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북에서 남으로 갈라치기 ???]

산행일자 : 2004 , 5. 23 (일)
산행구간 : 구인사-적멸궁(수리봉)-뒤시랭이문봉(964봉)-1244봉-민봉-신선봉-
                상월봉-국망봉-비로봉-비로사 3거리-원적산- 죽계구곡 8곡-매표소
산행인원 : 추억의 백두대간팀 16명.
날      씨 :  맑음.


17차 산행이 고치령-죽령 이었지만 국립공원인 소백을 그냥 한방에 보내는 것이

 아까와 사찰 탐방을 겸한 산행길을 잡아 구인사로 산행 깃점을 잡는다.
양재동 모임의 장소에 언제나 반가운 추백팀의 모습과 예상치 못한 돌양지님의

모습이 함께 보였다.


구인사에 대한 글을 잠깐 퍼서 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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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으로, 1966년에 현대식 콘크리트조(造)로 지은 이색적인 건물이다. 한국 천태종의 중흥조(中興祖)인 삼척 출신의 상월원각(上月圓覺:속명 朴準東)이 1942년
중국 티베트 등지에서 곤륜산(崑崙山)·오대산(五臺山)의 문수도량(文殊道場)과 아미산(峨嵋山)의 보현성지(普賢聖地) 등을 순례하고, 광복 후 귀국하여 1946년 소백산에 들어가 구봉팔문(九峰八門)의 연화지(蓮華地)를 찾아 천태지관(天台止觀)의 터전을 닦기 시작하였다.

그뒤 급성장하여 대가람(大伽藍)으로 발전하였는데, 이 절에는 5층 높이에 900평 넓이의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법당, 135평의 목조강당인 광명당(光明堂), 400평의 3층으로 된 총무원 건물과 30칸의 수도실인 판도암(辦道庵), 특별선원인 설선당(說禪堂) 등이 있으며, 불사(佛舍)와 침식용인 향적당(香寂堂) 등 편의시설까지 50여 채의 건물이 있다. 또 사천왕문에는 국내 최대의 청동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태고종단은 염불(念佛) 중심의 의례종교를 탈피하고, 생활 속에 자비를 실현하는 생활·실천 불교를 지향하며, 주경야선(晝耕夜禪)으로 자급자족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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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규모가 크다는 것은 일주문을 들어서며 바로 알 수 있다.


05:10 아래 주차장
버스가 멈추어 선잠을 깨며 산행 준비를 마치고 밖을 나와 보니 아래 주차장이다.
아스팔트를 따라 조금 오르니 구인사를 알리는 거대한 돌 입간판(?)이 서 있다.

대부분의 안내 산행이나 구인사를 깃점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오르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기념 사진을 한방찍고 구인사를 통해

수리봉(구인사에서는 적멸궁 이라 부름) 에 오른후 구봉팔문의 뒤시랭이문봉(964봉)을 거쳐 1244봉에 오르기로 한다.

아스팔트 걷기가 부담이 되어 버스를 불러 다시 위 주차장까지 버스로 이동한다.
위 주차장은 버스 종점이기도 하며 일개의 사찰에 버스 종점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구인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큼직한 일주문을 들어서며 마침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연등이 온 사찰을
장식하고 있어 보기 좋다. 일주문 보다 규모가 더 큰 천왕문을 통과하니 대법당이
눈에 들어오며 일반 사찰과는 달리 몇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법당이 흥미롭다.


구인사 일주문



구인사 천왕문



구인사 연등 사이를 오르는 돌양지님과 대법당


양쪽 사찰 건물(?) 사이로 계속 오르면 황금빛의 대조사전을 볼 수 있으며 좌측 산 사면에
이어진 길을 따라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대조사전 소개하는 퍼온글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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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높이 27m 3층 다포집. 외양은 3층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바깥으로 9포, 안쪽으로 13포라 시각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실내로 들어서면 닫집(불대 위에 만든 집모양) 의 화려함이 본체를 압도할 정도다. 만든 사람들도 화려하다.
무형문화재 대목장인 신응수씨가 총지휘를 맡았다. 역시 인간문화재인 소목 조찬형씨와 특수 금빛 기와를 개발해 낸 기와장 오세필씨, 단청을 그린 전창우씨 등이 모두 최고의 장인들이다.
신씨는 "이런 건물은 전무후무할 것" 이라고 단정한다. 건물에 사용된 태백산 적송(춘양목) 을 앞으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최고의 목재인 춘양목, 그것도 3백년 이상 된 곧은 나무들을 50만재나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침 정부에서 공공목적으로 구해 놓았던 나무가 계획 차질로 고스란히 남아 이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둥은 높이 27m에 어른 두 사람이 싸안아야 할 정도로 굵으면서도 올곧다. 태백산 줄기를 아무리 뒤져도 이같이 많은 춘양목을 찾기도 힘들고, 벨 수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구한 나무가 혹시 휘거나 삭을까봐 옻칠을 12번이나 거듭해가며 말린 다음 금가루를 섞은 단청을 그려넣었다.

서까래마다 연꽃이 빼곡하고 골마다 아라한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문짝에 단 문고리와 경첩 외에 쇠붙이는 한 조각도 쓰지 않았다.
'황금기와' 도 세계에서 유일하다. 독실한 불교도인 기와장 오세필씨가 16년 전 대조사전 건립을 처음 구상한 종정스님으로부터 '금빛 기와를 구워내라' 는 특명을 받고 10여년간 연구를 거듭해 내놓은 특허품이다.

청자. 백자용 흙을 섞어 반죽하고 표면에 특별한 유액을 발라 1천3백도의 고온에서 구워 금빛 꽃모양의 반점이 기와의 표면을 뒤덮게 만든 것이다. 고온에서 구워낸 기와는 그 자체가 도자기인지라 빛깔이 바래지 않는다고 한다.
10년간 매년 10억원 이상씩 예산이 들어갔다. 이렇게 비싼 목조 건물이 만들어진 것은 천태종이 '종단의 자존심' 을 걸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총무원장 운덕 스님은 "구인사가 골짜기에 자리잡아 모두 철골에 시멘트로 절집을 지었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없다' 고들 해 '제대로 된 목조 건물 하나 만들어 조사를 모시자' 고 마음 먹었다" 고 한다. <야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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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의 대조사전



대조사 불상


대조사전 앞에서 무심코 사진을 찍고 나니 앞마당을 쓸고 있던 스님이 사진을 찍으면
않된다고 하신다 . 그때서야 조사전 앞에 촬영금지란 글씨를 보았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우측의 산길로 접어들어 수리봉(적멸궁)으로 오른다.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길은 나무 계단길로 이어지고 있었고 가끔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구인사에서 며칠간씩 숙식하며 기도하는 신도들이다. 아침 일찍 신성화 되어있는
적멸궁에 다녀 오는 사람들이다.

06:10 적멸궁
아래 주차장에서 이곳 적멸궁까지 꼭 한시간이 걸렸다. 적멸궁이라 하지만 깔끔하게
꾸며놓은 묘지를 생각하면 된다.
잠시 머무른후 계속 이어진 1분 거리도 않되는 구봉팔문 전망대로 향한다.
이곳에서는 구봉팔문을 멋지게 조망할수 있으며 우리가 올라갈 방향의
두시랭이문봉(964봉)이 바로 지척으로 보이고 그 뒤로 민봉과 1244봉이 높게 바라다 보인다.


대조사 스님은 화장을 하지않고 이곳에 매장 하였다.



구봉팔문 전망대에서 본 뒤시랭이문봉(964봉)과 좌측의 민봉, 우측의 1244봉



06:35
전망대 약간 우측의 내림길로 들어서면 안부에 내려서며 임도로 되어 있다.
임도길을 건너 산길로 들어서면 묘지가 한기 나오고 사람이 다닌 흔적은 희미 하지만
등로는 뚜렸하여 길 잃을 염려는 없다.

10여분 후에 두번째 묘지를 지나면 등로는 좁아지고 바위지대가 나오며 바위지대를
우회하면서 등로는 계속 이어지고 산행하는 맛이 뛰어나다.
등로 주변은 온통 취나물이 지천이고 군데 군데 더덕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성기님의
도움을 받아 오늘 처음 더덕으로 심봤다를 외치는 한울타리님이 싱글벙글 한다.

어느정도 더 진행하면 경사가 더욱 심해지고 앞에 바위지대가 가로 막히며
좌측의 좁고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 바위 몇개를 뛰어 넘으면 바위 전망대인
뒤시랭이문봉에 오르게 된다. 임도에서 약 40분 정도 걸린 07:15분 이다.

이곳에서 잠시 조망을 즐기고 1244봉을 향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도깨비님이 준비한 생두부와 양념간장은 산에서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콩나물과 북어를 넣은 시원한 해장국은 쌀쌀한 산속에서의 체온을 덮혀 주었다.
식사 도중 어디서 나타 났는지 왕파리가 날아 다니는데 이곳 처럼 인적이 뜸한 곳에도
왕파리떼가 있으니 이놈들의 천적을 많이 키워야 겠다.

08:35
30여 분의 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이다.
1244봉이 바로 지척인데 길은 우측 사면으로 이어진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뒷사람에게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확인해 보라 하니 이 등로가 맞는것 같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 놓은 작은 다리를 건너고 잠시 진행하니 좌측의 1244봉에서 내려 오는 길이
합쳐지며 삼거리가 나타난다. 뒷분을 포함한 나머지 분들은 정상으로 오르는 길로 올라
봉우리를 찍고 오셨다.

이길을 잠시 따라가면 철망이 앞을 가로 막고 있으며 우측을 보면 철망이 끝난 지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철망을 통과하면 이정표가 있으며 구인사 방향을 1244봉이 아닌
계곡쪽으로 유도해 놓았다.
10여분 후에 좌,우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타나며 민봉은 좌측의 능선길로
들어서야 한다.


철망 좌측으로 넘어가면 1244봉으로 연결되며 이정표는 철망좌측 내리막길로
구인사를 유도 하고 있다.


09:20
주위가 확 트이는 민봉에 올라선다. 소백의 봉우리 답게 낮은 풀들로만 덮혀있고
장쾌한 소백의 능선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마치 지리산의 남부능선상에서
지리의 주능선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다.

오후에는 또다른 각도에서 소백산 능선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지리의 삼정산에서 바라보는 지리 주능선의 조망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오늘은 양쪽에서 소백산을 조망할 수 있었으니 유케이님은 소백산의
태극종주 였었다고 몹시 기뻐하는 모습 이었다.

민봉 정상에는 약초꾼들과 산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운반할 알미늄으로 만든
지게가 5-6개가 놓여 있고 한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그만큼 오늘의 산행은 나물 채취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민봉에서 본 신선봉(좌측끝 바위봉),상월봉(중앙),국망봉(우측)



민봉에서 본 비로봉(좌)과 연화봉(우측 끝)


신선봉으로 가는길은 생각처럼 순하지는 않았다. 몇차례의 굴곡이 지난후에
신선봉을 오를수 있는 삼거리에 도착된다.
이정표 뒤로 올라야 신선봉에 오를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등로 따라
지나치게 되므로 신선봉을 그냥 지나 쳤다고 생각한다.


등로는 이정표 앞으로 나있어 이정표 뒤로 신선봉을
따로 오르지 않고는 그냥 지나치게 되어있다.



신선봉은 3개의 바위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가운데 바위군이 제일 높으며
유명한 바둑판도 새겨져 있다. 지금은 비바람에 많이 지워 졌지만 그래도
흔적은 찾을 수 있었으며 누가 바둑알 5개( 흑돌 2개와 백돌3개)를 올려 놓아
신선이 바둑을 즐기는 상상을 하게 된다.


신선봉에서 본 상월봉과 국망봉




오랜 비바람에 바득판이 지워졌으나 바둑판의 희미한
흔적은 남아있고 누가 흑돌 2개와 백돌 3개를 올려 놓았다



조망을 즐기고 상월봉 방향으로 길을 찾아 보았으나 길을 찾지 못하고 다시
이정표 있는 곳으로 되돌아 오니 10:15 분 이다.
30여분이 지나자 1264봉의 삼거리에 도착되며 이곳이 대간길이 연결 되는 곳이다.
누군가가 이정표를 부숴 땅바닥에 팽개쳐 놓은것을 추백대원이 글씨를 잘 짜맞추어
이정표 아래에 놓아둔다. 이젠 망치와 못까지 들고 다녀야 하나?

11:25
상월봉이다.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초원지대를 보니 이제서야 소백에 온느낌을
받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차피 다음 차수에 고치령-죽령 구간이니 한번 더와야 할 구간이다.



상월봉에서 본 국망봉 방향



상월봉에서 본 민봉(좌)과 신선봉(우)



뒤돌아 본 상월봉



터벅터벅 걸어 20여 분이 지나니 국망봉이다. 주위엔 나물 띁는 등산객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소백산 철쭉을 보러 온 사람들 때문인지 등로가 지체될 정도이다.
마음 같아선 국망봉 아래 초암사로 바로 하산하고 싶은데 아까 신선봉을 지나친
일행이 먼저 비로봉 으로 향한것 같아 그냥 비로봉으로 가기로 한다.

비로봉 일대는 마치 휴일의 도봉산이나 북한산 백운대를 방불케 했다.
일행을 찾느라 소리 치는 사람들과 여기 저기서 마구 펼쳐놓고 식사하는
광경들을 모처럼 보아서 인지 어색하게만 보인다.
주목 관리소로 향하는 길과 멀리 연화봉으로,또 비로사 방향으로의 길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정체가 되어 길게 등산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국망봉에서 본 비로봉



국망봉 정상석



수많은 인파로 덮혀 있는 비로봉



시끄럽고 앉아 쉴 곳도 없어 빨리 내려가려 하지만 빨리 갈수도 없다.
올라오는 사람들에 막혀 내려 갈 수가 없다.
때 맞추어 SBS 헬기가 몇차례 순회하니 비로봉 일대는 정말 멋 있었다.ㅎㅎㅎ


연화봉 가는길


얼마쯤 줄서서 내려가다 적당히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아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아침에 먹다 남은 밥에 물말아 후르륵 먹으니 시원하고 잘 넘어간다.
중간에 많이 지체되어 식사를 마친 시간이 14: 20분 이나 되었다.

먼저 내려 가신님들이 밀목재에서 초암사로 출발한지 10여분 되었다는 소릴 듣고
발걸음을 조금 빨리 한다. 샘터를 바로 지나고 비로사 삼거리에 15:00에 도착된다.
후미를 조금 기다리며 아무 의심없이 이정표에 달밭재라고 쓰여진 방향으로 이동한다.
언덕 정상에 올라 기분 좋게 물도 마시고 가야할 방향을 지도로 정치 하는데
방향이 안나온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방향이 아니다. 그러다면 이곳이 달밭재가 아니고 다른 곳이다.
아까 만난 마을분이 이정표를 잘못 세워 놓았다고 다시 올라가서 가라고 하더니
그말이 맞는 것이다.

15:20
일단 임도따라 가면 계곡이 나오겠지 하곤 임도 따라 내려가다 보니 길이 끊어졌다.
다행히 개를 많이 키우는 집이 한채 있어 초암사를 물어보니 이곳은 길이 없으니
아까 우리가 쉬던 곳에서 우측으로 가서 산을 넘어가면 된다고 한다. 허걱!!!

이때부터 2시간 30여 분의 빨치산은 시작된다.
다시 쉬던곳으로 돌아 오면서 우측의 임도따라 산속으로 들어간다.
임도 이지만 사용 흔적이 없는 풀이 많이 있는 임도다. 오르면서 계속 우측으로
넘어 가는 길에 신경쓰며 드디어 우측 산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길로 접어든다.

흔적이 희미한 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니 이곳도 역시 사람 다닌 흔적은 없지만
능선상 으로의 길은 뚜렸하다.
이미 초암사로의 방향은 어긋나 있었고 지도상의 원적산으로 오르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내려 가는게 더 수월하다고 생각도 든다.
어느 누구도 빽해서 가잔 소리도 안하고 이 산행이 무척 재미 있으며 오늘의
하일라이트라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16:40
먼저 하산한 일행들은 초암사에 모여서 우리 일행을 걱정하고 있었으며
이제서야 월류님의 전화기로 전화통화가 되었다.
우린 원적산에 올랐으며 걱정하지 말고 조금 기다리면 하산 한다고 전했다.


좌측 능선에서 본 원적산


원적산 안부에서 일부가 기다리고 정상에 몇명이 다녀 왔다.
그곳에서도 능선으로 길이 나있었고 잡목때문에 주위는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도면상의 좌측 능선을 하산 능선으로 잡고 좌측 능선으로 진행한다.

17:00
순간 잡목으로 부터의 시야가 확 트이면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소백의 산줄기 모습에
우리 모두는 탄성을 지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민봉에서 바라다 본 소백의 반대편을 원적산 좌측 능선에서 바라보게 되는
그런 행운을 얻게 된것이다.



원적산 능선에서 본 국망봉(중앙)과 상월봉(맨우측)



원적산 능선에서 본 비로봉과 국망봉으로 이어진 능선



원적산 능선에서 본 비로봉과 좌측의 연화봉 능선


좌측으로는 죽계구곡을 흐른 물이 송림지에 모여 이지방 상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우측으론 멀리 풍기 시내가 보인다.
밋밋한 봉우리에  삼각점도 있다. 간식 남은것을 한개씩 먹고 나니 17:45분이다.


죽계구곡에서 흐른 물이 송림지로 모이며
이곳 지방의 상수원으로 쓰인다.



삼각점



산 너머로 풍기시가 흐릿하게 보인다.



여기서 계속 능선상으로 진행하면 안부가 나오고 매표소가 지난 지점으로 편하게
내려올 수 있지만 이젠 고도를 낮추어야 했다.
물론 시간도 아직은 조금 여유가 있고 랜턴등 모두 장비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어둡기
전에는 내려서야 하겠기에 적당한 좌측 능선을 택하여 하산을 시작한다.
최대한 잡목이 없는 곳을 골라 내려 오지만 팔이 긁히고 배낭 옆구리에 찔러 넣어둔
타올도 없어졌다. 고도도 많이 떨어진다.
25분여를 그렇게 내려오니 잡목 사이로 바닥이 보이며 물소리도 들린다.

18:20
묘지 한개를 지나며 묘지 좌측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과수원이다.과수원을 가로 질러
시멘트길에 도착되니 이곳이 죽계구곡의 8곡과 9곡 사이 중간 지점이며 조금 내려가면
매표소이다. 일행과 함께있는 버스에 우리 위치를 알리고 계곡물에 땀을 씻어내니
시원하기가 이를데 없다.


맑은 물이 풍부한 죽계구곡

13시간의 산행 이었지만
비로봉에서 비로사로 하산길이 정체 되었고, 주능선 에서의 여유로움등을 단축하고
하산시 비로사 삼거리까지 가지않고 밀목재에서 바로 원적산으로 오른다면
상당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보인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신 일행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의 글 올립니다.
같이 하신 여러분들은 힘들어 하시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에
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차수에 뵙겠습니다.

에버그린



▣ 김사웅 - 소백산 구인사에서 오를 예정인데,, 잘 감상했습니다.. 즐산하세요~!
▣ 고무래 - 산행기 잘 봤습니다^^
▣ 수객 - 다음차수 부터는 따라 붙을수 있을것 같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