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산 산행기


이런저런 일에 쫓기며 지내다 보니 삶의 여독이 몸에 차오른 느낌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연의 품안에 들어 치유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에서 5월 정기 산행에 비교적 일찍 신청해 두었다. 새삼 산에 간다는 것이 설레였다.


자연은 늘 그대로이며 평형을 이루고 있다. 내 몸도 결국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 그대로의 감각이 내 몸 안에 있다. 하지만 인간의 문명 활동에 의한 삶은 기계적이고 부자연스럽다. 그런 질서안에서 살아가면서 자연과의 괴리로 인한 부작용이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내가 농촌에서 자라나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체질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든 나는 종종 자연의 품에 들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왔다.


7시 30분 교대역을 출발해 중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모두 새벽에 깨 나오느라 졸린 듯 차가 출발 후 눈을 부치다 여주 휴게소에서 쉬고 나서는 회원끼리 이런 저런 예기를 하며 차안이 활기를 띠었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녹음이 우거져가는 산과 호젓한 시골 마을들이 보였다. 겨울에 건조하게 느껴지던  먼 산 빛깔이 청푸른 빛깔로 변해 있었다. 갈수록 주변 산이 깊어지는 가운데 산 계곡에 원통 모양으로 생긴 기차가 보였다. 산중의 그 낯선 느낌이 소박하고 정겨움마저 느껴지게 했다.


마침내 신록이 제대로 피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그동안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는 느낌이었다. 늦추위가 계속되면서 내 일매헌 옥상의 나무들도 몇 그루가 동해를 입었다. 동해 입은 가지에서 늦게 피어나는 잎이 잘 자라나지 못하는 것이 애처로웠다. 문득 세월이 잘못되어 자연이 더 이상 제대로 운행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 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자연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새삼스레 봄이 소생하는 세월 표정을 다시 돌아보게 된 해이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느끼며 지나오는 듯 했다. 그런데 오늘은 모처럼 봄기운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번에 산행지로 나선 곳은 충북 제천의 금수산이다. 그 산이 잇는 곳이 청풍 명월의 고장인데다 그 이름에서 수려한 강산이 연상된다. 금수산 입구 주차장에 닿았다. 오늘 함께 산행하기로 한 충북 건축사 회원들이 기다리다 일행이 탄 차가 도착하자 명절 때 고향을 찾아든 일가친척을 맞이하듯 차 입구에 서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충북건축사 등산동호회 회원들은 30분 전에 도착하여 기다렸다고 했는데 무료함을 달래려는듯  한말 들이 프라스틱 술통에 받아온 동동주를 비우고 있었다. 말술을 놓고 마신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목격했다. 그리고 도착한 서울 일행에게 한잔씩 따라 주었다. 나도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니 술에서 맑은 솔향기가 났다.


출발지인 상학주차장에 금수산의 전체 모습이 올려다 보였다. 산세가 그리 커 보이지는 않지만 능선이 상상한대로 아기자기해 보였다. 이 지역 자체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산행을 시작했다. 입구 길옆에 무리지은 철쭉꽃이 탄알끝처럼 탄탄한 모습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일시에 터뜨려지면 기가 표정이 매우 화사해질 것 같았다. 올라가는 길에서도 시야가 정상까지 트여 보였다.


완만한 터전에 자리 잡은 마을의 집과 밭이 평온하게 보였다. 금수산 가는 길 어귀에 선 세그루 소나무가 소담스럽게 서 있었다. 저만치 안서간 일행들이 길게 늘어서서 그 어귀를 지나는 모습이 싱그러워 보였다. 산을 향하는 모습이 맑게 느껴져 뒤에서 바라보는 마음도 흐뭇했다.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 같은 몽실한 그 소나무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섰다. 충북 회원 한분이 가다가 갈가에 멈춰서서 부인의 신발끈을 매어주고 있었다. 우측길에 계곡에서는 장비를 동원하여 돌쌓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리 공사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놓이는 계곡 건너에는 꿀통이 보일 뿐 마을이 이어지지 않아서 왠일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물이 빠져 나가는 암거라고 했다. 그 역시 그 위로 통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라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예전 같으면 나무다리 하나 걸치고 오갔을 것이다.


길 옆 농가의 둘러친 망 안에서 거위와 닭들이 햇살을 쬐고 있었다. 길가의 야생 패랭이꽃이 요염하리 만치 선명한 진분홍 빛깔을 발하고 있었다. 가다보니 삼거리가 나왔다. 앞서간 일행이 거기서 우측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표지석에 금수산의 유래가 쓰여 있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 군수로 있을 때 이 곳 산세가 아름다워 금수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오르는 길 주변 나무에서 신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벚꽃 등이 피어 화사한 분위기를 띠었다. 신록과 꽃이 어우러져 생동감을 띠었다. 영취산에서 진달래를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이제 한창 건강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자락 끝에 밭이 평평한 일구어져 있었다. 그 황토흙 바탕과 산언저리에 핀 벚꽃과 갖가지 들꽃들 그리고 산에 이제 막 무성해지고 있는 연두빛 녹음과 소나무의 짙은 초록빛 색깔들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그것을 대하니 오늘에서야 봄이 제대로 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심 안도감마저 들었다.


곳곳에 한두그루 서 있는 복사꽃이 더 화사한 느낌을 띠었다. 내가 본 봄 꽃 가운데 복사꽃이 가장 화사하였다. 흙내음을 풍기는 빈 밭은 푸근한 느낌을 띤다. 풍경을 바라볼수록 점차 산과 동화되어가는 느낌이다. 풍경을 사진으로 접하고 동할 때가 있지만 실제 느낌을 느낄 수 없다. 직접 몸으로 대해야 느낄 수 있다.


다른 일행이 앞서 걷는 모습이 편해 보였다. 철이 지난 듯도 한데 길가의 벚꽃이 아직도 화사함을 풍겼다. 더디 피어나 더디 지고 있는 듯 했다. 아니면 늦추위로 유난히 몸살을 앓게 한 해에 존재감을 발하려 더디 지고 있는 듯도 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자연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봄기운이 차곡차곡 내 몸 안에 고여 드는 듯 했다. 기온도 올라 점차 땀이 흘렀다. 가다보니 다른 사람들은 다 겉옷을 벗고 있는데 나만 그대로 입고 있었다. 잠시 멈춰 겉옷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길가에 옹달샘 표지가 보였다. 반가움에 안을 들여다보니 물은 말라 있었다. 다른 일행이 올라가다 쉬면서 보이는 것보다 오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계속 오르니 다시 옹달샘이라고 쓰인 돌이 보였다. 아까와 글씨가 같았다. 흐르는 물이 고이는 곳에 그렇게 표시해논 것 같았다. 다시 올라가다보니 물이 있는 진짜 옹달샘이 나타났다. 바닥에 고인 물을 떠 마시니 물맛이 좋았다.


계곡을 거슬러 능선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말 그대로 청풍명월의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그 뒤로 시야가 트였다. 되돌아서 보니 지나온 계곡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옆에 선 기암괴석이 금강산 삼선암을 연상케 했다. 여기 저기 아기자기한 산세와 그런 기암 괴석이 풍치를 자아내어 금수산이라 이름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잠시 멈춰서서 스케치를 하다보니 조병섭, 김준식, 송승원 건축사가 올라오며 시원하다고 했다.


뒤쪽우측에 전망대처럼 솟은 곳이 보였다. 한 사람이 앉아 바라보다 일어서 정상부를 행해 갔다. 그 곳으로 가니 충청호가 보였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좋았다. 거기서 정상부는 300m 정도 남아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마주오던 사람들이 절벽을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었다. 먼저 지나온 사람이 뒤돌아서서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넘어온 후 내가 올라서니 그 곳이 길이 아닌데 넘어 왔다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그 바로 위 정상에 닿았다. 사방으로 시선이 트여 호젓하고 시원했다. 충주호 쪽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이 일행이 식사 정소로 이동했다. 산 위에서는 올라올 때 가까이 보이던 신록의 표정과 달리 아직 잎이 피지 않은 나무가 많아서 내려다보이는 산 빛깔도 갈색빛깔 기조였다. 빨리 스케치를 마무리하고 내려가니 앞쪽 봉우리에서 식사하는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자리 잡은 주변에 진달래  꽃이 생기 있게 퍼어나 야외 식사 장소로서 안성맞춤인 모습이었다.


그곳에 다가가자 김준식 건축사가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 가득 채워 권했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 산에 올라 먹는 점심 분위기가 그만이어서 일행 모두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몇 명씩 따로 둘러앉아 먹다 음식을 옆으로 건네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정상부로 가 단체 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전망대 같은 봉우리에서 몇몇 일행이 앞쪽을 조망하고 있었다. 아까 식사 장소에서 보이지 않아 찾았던 김태환 건축사 가족이 그 곳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 서니 출발했던 마을 주변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였다.


내려가는 길은 크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곳 없이 계속되는 내림 길이었다. 내려가다 뒤를 돌아보니 조망하던 봉우리가 뾰족히 솟아 보였다.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오늘 산행에서 걸은 거리는 많지 않았다. 금수산 정상에서 다시 출발했던 상학리 마을로 내려 오는 코스여서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내려 보이던 전원 주택지를 지났다. 스티로폴 벽체에 철망으로 보강한 제품으로 집을 짓고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제품이지만 실제로 짓는 것을 보니 공작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든상로 입구로 나왔다. 할머니들이 두름이며 고사리 등 산나물을 팔고 있었다. 내려오는 사람들이 구경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한 아주머니가 구수하게 말했다. 그 곳으로만 더 물어 보았다. 다른 아주머니가 서운할 것 같았지만 괜찮다며 니것 내것 따로 있느냐고 했다.


나는 도로 경계석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뒤돌아보며 산을 스케치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날때마다 구경하며 값을 물어보곤 했다. 나물 파는 아주머니들이 도로 맞은편에 잇는 나에게 금수산 정상부의 모양이 무엇을 닮았는지 맞춰보라고 해서 유심히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니 여자가 누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주차장 쪽으로 계단을 내려서니 좌측 정자에 일행이 올라 앉아 쉬고 있었다. 내가 정자에 오르니 충북 건축사회 직원분인 임계상 과장이 동동주 통을 기울여 잔을 건냈다. 그리고 황선욱 건축사가 두릅 한 잎을 안주로 주었다. 충북 회원이 직접 뜯어 왔다고 하는데, 아까 나물을 팔던 아주머니들처럼 그것이 일상인 듯 말했다. 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라 평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뒤에 오는 일행이 새로 도착할 때마다 정겹게 자리를 마련하고 술잔과 언주를 권했다. 그리고 전국건축사 등산동호회 오긍균 회장과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 이종호 회장등이 서로를 위해 번갈아 건배를 제의했다. 충부 건축사회와 몇 번 동반 산행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친근한 정을 느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산행도 일찍 마친 후라 잠시 망중한의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정자에서 금수산 정상이 다시 올려다 보였다. 시간적 여유로움과 풍경이 동화되었다. 잠시 후 이회장이 돌아갈 시간을 챙기며 자리를 정리하자고 했다. 모두 일어나 창 오르며 떠나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 석별의 정을 나누며 원을 그리며 돌아가며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자연의 기운과 정감에 동화되는 시간을 갖고 보니 세상 시름이 가셔진듯 했다.

(201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