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만발한 애잔한 풍경.. (치악산 - 강원 원주)


 

 

황골 - 입석사 - 전망봉 - 비로봉 - 세렴폭포 - 구룡사


 

 

2010. 12. 30


 

해오름 42명

 

 


 

       

 

 

        1. 자연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冬期의 온기는 어느덧 덧없이 흘러간 시공속의 안개가 되었다. 회상된 가을속의 풍경은  내마음의 구름이 되었고,

끝없이 청정하게 스며드는 숙정한 마음은 요원한 양식이 되었다. 지난날의 가을이여, 사무치게 변해버리는 야속한

 시기를 생각하며 길게 내뿜는 소연의 숨소리는 허공속에 묻혀 영영 잠기고 말았다.


 

 

 

 

 

 

 

 

 

 

 

 

 

 

 

 

 

 

 

 

가을날의 추상이 애닯게 흘러간다. 산중의 고요는 이미 때를 알고 시간속 제약 없이 속절히 흐를 뿐이다.

       그 위로 처연하게 흐르는 구름도 겨울을 찾아 추향을 멀리하며 깊은 시간 속으로 잠겨간다. 한 치의 오차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덧없는 세월이 야속도 하다.


 

해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속에 존재하는 시류의 정체뿐일까.

     혼돈한 세상속의 시비인 것일까. 가도 가도 끝없는 사바이지만 그 속에는 정다운 정취가

있을 뿐. 

 

 


 

 
 
 
 
 
 
 
 
 
 

 

 

 황골계곡을 끼고도는 설원의 숲의 겨울은 뭍의 숲과는 달리 그리 황량하지 않다. 눈꽃으로 뒤덮인

겨울나무의 정기는 생기를 잃지 않았다. 계곡과 산등성의 나무에 빼곡히 드러찬 순백의 겨울화는

   응축된 겨울의 구도를 심도 있게 그려낸 치악의 천연스러움이 넘실대는 당당한 풍채의 기운이었다.


 

 

 

 

 

 

 

 

 

 

 

 

 

 

 

 

 

 

 

 

     꾸물거리던 하늘이 서서히 눈과 겨울안개를 몰고 온다. 소복하게 쌓인 경사의 오르막길을 오른 지 얼마 안돼

입석사 등성이에 올라섰다. 계곡과 비탈진 나뭇가지에 살포시 얹힌 눈으로 치장한 단아한 숲속이 순백의

동화속으로 깊게 빠져들게 만든다. 한동안 그 모습에 매료되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회원님들의 표정이

그늘진다. 갑자기 동편의 산자락에서 안개와 눈을 동반한 매몰찬 바람이 눈과 얼굴을 사정없이 긁혀댄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순백의 설원에 깊은 안도감을 나타내며 산로계곡을 따라 움직인다. 

 

 


 

 

 

 

 

 

 


 

              2. 자연의 힘에 의존한 나머지 ... 


 

      가파른 산로를 넘고 좀더 산등성이를 타고 가자 이번에는 서편의 산자락에 눈(眼)이 가득 들어찼다.

    눈꽃으로 단장한 서너 겹의 산자락이 물결치고 그 뒤로 아스라이 신비로 가득 찬 산마루가 미지의

       공간의 윤곽을 드러냈다. 산바람을 타고 천공을 누비는 겨울안개가 시간적 구애를 받지 않고 펼치는

거침없고 장쾌한 풍경이다. 거대한 치악을 송두리째 감싸며 군무를 이루는 장경이다. 우리 모두

한눈에 담는 느낌이었다.


 

 

 

 

 

뽀득.. 뽀득 .. 깊은 눈 속에 파묻힌 산로를 걷는 느낌이 신선하다. 오 , 내림과 벼랑을 걸치며 걷는 회원들의

 속내가 사뭇 생각에 생각을 낳게 한다. 빠르게 모였다 흩어지며 산자락을 휘감던 군무는 땅과 하늘을 가리며

오로지 가는 길만 비춰지니 설산속에 갇힌 외로운 山者가 된 느낌이 든다.

 

 


 

 

 

 

 

 

 

 

바람이 잠든 틈을 타 잠시 쉬면서 먼 산을 응시한다. 산정은 기류를 타고 여기저기 맴돌며 깊은 산중을 찾고 있으며,

   저 설봉 위 흰구름이 끝 상봉의 설화 위를 천천히 타넘고 있다. 산세를 타고 흐르는 완 겨울의 적적한 풍경은 고요속에

묻힘이다. 가을은 티끌 없이 사라지고 도래한 겨울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풍정이다.

 

 


 

 

 

 

 

 

 

 

 

 

 

 

 

 

 

 

 

 

 

 

 

 

 

어느새 깨어났는지 산바람의 입김이 산 온누리를 휩쓸며 구석구석 점녕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걸음은

      빨라지며 걷기를 계속하자 구릉처럼 넓게 솟구친 암석이 앞을 가로 막는다. 그 옆 짙은 그늘에서 불쑥 숲의

            정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참나무 숲을 사정없이 치고 들어오는 안개빛이 그 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차가운 바람을 견디고 있다. 계곡사이로 접어들자 세차게 몰아친다. 이 봉 저 봉

   가릴 것 없이 안개와 눈가루가 천의 장막을 치며 시야에 아득하게 멀어지게 한다. 약간 넓은 고갯마루에서

  하늘을 우러러본다. 조금 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짙푸른 하늘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 어김없이 다가온 해의 끝 날이 1일 남았습니다. 한 동안 경인의 해속에서 구르고 구르며

세태의 지경을 몸소 송두리째 겪었습니다. 말끔히 씻겨내야 되겠습니다. 」


 

그의 얘기가 한 대목으로 감히 덧없음을 그 이상의 축문으로 갈음한다.


 

「 옛다. 잘 있거라, 그동안 몸소 느낀바 편치 못하였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지없이 몰려드는 회한의

상념에 머리칼을 움켜쥔다. 해는 지고 있다. 해는 떠오르지 않는다. 」


 

 

 

 

 

 

 

 

 

 

 

             3. 거침없는 자연 앞에 몸둘바를...

 

 

어느덧 어젯밤 빗물과 안개가 녹아 이룬 상봉의 아래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짙은 안개에 가려

   눈꽃으로 뒤덮은 나무 둥치들의 수려함을 볼 수 없는 별 볼일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이쯤에서

     가파르게 진행되었던 오전의 마음을 풀기로 했다. 차츰 차츰 눈안개가 잦아들며 거울처럼 명징해진

     설봉의 등성이를 둥그렇게 비춰냈다. 그 한가운데로 구름이 일더니 금세 안개가 덮어버린다. 깜짝할

사이 하얀 하늘이 가려진 것이다. 모두 안개속에 풍덩 빠져들었다.


 

대피소 처마 밑에 발을 구르며 한동안 등성아래 군락을 이룬 눈꽃 핀 산목에 상념이 젖어든다. 지난 가을,

       홍염을 피워낸 이후 나무들은 예고 없이 휘몰아쳐 오는 바람과 눈보라에 맞서 오랜 시간을 꿋꿋하게 싸워왔다.

             한 절기동안 머물렀던 공간을 또 다른 절기에 순응하며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러하니 그 나뭇가지가

       오히려 초연하다. 나무 우듬지가 세차게 일렁인다. 그 순간이다. 계곡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산기슭을 매몰차게

몰아친다. 모두 몸을 웅크리며 상봉으로 오름을 지속한다.

 

 

 

 


 

 

 

 

 

 

 

 

 

 

 

 

 

 

 

 

 

 

 

 

 

 

 

 

 

 

 

 

 

 

 

 

         상봉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안개와 바람이 판을 친다. 몸을 가누기도 벅찬 아주 추운 온 겨울낮,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잠시 지체하며 시야를 넓혀본다. 눈(雪)빛을 따라

            구룡사쪽에서 올라온 산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시계는 오후 1시20분을 가르키고 있었고, 바로 눈앞도

            분간하기 어렵건만 몇 몇 사람들의 머리 위엔 눈가루가 수북하게 쌓여있어 마치 에스키모의 얼굴이 연상되었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상석을 품에 안고 추억남기기에 열을 올려댄다. 산객들은 저마다 두툼한 옷에 모자, 배낭을

짊어지고 중무장을 한 채 비장한 모습에 괜시리 웃음이 솟는다.

 

 

 

 


 

 

 

 

 

 

 

 

 

 

 

 

 

 

 

 

 

 

 

 

 

 

 

 

 

 

 

 

 

 

 

 

      40여분쯤 내려왔을까, 사다리병창를 앞두고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쳐 온 몸속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위치로는 치악산 비로봉을 위시로 중간지점에서 고리역할을 하는 암로로 상봉과 연결된 협곡의 중간지점에

      해당되고,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산세의 흐름이 장중하게 나타나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오늘

내내 이 산을 지배한 안개의 마술에 걸려 느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4. 멀어져가는 겨울의 잔상은 더욱 멀기만 하고...


 

어느덧 안개는 사라지고 짙은 먹구름이 한바탕 몰아치자 일순 세상이 얼어붙은 듯 싸늘해진다. 등산로는

 좁아지고 바위와 나무가 눈에 띄게 많아진다. 예사롭지 않은 나무의 형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온 치악의 종목이며, 오는 세월 가는 세월속에 디딤목 역할을 찬연히 지켜온

영목이라 할 수 있다.


 

 

 

 

 

 

 

 

 

 

 

 

 

 

그 산목 군락지를 벗어나 구룡골로 향하자 바람이 그치면서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산로 옆 산봉쪽으로

    눈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능선이건 나무건 사면이 온통 설화로 뒤덮여 있다. 양팔에 주렁주렁 눈송이를 안은

       나무들이 힘에 겨운 듯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 가관이다. 그 화려함을 보며 오르는 산객들의 입에서 탄성만이

 들려온다. 자연이 준비한 눈부신 향연에 넋이 나갈 정도다. 나도 모르게 자연 앞에 겸허함을 느끼니 뿌듯한

힘찬 기운이 솟아오른다.


 

눈 덮인 구룡골의 형상이 찬미롭다. 흐르는 계곡수의 화음이 일률적이어서 그런지 들려오는 게 청아하니

   소박한 스케일이다. 치악의 짙은 원시림을 타고 내린 맑은 물 또한 제법 힘이 있다. 눈과 어우러진 계곡미가

한없이 돋보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겨울 산사의 고즈넉함이 물씬 풍긴다. 1,300여년의 중장한 고찰의 고풍스러움이 그윽한 향취를 품어낸다.

깊은 산기슭아래 짜임새 있이 들어찬 대웅전, 요사체등은 억겁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았으리라. 멀어지는

겨울채색의 진중함을 이곳에서 느끼며 흘러가는 독경소리에 비치는 천년의 숨결을 가슴깊이 담아두리라.


 

 

 

 

 

 

 

 

 

 

 

 

 

 

 

 

 

 

 

 

 

 

 

 

 

 

 

 

 

 

  하늘이 열리고 양광이 비쳐드니 겨울의 온기는 온데간데없다. 걸어나오며 지나온 흔적을 차곡차곡 정리하여본다.

충만한 기를 받은 마음 들린 산행이었고, 전부터 마음에 품어 애틋했던 산행이었다. 석양으로 넘어가는 이 시간,

겨울눈꽃 날리는 산로 길섶에는 철 늦은 가랑잎이 몸치장을 하고 해맑은 얼굴로 깊어가는 겨울하늘을 우러른다.

가는 세월이 서러워서일까. 그 잎에 맺힌 노을눈꽃이 눈물방울처럼 영롱하다.


 

             ◈◈◈


 

무탈한 산행과 설산의 感景에 도움을 주신 회장님이하 회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한적한 겨울의 설산 풍경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음을 알려드리고 싶다. 모두들 그랬으리라. 적정한 시간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서있다. 고요속에 깃든 시간은 한갓 미중에 불과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신요한 철학이 깊게 배여 있음을

알았다. 그 누구라도 그르침을 해서는 아니 되는 줄 알았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해를 넘기기 전 2010.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