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에 억새구경 갔다가 죽을 고생한 이야기 2부 (영남알프스)

 

 

제2부

4. 억새여! 가을의 전설이여! ...................................

5. 악몽 같은 알바 3시간의 서곡 ...............................

6. 조난 직전에 내린 결단 .......................................

7. 다시 영취산에 올라 ...........................................

8. 진퇴양난 ........................................................

9. 행운의 여신은 어디에? ......................................

 


 

4. 억새여! 가을의 전설이여!

 

날씨 좋은 날, 여기서 억새가 어우러진 저 신불평원을 바라본다면..

역광을 받아 은빛물결로 춤을 추는 억새를 바라본다면..

아마도 너무나 황홀하여 저 돌탑처럼 마음 조각조각 흩어져 돌이 되었을 터인데..

오늘은 10m앞도 분간하기 힘드니 너무나 아쉽네요.

 

▼꼿꼿이 하늘을 향해 깃을 세우고 억새는 그렇게 말없이 비에 젖습니다.

 

▼신불평원의 억새 숲을 걸어오는 꼭지(아내)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신불평원에서 꼭지도 억새와 하나가 되어 외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억새사이로 살며시 고개 내민 야생화(?)


 

비바람이 가냘픈 억새사이로 파고듭니다.

억새 숲은 빗물을 털어내며 무서운 소리로 바람과 시름을 합니다.

몸부림치는 억새를 바라보는 마음이 왜 이다지도 서러울까요?

 

초가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많은 듯 하늘을 향한 억새는 연신 신음소리를

토해냅니다. 외로워 서로 어깨를 비비면서 안개비에 온몸을 적시고서

조금씩 자신을 비워가는....

 

하얀 속살이 뜯겨져 나가고 앙상한 뼈가 드러날 때 까지

억새는 아픔도 잊고 미움도 잊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가을의 전설이 되겠지요.


 

5. 악몽 같은 알바 3시간의 서곡

 

영취산(1,092m)

창조주인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영취산 암능에 오릅니다. 억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동치던 하늘이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영취산(영축산,취서산)


    

이제 어디로 하산할까?

다음 종주를 위해서 초행길인 통도사 초입 길 답사도 할 겸 통도사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능선방향으로 길을 찾아보아도 운무 속 어디 숨었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정상 바로아래에 한두 개 보이는 리본이 있어 이 길인가 싶어 내려서는데 감이 이상합니다.

지도상으로는 능선으로 이어지다 좌로 꺾어져야 하는데 이건 바로 산죽의 급경사

내리막길입니다. “에이~ 가다가 능선으로 다시 붙게 되겠지..” 혼자 중얼거리며..

 

▼희미한 산죽길을 치고 내려가니 알바 3시간의 서곡이 울립니다.


 

체, 5분도 지나지 않아 산죽 길은 끝이 나고 바로 계곡의 바위너덜이 시작됩니다.

불안하지만 간혹 리본이 보여 그냥 내려갑니다. 길이 아닌 그냥 너덜입니다.

미꾸라지 등보다 더 미끄러운 돌을 아무리 조심하며 디뎌도

미끌미끌 미끄러집니다. 서커스곡예가 따로 없습니다.

 

예전에 이수영님이 통도사로 하산할 때 고생 엄청 했다는 산행기가 생각나

이 길이 그 길(?) 같으이 하고 꼭지를 안심시킵니다.

 

▼전혀 예상치않은 계곡따라 바위너덜이 시작됩니다.

  백 하려다 간혹 리본이 보여 미꾸라지 등같이 미끈한 돌길을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수도 없이 미끄러지면서..

 

▼내려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너덜을 꼭지가 미끄러워 엉거주춤 내려옵니다.


 

1시간여 내려왔을까 졸졸폭포(?)가 흘러내리는 절벽이라

우측으로 우회하여 희미한 길도 아닌 길을 찾아 내려서는데

우잉~@%@ 이제는 간혹 보이던 <부산 모 산악회>리본도 보이지 않습니다.

 

길이 없어지고 맙니다. 아무리 곳곳을 뒤져도 길은 오리무중..

하지만 “내려가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하며 덩굴과 미끄러운 바윗길을 더듬더듬

내려가는데 갈수록 진행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쯤에선가 안개 속에서 정상 등로를 벗어났다는 예감..


 

6. 조난 직전에 내린 결단

 

그렇다고 그냥 계속치고 내려가는 것도 무리입니다.

어떻게 필설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모든 상황이 험합니다.

동네 야산 같은 육산도 아닌데.. 시간은 이미 오후 3시, 어둡기 전에 하산해야 할 텐데..

 

랜턴은 있다고 하지만 이런 날씨엔 무용지물입니다.

밝은 한낮에도 길을 찾기 힘 드는데 야간에는~? 더 이상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백 할까? 꼭지에게 물어보지만.. 1시간 30분을 어떻게 힘들게 내려왔는데..

여기서 어쩐다.. 빠른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잠간 운무가 걷히고.. 이곳이 다시 백한 구간인데 도대체 저 끝은 어디일까요~~~~~? 


만약 무작정 이대로 내려가다가는 분명히 조난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스칩니다.

엊그제 월악산에서도 산악회 회원들이 무더기로 조난당해 그 이튿날 구조됐다는 뉴스를

들었었는데.. 그래 다시 올라가자. 사는 길은 그 길뿐이다. 꼭지를 설득시킵니다.

 

아직 다시 치고 올라갈 정도의 체력은 남아있으니 당황하지 않고 오릅니다.

산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당하는 위기입니다. 하지만 휴~~!

설상가상으로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는데도 제대로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다시 백 하여 오던 길을 다시 오르지만 그것도 길 찾기가 쉽지가 않네요.

  이 사진이 마지막인데 이후에는 사진 찍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지요~~ 


 

이럴 수가~@@ 이제는 아찔합니다. 좌우를 둘러봐도 내려온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좌우를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20여분을 올랐을까 겨우 낯익은 바윗길을 찾아냅니다.

 

 

7. 다시 영취산에 올라

 

미끄러운 바위너덜지대는 차라리 내려올 때보다 오름길이 훨씬 수월합니다.

다시 영취산 정상에 올라 여러 군데 상처 난 무릎과 다리에 대일벤드로 도배(?)를 하며

안도의 한숨으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생전에 하루에 정상을 두 번 오르긴 오늘이 처음입니다.

 

이제야 지나온 길을(정상 암릉 바로아래) 내려다보니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통도사 하산 길과 좌측 지산리 하산 길과의 중간지점이었습니다.

계속 내려가면 어느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인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시간은 벌써 4시30분입니다.

초행길인 통도사로는 이 운무 속에 도저히 하산할 자신이 없어 작년가을에 하산했던

지산리 통도환타지아로 하산하기로 하고 좌측으로 내려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작년에는 길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세 갈래길입니다.

맨 좌측 북동쪽으로 하나, 능선 따라 동쪽으로 하나, 우측 남쪽으로 급경사 하나..

작년에 없던 길이 두 개나 덤으로 생기다니..

영취산 귀신이 이 아래 살고 있나봅니다. 에구, 무서버~~@@

 

덕유산 할미봉에만 귀신이 있는 줄 알았는데 영남알프스에도 귀신이 있다니..

때마침 산님 세분을 만나 지산리는 어느 방향이냐고 물으니 맨 우측 길을 가리키며 그리로

먼저 휑하니 내려가는 군요. 우리도 뒤따라 내려갑니다.


 

8. 진퇴양난

 

하지만 너무 급경사이고 아무래도 낯익지 않아서 아니다 싶어 다시 백 하였으나

좌측 두 길도 헷갈려 맨 우측길, 세분이 내려간 급경사 내리막으로 다시 또 내려갑니다.

설마 세 사람이나 내려갔는데 또 길을 잃기야 하겠느냐며..

 

한데 이 길 또한 만만한 길이 아닙니다. 20여분 내려갔을까.

전에 보지 못했던 3-4m의 암벽과 다 부서져가는 나무사다리가 보입니다.

이 길도 아닌데..@@

 

하지만 어쩝니까. 길은 분명하니 내려가기로 합니다.

꼭지에게 내려갈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한번 내려가 보겠다고 하는군요. 로프잡고

다 부셔져가는 나무사다리를 이용해 억지로 겨우 위험구간을 벗어납니다.

 

리본도 거의 보이지 않아 희미한 등로 따라 내려가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등로 찾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아니라 다를까 이번엔 물이 찌르르 흐르는 미끄럽고 비스듬한 바위 암벽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가느다란 로프가 달려있어서 끙끙대며 내려갑니다.

물기 머금은 바위가 너무 미끄러워 연신 꼭지에게 주의를 줍니다.

여기서 떨어져 다리라도 다쳐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헬기도, 119도 쉽게 구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지역이라

꼼짝없이 밤을 새우며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할 상황입니다.

수도 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다행히 다리를 접질리거나

부상을 입지 않아 걷는 데는 지장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러기를 한 시간여 내려갔을까.

물기 흐르는 미끄러운 바윗길을 조심조심 억지로 내려섰는데

또 등로가 없어져 버립니다. 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정말 큰일 났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길이 어디쯤 엇갈렸을까. 분명히 여기까진 맞는데..” 곰곰이 생각을 합니다.

벌써 4시간여의 힘든 너덜지대에서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격고 난 지금은

차라리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 올라갈 기운은 없습니다.

 

“우천 시에는 산행을 하지 않는다.” 는 김정길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힙니다.

하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어쨌든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날씨 맑은 날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인데 말입니다.


 

9. 행운의 여신은 어디에?

 

꼭지는 “그냥 치고 내려가면 끝이 나오겠지.” 하며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말투입니다.

과연 치고 내려가면 끝이 날까요? 천만에요 죽음의 계곡입니다.

또 본능적인 감각으로 모든 상황을 종합해 생각을 정리합니다.

 

결론은 이 자리에서 밤을 새우더라도 길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는 것.

상당히 험하고 위험한 산세라 무조건 아래도 치고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은 당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요.

 

더 이상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고 먼저 우측으로 헤쳐 나가 봅니다.

죽음 같은 알바 3시간을 했던 방향입니다.

아하~~ 여긴 절벽이군요.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길은 좌측(낙동정맥방향)으로 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과연 예감은 적중합니다.

행운의 여신은 역시 우리 편에 있었습니다.

좌측으로 계속 산허리를 감으며 희미하게 길이 열려있습니다.

 

조금 전에 억지로 치고 내려갔으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빛바랜 리본이 하나 보입니다. 그 반가움을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처음 밟아보는 육산의 오솔길입니다.

 

이제야 낯익은 임도에 내려섭니다.

모든 불안감을 접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임도 자갈위에 퍼질고 앉아 이제야 휴식다운 휴식을 갖습니다.

 

그때 갑자기 우리보다 앞서 내려갔던 세분이 이제야 내려옵니다.

어찌된 영문이냐고 물으니 이분들은 산장에서 지름길인 우측으로 내려왔는데 길을 잃어

알프스 미아가 될 번했는데 다시 백해 겨우 길을 찾아 이제 내려온다고..

 

참 이상하네요.

똑 같은 길을 다 같이 출발했는데 이분들은 산장을 거쳐 내려왔고

우리는 산장 구경도 하지 못했으니 그러면서도 모두 길을 잃어 헤매고..

과연 귀신(?)은 있나봅니다. 원래는 산장을 거쳐 내려와야 정상인데~~@@@

 

다음 알프스 종주 때는 귀신 잡는 해병을 대동해 복수혈전(?)을 꿈꾸며

오늘의 악몽 같은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