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간 거야? 자러 간 거니? (호남정맥4구간: 초당골-개운치)

호남정맥 4구간 ( 운암3거리-개운치)

1. 일시: 2005년 11월 27일, 일요일, 맑음

2. 코스 : 운암3거리-왕자산-고당산-추령 ( 도상거리 km, GPS거리 32.16 km)
        16 시간 42분 걸림( a.m. 11.18- p.m.16.00 /먹고 쉬는 것 5시간49분. 포함)

전주역(22.21)-마운데미(23.18)-모악산분기점(23.42)-묵방산(00.25)-하운암산장(01.27)-
가는정이/소리개재(3.37)-정자나무안부/쓰레기(3.57)-감나무(4.36)-왕자산
고목안부(7.46)-광산김씨묘역(08.10)-능선분기점(8.43)-구절재(09.54/10.00)-사적골재(11.49)
-석탄사(12.07/12.12)-조릿대(12.33)-굴재(14.43)-고당산(15.26/34)-헬기장(15.36)-
개운치(16.00)


3. 함께 : 나 홀로

4. 걸었던 발자취 :




          [   자연이 그린 삽화   ]





          [   생명의 기운이 오른다   ]




오랜만에 나서보는 야간산행이다.
그동안 곪아 터진 문제를 봉합해 보려고 몇 개월이나 끌어 오면서 제법 마음고생을 하였다.
머리를 굴려보아도 서로에게 명쾌한 답이 없었고 볼썽사나운 경우도 세 번이나 지났다.
이런 터진 상처는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것이어서 결심이 필요했다.
막상 거취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사람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百尺竿頭進一步”



    
          [   전주역의 야경   ]         

  
‘전주’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초당골’을 가자니 마침 기사분의 고향이 ‘하운암’이란다.
그런데 거북이라 할 만큼 느릿느릿한 운전솜씨는 칠순이 넘었다는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새로 만들고 있는 27번 국도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아 옛길로 내려와 ‘운암3거리’에 도착!
옛 이름은 ‘마운데미’라는데 미터기로 18,000원쯤 나온 택시비를 2만원을 주고 내렸다.
준비하고 요기하고 신발 끈을 질끈 동여 맨 다음 간간이 차가 지나는 길을 가로지른다.
‘원조어부집‘왼쪽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잦았는지 “등산로아님”을 표시하는 팻말을 놔두었다.
왼쪽으로 더 가서 무덤 앞으로 오르는 게 나을 것 같았고 곧 숲으로 미끄러지듯 든다.




  
          [   마운데미 = 초당골= 운암3거리 옛 이름   ]



숲에 드니 어느덧 바람은 잦아들고 오름 짓이 계속 될수록 마른 낙엽처럼 목이 탄다.
땀이 나기에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물도 마시는데 멀리 하늘엔 마른번개가 번쩍인다.
이정표가 서 있는 ‘모악산분기점’에서 오른쪽이 ‘모악산’ 방향이고 왼쪽이 정맥 길이다.  
빙글 도는 느낌으로 오름 짓이 시작되었고 바람에 날리는 눈발 비슷한 것도 스쳐간다.
마른 잎이 덮여있어 발 디딤이 확실치 않고 미끄러운 뜨악한 가풀막.
어느 마을에선지 이방인을 경계하듯 개 짖는 소리는 오름길 내내 끊이지 않는다.
툭툭 소리가 들리더니 급기야 비가 쏟아지는데 우장을 꾸리는 동안 제법 젖어버렸다.
게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식으니 몸이 떨려오는데 컨디션을 잘 유지하려면 고생이다.



    
          [   모악산분기점   ]


분기점에서 ‘묵방산’정상까지는 금방인데 주변도 트이지 않고 코팅표식 하나 덜렁 매달렸다.
되돌아오면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바위지대를 지나면 얼마 뒤 고꾸라지듯 내려가게 되었고.
흐트러진 족적을 따라 어둠을 뚫고 가다보면 표지기는 거의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경사가 조금 잦아든 곳에서 왼쪽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나서 문득 무덤가로 나서게 되었다.
유난히 봉분이 커다란 무덤들을 지나서 밭을 가로지르니 ‘여우실마을’인지 개들이 환영한다.
지도를 정치하고 돌아보니 오른쪽으로 빗겨 내려온 터라 교회 앞을 지나 재빼기로 오른다.
산자락엔 마을회관으로 보이는 네모난 건물에 불이 훤한데 지나친 길이라 눈으로만 훑었다.
        

    
          [   묵방산 코팅표식 - 정맥에서 떨어져 있다   ]



낮 익은 표지기가 보였고 농로를 따르다 숲으로 들어가는데 그나마 비가 안 오니 다행이라.
내려서면서 또 무덤들을 몇 개나 지나쳤고 마을에 나서면 ‘하운암산장‘이라 써있는 돌 앞.
도로건너 산장 쪽으로 발을 옮기는데 오밤중에 티브이를 시청하는지 빛이 새나온다.
산으로 접어들 때 왼쪽에 보이는 ‘옥정호’에는 헤어짐이 아쉬운 듯 불빛이 일렁이는데.
그 자리에 서서 랜턴을 끄고 물결에 비추인 불빛의 일렁거림을 잠시 보다가 다시 나선다.
잠시 숲으로 들 때 고약한 풀 숲 사이로 들었고 거길 지나자 조금 낫다.
정수리에 무덤이 있는 곳을 지났고 능선을 따르다 산정을 오른쪽으로 우회도 하였다.  
내려서며 숲 가장자리를 따르다 능선을 놓치고 우측 싸리나무 지대에서 잠시 또 헤맨다.



          [   운암호 야경   ]



‘성옥산’을 언제 지났는지 확실히 모르는 것은 삼각점이나 표지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산정의 공터를 지나 내려선 ‘파평윤씨묘’ 주변을 宗氏라고 돌아보고 다시 숲에 든다.
또 무덤 옆으로 내려서 철지난 밭뙈기를 지났고 임도를 오른쪽으로 내리면 ‘가는정이’도로.
점멸신호등은 시간에 관계없이 제 할 일을 하는데 옹벽을 넘어서 오르니 길이 난감하다.
무덤들이 올망졸망 있는 산자락에는 도무지 길이라고 생긴 것은 없어 방향만 정하고 갔다.
몇 번의 궤도 수정 끝에 길을 찾아 정자나무가 서있는 안부를 지나는데 쓰레기가 가득하고.
금방 만나는 길에서 오른쪽은 산허리를 돌아가니 왼쪽으로 가면 잣나무 묘목지로 나온다.
비닐하우스 옆으로 내려설 때 ‘방성골’의 개들이 환영하는데 동구의 느티나무는 튼실하구나.



          [   가는정이고개의 점멸신호등   ]



사람이 사는 곳에서 잦아든 마루 금을 이어 나가는데 붉은 색이 언뜻 눈앞에 보인다.
확인하기 위해 불을 비추니 까치밥으로 남겼을법한 감 한 개가 눈높이에서 대롱거리네.  
고추밭을 지나 무덤까지 올랐다 내렸다 하며 길품을 판 것은 입구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리 오래지 않은 무덤을 휘감은 대리석에 둘러있는 것은 돌이 흩어지지 말라고 묶은 것.  
마침내 수풀에 숨은 입구를 찾았고 오름길 이어지는데 영 신나지 않는 것은 졸려서?
오름길이 지루하다고 느낀 찰나 자리에 앉았고 불마저 끄니 고요함이 편안하게 잡힌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하니 여기가 산 속이고 오밤중이란 사실조차 곧 잊어버렸다.


        

  
          [   야밤의 횡재   ]




밤은 어둠으로 모든 것을 감춘 듯 보이지만 실제는 모든 게 깨어있는 상태이다.
불을 밝히면 발치의 어둠만이 물러나지만 어둠에 잠겨보면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만이 오로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비추이지만 말이다.    
문득 잠들었다 깨었고, 일어나 50m쯤 오르다말고 다시 누웠더니 또 시간이 제법 흘렀더라.
졸음을 털며 일어나 아직은 무거운 발걸음을 털어내듯 올랐다.  
무덤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산정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 높은 곳에 묘를 쓰는 이유는 망자를 위해선인가 아님 자손의 행복 때문일까?
망자는 아무런 대답이 없으나 그런대로 봉분의 상태는 양호하니 나쁜 자리는 아니다.



              [   고목나무안부   ]

          
        


앞트임이 있는 곳에서 ‘예덕리’마을 쪽을 바라보니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 않아 보인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다 뚜렷한 길을 따르다 능선 길을 놓치고 내려가면 항상 무덤이 나온다.
사람이 사는 곳에 가까운 곳은 온통 무덤으로 가득하였고 나중엔 더 이상 자리도 없겠지!
앞으로 무덤에도 세금을 매기는 때가 올 것이고 매장기간도 한정시켜 좁은 땅 넓게 써야지.
다시 가풀막을 올라 무덤이 있는 ‘왕자산’을 지났고 내려가는 길 왼쪽에 우회로도 만난다.
새벽의 木氣를 실은 바람은 매섭게 살 속을 파고드는데 고목이 서있는 안부를 지난다.
잠시 오르던 맥은 건넌 봉우리를 향하지 않고 왼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져 내리는구나.
잦아든 고스락에는 내 키 정도의 억새가 하얗게 피었고 건너편 산자락에 묘지 군이 보인다.




          [   왕자산 내림길에서   ]




‘광산 김씨’네 묘의 석물 하나는 기울어져있는데 바로잡아 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네.
잠시 숲을 지나 밭 가장자리를 지났고 다시 오름 짓이 시작되면서 허기를 느낀다.
능선 분기점에 오르자 왼쪽으로 이어진 낙엽 길을 바스락거리며 헤쳤다.
요즘은 낙엽이 산성비 때문에 부엽토가 되지 못하고 쌓이니 경방기간엔 더 조심해야 한다.
471봉을 지나 왼쪽으로 내려가면서 돌아 본 능선의 실루엣은 마치 중학생의 짧은 까까머리.
시야는 툭 트였지만 길을 막는 성가신 싸리나무와 억새를 헤치고 내려오면 다시 오름 길.
낙엽이 미끄러운 가풀막을 조심스레 지났고 둔덕에서는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가는구나.  
밭가를 지나 내려서는 마지막까지 잡목의 방해를 받으며 30번국도 ‘구절재’에 내렸다.
        

    
           [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

        


‘태인’쪽 도로엔 돌장승이 두 기 있고 그 너머에 관광버스가 보여 어디서 단체로 왔나했다.
물도 떨어졌고 아직도 무거운 몸이 귀찮아 여기서 끊을까 하다가 다시 산길에 든다.
입구에서의 갈등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가야한다는 당위성만이 남는 것은 산 꾼의 기질?
그런데 웬일이야? 주변에 감나무는 보이지 않는데 색깔도 선명한 감이 하나가 눈에 든다.
사양하면 안 될 것 같아 냉큼 집어 들고 맛을 보니 약간 떫기는 하지만 맛있다.
내내 보이지 않던 해는 구름 속에서 잠깐씩 둥글고 원만한 모습을 드러내며 자랑한다.
철탑을 지났고 오름이 잠시 이어지다 평탄해지는데 특이한 붉은 벽돌무덤 옆을 지난다.
숲에 가려 안보이나 왼쪽에선 ‘포크레인’의 작동소리와 사람의 말소리도 계속 들려온다.




          [   구절재의 아침해   ]


산 중턱의 송전탑을 지나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도 지나고 왼쪽으로 꺾어져 내린다.
‘연화정사’와 시멘트 도로가 보이더니 아직도 감이 많이 매달린 감나무 옆으로 지났다.
오른쪽에 보이는 전원주택에는 땔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연통은 하얀 연기를 뿜는다.
물을 구하려하나 개만 짖어대기에 오른쪽 둔덕을 올랐고 ‘석탄사’로 통하는 도로와 만난다.
잠시 휘돌아 오르면 능선으로 이어지는 리본이 보이나 물을 구하려면 절까지 가야한다.
구불거리는 산모퉁이를 돌자 내려오는 불자들을 지났고 주변에 보이는 돌 색이 특이하다.
‘석탄사’는 ‘대웅전’과 ‘산신각’ 그리고 석탑과 종각이 있으나 터는 아주 좁아 옹색하다.
다만 보이는 눈 트임만은 좋은데 뿌연 대기 때문에 아득한 조망을 볼 수 없어 아쉽다.



          [   꽃향유   ]


삼존부처상 옆으로 내려갔고 놀고 있던 두 꼬마에게 물을 찾으니 놀러 와서 잘 모른단다.
다행히 부엌에 있던 비구니에게 청하여 물도 마시고 보충을 하였더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요령을 피우느라 절에서 산허리로 질러가는 길을 따라갔더니 마지막에 마른 계곡을 지났다.
이제는 제 길에 들었다는 편안한 느낌.
운무에 주변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왼쪽의 단애에선 바람이 솟구친다.
조릿대 숲을 지나서 봉우리 하나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였고 능선을 따라 497봉에 선다.
저 앞에 뜨악해 보이던 삼각형 봉우리는 보기보다 오르기 쉬웠으나 조망이 시원치 않다.
바람이 들지 않는 길 가에서 또다시 한숨 떨치고 일어났는데도 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   석탄사부처님   ]



곧 잘 정돈되고 석물이 있는 무덤을 지났고 또 아래서 그보다는 덜 한 무덤을 지났다.
그들 봉분의 상태로 보아서는 정맥의 기운이 그저 지나며 흩어지는 곳은 아닌가 보다.
송림을 지나 내려오면 네 기의 무덤가에서 보이는 앞트임이 좋다.
지금껏 ‘호남정맥’을 진행하면서 제대로 된 날씨나 아침 해를 보지는 못 하였다.
늘 좋은 조건을 바라지 않으며 항상 필요한 자리에 적절한 시간에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맑은 날씨는 기대할 수 없었지만 대신 산 그리메를 보는 것도 참 좋다.
왼쪽 숲에 잠시 들었다 나오면 눈앞에는 가시밭이 펼쳐져있고 울타리가 쳐있다.


              [   산그리메   ]



옛날 천주교도들이 겪었음직한 시련의 상징처럼 ‘굴재’의 가시나무는 생소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조각자’라는 한약재는 가시가 크고 날카로운데 경주 건천에서만 난다고 한다.
그 곳은 삼국시대 전란의 한복판으로 수많은 병사의 한과 꿈이 가시로 맺혀졌다는 얘기다.
하얗게 분칠한 줄기에 가시가 더덕더덕 붙어있는데 철사로 처지지 않게 하여 놓았다.
‘복분자’를 재배한 흔적인데 밭가를 둘러가자 농로 한켠에 ‘천주교성지’안내판이 서있다.
임도에 잠시 들었다 왼쪽으로 잡목과 억새로 흐트러진 길을 오르면 곧 산판 길과 만난다.
일견 부드럽게 보이나 피로가 쌓인 몸은 진땀이 날 정도의 경사가 몇 단계로 계속된다.
        
    
          [   복분자 밭   ]


왼쪽의 나란히 달리는 산줄기 가파른 사면은 나무가 없어 휑하고 사이사이 길도 보이는데.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으나 마치 옷을 뺏겨 떨고 있는 사람 같은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무덤이 있는 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고 곧 산죽지대와 바위를 거치는 오름이 계속된다.
한가운데는 무덤자리고 삼각점은 뒤에, 그리고 ‘고당산’의 이정표는 한켠에 서있다.
이 무슨 조화(調和)란 말인가?
정읍에 사는 대학 동창 녀석을 호출하고는 공터에 앉아 내려갈 동안의 에너지를 채운다.
1.7km 남았지만 대부분 내려가는 길이라 30분 후에 ‘개운치’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고.
산허리를 감싼 잡목을 뚫고 산죽터널을 지나니 헬기장이 나오고 그 왼쪽으로 길이 열린다.
        

    


작은 봉을 몇 개인가 지나선 봉우리 양쪽에 정맥표지기가 달렸으니 누굴 믿어?
지도를 정치하여 왼쪽으로 내리막을 지나 산죽을 빠져나오니 그제사 다른 표지기가 보인다.
마냥 직진할 것 같은 산줄기가 곧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가면서 길도 넓고 가기도 편하다.
마지막으로 내려서는 길에는 하늘도 보이지 않는 잡목의 터널사이로 지나서 내려오고.
‘개운치’에 내려와 뒤돌아보니 약간 빗겨 내려온 것 같지만 뭐 심각하진 않다.
오후 네 시밖에 안 되었지만 해는 ‘망대봉’ 중계탑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가라앉고 있다.
꽃단장 마치고 히치를 하려는데 대부분은 오히려 속도를 높이고 지나는데 차가 하나 선다.



          [   망대봉 일몰   ]



네 명의 중년여성이 타고 있는데 창을 내리고 “무섭게 생겼는데 어찌 태우냐?”며 농이다.
“잘생긴 총각 처음 보나?”며 너스레를 떨자 문을 열어주어 좁았지만 고맙게 고개를 넘는다.
“단풍이 좋다“라는 평가가 결코 허명이 아님을 증명하듯 길 가에 남은 단풍이 아직도 곱다.
‘내장산’들어가는 삼거리에서 내릴 때  ‘고창’으로 가는 방향을 물어보는데..
마침 나와 있던 동창 녀석이 자세히 일러주었으니 이로써 빚은 갚은 셈이 되는 것인가?
오랜만에 ’정읍‘시내를 잠깐이나마 돌아다니다 중국집에 들어가서 ’짬뽕‘을 시켰다.
특별히 맵고 알싸하게 해 달라고 주문한 터라 땀을 흘리며 맛있게 먹었는데.
생각해봐도 산행으로 땀 흘리고 난 후에 다시 속을 덥게 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   개운치   ]


GPS 기록에 의하면 오늘 하루만 무려 다섯 시간 이상을 잔 것으로 돼있다.
한뎃잠이지만 맛있게 잔 것 같아 나로서는 아주 좋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보통 잠은 따뜻한 집에서나 주무세요!”
하지만 다음 구간의 멋진 ‘내장산’을 지나며 얼마나 오수를 즐길까?
벌써 몸은 근지럽다.
    

    
          [   정읍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