창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 편하게 산행하자, 그리고.. 대신에 꿈에도 그리던 반야봉을 오르는 거야.
이렇게 마음먹고, 반야봉에 이르는 갈림길이 있는 노루목에서 
과감하게 반야봉행으로 접어들었다. 반야봉 오르는 입구에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사진기 하나 달랑 들고서, 가뿐한 마음으로 반야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나 오르는 길에 이름모를 야생화가 가득히 피어있고,
왼쪽, 오른쪽 양쪽으로 지리산 종주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봉 오른 시각 09:03, 반야봉 등정에 소요된 시간 1시간 10분)

 
반야봉 정상에서 1732m임을 알리는 반야봉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었건만,
아쉽게도 햇살의 눈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지긋히 감아버렸다.
 
역시나, 종주능선의 북적거림과는 달리 이 곳은 오르는 사람이 많이 없어 한적한 길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전망이 무척 좋아서 즐거운 하산길이었다.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뒤쪽 능선을 배경으로 셀프샷을 찍었는데,
셀프 촬영이라는게 정말 쉽지가 않다. 
인물이 이렇게 크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반야봉에서 다시 주능선으로 돌아와서 조금만 더 진행하니, 삼도봉이 나왔다. (09:43)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삼도의 경계에 우뚝솟은 삼도봉,
본래 이름은 낫낫이봉이었는데, 그 이름이 날날이봉으로 변질되어,
공단측에서 삼도봉으로 개명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사진속의 내 모습 뒤로 보이는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로 반야봉이다.

[제 3 부] 연하천, 벽소령, 세석산장에 이르는 끝없는 자기자신과의 싸움.
- 내 체력의 한계를 맛보다, 그리고 잊지못할 세석산장의 칼잠 -
 
반야봉의 정기를 받아서 였을까. 거의 그로기 상태까지 갔었던 나의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는 듯하다.
삼도봉 이후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 명선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연하천산장이 나왔다. (11:42)
 
 
연하천산장에서. 이크 또 눈감았네..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

그러나, 체력이 아무리 회복된다 하여도, 당일치기 종주는 절대로 불가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예전에 7시 46분에 지나쳤던 연하천 산장을 그 보다 4시간이나 늦은 11시 42분에 도착을 했으니..
가방이 70리터에서 40리터로 작아지면서, 식량이나 비박도구 등을 많이 줄여서 왔는데도,
오히려 그 때보다 걷는 속도가 더 늦은 것은 코재에서 너무 힘을 많이 빼서 그런건지,
아님 그 때(3년전)에 비해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건지.. 아마도 둘다이지 싶다.
 
아까전에 먹었던 빵 2개가 그 효력을 다했는지, 힘이 없어 축 처진다.
아무래도 뭔가를 먹어야 길을 계속 갈 수 있을 듯 싶다.
다음 끼니에 먹기 위해 남겨놓은 컵라면을 꺼내지는 못하고,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 빈 밥그릇을 들고서, 밥먹는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밥동냥을 나섰다. 아하! 목표물 포착. 먹다 남은 김치국 발견.
옆에서 좀 받을 수 없겠냐고 하니, 너무나 반갑게 맞이하며 김치랑 김치국이랑 가득 담아주셨다.
어쩌면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것보다 다른 이가 맛있게 먹는 것이 훨씬 기분좋은 일일테니.
이제 다음 목표는 밥을 얻는 것! 열심히 밥을 찾아다녔는데,
이런.. 점심식사라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라면만 끓이고 있다.
이런 망했다! 결국 그 짜디짠 김치국을 밥도 없이 다 마셨다.
그래도, 그 김치국이 효과가 있음을 알게된 것은. 땀을 많이 흘리면서,
물만 마시면, 염분이 부족해서 더더욱 갈증만 나기 때문에,
소금기 있는 음식이 필수적인데, 김치국 같이 짠 음식이 염분 공급하나는 확실하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지리산 종주길은 끊임없는 봉봉(峰峰)길의 연속이다.
뭔놈의 봉들이 그렇게도 많은 것인지, 눈앞에 보이는 봉 하나를 오르기 위해 열심히 올라갔더니만,
또 다시 허무하게도 그만큼 내려서고, 또 올라간다 싶으면 또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그 올라가는 높이가 보통이 아니고,
400-500미터급 산을 열개 이상은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산행길이 바로 지리산 종주능선길이다.
아마 지리산 종주 해본 사람에게는 400-500미터짜리 산은 산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나의 초라한 봉으로 보일뿐. ..
 
지리산 종주 능선의 등산로 자체는 매우 편한 길로 어렵거나 험하지는 않지만,
종주산행이 힘든 이유는 그 길이가 무척이나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종주능선 25km를 포함한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려면 보통 하루에 10시간은 걸어야 할텐데.
평소에 운동을 안하던 일반인들은 4시간만 걸어봐도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니,
지리산 종주산행을 진정한 산꾼으로 거듭나기 위한 입문이라고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힘든 길이었지만, 물과 비상식량인 미니초코렛 하나씩 꺼내먹으며,
기나긴 능선길을 조금씩 조금씩 걸어나갔다.
맑은 날이라 여전히 조망은 좋아서 멀찌 감치 솟아오른 천왕봉도 벽소령에 다다를 쯤 하여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가다 보니, 종주능선의 중간 지점 벽소령산장이 나왔다. (02:00)

 
벽소령 산장에서의 셀프샷!
후끈 달아오를 시각인 오후 2시에 이곳에 도착했다.
벽소령은 함양의 음정마을과 하동의 삼정마을을 잇는 고개로,
유일하게 지리산 종주능선상에 가장 고도가 낮은 고개이고, (1340m)
차량으로 넘을 수 있게 비포장길이 갖추어진 곳이다.
또한,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벽소명월은 지리산 10경중 하나로 꼽힌다.
 
여기에서 영양보충을 할까 했는데, 워낙 땡볕이고, 물나오는 것도 시원찮다 하여,
세석에서 챙겨먹을 생각을 하고, 벽소령을 그냥 통과했다.
 
벽소령에서 세석가는 길은 당일치기 종주하는 사람들에게 고비에 해당하는 곳으로,
산장과 산장사이의 평균거리의 두배이상에 해당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벽소령과 세석사이(6.3km)이며, 오르락 내리락의 고도차이도 만만치 않아서, 
등산객의 진을 있는대로 빼내는 곳이다.
지난번 처음 지리산 종주할 적에도 이 곳에서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이 코스에 접어들었다.
결국은 이 코스에서 가다가 중간에 퍼지기를 중간에 몇번씩했는데, 
한번은 중간에 쉬고 있는데 같이 쉬던 분이 과일이랑 찰떡초코파이, 땅콩 등을 주고,
또 햇반이랑 고추참치캔 하나가 남는다고 먹으라고 주시는데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고, 또 한분은 벽소령에서 세석까지 가는 동안 말벗이 되어주신 분인데,
혼자 산악회에 신청해서 오긴 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혼자 산행하다가
먹을 것을 많이 싸들고 왔으니 세석에서 같이 먹자고 하셨다. 그 말에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세석을 가기전 마지막 봉우리인 영신봉을 넘어 바라본 세석평전을 배경으로.
그리고, 세석평전 위에 솟은 봉우리가 촛대봉이다.
벽소령을 떠난지 3시간만인 5시에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벽소령에 도착했을 때, 난 이미 더이상 걸을 능력을 상실했다. 
사실은 좀더 무리해서 장터목까지 욕심을 두고 있었는데,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산행을 위한 나의 에너지는 이미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던 것이다.
결국은 세석산장이 첫날 나의 마지막 코스가 되었다.
이곳에서 먼저 급한 불부터 해결하기. 일단 먹고 보자.
배고파서 먹는 수준을 넘어 살아남기 위해서 먹는 거다.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싸온 충무깁밥을 나누어 먹고 나서,
라면을 끓여서 함께 나누어먹고, 햇반을 데워서 말아먹었는데,
어찌나 쑥쑥 넘어가던지, 먹는 즉시 소화가 바로 되는 듯 하다.
지리산와서 처음으로 든든하게 먹고나서 모처럼의 행복감에 젖어본다.
 
그러나, 이런 행복감도 잠시 숙박문제를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된다.
일단 산장에 가서 행여나 밤에 빈자리를 구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보았지만,
너무 큰 기대였던가 보다. 휴가철의 주말, 날씨도 좋아서 지리산 산행에 있어 최대의 피크 기간이라
당연히 남는 자리는 없을 뿐더러, 행여 남게되면,
1순위는 노약자, 2순위는 어린이, 3순위는 여자라고 한다.
나같이 새파란 총각은 자리 얻기가 하늘에 별따기와 같으니
밖에서 얼어죽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하산하라고 하는데,
야속하기도 하고, 이렇게 아쉬운 경우가 있나..
이건 남녀차별이 아닌가 싶다. 여자가 지방층이 더 두터워서 얼어죽을 확률이 덜할텐데,
남자보다 여자를 우선 수용 하다니..
 
사실은. 짐을 줄이다 보니 숙박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되어
침낭도 매트리스도 하나도 챙겨오지 못한 상황이라,
대피소 내에 들어가지 못하면, 
취사장에 들어가서 쪼그리고 밤을 지새는 것 이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판쵸우의에 옷 두겹으로 입고 비박해볼까 했는데, 불어오는 찬바람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저녁 8시나 되어서 대피소에서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기쁜 소식.
"산장 예약 못한 남자분들 모여주세요"
와우! 내게도 삶의 희망이 있는구나.. 후다닥 산장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 몰려든 남자만 100명이 넘었다.
앉아있는 순서대로 잠잘곳을 배정받았는데,
마침 내가 앉아있는 곳이 방으로 배정받았고,
나머지 대다수는 복도와 계단, 통로등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방내부(침상)보다 오히려 복도, 계단, 통로가 더 좋았다.
일단, 예약안한 사람이다 보니, 대우가 다르긴 하다.
한사람 자리에 두사람이 들어가는게 원칙이라 지그재그로 나란히 누워서 자야만 한다.
그러니깐, 내가 누운 곳의 내얼굴 왼쪽과 오른쪽에 옆의 사람들의 발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 발은 양쪽 두사람 머리 사이에 위치하게 된다.
배정하는 산장아저씨는 잠자는 자세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칼잠을 자야만 그 좁은 공간에 최대인원이 잘 수 있다고 한다.
얼굴과 발사이의 그 간격은 한뼘도 안되는 거리이니, 잠자다가 뒤척이다보면 닿는 거리인데도,
방에 배정받은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배정해주니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른다.
나역시도 밖에서 얼어죽을뻔 했는데, 안에 넣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하루를 너무 힘들게 보냈기에,
발냄새도 그렇게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고,
다른 이들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삼아 그렇게 스르륵 잠에 들었다.
8시 조금 넘어서 잠들었는데, 자다가 너무 더워서 12시쯤에 한번 잠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잠이 깨서 다시 잠도 안오고해서, 잠시 방에서 나왔다.
계단에서, 통로에서 자는 사람들 사이를 힘들게 비집고 나와서,
대피소 바깥에 나왔는데, 시원함을 넘어 오히려 춥다.
여긴 열대야라는 단어가 없겠구나 싶다.
밖에서 텐트치고 자는 사람들, 비박하는 사람들이 잔뜩 보인다.
나는 적어도 비박이라 하면, 매트리스, 침낭, 그리고 침낭커버 3개의 장비를 기본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나의 상식을 뛰어넘는 비박용 침낭커버들이 보이는데, 정말 황당했다.
첫번째는 비닐이고, 두번째는 텐트 후라이다.
부부인지 연인인지 모르겠으나, 나란히 침낭속에 들어있는데,
그 두명을 감싸고 있는 텐트후라이가 멋지다, 흡사 달밤에 한이불에서 자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밖에서 정말 감동적인 것인 하늘이 유난히 맑아서, 별도 많이 보이고,
무엇보다 둥그랗고 밝은 달..  그 달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가득차 오르는 듯
마음의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달의 모습이다. 내 언제 이런 멋진 달을 다시 볼수 있을까.
지금 벽소령에서 이 달을 보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겠다 이런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한동안 밖에서 찬바람을 맞다 보니 추워서 다시 내 자리로 들어왔다.
역시나 통로나 계단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시원한데,
방은 후끈거리는 것이 완전히 찜질방에서 자는 느낌이다.
다시 누웠는데, 피곤해서 곧바로 잠이 좀 깊이 들어 갈 무렵..
새벽 2시 30분쯤에 주변에서 전반적으로 움직이는 낌새가 느껴진다.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야간산행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나역시, 여기까지 이 고생하며 왔는데, 천왕봉 일출을 놓쳐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그들과 함께 배낭짊어지고, 산장을 나섰다.

[제 4 부] 천왕봉 일출을 향하여..
- 비록 일출은 못봤지만, 연하월경을 보다 -
 
그렇게 세석산장에서 칼잠을 잤지만,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잤기에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 30분까지 정말 깊게 꿀잠을 잤다.
한 20분 정도 후다닥 떠날 채비를 마치고, 2시 50분에 세석산장을 나섰다.

 
세석평전을 올라가는 길에서.
세석산장이 안개에 덮혀 있어, 판쵸우의를 입었는데,
올라가다 보니, 안개가 걷히고 오히려 더워서 곧바로 벗었다.

 
촛대봉(1704m)에서 한 컷.
사실은 밝은 달을 배경으로 찍은 것인데,
카메라 플래쉬 반짝 하는 바람에 사라지고 말았나 보다.
그것도 그렇고 왼쪽 편에 달빛을 받고 서있던 바위는 어데로 간 것인지?
나의 디카는 밤만 되면 이렇게 무능력해져 가지고는..
빨랑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어진다.

 
결국 그날밤의 밝은 달의 모습을 잡기 위해 플래쉬를 터트리지 않고 밤하늘의 달을 찍어보았다.
달이 둘로 나누어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찍을 때 흔들려서 그렇게 보이는 듯 하고,
그 날밤에 보았던 달은 더도말고 덜도 말고 완전한 동그라미 보름달이었다.
워낙 달빛이 밝으니, 위에 나뭇가지가 가리지만 않으면 랜턴 빛이 없어도 길이 훤히 보이고,
멀찌감치 있는 바위와 봉우리 윤곽이 뚜렷하게 보였다.
특히나 연하봉을 오를 적에는 달빛 속의 산행이 절정에 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경치를 연하선경이 아닌 연하월경이라 칭한다.
연하선경은 세석고원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 주변으로는 청암절벽이 솟고
철따라 기화요초가 만발하는 꿈같은 절경이 펼쳐지는 지리 10경 중의 하나이다.
탁 트인 전망, 기암괴석, 주변의 기화요초와 고사목,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천연의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참고로, 아래 사진은 3년전 지리산 종주 때 찍은 연하봉 배경사진으로
연하봉 가는 길에 달빛이 비추어지면 얼마나 환상적일지 가히 미루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담부터 시작되었다. 허걱. 장터목에 다다를 때쯤에 밀려오던 구름이
점점 짙어지더니 나중에는 시야확보가 어려워질 정도가 되었다. 
천왕봉 일출에 대한 환상이 점점 깨어지려고 하는 순간이다.
일단, 천왕봉을 올라가기 위한 관문인 장터목산장에 04:15에 도달했다.
세석산장을 떠난지 1시간 25분만이었다.
달밤에 이 코스를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 환상적이고 좋았지만,
장터목 이후부터 천왕봉 오르는 길에서는 수많은 야간산행 멤버들이 늘어서서,
등산로가 정체되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구름의 농도는 더더욱 짙어만 가고,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통과할 때쯤 되어 날은 이미 밝아져 있다.
꿈에도 그리고, 그렇게 오매불망했던 천왕봉에 올라서다. (05:10)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봉우리를 점령한 이후였다.
일출구경하기 좋은 사이트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차지가 되었고,
나는 힘들게 비집고 들어가서, 천왕봉 표지석을 한번 잡아볼 수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리산은 구름속에 뒤덮혀 있었으며, 엄청난 바람이 불어서, 무진장 추웠다.
여기서 좋은 자리 하나 잡고서, 동쪽하늘을 열심히 바라보았건만,
운무에 쌓인 봉우리 모습만이 눈앞에 들어올 뿐. 붉은 기운 조차 보이지 않는다.
 
30분을 그렇게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려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지리산 정통종주의 마지막 코스 대원사 하산길을 향했다.
(천왕봉 떠난 시각 05:40)

[제 5 부] 너무나 길고 길었던 대원사 하산길.
- 종주가 끝나는 그 마지막 한순간까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다 -
 
천왕봉 정상에서 시작된 운무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내려가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어쩌면 땡볕의 날씨보다 이런 날씨가 덥지는 않으니,
더 좋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조망이 안 좋으니 아쉬운 점이 더 많다.

 
남한의 지붕 천왕봉과 높이차이가 불과 40m밖에 안나는 고봉인 중봉(1,874m)에서 한 컷.
역시나 하산길이 워낙 길어서 그런지. 이 길을 택한 사람이 드물어서,
내려가는 길에는 사람구경을 많이 하지 못했다.
하산하는 마당에도 무슨 놈의 봉이 그렇게 많은지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남은 힘을 몽땅 소진하게 생겼다.
그래서, 대원사 하산길을 정통 종주길로 택했나 보다.
세석에서 아무것도 안먹고, 천왕봉까지 내달린데다가 물도 떨어져서,
천왕봉과 4km 떨어진 치발목 산장에 이르는 길이 무척이나 힘든 길이었다.
빨리 산장이 나왔으면 하는 나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길은 왜 이리 힘겹고 멀기만 한지.
배고픔과의 전투에서 패하여 쓰러져 가려고 할 즈음.
그런 내게 천사표와도 같은 치발목산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와우! 이제는 살았다.  (도달시각 07:20)

 
치발목산장은 여느 다른 지리산 산장에 비해 깔끔하면서도, 이용객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내가 이번에 지리산 종주하며 보았던 산장중에 가장 한적한 곳도 바로 여기 치발목 산장이었다.
여기에 다다르니, 구름은 온데간데 없고, 날이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여기 산장은 다 좋은데, 샘터가 멀다.
물 구하려면 100미터 거리를 내려갔다 올라와야 하니, 물 가지러 갈 때마다 귀찮아지는 곳이라
아무래도 물을 아껴쓰게 된다.
치발목 산장에서 내가 가진 먹을 것을 모두 꺼내었다.
컵라면 1개, 햇반 1개, 고추참치캔 1개. 이것이 전부였고,
그나마 햇반과 고추참치는 전날 세석가는 길에서 얻은 것이다.
여튼 먼저 컵라면을 끓여 먹고, 그담에 햇반을 그 컵라면 국물에 말아서,
고추참치를 반찬삼아 먹는데, 옆에서 초라하게 먹는 내 모습이 딱해보였는지.
김치랑 반찬거리 몇개 먹으라고 주셨다.
여기서 한시간동안 넉넉하게 먹고 나니 힘이 불끈 솟는다.(08:20 치발목산장 출발)
그 다음 목적지는 무제치기 폭포. 산장에서 1.1km 거리에 있는 곳으로.
표지판을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곳이다.
등산로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등산로에서 이탈하여 약 100미터 내려와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허걱, 셀프샷 NG!
카메라 고정 시키는데만 한참 걸려서 고생했는데,
촬영지점까지 뛰어가서 폼잡을려고 했는데 그 순간 찰칵!..
무제치기 폭포가 워낙 큰 폭포라 카메라 하나에 잡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이제는 풍경사진. ^^
2단, 3단 물줄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사진구도를 잘못 잡은 듯 싶다.

 
내려오는 길에 보았던 나뭇잎 약수터.
치발목 산장이후, 정말 징하게 내려왔는데도,
여전히 아직 멀었다. 내 다리는 이제 걷다가 지쳐서 골병들 지경이었다.
다른 하산길 같으면, 거리상 5-6km이므로, 빨리 내려오면 2시간, 늦어도 3-4시간이면 충분한데,
여기는 하산길이 12km에 달해 다른 하산길이 끝났을 시간에 여전히 온만큼 더 가야 하며,
계곡을 한번 붙었으면 그 계곡 끝까지 따라 갈 것이지,
가다가 또 다시 산등성이를 넘어 다른 계곡이 시작되고, 또 그 계곡 따라 내려가는
멀고도 먼 길이었다. 이가 갈리는 이 길. 그래서 그런지 이 길을 따라 올라오는 이도 정말 드물다.
여튼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계속해서 내려 가다 보니, 유평리 마을이 나왔다. (10:30)

 
이곳에서 부터 콘크리트, 아스팔트 포장길이 시작되며, 너무 너무 지루한 길이다.
대원사 입구까지는 여기서 걸어서 20분, 매표소까지는 50분이 소요되는데,
이 3km가 넘는 포장길을 끝까지 걸어갔으니, 이 길에 아주 치가 떨린다.
결국 대원사 매표소까지 도착하니 11시 20분 이 되었다.
이로서 화엄사와 대원사를 잇는 정통종주 완성!
더구나 나는 반야봉을 추가하였으니, 더욱더 값진 지리산 종주산행이었다.

 
포장된 길 옆으로는 대원사 계곡이 자리잡고 있어, 많은 피서객들이 여기에서 더위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매표소에서 쓰레기 되가져 내려온 것 반납하고,
쓰레기 가져온 사람 이름 적는 란에 주소랑 연락처랑 적어놓고 나니 뿌듯하다.
내가 만든 쓰레기는 하산하는 길 끝까지 들고 내려오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홍보를 해야 하다니. 요즘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문제가 많다.
 
매표소 바로 옆에 주차장이 있고, 이곳에서 진주, 부산, 마산 가는 버스를 탈수 있다.
진주까지 가는 버스는 한시간에 한대씩 있으며, 막차는 저녁 7시 5분이고, 가격은 3,900원이다.
그리고, 대전 돌아오는 것은 대원사 버스 내린 터미널에서 바로 있으며,
차는 30분 간격으로 있고, 가격은 9,000원. 대신에 우등고속이라 편하게 올 수 있다.
대전 동부 터미널에 떨어진 시각이 오후 3시 47분.
이로써 화려했던 지리산 종주 산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