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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에서 만난 겨울 풍경-


문수, 향수, 선정, 석성山<백설(白雪) 축복을 즐기며 한남정맥 산줄기>
2022109108호         2022-12-15()

자리한 곳  경기도 용인시
지나온 길  정몽주묘-문수산-알바(능원천뽕뻬르 베이커리 카페)-능선복귀-백련사-향수산-선장산-석성산-초당역
거리및시간: 8시간57(07:45~16:42)        ※ 도상거리  약 21.7km   <보행수(步行數)  : 36,621>  알바포함
함께한 이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하루 종일 눈내리는 날 <해 뜸 07:39     해 짐 17:15     /     ‘최저 영하 -9,     최고 1>

수도권 전철과 버스 4번을 환승하고서야 들머리에 닿는다.
어느덧 2022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12월 15(아직은 초겨울이 분명한데, 금년도엔 성미 급하고 강력한 동장군이 일찍 찾아와 수은주를 영하10도 이하로 떨어트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긴장한 이틀째다. 의미 있게 올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2023년을 희망차게 맞이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달꼼한 새벽잠까지 반납하고 지하철 첫차를 타려고 서둘러 6호선 응암역을 출발해 불광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신사역으로 이동해 신분당선으로 환승 정자역에서 수인분당선으로 또 환승해 죽전역에 하차해, 버스정류장으로 이동 시내버스 660번으로 4번째 환승해 능원초교정몽주묘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차가운 바람이 매서운 정류장 의자에 배낭을 풀어헤치고, 겨울산행을 목적으로 이번에 야심차게 장만한 벙어리장갑으로 완벽하게 산행복장을 을 완성하고<산행코스정몽주묘-문수산-레이크사이드골프장을 보듬고 우회-향수산-백련사(선택)-선장산(용인할미산성)-마성IC-석성산-금박산-삼가역을 목표로시작한다.(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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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 안내도와 묘역-
정몽주선생묘(鄭夢周先生墓)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고려시대 정몽주 선생의 묘지로1972년 5월 4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충숙왕 때 뛰어난 외교가이자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은 고려 말기의 충신초명은 몽란몽룡자는 달가호는 포은이며 1367년 성균관이 중영되면서 성균박사에 임명돼 <주자집주>를 유창하게 강론당시 유종으로 추앙받던 이색으로부터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평가받았다얼마 후 왜구가 자주 내침해 피해가 심해지고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보내진 나흥유가 투옥됐다 돌아오자보빙사로 일본에 보내져 국교의 이해관계를 잘 설명해 일을 무사히 마치고 고려인 포로 수백 명을 구해 돌아왔다그러나 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척하는 데에 반대해 뜻을 같이하던 이성계를 찾아가 정세를 엿보고 돌아오던 중 이방원의 문객 조영규 등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다음백과-
  
문수산(文秀山)   :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와 동림리에 걸친 높이 211.2m산이다.
백두대간 한남정맥 검단지맥에서 흘러나온 여맥으로 정상안부엔 운동기구와 비닐코팅 표지판으로 문수산이라 걸려있고 안부엔 삼각점(수원 473/1988 재설)있다산자락에 고려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 묘역이 조성됐다.

백련사(白蓮寺)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향수산(香秀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801(애장왕 2) 신응(愼應)이 창건하였고, 1389(공양왕 즉위년)에 천공(泉公)이 중수하였으며, 1404(태조 4) 4월 15일에 왕사 무학(無學)이 18나한상을 조성하면서 절을 중건하였다.1671(현종 12) 6월 수경(琇璟)이 중수한 뒤 화재로 일부 당우가 소실된 뒤, 1789(정조 13) 석담(石潭)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지장전·나한전·요사채·삼성각 등이 있다정면 3측면 2칸인 대웅전 내에는 석가여래좌상 1구와 나한상동치연간(同治年間, 18621874)의 후불탱화 1점이 봉안되어 있다이 중 나한상은 무학이 조성한 것으로서, 18나한 중 14위만 전해오고 있다모두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되었고크기는 35㎝ 안팎이며 기법이나 조형 등이 특이하다또 현재의 요사채는 원래 법당으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며, 1960년대까지는 요사의 용마루와 대웅전의 용마루에 고려 때부터 전해오던 청기와가 1개씩 얹혀 있었다고 하나그 뒤 모조품으로 바뀌었다이 밖에 사찰 북쪽에는 수경당(琇璟堂)과 도원(道元)의 부도가 있는데높이 132의 석종형 부도로서 조선 중기의 작품이다또 산신각 앞 석단에는 높이 66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는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향수산(香秀山)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모현읍에 걸쳐 있는 높이 457.7m산이다.
주능선은 북동쪽과 남서쪽동쪽으로 뻗어 있으며, 4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연속되어 있다산의 북서쪽에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이 있고남서쪽에는 신라 애장왕 때 처음 지어졌다는 백련사(白蓮寺)가 있다산의 남동쪽에는 글렌로스골프장호암미술관삼성연수원삼성인력개발원캐리비안베이페스티발월드에버랜드 등의 위락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편집한글-

선장산
(禪長山)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와 동림리에 걸쳐 있는 높이 349.7m산이다.
한남정맥의 일부구간이며정상에는 선장산 할미산성 정상석이 있다국립지리원 지도상 무명봉인데 오래전부터 선장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으로 북동쪽은 향수산에 연결되고남쪽은 영동고속도로의 마성터널 위를 지나 석성산에 연결된다.

석성산(石城山)   :  경기도 용인시의 중앙에 위치한 높이471m의 용인의 진산이다.
일명 보개산(寶盖山) · 성산(城山)으로도 불리는데용인현읍지와 대동지지』 등에 "보개산은 현 동쪽 13리에 있다일명 석성산(石城山)이라 불린다."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석성산은 조선 후기까지 대부분 보개산으로 기록되는데세종실록지리지에 "보개산 석성(石城)은 현 동쪽에 있다높고 험하며둘레가 9백 42()이다안에 작은 우물이 있는데가뭄을 만나면 말라 버린다." 라는 기록에 그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여기서 보개는 불교용어로써 탑 꼭대기 보륜(寶輪위에 덮개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을 말하는데이렇게 볼 때 보개라는 명칭은 산의 모양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그리고 보개산의 이명인 석성산이라는 지명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기록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 "봉화가 1곳인데 석성(石城)이다현 동쪽에 있다동쪽으로 죽산의 건지산(巾之山)에 응하고북쪽으로 광주 천천산(穿川山)에 응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이후 지리지에 기록되는 보개산 봉수(烽燧)를 설명해 주는 내용과 동일하다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조에 "보개산성은 석축으로 주위는 2529척이다이제는 모두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다이로 보아 보개산에 축조되었던 석성 때문에 석성산 또는 성산(城山)으로 불린 것이 아닌가 한다1872년지방지도와 동여도대동여지도에는 보개산이라는 명칭이그리고 해동지도여지도조선지도팔도군현지도광여도청구도』 등에는 석성산이라는 명칭이 보인다석성산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산 동쪽에 통화사가 있고 북동쪽에 백령사가 있다산의 동남방향 7부 능선에 성문터가 남아 있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멍청하고 한심해 부끄럽지만 숨길 수는 없는 산행스케치
추위는 매서우나 바람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나, 이미 동창이 밝은 시간임에도 달밤인 냥 어둑어둑하고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다세계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수도권의 야트막한 산이라많은 사람들이 뒷동산처럼 즐겨찾아 반들거리는 등산로이기 때문에 지도가 불필요 할 것이란 자만심에, 준비 없이 가볍게 산행에 임했으나 처음에는 비교적 순조롭게정몽주 선생묘역을 참배하고문수산에서 안골고개(터널상부)까지는 무탈했다. 하지만 안골고개 300m 전방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었는데눈이 하얗게 쌓인 깨끗한 산길이라 선답자의 발자국에 홀려 무심코 따랐는데 지도상으로 없었던 마을과 가구공장이 나타났으니, 주민을 찾아 물어보려고 경계를 풀고 덤벙거리다 빙판의 시멘트바닥에 큰대자로 떨어지는 망신을 당하고 도로(2차선)에 나서지만 인적은 없이 개가 짖어댄다. 사람을 찾다가 도로와 능원천 건너 주차장에 사람이 보여 뛰어가 물었으나 모두다 외지인들이라 허사였는데마침 영업하는 가게(몽뻬르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들어와 매장에 들어가 근무자에게 등산로를 물으니 매우친절하게 밖으로 나와 골짜기로 올라가면 된다고 알려주어 고맙다 인사하고 산속에 들어선다.

거짓친절로 2시간의 사투 끝에 가까스로 목적지에 닿았다.
입산 3분이 못되어 베이커리 근무자의 친절이 허구와 거짓에 속았음을 알았으나 이미 산속에 들어왔으니, 마음을 다잡고 일단 능선으로 치고 오르면 등산로가 나온다는 믿음 때문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며능선에 올라섰는데 철조망과 철망이 이중으로 설치된 울타가 반길 뿐이다한참을 돌아나서 철조망과 헤어지려는데 화들짝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날아나다 고개를 돌려 뒤돌아본다. 한참동안 진행해 묘지를 넘어서 희미한 족적이 느껴지는 능선에 올라서 시야에 들어온 골프장을 좌표로 무작정 진행하다. 이정목(4.2km법화산/2.8km할미산성향수산정상10km)을 만났는데 향수산10km 너무 멀어 포기하고 할미산성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다, 다시 만난 이정목(백련사0.7km/할미산성2.3km/향수산1.5km)에서 향수산1.5km이 10km가 아닌 1.0km이라면 다녀옴은 당연하고 기왕이면 백련사를 경유하기로 길을 잡았는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백련사를 돌아보고 등산로에 들러서니 제법 쌓인 눈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향수산 정상에 이르러서야 잘못 잡은 방향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눈 위에 찍혀있는 내발자국 따라 진행 이정목(4.2km법화산/2.8km할미산성향수산정상10km)을 다시 만나서야 알바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많은 눈이 내리고 쌓여 모든 흔적들이 지워진 깨끗한 눈길을 걸어 선장산(용인할미산성),마성IC,석성산능선에서, 처음만난 산객과 반갑게 덕담과 인사말을 나누고 정상에 올라선다. 눈길과 대형알바로 힘들고 시간도 늦어져 계획을 수정 금박산을 접기로 하고, 작전도로 따라 초당역에서 9시간 가까운 지루하고도 힘들었던 눈길산행을 매조지다.

오랜만에 마음껏 함박눈을 즐긴 4개산을 마감하며
7학년인 지금도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소년처럼 설렘으로 가득하고 기대감을 간직하고 있으니, 바보인지 청순함인지 모를 일이나 엊그제부터 흩뿌리던 눈발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산속에 들어서보니 잘못된 생각이었노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영하 10도의 강추위에 그동안 내렸던 눈이 고스란히 쌓인 적설량이 만만찮아 아이젠이 필요했으나, 비상시에 대비해서 그냥 걷고 있지만 힘든 상황인데 다시 많은 눈이 내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 아니겠는가?  한겨울 혹한산행에서 얼어붙지 않도록 방한복으로 완전무장 했으나언제라도 얼음장에서도 움직여야하는 손을 위해 핫팩(주머니용 화롯불 난로)을 준비했으나 계속 내리는 눈이 입김과 체온에 녹아내려, 젖은 손으로 카메라를 만지고 셔터를 작동시키다보니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오래가지 못했었다. 냉동했던 찰떡이 영하의 기온 때문에 해동되지 않아 먹지 못해 배고팠으며물병입구가 얼어붙어 물마시기도 자유롭지 못함이다저물어가는 시각 경전철 초당역에서 기흥역으로 이동해 전동차를 기다리는데 배차시간이 길어 20분을 기다렸고 복잡한 열차로 정자역으로 이동해 신분당선으로 환승했는데, 혼잡의 극치였고신사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기 까지는 밀고 들어갈 틈이 없는 대화행은 승차하지 못하고, 다음열차 구파발행에 어렵게 승차는 했으나 콩나물시루라 공중부양 자세로 꼼짝 못하다 동대입구역부터 겨우 숨 쉬며 연신내역에서, 다시 6호선으로 환승 응암역에서 귀가하니 1920분, 몸이 곤했지만 산행 주요사항과 생각들을 대충메모하고평소처럼 카메라의 사진을 폴더에 옮기고 저저장했었는데 아침에 정리하려고 컴퓨터를 켜고 확인하니 폴더는 비어있고 메모사항역시 저장되지 않아 난감하다카메라를 살펴보니 그래도 9장이나 남아있으니 다행이다. 반드시 다시 산행하기로 자신과 약속하며 그래도 건강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2022-12-18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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