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그러운 숲속 길과 전설의 향기 -

                          치악산 종주 산행




□ 간 산 : 치악산 (1288m, 강원도 원주시)

□ 일 자 : 2010. 7. 20 (화)

□ 간사람 : 단독 산행 (파랑새)

□ 주요코스 : 구룡탐방지원센터 - 구룡사 - 구룡소 - 세렴감시초소 - 사다리병창 - 비로봉 -

쥐너미고개 - 곧은재 - 향로봉 - 남대봉 - 상원사 - 상원골 - 성남공원지킴터

□ 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21.4km, 11시간 18분 (07:02-18:20)

□ 준비물 : 배낭, 스틱, 산행간식(김밥4줄(현지구입), 오이 5개, 사과 1개, 쵸코렡 및 과자 약간,

곶감 5개), 물 2통(2리터), 카메라, 손수건, 모자, 지도, 우의, 후래쉬(사용은 안함), 필기구, 휴지, 예비양말, 티셔츠, 휴대폰, 휴지 등

□ 교통편 : 열차 및 현지 시내버스 이용

- 서울 청량리→원주, 원주→청량리 : 무궁화호 열차 이용 (인터넷 예매)

- 원주시내→구룡사, 성남리→원주시내 : 시내버스 이용

□ 날 씨 : 전날까지 장맛비가 온 관계로 대체로 후덥지근하고 무더웠으며 쾌청했음

□ 산행 기록




<갈 때 / 올 때>




ㅇ갈 때 (일산집→청량리역→원주역→1박→치악산 구룡사 입구)



(2010. 7. 19(월))



-21:15 : 배낭을 메고 일산집 출발.

인터넷으로 예매한 열차표 지참.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여행과 산행을 위해서는 사전 정보파악과 자료 수집은 필수. 이미 집에서 인터넷으로 소요 일정과 경로, 숙박예정지, 교통편(시간표와 요금 등), 산행코스, 식사문제 등에 대한 자료수집과 치밀한 행동계획을 세웠고 준비물을 챙겨 넣었기 때문에 든든한 마음이다. 하지만 그동안 벼루어 오던 오랜만에 떠나는 큰 산의 종주산행이라 기분이 약간 들떠기도 하다.



-22:40 : 3호선 전철 이용, 종로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청량리역 도착. 서둘러 열차 승차



-22:50 : 강릉행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막차) 출발. (3호차 59호석, 6,200원)

열차 안에는 동해 바다로 여름휴가 여행을 떠나는 피서객들이 많음. 특히 젊은 학생들이 많이 탔는데, 매점 칸에는 좌석이 없어 양탄자가 깔린 바닥에 앉아서 끼리끼리 기대어 졸면서 여행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2010. 7. 20(화))



-00:24 : 원주역 도착, 하차 (1시간 26분 걸림)

원주역 근처 가든장여관에서 여장을 풀다(20,000원). 주인에게 5시에 콜 부탁



-04:50 : 기상. 세면



-05:20 : 짐을 챙겨 아침식사를 위해 여관을 빠져 나옴.

시내는 안개에 휩싸여 있고, 아무리 주위를 찾아보아도 식당은 아직까지 문을 연 곳이 없다. 거리에는 사람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데, 시골은 서울과 달리 일상의 시작이 조금 느슨한가 보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역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님



-05:57 : 할수 없이 아침식사를 못하고 구룡사행 첫차 41번 시내버스에 승차(1,100원).

구룡사 주차장에서 아침 일찍 김밥을 판다고 하니까 거기서 해결해야겠다. 밖은 이미 훤한데 뿌연 안개가 짙게 깔려 침침한 기분이 든다. 안개가 끼면 비는 오지 않고 날씨가 좋다고 하는데 쾌청하기를 기대한다.



-06:16 : 10여명의 승객이 탄 새벽길 시내버스는 우측으로는 치악산 자락을, 좌측으로는

영동고속도로를 끼고 42번 국도를 힘차게 달려간다. 산봉우리 위로 아침 해가 솟구쳐 올라 햇살이 눈부시다. 국도변에는 아직도 안개가 깔려 산과 들판이 희뿌옇게 잠겨 있다. 그래도 간간이 드러내는 들판과 숲의 진초록 이파리들은 햇빛에 눈이 부시도록 싱그럽다.



-06:29 : 치악산 구룡사지구 입구 주차장에 도착. 하차.

주차장 옆의 몇 안되는 가게는 아직도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식당도 민박집들도 아직 고요에서 깨어나지 않고 잠들어 있다. 아침 식사도 하고 산행 간식으로 김밥도 챙겨 넣어야 하는데 낭패다. 특히 종주산행은 먼 길이라서 준비 없이 그냥 갈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가게가 문을 열기를 기다린다. 이른 아침의 눈부신 햇살은 산과 계곡이며 광야를 뒤덮고 있는데 아직 주변은 조용하기만하다. 더위를 피해 일찍 산행을 떠나는 몇 사람을 빼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적막감마저 든다. 유원지의 아침은 전날 밤늦도록 꽃피웠을 흥분된 열기 때문에 이렇게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꿈속을 헤매나보다.



-06:41 : 한참을 기다린 끝에 원일상회 할머니가 천막을 제끼며 가게 문을 열고 있다. 반가웠다.

얼른 할머니한테 달려가 김밥 4줄을 말아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가게 밖에서 기다렸다. 날씨는 참 좋다. 여름의 강렬한 아침 햇살은 웅장한 치악산 자락의 짙푸른 녹음을 더욱 눈부시게 하고 있다. 잠시 후 김밥을 받아 3줄은 배낭에 넣고 한 줄은 탁자에 앉아 아침식사로 먹었다. (8,000원)



-07:02 : 드디어 산행 출발. ⇒ ※이하 산행기에서 기록




ㅇ 올 때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원주역→청량리역→일산집)



-20:00 : 산행종료 후 1시간 40분이나 기다린 끝에 성남공원지킴터앞 주차장에서 23번 시내버스를

타고(1,100원) 원주시내로 출발. 휴대폰으로 집에 연락을 해서 인터넷으로 9시14분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열차표를 예매해 놓았기 때문에 그 시간 안으로 원주역에 가서 티켓팅을 해야 하는데, 좀 아슬아슬 할 것 같다.



-20:50 : 원주역 앞에 도착. 하차.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있다. 티켓팅 완료.



-21:14 : 안동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승차 (6,200원, 3호차 35호석).

평일이라 그런지 승객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좌석에 앉으니 피곤이 몰려와 금방 잠에 빠져 든다.



-22:35 : 청량리역 도착.

지하철로 일산집까지 이동. 밤 12시에 일산집에 도착. 일정 종료.




<종주산행 기록>




-07:02 : 산행준비를 완료하고 치악산 구룡지구 공원관리소앞 출발.

아직 일러서 그런지 서너명의 등산객들만 보이고 산행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음.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다. 공원입구 매표소(문화재 관람)는 아직 문이 닫혀 있다.



-07:07 : 구룡탐방지원센터앞 삼거리 갈림길.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5.6, 구룡사 0.8km

계곡 옆으로 난 숲속 길을 따라 올라간다. 어제까지 장맛비가 내려서 그런지 공기가 신선하고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산행길 주변은 등산객들이 없어 조용한데 “쏴”하고 계곡을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는 요란스럽게 정적을 깨우고 있고, 숲속에서는 이름 모를 여러 산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기면서 낯선 산행객을 반기고 있다.



-07:12 : 빼어난 금강송 소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길을 우뚝 막아선 원통문을 지난다.

숲속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옆에는 키가 크고 기품이 묻어나는 붉은 빛의 아름다운 금강송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늘어서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07:17 : 아직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단층의 아담한 구룡산방을 지난다.

조금 지나 쉼터에는 하얀 토끼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데, 그 모습이 여유롭고 한가롭다. 온 계곡을 메아리치는 물 흐르는 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숲속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은 번잡한 세상만사를 한순간에 날려 버리고 나를 별천지에 들게 한다.



-07:18 : 구룡사 도착.

중장비와 인부들이 절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유서 깊은 절 경내를 한참동안 구경했다.

원주시내에서 동북방 약 24km 지점에 위치한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때(666)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전해지는 사중기록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기 위하여 법력을 통하여 용들을 동해로 내몰고 지었다하며, 조선중기에 이르러 숙종 32년(1706)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또한 종영사가 1966년 구룡사 주지로 부임하여 황량하였던 사원 전모를 일신하였는데 보광루를 해체ㆍ복원하여 단청을 마쳤다. 당초에는 의상대사가 아홉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고 하였으나, 조선 중엽 때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 때문에 사세가 기울어진다고 하여 그 혈을 끊었으나 더욱 쇠잔해지자 다시 거북바위의 정기를 살리고자 거북구(龜) 자를 써 오늘의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하며, 숙종 32년(1706)에 중건되었다. 구룡사는 신라말기 도선국사의 수도를 비롯하여 고려말에는 무학대사, 조선 중엽에는 사명대사 등 고승대덕의 수도처였다고 한다. 참으로 유서 깊은 절이다.



-07:30 : 절 구경을 마치고 산행 시작.

구룡사 바로 뒤의 계곡에 있는 맑고 깨끗한 푸른빛의 구룡소 지남. 구룡소로 흘러드는 물의 양이 많아 유하 소리가 크고 우렁차다.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4.6, 세렴폭포 1.9km



-07:40 : 대곡야영장 지남.

산행길이 이제부터는 계곡 바로 옆에서 조금 벗어나 산 아래 안부를 끼고 나아간다. 산행길 곳곳에서 다람쥐들이 숲속에서 길로 나와 뛰어 다니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계곡의 차가운 습기를 품은 시원한 공기는 안경 유리알에 김을 서리게 해서 자주 닦아내야만 했다.



-07:52 : 소나무 숲 길.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숲 터널 안은 컴컴하다.

온몸에 서늘한 느낌이 확 덮쳐 온다.



-08:02 : 앞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가사장삼의 스님 한 분이 앞장서고 뒤이어 회색빛

절옷을 걸쳐 입은 중학생 또래의 학생들 40-50여명이 뒤따라 내려온다.



-08:03 : 세렴 감시초소.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2.7, 구룡 입구 3.0km

2-3m폭의 널따란 길이 끝나고 철재 아치형태로 된 10여미터 길이의 아담한 세렴교를 건너니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좁은 산행길이다.



-08:08 : 세렴교를 건너 산길을 따라 조금 가니 세갈래 갈림길.

곧장 나아가면 계곡으로 비로봉을 오르고, 왼쪽으로 철난간의 목재계단을 타고 오르면 그 유명한 사다리병창 산행길로 비로봉을 오르게 된다.

독특한 이름인 ‘사다리병창’의 유래를 보면, 세렴교에서 능선을 타고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거대한 암벽군을 볼 수 있는데, 이 암벽군은 원래 말등바위라고 불렸으나 1973년 치악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험준한 이곳에 지금처럼 철난간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많이 설치했다고 하여 사다리병창이라고 부르며, ‘병창’은 영서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험한 급경사길을 타고 올라 힘이 들기 때문에 산행을 한후에 치를 떨어 치악산이라고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바로 그 이름난 사다리병창이 아닌가. 치악산의 최고 묘미인 사다리병창을 어찌 그냥 두고 둘러가랴, 왼쪽으로 꺾어 철난간 목재계단을 타고 사다리병창으로 오르기 시작. 심한 급경사다.

산행길 주위는 키가 큰 참나무로 뒤덮여 싱그럽고 짙푸른 숲터널을 이루고 있고, 바닥에는 진초록의 조릿대가 쫙 깔려 풍성하고 빈틈이 없다. 초입 안부의 급경사 목계단길을 200여m 오르니 능선길이 나온다.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암릉길이라 험준하다. 푸른 참나무 숲 터널과 산 아래 양쪽 계곡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계곡수 흐르는 소리는 시원한 청량감을 자아내게 한다.



-08:21 : 30여cm 길이의 돌덩이들을 촘촘히 달아 눕혀 계단을 만들어 놓은 돌계단(이하 “돌계단”)

급경사길이 계속 이어진다. 역시 사다리병창길은 그 명성대로 힘든 코스다.



-08:26 : 무더위에 갈증이 심해 물 한 모금, 오이 반쪽으로 목을 축인다.

조금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08:28 : 또 다시 급경사 돌계단길이 이어진다.

장마철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땀이 비오듯 쏟아져 머리에 두른 손수건을 풀어 물기를 짜낸다. 나는 유난히도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산행 중에 연신 손수건의 땀을 쥐어 짜내곤 한다. 진한 독취가 풍기는 육수가 주루룩 흘러내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뿐하고 상쾌한 기분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온몸의 독기가 땀으로 배출되어 싱싱하게 회복되기 때문이리라. 이 때문에 체질적으로 나와 산행은 불가분 인연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름철 장거리 종주산행은 힘들고 지치고 많은 땀을 흘리게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오히려 더 그 만큼 심신을 상쾌하게 만들고 어지러운 머리를 더 깨끗하게 세척하기 때문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여름철 종주산행 예찬론은 거의 신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08:38 : 능선상 간이 쉼터. 물과 오이를 먹으며 휴식.

무더운 날씨 때문에 쉬는 간격이 짧아진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 훼손지 복구 프로그램을 시행중인데, 복토 후에 격자형의 망을 씌우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다. 수많은 사람들 발길에 채어 생채기가 난 등산로가 잘 복구 되었으면 좋겠다.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2.2, 세렴폭포0.5km, 해발 659m



-08:56 : 길옆에 사다리병창 안내간판이 서 있다.

앞쪽으로는 사다리를 비스듬히 눕혀 놓은 것 같은 좁은 계단 형태의 암릉이 길을 이루고 있다. 해발 700m, 비로봉이 1,288m이니까 아직도 588m는 올라가야 한다. 앞쪽에서 40대 남자 산행객이 내려온다. 그는 이곳 사다리병창은 처음부터 끝까지 급경사 길을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의 등산로인데 또 그런 맛에 오른다고 일러 주면서, 비로봉까지는 약 40분 정도 더 가야 된단다.

멀리 비로봉은 정상 부분이 구름속에 잠겨 그 웅자한 모습을 감추고 더욱더 신비감만 자아내고 있다. 발아래 동쪽으로 능선너머에는 원주 시내가 운해에 묻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행길 능선 양쪽으로 뻗어내린 치악산 줄기들은 짙푸른 싱그러움으로 뒤덮여 눈이 부시다. 내가 여름산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혼을 빼앗는 이 푸르름 때문이다. 온 누리에 펼쳐놓은 녹색 융단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은 심저의 영혼까지도 푸르게 시려오고, 싱싱한 그 생명력에 탄성을 지르며 가슴속 벅차오르는 감격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렇게 싱싱한 여름철 녹음은 나에게 정기와 정열을 가득 채워준다. 그래서 나는 여름산이 좋다. 지금 같이 온 산하에 녹음이 우거질 때면 나는 무조건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 숲에 묻혀 버린다. 그것도 숲에 잠기는 시간이 최대한 긴 종주산행에 매료된다. 이것을 나는 “싱싱 종주산행”이라 일컫는다. 매번 능선마루에 서서 짙푸른 녹음이 양탄자처럼 펼쳐진 산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이 부시도록 싱싱한 초록바다에 흠뻑 빠져 가슴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넘쳐흐르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내 마음을 주체할 길 없어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그러는 동안 머릿속의 온갖 상념은 싹 씻겨 없어지고 상큼한 청량제로 교체된다. 나는 이것을 ‘숲의 세척효과(Green Refresh)’ 라고 얘기하곤 한다. 물론 식자들은 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에 의한 치료효과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정기(精氣), 즉 물리적인 양태를 넘어선 기 차원 이상의 신비한 힘을 애기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깊은 산속 숲에 묻히면 이 세상에 치료못 할 질병은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암이든 뭐든 어떠한 난치병도 대자연에 내던져저 숲에게 맡겨 버리면 치료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은 변함이 없다. 언제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것에 관해 연구도 해보고 싶다.      

네모난 바위들이 사다리처럼 포개진 암릉을 타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09:08 : 능선을 따라 숲터널 길인데, 계속 급경사가 이어진다.

정상인 비로봉은 아직도 구름 속에 잠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09:25 : 분홍색 셔츠를 입은 50대 여자 산행객이 가뿐한 발걸음로 내려온다.

아침에 첫차를 타고 구룡지구 주차장에 내렸을 때 같이 내렸던 그 아주머니 같다. 벌써 정상인 비로봉까지 갔다가 내려오는가 보다. 뒤에서는 20대 청년 둘이서 장난을 치면서 올라온다. 정상은 숲 터널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1.1, 세렴폭포 1.6km, 해발 892m

급경사의 돌길 등산로를 계속 올라간다.



-09:44 :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0.7, 세렴폭포 2.0km

돌계단과 목계단, 그리고 안전철책이 박힌 험한 급경사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정상쪽에는 이제 구름이 걷혔지만 비로봉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09:50 : 휴식.

발아래 전망이 최고다. 원주 시내쪽은 아직도 운해에 잠겨 있고, 웅장한 치악산 능선과 줄기는 짙푸른 임해를 이루고 있다.



-10:11 : 40대 남자 산행객 한 사람과 젊은 청년 두 명이 내려온다.

비로봉은 10여분 내려온 거리에 있다고 일러준다. 힘이 솟는다. 비행 훈련하는 전투기 소리가 요란하다. 이곳은 공군 비행장이 있어 유난히도 진투기 소리가 잦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는 일인데 든든한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지. 계속 돌계단과 안전철책 목계단이 놓인 급경사 길이 이어진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경사가 심해지는 것 같다. 사다리병창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파르고 힘이 드는 코스임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처음 오는 뭇 산행객들은 여기를 갔다 와서는 치를 떨고 악을 쓴다는 치악산이라 하지 않던가? 조금은 지나치지만 이해할만한 하다.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0.3, 세렴폭포 2.4km, 해발 1,170m.

정상 비로봉은 이제 300m 전방. 힘을 내자!



-10:27 : 이어지는 돌계단과 철재 계단 급경사 길. 힘이 든다.

날씨는 쾌청하다. 무더워서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씻어낸다.



-10:38 : 숲 사이로 비로봉의 상징인 돌탑(미륵불탑)의 머리 부분이 보인다.

드디어 비로봉 정상(1,288m)이다! 마지막 철계단을 벗어나 곧장 정상에 오르니 치악산 비로봉의 상징인 높이가 5-6m 되는 미륵불탑 3개가 우뚝 솟아 있다. 미륵불탑은 머리 정도 크기의 돌들을 동그랗게 쌓아 올려 탑을 만들었다.

비로봉에 서있는 3개의 미륵불탑에 대한 유래를 알아보면, 이 탑은 원주시내 거주하며 조그만 과자방을 운영하던 용진수라는 사람에 의해 쌓여졌다고 전해진다. 어느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나는 치악산 산신령이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있는 치악산 시루봉 (비로봉)에 3개의 돌탑을 쌓되 너 혼자 힘으로 직접 쌓기를 원한다" 하며 탑의 모양을 말해 주고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잠에서 깨어난 용씨는 가족회의를 열고 탑을 쌓기로 결심하였으며, 그 날부터 3년간 3일에 2일은 탑을 쌓고 1일은 장사를 하여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탑쌓기는 3년만에 완성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만에 무너지고 산신령이 다시 나타나서 다시 쌓아 놓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그리하여 용씨는 다시 3년에 걸쳐 탑을 쌓고 다시 하루밤에 무너져 내리고 산신령이 다시 쌓으라는 말에 3년에 걸쳐 쌓은 탑이 지금의 미륵불탑이다. 3개의 탑은 칠성탑,산신탑,용왕탑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중앙의 산신탑 옆에는 50cm 정도 높이의 검은 돌로 된 사각형의〔치악산 비로봉 1288m〕표지석이 서 있다.

<산행안내표지판> : 구룡사 4.8, 세렴폭포 2.7km, 해발 1,288m.

정상에 서니 발 아래로 푸른 숲에 둘러싸인 원주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용왕탑 부근에는 올라오면서 앞서 지나갔던 청년 두 명이 앉아서 쉬고 있어 사진촬영을 부탁하고 마음껏 심호흡을 하면서 주변 조망에 푹 빠졌다. 바로 앞의 원주 시내 쪽 능선에는 제일 위에서부터 삼봉과 투구봉, 토끼봉이 같은 능선을 타고 쭉 이어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한 동쪽으로 둥그렇게 성곽처럼 이어져 빙 둘러쳐진 산맥의 아득히 먼 맞은편 능선에는 오늘 내가 가야할 마지막 봉우리인 남대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너머로 높이가 비슷한 시명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또 비로봉과 남대봉의 중간지점쯤 되는 능선 끄트막에는 향로봉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남대봉은 멀다. 가물가물 아득히 멀리 보인다. 비로봉에서 향로봉까지 2시간, 다시 그기서 남대봉까지 2시간, 총 4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또 남대봉에서 상원사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성남리까지는 다시 2시간 정도 더 걸리게 된다. 그러나, 비록 아득히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기꺼이 닿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힘들겠다는 생각보다는 기다려지는 마음이 샘솟아 조그만 흥분이 일기까지 한다. 어차피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아닌가? 아무리 먼 길도 한걸음 한걸음 가다보면 나중에는 목적지에 닿게 되는 것이 세상사 자명한 이치요, 인생사의 진리 아니겠는가?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짙푸른 숲의 융단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도전의 열정을 용솟음치게 한다. 오늘도 정말로 멋진 명산 싱싱 종주산행을 이루게 될 것이다.

갈증과 시장기가 느껴져 산신 미륵불탑 주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배낭에서 김밥 한 줄을 꺼내 오이와 함께 먹었다. 꿀 맛이다. 원주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식사를 하고 있자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왔는지 귀여운 다람쥐 대여섯 마리가 발밑까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치근덕거린다. 배낭에서 쵸코렡을 몇 개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겁도 없이 순식간에 손바닥 위로 달려와서 물고 잽싸게 어디론가 달아난다. 아마도 그동안 많은 등산객들한테 먹거리를 얻어 먹어온 학습의 결과이리라.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서 등산객들의 벗이 되어 상생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먼저 올라온 두 젊은이가 자기들은 계곡길로 내려간다며 좋은 산행되시라고 인사를 건네며 하산을 시작한다. 나도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나서는데 50대 후반은 된 듯한 부부가 올라온다. 자기들은 향로봉에서 올라오는데, 이곳에서 조망되는 여러 곳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안내를 해준다. 이곳 지리에 훤한 것을 보니 치악산에 자주 오는 분들인 것 같다.



-11:18 : 비로봉 정상에서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대남봉을 향해 출발.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10.5, 계곡길 0.3km

이제부터는 능선 산행이니까 여유롭고 힘도 덜 들고 발걸음도 가뿐하다. 세상사도 이같이 오르막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면 즐길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생기겠지. 그런데, 사실 지내놓고 보면 어렵고 힘들었을 때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데, 그것은 고난을 극복하고 뜻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1:24 : 비로봉 산불감시초소.

이곳은 곧장 나아가서 향로봉으로 가는 길과 우측으로 꺾어 계곡길을 통해 구룡사로 하산하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10.2, 비로봉 0.3, 구룡사 4.6, 세렴폭포 2.5km

상원사까지는 10여km가 넘는 거리다. 산행길 10km면 굉장히 먼 거리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10km나 넘는 거리를 싱싱한 숲속에서 숲의 정기를 마시며 지낸다는 얘기다. 참나무 숲의 능선길이 계속 이어진다. 등산로는 숲 터널을 이루고 있어 햇빛을 가려 주고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등산로 옆에는 잡목과 풀들이 싱그러운 여름의 향내를 듬뿍 뿜어내고 있고, 간간이 노란 원추리꽃들이 초록색 풀들과 조화를 이루며 반갑게 맞아 준다.



-11:34 : 50대 여자 산행객을 만나다. 오늘은 평일이라 그런지 산행객들이 드물다.

능선 오른쪽 아래에는 원주 시내가 위치하고 있어 비로봉에서 남대봉까지는 계속 원주 시내를 오른쪽에 두고 끼면서 능선을 타게 된다. 그래서 어디서나 대자연 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원주시가지를 한 눈에 바라보면서 산행을 하게 된다. 치악산이라는 큰 명산의 품에 안긴 ‘자연의 도시’ 원주는 평화스럽고 아늑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11:38 : 쥐너미재.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9.6, 입석사 1.6km

쥐너미재에는 옛날에 절이 하나 있었는데, 쥐가 너무 많아 폐사를 했다고 한다. 하기는 절집에는 쥐가 많아도 일반 민가처럼 쥐약을 놓거나 고양이를 길러 잡을 수도 없고 낭패이긴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절 문을 닫아야 했겠는가?



-11:47 : 입석사로 내려가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9.2, 입석사 1.2km, 해발 1,130m

등산로 옆에는 참나무숲 아래에 파란 조릿대가 온통 빈틈없이 덮여 싱그러움을 더해 준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지저귀며 낯선 산행객을 맞아 준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의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싱그러운 숲에 나 자신이 묻혀 버린다.



-11:55 :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8.8km

젊은 산행객 두 사람이 지나간다. 치악산처럼 깊고 큰 산에서 더군다나 숲이 터널을 이루어 침침하고 한적한 산행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생경스러우면서도 반갑다. 좋은 산행 되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 적적한 외로움이 한결 덜어진다. 그렇더라도 나는 혼자 다니는 단독 종주산행을 좋아한다. 나 혼자 기분나는대로 자유롭게 걸어가다가 힘들면 쉬어가고, 또 힘이 생기면 달려가기도 하고, 다른 것에 전혀 신경 쓸 것 없이 마음껏 자연과 교류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이 혼자 종주산행 즐기는 가장 큰 이유이자 매력인 것이다. 산행 중간 중간에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하고 하다보니까 자연히 시간이 지체되기 마련이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맛으로 남기 때문이다.

참나무 숲속에는 풀들이 자라 싱그럽고, 노란 나리꽃들은 초록빛 풀들과 잘 어울려 귀인처럼 빼어난다. 계속 완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종주산행에서 달갑지 않은 것이 내려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려간 만큼 반드시 또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 목표인 향로봉을 가기 위해서는 우뚝 솟은 비로봉에서 많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지형이다. 이어지는 산행길은 험한 사다리병창길과는 달리 쿠션이 느껴지는 육산의 흙길이다. 낙엽이 흙으로 변해 걸으면 푹신한 느낌을 주는 산행길은 싱그러운 숲과 더불어 최고의 산행맛을 안겨준다.



-12:05 : 휴식. 오이와 물로서 갈증을 달랜다.

장마철 습도가 높은 탓에 머리에 두른 손수건에서는 연신 땀이 흘러 내려 손수건을 풀고 땀을 짜낸다. 지독한 육수 냄새가 난다. 몸속의 나쁜 독기가 쑥 빠지는 느낌이 들고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12:05 :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8.4, 비로봉 2.1km



-12:09 : 휴식. 물과 오이로 갈증을 달랜다.



-12:13 : 이제 내리막길은 거의 끝나고 잡목 숲의 평지길이 이어진다.

세상사 모두가 그렇겠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늘 변화 하는 것이 세상사 아니겠는가. 지저귀는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유난히도 여유롭게 즐겁게 들린다.



-12:21 :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7.4, 비로봉 3.1km

한적하고 고요하다. 숲속에서는 산새 소리만 요란하다. 그렇지, 이 숲은 바로 저들 그러니까 숲과 새들의 집이고, 그들이 주인이지. 불청의 산행객들은 나그네이고. 시원한 한줄기 바람은 청량제가 되어 기운을 돋워 준다. 육산의 산행길은 푹신하여 기분 좋은 안락감을 느끼고 진한 숲의 향기는 세척제가 되어 내 머릿속을 씻어 버려 텅비게 한다. 날아갈 듯한 상쾌함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최상의 기분이다.

조금 가니 오르막이 시작된다.



-12:35 :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6.7, 비로봉 3.8km

비로봉에서 제법 많이 온 것 같은데 아직도 갈길이 훨씬 많이 남았다.

휴식. 50대 남자 산행객이 지나간다. 상원사쪽에서 온다고 했다.

완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참나무 숲터널은 끝없이 이어져 햇빛을 가려준다.



-12:55 : 헬기장.

길옆에는 노란 나리꽃과 주홍색 하늘나리꽃이 많이 피어 있다. 여름철 산에서 만나는 진초록 수풀들과 그 사이에 핀 황금빛 노란색 나리꽃은 환상적이다.



-13:00 : 젊은 산행객이 웃옷을 벗은 채로 내려오고 그 뒤를 40대 남자 산행객이 따라 온다.

날씨가 무척 무덥고 산행객들이 거의 없어 웃옷을 벗은 것이 그렇게 크게 탓할 일은 아닌 듯하지만 그래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 등산로에서 옷을 벗고 산행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 “무척 더운 모양이구나...“ 했더니 약간은 민망해 한다. 두 사람은 상원사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라고 한다.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 무덥기는 하다. 연신 손수건을 짜서 땀을 배출시킨다. 독한 기운이 땀을 통해 빠져나간 뒤라서 기분은 상쾌하다.



-13:06 : 곧은치 네거리 갈림길. 해발 860m.

비로봉 정상보다 거의 430여m를 내려왔고 앞으로 거의 그 정도를 다시 올라가야 한다.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5.7, 비로봉 4.8, 관음사 2.1, 부곡공원지킴터 4.1km

관음사 쪽에서 30대 남자 산행객이 한 사람이 올라온다. 약 40여분 정도 가면 향로봉이 나온단다.



-13:12 : 50대 여자 산행객 한 사람이 내려오고, 연이어 친구 일행인듯한 사람이 내려온다.

이렇게 큰 산에서 인적이 드문 평일에 호젓한 숲속 산길을 여자 둘이서 가는 것이 대담해 보이기는 한데,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연신 서로를 크게 부르며 떠들면서 간다. 무덥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땀이 흘러내린다. 자주 땀에 젖은 손수건을 짜서 육수를 길에 뿌려댄다.



-13:20 : 중년의 남자 산행객 한 사람과 여자 산행객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면서 내려온다.



-13:24 :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5.1, 비로봉 5.4km.

드디어 비로봉에서 지나온 길보다 상원사까지 가야할 길이 더 가까운 반전이 이루어졌다. 힘들고 지치기 시작하는데 한 줄기 서광처럼 위안이 된다.



-13:32 : 삼거리 갈림길.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4.8, 비로봉 5.6, 국형사 2.2km

30대 부부 산행객이 내려온다. 보기가 참 좋다.

햇빛은 구름에 가려 열기를 잃어 버렸지만 장마철의 후덥지근한 날씨는 땀을 쉴새없이 쏟아내게 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쪽으로는 원주 혁신도시건설 공사 현장이 널려 있다. 초록색 자연 대지를 벗겨 버리고 온통 황토색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13:38 : 향로봉 도착.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산행객 두 사람이 아래쪽에서 올라온다. 강열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응달에 자리를 펴고 앉아 간식을 먹었다. 먼저 물로서 갈증을 풀고 나서 김밥 1줄과 사과 1/2, 오이 1/2을 먹어 시장기를 달래고 다시 기운을 회복했다.



-13:55 : 휴식을 마치고 다시 출발.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4.6, 비로봉 5.9, 성남리 9.8km. 산행 종착지인 성남리까지는 아직 거의 10km가 남았다. 상당히 먼 거리다. 이어지는 큰 산줄기 멀리에 우뚝 남대봉이 보인다. 앞으로 2시간 후면 다다르겠지. 그 뒤로는 시명봉이 우뚝 솟아 후견인처럼 버티고 있다.



-14:02 : “사람을 처음 만납니다. 반갑습니다!” 큰 외침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40대 남자산행객

두 사람이 내려오고 있다. 자기들은 상원사에서 오는 길인데, 도무지 사람 구경을 못하다가 나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아마도 오늘은 비로봉이나 향로봉쪽에서 남대봉이나 상원사까지 종주산행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그런가 보다. 나도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참나무 숲속 능선 산행길은 참으로 싱그럽고 상쾌하다. 울창한 숲 때문에 사방의 조망이 좋지 않지만 나는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고, 이렇게 무덥고 햇빛이 강렬한 여름철에 처음부터 끝까지 울창한 숲속터널 산행을 10여 시간이나 할수 있다는 것이 행운일뿐더러 정말로 행복한 시간으로 생각되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싱그러운 산길,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천국이 따로 있을까? 여기가 바로 천국처럼 느껴진다.



-14:08 : 헬기장.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4.1, 비로봉 6.4, 향로봉 0.5km.

아득히 멀리 비로봉이 우뚝 솟아 내려보고 있고, 뒤를 돌아 반대편에는 싱그러운 초록 융단이 깔린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서 끄트막에 남대봉이 자태를 뽐내며 기다리고 있다. 남대봉 능선은 웅장하고 그 위세가 크다.

육산의 부드러운 감촉이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발밑에서 느껴진다. 햇빛은 따갑고, 완경사 오르막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14:26 :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3.5, 향로봉 1.1km.

오가는 산행객들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평일이어서도 그렇겠지만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장시간 산행길을 나서기는 쉽지 않겠지.



-14:34 : 길가에 짐승이 파헤친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파헤쳐진 흙이 생생한 것으로 보아 방금

조금 전에 멧돼지가 파헤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아무도 없는 깊은 심산유곡에서 덩치 큰 멧돼지라도 만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세상사라는 것이 꼭 내 마음대로 되라는 법이 없지 않는가? 그래서 일단 호신책으로 배낭 옆에 꽂혀 있던 스틱을 꺼내 펴 들었다. 여차하면 지팡이를 무기로 사용하여 멧돼지와 맞서보겠다는 심산이다. 산행길 곳곳에 조금 전에 파헤친 흔적이 나타났다. 혼자 큰 소리로 떠들면서 사방을 면밀히 감시하면서 조심스레 컴컴한 숲속 터널 길을 계속 나아갔다.



-14:46 : 험한 가파른 경사길이 끝나고 제법 평평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무덥다. 연신 손수건에 밴 땀을 짜서 육수를 배출해 낸다.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3.0, 비로봉 7.5km.



-14;53 : 50대 남자 산행객 한사람이 다가오고 뒤이어 또 한 사람이 온다. 반갑다.

두 사람은 황둔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했다. 상당히 먼 거리다. 능선 숲길은 계속 이어진다.



-15:08 : 계속 완경사 산행길을 올라간다. 이제는 가까운 곳 바로 앞에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남대봉이겠지. 이제는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스틱의 도움을 받는다. 이어지는 참나무 잡목 숲터널. 해발이 높은 고지대 능선에는 바위가 많고 험준하다. 능선 봉우리에 올라서니 앞쪽에 봉우리가 몇 개 보이고 그 뒤로 남대봉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왼쪽 다리 무릎부분이 무척 아프다. 스틱에 힘이 더 쏠린다. 그래도 가자! 끝까지 완주하자.



-15:34 : 능선에서 다리가 아파 잠시 휴식.

높다랗게 설치된 철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다리에 무리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15:52 : 숲 터널을 빠져 나오니 조그만 감시 초소가 보이고 갑자기 널찍한 공간(헬기장)이 펼쳐진다.

드디어 남대봉이다. 해발 1,181m. 오르기 전에는 그렇게 높아 보이던 남대봉도 오르고 보니 내 발 아래다.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 오르고 보면 별것 아닌데, 그것으로 목표로 삼고 오르기까지 힘이 드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오르막은 끝났다.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저절로 가볍다. 그런데 아무도 없어 한적하고 썰렁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는 이런 분위기가 조금도 싫지 않다. 초소에 붙은 성남리에서 원주 시내로 가는 시내버스 시간표에는 16:50분발이 있고 그 다음에는 막차인 20:00발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성남리까지는 두 시간이상 걸리므로 16:50분 차는 타기 힘들고 할수 없이 저녁 8시 막차를 타는 수밖에 없다. 그럴려면 성남리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자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내려가기로 했다.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밥과 오이로 시장기를 달랜다. 주위 경치를 감상하니 높고 낮은 준령들이 모두 내 아래 있다. 주변 경치 조망이 한마디로 끝내준다. 치악산의 상징인 꿩과 스님의 전설이 서려 있는 유서 깊은 상원사 절이 이 봉우리(남대봉) 조금 밑에 자리하고 있어 어서 빨리 가보고 싶다.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0.7, 비로봉 9.8km

휴식을 취하고 이제는 내려가는 코스만 남아서 그런지 아프던 다리도 한결 나아져 정상으로 돌아왔다. 10여분 휴식을 취한 후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상원사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은 바위 투성이인 고지대 능선과는 달리 육산의 숲속 길로서 포근하고 감촉이 좋았다.



-16:09 : 능선상 삼거리 갈림길.

곧장 내려가면 영원사와 금대리쪽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 꺾어지면 상원사를 거쳐 성남리로 가는 길이다. 좌측 길로 접어들었다.

<산행안내표지판> : 상원사 0.4km, (비로봉 9.8, 남대봉 0.2km) (영원사 2.5, 금대야영장 4.9km)



-16:16 : 상원사 도착.

“치악산 상원사”라고 가로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들어가니 곧장 위쪽으로 산신각이 있고 그 밑 우측으로 스님들이 도량을 닦고 기거하는 절집이 있고 다시 그 옆 우측으로 언덕 마루에 대웅전과 두 개의 석탑. 또 제일 앞쪽 절벽 위에는 종루가 위치하고 있었다. 상원사는 치악산이라는 산 이름을 낳게 한 '꿩과 구렁이의 전설'이 어려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상원사는 치악산 남대봉(1,182m) 바로 아래의 해발 1,100m 고지에 자리해 있어 자연 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쌍탑은 고려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지방유형문화제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찻길이 끊어지는 성남 마을에서 절까지의 3km 구간은 맑은 계곡이 비경을 이룬다. 종루 앞에서 바라본 상원계곡과 그 너머 능선들의 조망은 정말 좋다.



-16:39 : 상원사 구경을 마치고 출발. 내려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16:51 : <산행안내표지판> : 성남지킴터 4.8, 상원사 0.4km

상원사에서 모퉁이를 돌아서니 계곡이 시작된다. 하산 산행길은 그 계곡 옆으로 계속 이어진다. 수량이 풍부한 계곡수가 거품을 일으키며 요란스럽게 흘러간다. 큰 물흐는 소리에 모든 것이 잊혀진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계곡이다. 워낙 높고 험해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계곡이다. 일가족인듯한 사람들 두 팀이 상원사를 물으면서 올라간다. 아마 템플스테이를 하러 가는 것인가?



-17:26 : <산행안내표지판> : 성남지킴터 4.8, 상원사 0.4km

계곡수는 점점 그 수량이 불어나 많은 물이 흘러간다. 바위에 부딪혀 흰거품과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17:42 : 상원사에서 사용하는 주차장 도착.

차량 1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상원사에 가는 손님이나 사찰측에서 사용하는 주차장이다. 계곡 산행길이 끝나고 지금부터는 성남리까지 계곡을 옆으로 끼면서 차량 출입이 가능한 소로를 따라 내려간다. 길은 시멘트 포장이 된 곳도 있고 비포장 길도 있다. 길옆 계곡에는 수량이 많은 계곡수가 큰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산행안내표지판> : 성남지킴터 2.4km



-18:01 : <산행안내표지판> : 성남지킴터 1.0km

계곡수가 바위에 부딪치며 요란한 굉음을 내며 흘러가는 소리를 정말 귀가 멍하도록 많이 들었다. 무더운 여름철에 몇 시간씩이나 이런 시원한 계곡수 폭포음을 들으면서 걷는다는게 얼마나 좋은 피서이며 신나는 일인가.



-18:20 : 성남공원지킴터 도착. 산행 완료.

<산행안내표지판> : 비로봉 16.0, 남대봉 5.9, 상원사 5.2km

산행을 시작한지 11시간 18분만에 치악산 종주산행을 끝마쳤다. 총 21.4km.

기억에 남는 최고의 좋은 숲속 산행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