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시계종주 산행기에 앞서 ◈ 
                                                                                 
(대전시청 자료 참조)
 
 
<대전의 연혁>

 


현재의 대전지방은 행정구역의 변천이 여러 번 있었다. 대체로 백제 때에는 우술군, 신라 때에는 비풍군, 고려 때에는 회덕현·유성현·진잠현에 속한 지역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공주목하의 회덕현·진잠면으로 큰 변동없이 계속되어오다 고종 32년(1895) 지방행정 제도의 개편으로 회덕군·진잠군 지역이 되었다.
 
그후 1914년 3월 1일 회덕군·진잠군과 공주군의 일부가 합쳐져 대전군이 신설되었고, 종래의 회덕군과 회남면 지역(현재 인동, 원동, 중동, 정동, 삼성동)을 중심으로 대전면이 신설되어 이 지역이 현재 대전광역시의 모체가 되었다.
 
그후 대전면에서 대전읍, 대전부가 되었다가 1949년 8월 15일 대전시가 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덕군 전역을 편입하면서 대전직할시가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대전의 행정구역은 대전부가 1949년 대전시로 개칭된 때 35.7km2이었고, 1963년에 대덕군 유천면 전 지역과 산내면·회덕면 일부가 편입되어88.21km 이었으며, 1983년에는 대덕군 회덕면·유성읍 전역과 구즉면·탄동면·기성면·진잠면 일부가 편입 203.80km2의 면적에 2구 60개 행정동으로 시세가 확대되었다.


 


 


  <대전광역시 소개>


 


면적 : 539.84㎢
인구 : 140만 8809명(2001)
인구밀도 : 2,609명/㎢(2001)
가구수 : 45만 489가구(2001)
행정구분 : 5구 76동(법정동 178동)
시청 소재지 : 대전 서구 둔산동 1420
시의 꽃 : 백목련
시의 나무 : 소나무
시의 새 : 까치


면적 539.84㎢, 인구 140만 8809명(2001년 12월)이다. 동경 127°14'~127°33', 북위 36°10'~36°29'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 북쪽으로 충청북도 청원군, 충청남도 연기군, 남쪽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서쪽으로 충청남도 논산시·공주시에 접한다.


남서쪽으로 호남지방, 남쪽으로는 한반도 남부의 중심부를 뚫고 남해연안, 남동쪽으로는 충청북도의 남부를 거쳐 영남지방 등으로 통하는 삼남의 관문으로서 경부선·호남선 등의 철도와 경부·호남 고속도로, 국도가 분기하는교통의 요지이다. 서울까지 167.3㎞, 부산까지는 294㎞, 광주까지는 169㎞ 거리에 있고, 남한의 심장부에 있어 중도라고도 부르며, 현재 건설 중인 대전 지하철도가 완공되면 더욱 편리한 교통지가 될 것이다. 충청 지역 상공업과 교육·문화의 중심도시이다.


인구는 1931년 대전면이 대전읍으로 승격할 당시에는 2만 3284명이었으나1989년 직할시가 되고 난 뒤부터는 대덕구 편입 인구 8만 3494명을 포함하여 105만 1795명으로 증가해 100만을 넘게 되었다. 2001년 12월 31일 현재 주민등록인구가 140만8809명으로 대전시 개편 당시인 1949년 12만 6704명에 비해 11배나 증가하였다. 대전의 인구증가율은 1993년 이후 조금씩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행정구역총면적 539.84㎢ 가운데 유성구가 177.15㎢로 가장 넓고, 인구는 둔산 신도시 건설 등으로 인구가 크게 유입된 서구가 2001년 6월 30일 현재 48만 6575명으로 가장 많으며,기존 도심인 동구지역은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다. 캐릭터는 한꿈이, 마스코트는 꿈돌이이다. 2001년 말 현재 일본의 오다[大田], 미국의 시애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중국의 난징[南京], 캐나다의 캘거리, 스웨덴의 웁살라,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번 등과 자매결연하였다.


 


 


  <세부 구간별 코스 및 도상거리>


 


대전시 경계의 거리는 총 144.4km로서 금강과 유등천, 그리고 대청댐등으로 이루어진 수부(水部)가 34.4km이고 지부(地部)가 110.0km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2002년 12월부터 2003년 4월까지 6구간에 걸쳐 종주를 한 바 있으나 "대충산사" 회원들과 다시한번 같은 코스를 8구간에 나누어 진행을 하려 한다.


1구간 : 대청댐--608번도로(고래뜰마을)--원당이고개--371.5봉--금병산--수양산--
        제1안산교 (도상거리 : 13.8km)
2구간 : 제1안산교--안산산성--우산봉--갑하산--삽재--도덕봉--백운봉--관암산--
        시루봉--동문다리 (도상거리 : 14.5km)
3구간 : 동문다리--조개봉--두마천--1번국도--두계역--두계철교--호남고속도로--
        창평교--우명교 (도상거리 : 16.1km)
4구간 : 우명교--장군봉--장태산떡갈봉--능선갈림길(402.3봉)--357.0봉--안평산--
        안부 (도상거리 : 14.5km)
5구간 : 안부--조중봉--명막산--새고개(635번도로)--유등천--안산--천비산--
        464.5봉--늘남이고개 (도상거리 : 14.5km)
6구간 : 늘남이고개--안산--먹치안부--만인산--추부터널--정기봉--골냄이고개--
        마달령--국사봉--닭재 (도상거리 : 15.0km)
7구간 :  닭재--망덕봉--곤룡재--동오리고개--식장산갈림길--독수리봉--360.8봉--
        마달령 (도상거리 : 11.5km)
8구간 : 마달령--251.0봉--대덕터널--백골산갈림길--꾀꼬리봉--231.7봉--와정삼거
        리--꽃봉--대청댐(방아실) (도상거리 : 10.0km)
      


 


 


 


  ◈ 대전시계종주 1구간 ◈



▶ 산행일자 : 2004년 2월 22일(일요일)
▶ 산행지 : 대전시계종주 1구간(금강~금병산~수양산~제1안산교)
▶ 소재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 충남 연기군 금남면
▶ 지  도 : 2만 5천분의 1(금남) / 5만분의 1(대전) 


 


▷ 총소요시간 : 8시간 07분(09 : 58~17 : 05)
▷ 실제산행시간 : 7시간 06분
▷ 산행중휴식시간 : 1시간 01분(식사시잔 포함)
▷ 도상거리 : 13.8km
▷ 실제거리 : 18.6km


 


▶ 구간별 소요시간 : 608번도로(08:58)--(35분 산행/휴식 0분)--(09:33)
           금강변(09:43)--(38/10)--(10:21)608번도로--(34/0)--(10:55)
           수침교--(29/0)--(11:24)덕진재--(38/30)--(12:32)새터골고개
           --(1:22/0)--(13:54)옥당봉(14:00)--(38/6)--(14:38)창덕봉(노
           루봉)(14:43)--(45/5)--(15:28)정자(15:33)--(1:27/10)--(17:05)
           제2안산교
▶ 구간별 거리 : 608번도로--(3,120보/2.0km)--금강변--(6,340보/2.1km)--
           수침교--(8,710보/1.5km)--덕진재--(12,490보/1.4km)--새터골
           고개--(17,500보/3.3km)--옥당봉--(20,460보/1.9km)--창덕봉(노
           루봉)--(23,250보/1.8km)--정자--(28,600보/3.5km)--제2안산교



▷ 날  씨 : 오전에 비가 내리다 진눈깨비로 변함, 오후 늦게 갬.
▷ 동행자 : 뫼꿈이, 놀며쉬며, 단무지, 근자, 황태자, 풍선, 문병환, 가이아,
            강산에
▷ 이  동 : 신탄진⇒고래뜰마을(대평리행 725번버스, 08 : 30분 신탄진 출발)
            제2안산교⇒유성(104번 좌석버스)


 


 


       【 산행후기 】


 


07시에 집을 출발한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약간 소강상태를 보인 듯 하지만 첫구간을 가면서부터 그것도 아직은 늦은 겨울철에 비를 맞고 가기에는 다소 부담이 된다. 홀로 산행을 하는 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여러 회원들을 위하여 가는 산행이기에 약간 마음이 무거움을 느낀다. 걸어서 청주백화점에 도착하니 단무지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아직 약속시간은 5분전이지만 일찍 나오신 것이다. 24시 김밥집에 들러 김밥을 몇 줄 사서 배낭에 넣고 신탄진역에 도착하니 이미 만나기로 반가운 님들이 모두 나와 계시다.



인터넷 검색에서 신탄진에서 첫차가 06시 출발이고 배차간격이 120분이라 되어 있는데 막상 정류장에 도착하니 배차간격이 140분으로 되어 있고, 30분을 넘게 버스를 기다리나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5분만 더 기다려 보고 버스가 오지 않으면 택시를 이용하자고 의견을 모으니 그렇게 오랬동안 기다리던 버스는 금새 모습을 나타낸다. 버스에 올라 기사님한테 배차간격을 물으니 150분이란다.
텅빈 버스는 우리 대전시계 종주팀이 전세를 놓은 듯 일행 8명을 태우고 송강(봉산동)에 도착, 근자님과 합류를 하여 시경계 마을인 박산리 고래뜰마을에 08시 55분에 도착을 한다.


 


08시 58분, 첫 출발지인 금강변으로 가기 위해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강변 시발점까지는 도상거리 1.8km정도를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608번 도로상에 경계표지판과 깃발을 뒤로하고 고래뜰마을 입구로 들어서 민가를 끼고 소롯길을 따르니 논밭이 나오고 진행하여야 할 능선에 눈앞에 나타난다. 처음 만나는 농지에서 왼쪽 밭둑길을 따라 진행하여 앞으로 보이는 지능선의 끝자락에 여러기의 묘들이 보이는데 묘를 오른쪽에 끼고 왼쪽으로 올라서면 뚜렷한 길이 나타난다.  
한동안 진행된 등로는 왼쪽으로 완만하게 휘어져 밋밋한 둔덕에 이르자 오른쪽 아랫녹골마을에서 올라서는 길과 만나고 진행하는 방향으로 꾀꼬리봉(△271.9m)이 뽀족하게 올려다 보인다. 



낮으막한 둔덕을 또 하나 넘어서자 왼쪽으로 배밭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로는 오밀조밀한 다랭이 논이 자리하고 우마차로를 만나 왼쪽으로 진행하여 계곡을 따르니 잡풀지대는 계속된다.
안부를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니 철탑을 세우기 위해 닦아놓은 도로인듯 희미한 흔적이 보이고 좀 더 내려서니 왼쪽에서 아랫쪽으로 내려선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고 도로를 따라 약간 진행하니 건물이 한 채 보인다.


09시 33분, 금강변에 도착한다. 도로변에는 "금동양수장" 건물이 있고 금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1차선 아스팔트 포장길이 이어지고 양수장 건물 한켠에 쉬어갈 수 있는 벤취가 있고 강 건너편으로는 아세아제지 건물이 보이고 발 아래로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쉼터에서 막걸리를 한순배씩 돌리며 데전시계 종주의 첫 출정식을 대신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금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아시아제지건물>



 


  <시발점앞의 금동양수장 건물>



 


  <기념 단체사진>



 


  <금강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꾀꼬리봉>



 


 


  <608번 지방도로의 시경게지점>



 



09시 43분, 비로소 대전시계의 첫 발을 내딛는 뜻깊은 시간이다. 608번 도로인 박산리 고래뜰 마을까지는 지나온 길을 역으로 진행하면 된다.


10시 21분, 608번 도로를 출발한다. 농로를 따라 진행하면 왼쪽으로 콘테이너 가설물이 하나 보이고 오른쪽 아래로는 기와집 민가가 한 채 내려다 보인다.
일구어 놓은 밭을 통과하여 앞으로 보이는 묘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약간 올라서자 갈림길이 나오며 오른쪽으로 10여미터 오르자 "진주강공정희지묘"가 있고 좀 더 나아가자 능선이 되면서 T자 갈림길을 만난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30여미터 나아가면 길은 왼쪽 아래롤 내려서고 시계는 오른쪽으로 난 희미한 소롯길을 따라 진행하여 정수리부위에서 방향을 남남동쪽으로 잡고 내려서면 "진주강씨석준지묘"를 지나 지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여러기의 묘를 만나고 이어서 하천과 논들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나아가야할 방향을 잡고 내려서니 다랭이 논을 한참 경지정리를 하는 중인지 불도져가 굉음을 내며 작업을 하고 있다. 질퍽거리는 논두렁을 통과하여 하천을 따라 진행하니 수침교가 나온다.



10시 55분, 수침교를 건너 신발에 덕지덕지 묻었던 흙을 냇물에 씻어내고 바로 앞으로 보이는 묘 길을 따라 올라서 여러 기의 묘를 지나자 잡목구간이 잠시 이어지고 다시 소롯길이 나타나며 ×106봉을 지나 소롯길은 왼쪽으로 꺾어져 내려서고 시계능선은 소롯길과 직진하는 능선 사이로 흐릿하게 이어져 약간 내려서면 도로가 나온다.


11시 24분, 덕진재 도착이다. 덕진재는 연기군 금남면 달전리와 대전광역시 유성구 둔곡동을 잇는 2차선 포장도로로 연기군 이정표가 있고, 이곳으로는 722번 시내버스가 통과를 한다.
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올라 묘가 서너기 보이는 묘 뒤로 따라 올라서면 시계능선은 이어지고 잘 조성된 창녕성씨 묘를 지나 묘 길을 따라 진행하여 +자 안부를 지나면 왼쪽으로 과수원이 보인다. 오락가락 하던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좀 이른 시간이지만 잔디가 잘 자란 묘 한 켠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뫼꿈이님이 준비하여 온 홍어회와 근자님의 어머님이 직접 농사를 지으셨다는 복분자를 반주 삼아 하는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은 내리는 비 마저 친근하게 느껴진다. (식사시간 11 : 38 ~ 12 : 08)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하여 5분여 진행후 남서쪽으로 향하던 시계능선은 왼편(남쪽)으로 꺾어져 진행을 하여야 하는데 갈림길 자체가 흐릿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약간 진행하면 뚜렷한 +자 안부를 하나 지나고 다시 12시 32분 +자 안부인 새터골고개에 도착한다. 고개를 지나 두 번째 무명봉에서 등로는 남서쪽으로 휘어져 내려서고 다시 안부를 하나 지나면서 시계능선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밋밋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올라서자 등로 오른쪽으로 가깝게 임도가 지나고 이후 꾸준하게 오름길이 13시 13분 ×229봉에 이르니 철탑이 있고 철탑을 지나 소나무 군락지대를 통과하자 오름길이 조금씩 가파라지면서 무너져 가는 묘를 1기 지나자 다시 잡목지대가 이어지고 이제부터 등로는 된비알로 가파른 숨을 몰아 쉴 만큼 한동안 계속되고 내리던 비는 어느새인가 진눈개비로 바꿔면서 급기야는 눈으로 변하여 내리기 시작한다.
된비알 길을 지나 능선분기점에 닿자 이제부터는 등로가 평평해지면서 등로와 능선이 뚜렷해지기 시작하면서 금병산줄기가 길게 이어진다.


 


  <수침교를 지나며>



 


  <수침교에서 바라본 내려온 능선>



 


  <덕진재고개>



 


  <잘 조성된 함양성씨 묘소>



 


  <금병산 오르는 길>



 


13시 54분, 옥당봉(제5봉)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묘가 1기 있고 이곳에서 시경계는 오른쪽(남서쪽)으로 이어지고 왼쪽(동남쪽)으로는 △346.3봉을 지나 제2봉 일광봉(용바위고개)로 진행된다.
이곳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든다. 계속적으로 비와 눈이 내린 탓으로 식사시간 이외에는 달리 휴식시간을 가질 기회가 없다.
6분여의 휴식을 마치고 옥당봉에서 10여미터 내려서자 "군사보호구역"이라 쓴 표지판이 있고 이정표(←아파트 2.4km, 금병산 0.4km, ↘수운교 1.5km)가 있다.
이제부터 등로는 고속도로다. 약간 진행하여 첫번째 봉우리에 도착하자 "제6 연화봉"이라 쓴 표지석이 있고, 다음봉인 △371.5봉에 도착하자 삼각점이 있고 "제7 문수봉" 이란 표지석과 나무의자 하나 그리고 "금병산(해발 372m)"란 안내판이 있다.
본래 이곳에서 동남쪽으로는 시야가 확 트여 발 아래로 자운대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자욱한 가스로 인하여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 내려서자 삼거리가 되며 이정표(↓수운교 1.5km, ←아파트 2.0km, →금병산 0.2km)가 보인다. 조금씩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14시 38분, 금병산 노루봉(제12봉 창덕봉)도착이다. 정상직전에는 노루봉에 대한 안내판이 있고 정상부는 삼각점 비슷한 표식이 있고 진행해야 할 방향에는 군초소(국방과학연구소)가 자리하고 2중으로 높은 철조망이 쳐져 있다.


 


  <금병산 노루봉의 유래>
『재일이란 나무꾼이 포수에 쫒긴 노루를 구해 주자 노루가 그 답례로 명당 자리를 안내해 주었는데 그곳에 그 부친의 묘를 쓰자 재일네 집에는 소가 송아지를 세 마리씩 낳고 농사도 몇 배 잘 되는 등 매사 잘되어 큰 기와집 짓고 장자로 살았다 함. 노루가 명당처를 잡아 준 산이라 하여 노루봉이란 이름을 얻음』


 


 수운교에서 이름지은 금병산 구간의 봉우리 명칭
(제1봉 옥련봉 / 제2봉 일광봉 / 제3봉 공덕봉 / 제4봉 도덕봉 / 제5봉 옥당봉 / 제6봉 연화봉 / 제7봉 운수봉 / 제8봉 출세봉 / 제9봉 감찰봉 / 제10봉 현덕봉 / 제11봉 대법봉 / 제12봉 창덕봉)


 


  <금병산 능선을 걸으며>



 


 


  <제5봉 옥당봉에서의 휴식>



 


 


  <수운교에서 세운 표지석>



 


 


  <금병산 정상부>



 


 


  <노루봉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국방과학연구소 철조망 구간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이곳에서 지난번에 진행할적에는 철조망 오른쪽으로 내려서 안부에까지 진행을 했으나 잡목과 가시덩쿨이 너무 많고 녹아 내린 눈으로 옷이 모두 젖은 탓에 하는 수 없이 오른쪽 금천리쪽으로 탈출을 한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을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고 또한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이곳을 다시 지날지도 모르니 이번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통과를 하여 그곳의 상태를 확인하여 보고 싶었다.
그러하기에 하는 수 없이 진행하는 팀과 자운대쪽으로 탈출하는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하고 근자님, 풍선님, 황태자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진행을 하고 나머지 다섯명은 자운대쪽으로 탈출하기로 하고 해어진다.
철조망을 왼쪽에 끼고 오른쪽으로 20여 미터 진행을 하자 가시텅쿨이 꽉 들어차 헤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하는 수 없이 오른쪽으로 사면길을 잡목을 헤치고 무조건 치고 내려선다. 어차피 가기로 했으니 고생을 할 것은 당연한 것이다. 누군가 한번은 지나가 봐야 갈 수 있는 길인지 아니면 정말로 잡목과 가시덩쿨로 통과하기에는 부적합한지를 판단할 것이다.



안부를 지나자 철조망 옆으로 희미한 길흔적이 보인다. 다행히 재작년 12월에 진행할 때 보다는 등로가 양호한편이다. 북서쪽으로 올라서 둥굴게 남서쪽으로 철조망이 휘어져 진행되고 철조망 아래 20여미터 부근으로 희미한 길 흔적은 연연히 이어진다. 수양산 지점을 통과할 때가 되었지만 9부 능선을 지나기에 능선이나 정상을 확인하고 못하고 진행을 한다.


한동안 진행하여 15시 28분, 정자와 석탑을 만난다. 오래 전에 지어진 듯한 건물이지만 첫 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건물을 지은 형상이며 칠하여진 단청의 모습으로 보아 절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든다. 5분여의 휴식을 뒤로하고 바로 아래에 있는 묘를 지나 건너편으로 바라다 보이는 철조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여러번의 골짜기를 지나 다시 철조망에 이른 즈음 뒤따르던 일행이 "저것좀 보라"하기에 뒤돌아서 바라보니 건너편으로 직선거리 100여미터 거리에 3층여 높이의 불상과 불상을 에워싸고 기둥을 세워 지붕을 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저것이 무엇일까 자못 궁금하지만 갈 길이 멀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진행하기 시작한다.


 


<2월 24일 퇴근을 하여 다시 그곳을 찾는다. 금남면에서 유성으로 진행을 하다 감성초교를 지나 축산리(봉천)에서 안봉천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이 끝나고 다시 시멘트 포장길과 비포장길을 번갈아 1.5km여를 진행을 하면 "관자재암(구 대광사)"란 아담한 절이 나오는데 절을 지나 올라서면 만나볼 수 있다. 확인하여 본 결과 그 불상은 미륵불이며 바위의 질이 좋지 않아 문화재의 가치로서는 부족한 것 같다.>


 


결국 조금전에 보았던 정자도 암자의 일부분인 것 같다. 정자 아래 부분에 미륵암이 있고 다시 그 밑으로 암자(관자재암)이 있느니...
가던길을 재촉한다. 다시 밋밋한 능선길 우회로는 게속되고 북동쪽으로 진행되던 등로는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직진길은 △293.3봉을 향하여 나아간다.
능선갈림길에서 약간 내려서 세재를 지나고 오른쪽으로 약간 휘어지며 진행을 한다. 주위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능선을 올려다 보면 보이는 것인 철조망뿐이고, 그래도 철조망으로 인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파악이 되지 않지만 다행히 293.3봉이 있어 그 봉우리를 기준점으로 방향을 잡고 현재위치를 파악한다.
다시 등로는 293.3봉을 뒤로 하고 남서쪽으로 진행을 한다. 이제 얼마가지 않으면 거칠메기고개 하산로가 된다. 지난번에 시계종주를 하면서 첫 구간을 금병산노루봉에서 금전리로 탈출을 하였을 때에 혹시나 하여 거칠메기 고개에서 일정구간을 거꾸로 진행하여 본 경험이 있기에 철조망 갈림길지점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곳에는 초소가 있었기에 다행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한동안 진행하자 능선위로 초소가 보인다. 갈림길에 표지기를 매어 달고 내려서는데 근자님이 허기가 져 진행을 못하겠다며 간식을 들고 가잔다. 잠시 3분여 휴식을 취한다. 철조망 갈림길에서 약간 내려서면 곧 바로 잘 조성된 여러 기의 묘가 나오고 건너편으로 거칠메기 고개를 건너 여수비탈산이 도로 굴착작업으로 인하여 흉물스런 모습으로 뱃가죽을 드러낸 채 드러누워 있다.


16시 52분, 거칠메기 고개에 도착한다. 거칠메기 고개는 1번 국도상에 있는 것으로 새로이 조성된 4차선 도로이다. 차량이 뜸한 틈을 타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건너편으로 있는 도로공사중 장비보관소이자 골재장 안으로 들어서니 휴일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고 골재장을 지나 약간 내려서니 안산천이 흐르고 비가 내린 탓에 불어난 물로 인하여 놓여진 징검다리가 물에 찰랑찰랑 덮힐 듯 말 듯 한다.
신발에 묻었던 흙을 물에 씻어 내고 마을길을 따라 5분여 진행하니 예전 구길을 만나며 "만년기업사"란 안내판이 보이고 곧 바로 안산 제2교가 된다.



17시 05분, 안산 제2교에 도착하여 대전시계 첫구간을 무사히 마친다. 안산동쪽으로 진행을 하여 버스정거장에 이를 즈음 버스(104번 좌석버스)가 도착하여 유성으로 향한다. 유성에 있는 할머니 순대집에서 탈출팀과 만나 막걸리 한잔으로 첫구간의 마감을 자축하며 간단한 뒷풀이로 첫구간을 마무리한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철조망과 초소>



 


 


  <산속에 묻혀 있는 정자>



 


 


  <정자 아래에 있는 미륵불>



 


 


  <미륵불과 정자를 끼고 있는 관자재암 모습>



 


 


  <뱃살을 드러낸 여수비탈산과 거칠메기고개 절개지>




  <거칠메기 고개>



 




▣ 유종선 - 안녕하세요? 기여코 미답사 구간을 해결하셨군요. 수양산 구간은 담장 바로 옆으로는 도저히 못 가겠고, 약간 아랫쪽 사면을 성긴 나무 사이로 전진할 수밖에 없겠더군요. 이제부터는 평안한 산행이 이루어지겠네요.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 강산에 - 유종선님, 반갑습니다. 관심가져주심에 감사드리고 저는 언제나 님을 따라 갈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아마 그것은 평생 힘들겠지요. 짧은 시간 근교산을 꾸준히 이어가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은잠 - ♡ 강산에님..항상 님의 산행기 보고있습니다.전에 하신 대전시계종주도 읽어보았지요.이번에 시작하신 종주도 잘 마무리하시기를 빌어드립니다 .화이팅~!!!!!!
▣ 김정길 - 사진으로 사랑하는 아우님의 환한 얼굴을 보니 반갑고 빙긋이 웃음도 나오는구려, 유명한 산님들과 시계 8개 구간 다시 시작하셨으니 즐거운 산행이 되겠네 그려, 나는 경북 동남지역 4일산행 후 26밤 어렵게 귀가하여 이재야 방문하니 늦어서 미안하네. 건강관리! 안전산행! 강산에 화이팅!!!
▣ 신경수 - 강산에님 안녕하시죠 사진으로나마 보게되니 그 또한 반갑습니다 대전시계종주 무탈완주 기원드리며 저 또한 언젠가는 그 길을 갈 것 입니다
▣ 강산에 - 은잠님, 이곳에서 뵈니 더욱 반갑네요. 기회가 되면 산에서 뵙기를... 김정길선배님 1500산 무탈하게 이루시길 기원하고 건강하시길... 신경수선배님 우리의 산줄기를 따르는 선배님이 부럽습니다. 안전산행 하시고 건강하시기를..
▣ manuel - 시계종주 무탈하게 이어가시고 건강하세요. 뵌 적은 없어도 늘 뵙고 있듯이, 그 기록들과 함께 제 산행록에 고맙게 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