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한 5월 7일(금요일)에 찾아간 산행지는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화천군에 걸쳐져 있는, 해발 904 미터의 백운산이다.


아침 7시 20분경 집을 나와서 지하철로 상봉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10분이다. 얼른 6700원을 내고 사창리행표를 끊어서 대기하고 있는 사창리행 시외버스에 오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광덕고개까지 끊으면 5800원이란다. 900원을 손해 본 것이다.


8시 20분이 되니 차는 출발하고 망우리 고개를 넘어서 구리시와 광릉내를 거쳐 포천 일동을 지나 강원도의 대관령을 연상시킬 정도로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광덕고개를 올라가기 시작한다. 광덕고개를 다 올라온 버스는 약간 내리막에서 정차하여 승객들을 하차시킨다. 손목시계를 보니 1시간 55분이 경과한 10시 15분.


다시 광덕고개로 올라와서 휴게소에서 열무김치냉면을 먹고 휴게소 뒷편에 있는 작은 철사다리를 올라 매표소에서 일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산행을 시작한다.



광덕고개 정상의 반달곰 조형물



광덕고개 정상의 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광덕고개의 조망


완만한 경사로 이뤄진 육산의 능선길을 차분히 오르다보니 흙길에 작은 램프를 잘게 부숴 놓은 듯한 물질들이 햇빛에 반짝거린다. 등산객들이 부순 유리조각인 듯 했지만 자세히 보니 미세한 운모 조각들이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정상까지의 육산 능선 코스에서는 이런 운모 조각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곳의 토질의 특색인 듯 했다.


능선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어느 곳이 정상인지 조바심이 난다. 산 저쪽 너머에는 군인들이 총을 쏘는지 대포를 쏘는지 간간이 총성 내지는 포성이 들려 왔다. 이 곳이 38선 이북이니 군부대도 많을 것이고 군인들도 많으리라.


이러구러 느긋한 걸음걸이로 육산의 능선길을 산보하듯이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10시 40분 쯤에 산행을 시작한 것이 두시간만인 12시 40분경에 정상에 도착했다.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육산 코스인데다가 군데 군데 낙엽이 잘게 부서진 채로 두텁게 쌓여 있어서 우레탄 포장도로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편한 길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외길이라서 방향표시판 없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와 보니 버스로 구불구불 올라오던 가파른 광덕고개가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데 백운산 정상이라는 표시판이 옹색하게도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흥룡봉으로 가는 길과 흥룡사로 내려가는 하산 코스 이외에는 아무런 안내 표시도 없었다. 이 곳에서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지도를 보여 주면서 지도가 잘못된 것 같다고 하며 흥룡봉 쪽으로 가겠다고 한다. 그 쪽은 중간에 하산하는 길도 있지만 험한 봉우리들로 이어진 코스라서 자신은 십분 쯤 쉬었다가 흥룡사로 하산하는, 가장 오른쪽에 있는 서쪽의 능선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백운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광덕고개의 조망



백운산 정상의, 바닥에 누워 있는 옹색한 정상표시판


그런데 하산길은 방향 표시판이라고는 흥룡봉으로 가는 길과 흥룡사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한두개만이 있었고 나머지 대여섯개의 표시판은 소방서에서 사고위험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색 바탕의 경고판이었다. 백운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지 않고 가장 우측의 능선길을 택해서 내려가다보니 이런 경고판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깊은 산중에서 은근히 불안감이 고개를 쳐드는데 내려가다가 정 길이 험해 못 내려가겠다 싶으면 힘들더라도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갈 요량을 하며 위험한 곳은 조심조심, 안전한 곳은 약간 잰 걸음으로 통과한다. 악산지대에는 마땅히 쉴 만한 곳도 없었다.



서쪽 능선으로 하산 중에 벼랑에서 바라본 맞은편 산의 경치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방향표시판이 한개 있었다. 험한 길을 가다보니 앞으로는 바위들로 막혀 있는데 길로 보이는 좌측의 내리막길에는 등산로가 아니라고 표시돼 있고 그 바윗길이 흥룡사로 내려가는 길이라는 무척 고마운 표시판이었다. 깊은 산중에서의 방향표시판 한개가 산행의 안위를 얼마나 극명하게 좌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요지(要地)의 표시판이었다. 백운산에서 흥룡사로 하산하는 길에도 능선길과 계곡길을 정확하게 지시해 주는 방향표시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운계곡으로 내려가는 쪽으로는 방향표시판이 전혀 없었다. 내려가다가 두어군데의 갈림길이 있었지만 계곡길로 보이는 좌측길보다는 우측의 능선길로 계속해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왼쪽의 보이지 않는 백운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가 너무나 우렁차서 그 쪽으로 내려가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들었다.


위험 코스를 거의 다 지나서 발받침이 설치된 육산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앉아서 잠시 쉬고 있노라니 흥룡사 쪽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리막길을 내려와서 다시 오르막의 바윗길을 오르니 조망이 탁 트여서 건너편의 봉우리들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와 있는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조망이 너무 좋아서 그 곳에 앉아 사진을 몇장 찍고 십여분의 휴식을 취하는데 왕꽃등에 한마리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윙윙 비행을 한다. 왕꽃등에는 벌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파리목이고 침도 없는 곤충이다. 경기 북부 지대의 산인 소요산에서도 이 곤충을 봤었는데 백운산에는 유독 더 많은 것 같았다.


조망이 하도 좋아서 더 있고 싶었지만 어차피 내려가야 하기에 다시 육산의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다보니 흥룡사의 염불 소리가 귀에 들려 온다. 한참 그렇게 내려오니 비교적 큰 규모의 시내가 나타나고 시내를 끼고 조금 걷다보니 다리가 있어서 다리를 건너자 우측으로 흥룡사가 보인다. 대웅전이 보이고 대웅전 좌측에 있는 석불상은 대웅전의 규모에 비해 꽤 큰 모습이다. 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나와서 맑은 개울물이 흘러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백운계곡 입구를 벗어나온다. 이때가 3시 10분경.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흥룡사의 대웅전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흥룡사의 석불상


이번의 산행의 특색은 오르는 데에 두시간이 걸리고 내려가는 데에 두시간 반이 걸려서 오히려 내려가는 데에 시간을 더 소비하고 시간 비율에 비해서도 훨씬 더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것은 내리막길에 군데군데 위험 코스가 있기도 한 탓도 있지만 올라갈 때에는 해발 660 미터인 광덕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 탓이 더 크다. 아무튼 내려갈 때에 더 진이 빠지고 힘든 코스, 위험을 느껴 긴장을 하고 다리에 힘을 주니 더 기운이 빠지는 것이었다. 올라갈 때의 편안함과 전혀 다른, 내려갈 때의 고생이 인상적인 산행이었다.


산행에 지친 피곤을 달래려고 근처의 식당에서 유명한 포천 이동 막걸리 한병에 더덕구이와 해물파전을 시켜 먹는다. 배가 고프다보니 1.8 리터의 막걸리를 거의 다 비웠다.


백운계곡 입구에서 바로 상봉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서 의정부 쪽으로 질러 가기 위해 길을 물어 45분이나 걸어서 도평리의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고 도봉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길이 막혀서 어느덧 해는 지고 도봉산역에서 시내버스로 갈아 타고 아홉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