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은 한번도 가 보지 못 했지만 서울 도봉구에 살기 때문에 버스의 노선 표지판을 통해서 낯익은 지명이었다. 소요산은 내게는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맑은 날씨가 예고된 4월 29일(목요일), 7시 30분경에 일어나 씻고 8시경에 집을 나서서 10분 정도 걸어서 쌍문역까지 가니 5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는데 소요산으로 가는 139번 좌석버스가 도착한다. 낡은 좌석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리며 운행을 해서 멀미 증세가 조금 났지만 1시간 30분 후인 9시 40분 쯤에 이 버스의 종점인 소요산 입구에 당도했다.


소요산 입구의 넓은 주차장에서 바라본 소요산은 해발 587 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접혀진 산의 한 부분만 멀리서 바라보기에도 꽤 당당한 모양새를 보여 주고 있었다.


주차장을 십여분 정도 걸었을까, 상가들이 나온다. 그 중에 한 식당을 택해서 산채 비빔밥을 한 그릇 비우고 인심 좋은 식당 아주머니가 권하는 한잔의 옥수수 막걸리의 맛을 보니 술을 빨리 익히려고 술약을 많이 넣어서 그런지 숙성된 깊은 맛보다는 떫고 독한 맛이 입 안에 가득 하여 반 잔만 마시고 말았다. 식당에서 직접 담근 게 아니고 주문하면 다른 데에서 가져 온단다.


식사를 마치고 매표소에서 입장료 이천원을 내고 개울의 바위들 사이로 운치있게 흘러 내려가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산행을 시작했다. 드디어 일주문이 나타나고 일주문 좌측에 산행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일주문을 뒤로 하고 조금 걸어 올라가니 원효대와 원효폭포가 나를 반긴다. 잠시 폭포를 바라보다가 속세를 떠난다는 뜻의 속리교를 건너서 초록색 페인트칠을 한 철제 난간을 단 시멘트 계단을 올라가니 자재암이 나타난다.



원효폭포의 시원한 물줄기.



속세를 벗어나지 못 한 느낌을 주는, 세속의 때가 많이 묻어 있는 자재암의 모습.


자재암에서는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대웅전보다는 옥류폭포와 천연동굴 속에 무수한 촛불이 켜져 있는 나한전이 인상깊었다. 나한전 입구 우측에 박아 놓은 가는 직경의 쇠파이프에서 졸졸 흘러 나오는 차갑고 달콤한 약수를 두어 바가지 달게 마시고 보니 시주함이 있어서 약소하지만 천원 짜리 지폐 한장을 시주했다. 자재암의 나무 벤치에 앉아 5분쯤 쉬었을까, 자재암에 올라온 사람은 대여섯명 이상 있었는데 올라갈 생각들을 하지 않는 듯하다.



자재암의 벼랑 맞은편에서 떨어지는 옥류폭포의 거센 물살.



천연동굴을 이용해서 만든 이채로운 모습의 나한전 - 우측에 맛있는 약수가 있다.


자재암에서 하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위문에서 북한산 백운대로 오르는 길을 연상시킬 정도로 숨이 차 오르는, 매우 가파른 길이었다. 나무 계단과 철책, 굵은 로프로 이어진 험한 길을 거의 다 오를 즈음에는 힘이 빠져 십여분 쉴 수 밖에 없었다.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기운을 차려서 다시 오르기를 재촉한다. 험한 길이 그치고 육산의 편한 기분을 느끼면서 능선의 흙을 기분좋게 밟으며 산행을 계속한다.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춤을 추며 내는 소리가 호젓한 산행에 상쾌함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 마저 맛보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라서 그런지 방향 표시판은 매우 잘 돼 있었다. 하백운대에 이르니 중백운대까지 0.4 킬로미터라는 팻말이 보인다. 그 팻말을 따라 육산의 정취를 맛보면서 짧은 시간에 해발 510 미터라는 중백운대에 도착했고 0.5 킬로미터를 지나서 해발 559 미터인 상백운대까지는 육산의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는 쉬운 코스였다.


산행을 한 지 아흐레가 지난 시점에서 산행기를 쓰니 어느 지점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육산지대에서 도롱뇽 한 마리를 보았다. 사진으로 본 적도 꽤 오래 된 도롱뇽을 실물로 보기는 그야말로 생전 처음이었다. 내 존재를 의식한 도롱뇽은 일단 죽은 척 하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오니 풀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도롱뇽의 모습을 추적해 보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산행을 계속했다.


상백운대에서 나한대까지는 다시 험한 길의 연속이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가 지쳐서 적당한 곳에 주저앉아 배낭을 끌러 오렌지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힘든 산행중에는 과일이 최고인 것 같다. 힘든 나머지 식욕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새콤달콤하고 수분이 많은 과일은 먹기에 거부감도 들지 않고 등산의 의욕을 증진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주저앉아서 귤을 까 먹고 있노라니 그 동안 거의 보이지 않던 등산객 여러 팀이 자신을 추월하여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십여분 쯤 쉬었을까,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다보니 울퉁불퉁한 바윗길이 나타난다. 낭떠러지 사이에 나 있는, 뾰족뾰족한 바위들로 이뤄진 길은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지 않으면 추락사할 위험 마저 도사리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나한대에 도착하여 쉬지 않고 의상대로 가는 길을 재촉하니 전문산악인이 줄을 타지 않으면 내려가지 못 할 곳에 철제 계단과 철제 보도가 놓여져 있다. 그 곳에서 내리막길을 타다가 다시 열심히 오르니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에 도착한다.의상대에는 이 산의 성격을 극명하게 말해 주듯이 한 사람이 올라가 서 있기도 힘든, 하늘을 향해 튀어 나온 예각의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해발 587 미터인,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


정상에서 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공주봉으로 향한다. 공주봉에도 방향 표지판이 설치돼 있고 방향 표지판을 지나쳐 직진하니 "등산로 폐쇄"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다시 공주봉의 방향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구절터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그런데 한참 내려오다보니 길을 잘 못 든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다. 쓰러진 나무 등걸이 길을 가로막고 사람의 발자취를 보기 힘들었다. 오륙년 전에 의정부의 사패산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위치한 말벌집을 밟아서 말벌에게 오른쪽 발의 아킬레스근 부분을 물려서 별로 많이 부어 오르지는 않았지만 모기에 물린 정도의 붓기가 있었고 그 때문에 등산을 중도에 포기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 하산했었는데 그 날 밤 통증으로 자다가 깬 기억도 나고 불안감이 조금씩 더 가중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낙석 위험이 예상되는 돌무더기를 위태롭게 밟으며 내려가다가 왼쪽을 보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등산로임을 알리는 밧줄 난간이 설치돼 있고 사람들이 그 길을 통해 공주봉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그 곳까지 이동해서 그 다음부터는 편한 하산을 할 수 있었다. 공주봉에서 구절터로 내려오는 길을 정확하게 찾아서 내려오지 못 한 탓이리라.


구절터에는 잡초와 잔돌들, 사람들이 쉬게 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시멘트 벤치가 여러개 있었고 그 정경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시냇물이 맑은 물살을 만들며 기운차게 흘러 내려가는 정경을 오른쪽에 끼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하산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며 보온병 속에 든 얼음을 깨 먹는다. 그늘진 곳에 앉아서 바람까지 부니 서늘한 느낌 마저 들었다.


십여분 이상 쉬었을까, 다시 냇물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시내를 건너면서 손을 담그니 손이 시릴 정도로 물이 맑고 차다. 이런 물에 오래도록 손을 담그게 한다면 그 것도 고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느긋하게 내려오니 원효폭포가 나를 반긴다. 원효폭포에서 시원하게 쏟아져 내려오는 물살을 바라보며 십여분 쯤 쉬다가 일주문을 지나 다시 산행 전에 들른 집에서 빙어튀김과 함께 더덕술과 불로장생술을 반병씩 마셨다. 식당 아주머니의 인심이 후해서 맛있는 나물무침도 맛보며 술을 마시는데 더덕술보다는 한약재들을 우려내서 만들었다는 불로장생술이 훨씬 더 땡겼다.


일주문을 통과해서 말굽형으로 접혀진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여섯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다시 일주문으로 내려오기까지 넉넉히 다섯 시간은 걸린 듯하다. 높이가 587 미터에 불과하지만 여러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원점으로 회귀하는 산행이기에 높이만 보고 깔보았다가는 큰 코 다칠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큰하게 취해서 다시 139번 좌석버스를 타고 가다가 해는 지고 오후 여덟시 삼십분 쯤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 tdcyoun -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님께서 작성하신 산행기 소요산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여 주셨더군요 동두천 소요산은 동두천시 북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예로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울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규모는 작으나 골짜기는 협곡을 이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옛전설속의 원효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등이 바위 절벽과 어울려 마치 심산유곡을 방불케 하고, 특히 가을철이면 온 산이 단풍으로 절승을 이루는곳입니다 이 같이 산세가 수려한 까닭에 오래 전부터 서울 근교의 산행지로 각광받아왔고, 1981년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산 입구에 주차장과 식당, 여관, 야영장등의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는 청결하고 아름다운 산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해발(587m) 왼만한 일천미터급 산을 산행하는것과 똑같습니다 산새가 뾰죽뾰죽 하기떼문에 깔딱고개가 많습니다 높핋Q
▣ 작가 - ........................................................................................................................................................
▣ 소요산 - 안녕하세요 잘보았습니다..근데요 흔히들 대다수분들이 자재암에서 하백운대쪽으로 올라 공주봉으로 하산을 합니다...헌데 제가 보기에는 자재암 갈림길에서 우측 공주봉으로 올라 의상대-나한대-산백운대-중백운대-하백운대-자재암 하산 으로 코스를 반대로 하시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특히 초보자님들과 여자분들에게는요 필히 자재암 갈림길에서 우측 공주봉으로 들머리를 잡으시길 바랍니다..
▣ 이강복 -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특히 소요산님의 조언은 다음 산행시에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