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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길 따라 구름 따라 1(구봉산->엄광산->승학산)

 일시: 2010년 3월 7일(일)

 코스: 부산 중앙공원->구봉산->엄광산->꽃마을->승학산->낙동초등학교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을 가기위해 집 앞 버스 정거장에 거의 다 왔는데 아 뿔 사! 49번 버스가 바로 떠나는 게 아닌가! 그 다음 버스는 20분 후나 올 거 같은데...그 순간 바로 38번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내 발길은 자동적으로 그 버스에 올라타고 말았다. 그리하여 운명적으로 오늘의 발길은 그 버스의 종점인 중앙공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즉, 오늘은 엄광산과의 운명적 만남이 된 것이었다. 금정산아 미안해!


 

 38번 버스는 요술을 부리듯 이리 돌고 저리 돌아서 부산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로 접어들었다. 산자락에 빼곡히 자리 잡은 주택과 바다에 떠 있는 각종 배들이 마치 성냥갑 같아 보였다. 부산시티투어 관광을 한 것 같다. 밤에 이 버스를 타고 다시 와서 야경구경을 하면 참 좋겠다.


 

 중앙공원은 부산 도심 뒤로 보이는 충혼탑이 상징 하듯 민족주의를 위하여 희생한 애국선열과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4.19 학생운동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아이들 역사교육의 장으로 자녀들과 하루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같이 가족끼리 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8시 18분, 본격 산행이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아싸~가오리! 눈발이 퐁퐁 내린다. 아침의 추운 기온 탓인지 이슬비가 얼은 것이다. 부산은 지역적으로 눈을 구경하기가 쉬운 곳이 아닌데 높은 곳에서 나리는 눈발을 보니 무척 낭만적이다.


 

 약수터를 지나 구봉 봉수대를 향해 헉헉! 올라가는데..... 아니 이게 뭐야? 추운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눈발 속에서 작은 진달래 나뭇가지에 꽃 한 송이가 활짝! 핀 것이 아닌가! 봄소식을 너무나 간절히 기다리다 못해 성질 급한 놈(?) 이 참지 못한 것이었다. 또 다른 성질 급한 놈이 더 있는지 유심히 보았지만 그 이후의 산을 내려올 때까지 더 이상의 진달래꽃은 보지 못했다. 야~그놈 참 성질 급하네. 꼭 나를 닮은 느낌이 들었다.


 

 구봉산  봉수대에 서니 제법 찬바람이 매섭다. 부산 도심을 가장 가까이 조망 할 수 있는 봉수대에는 옛날 봉수대 모형물이 있고 그 옆에는 정자가 있어 조망권이 시원하다. 날이 흐려 오늘은 안 보이지만 맑은 날에는 대마도가 보인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산의 주 능선을 타고 아주 천천히 산이 주는 매력을 느껴 볼 참이다. 엄광산으로의 코스는 구봉산에서 완만한 능선을 몇 번 타고 나면 나타난다. 군데군데 자연의 전망대가 많은 것이 주능선산행의 별미가 아닌가 싶다. 사실 구봉산이나 엄광산이나 승학산은 해발 높이로 따지면 이름 깨나 있는 다른 명산에 비해 보잘 것 없지만 나름대로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산은 산인 것이다.


 

 부산은 이런 작은 산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에서 제일 높다는 금정산 고당봉도 800M를 간신히 넘는다. 그러나 부산의 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도심속에 고립된 산이지만 그들로 인해 도심의 녹색 허파 역할을 담당하는 아주 귀한 보배인 것이다.


 

 엄광산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11시 28분, 3시간 10분 걸렸다. 아주 천천히 걸은 시간이다. 날은 점점 좋아지고 눈발도 그쳤다. 배가 꼬로록 한다. 아침을 잘 안 먹는 나는 늘 이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다. 삶은 계란 3개를 만져보니 워낙 날이 추어서 그런지 차디찬 냉동식품 같다. 갑자기 시장기가 사라졌다.


 

 꽃마을은 엄광산과 승학산을 잇는 중간에 형성된 마을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등산객들로 분주하다. 특히, 시락국이 유명한데 산행 마치고 출출한 배를 따스하게 해주는 데는 시락국 만한게 없다. 등산 인구가 많다 보니 지역경제도 살고 하여튼 좋은 현상이다. 근처에 내원정사라는 부산에서 제법 알려진 절도 있으니 불자 분들께서는 꼭 한번 다녀가시기를....


 

 꽃마을을 뒤로하고 구덕산을 거쳐 승학산 까지 가기로 마음 먹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오늘이 주(主)의 날인데 교회는 가지 않고 산을 간 이 날나리 교인을 주님의 너그러움으로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믿거나 말거나 ㅋㅋ). 구덕공원은 무척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민을 위해 많은 웰빙 산책로나 공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참 보기 좋은 것 같다.


 

 승학산 가는 길은 억새의 장관이다. 바람소리에 억새들은 서로 사각사각 노래를 부른다. 완만한 평원에 조성된 억새밭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 오순도순 둘러 앉아 점심을 먹는 장소로도 최적이다. 승학산 정상에 서니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남해바다와 만나는 삼각주를 형성하여 군데군데 모래섬을 만들어 놓았다. 이 풍경이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일몰을 감상하는 장소로도 승학산은 유명하다. 원래 다대포 해수욕장의 일몰이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승학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내 생각임. ㅋㅋ)


 

 아~ 배도 고프고 날도 춥고 집 생각이 갑자기 났다. 낙동초등학교 코스를 타고 내려오자마자 슈퍼에 들려 생수 한통을 사서 벌컥벌컥 다 마셨다. 차디찬 삶은 계란 3개는 결국 먹지 못하고 여전히 배낭 안에 있다. 이 때가 오후 2시 19분.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분식집 앞에 섰는데 갑자기 불쌍한 계란 생각이 났다. 나와 같이 오늘 하루 동고동락 하면서 추운 겨울을 참아가며 나를 위해 동반해 주었고 등산 도중 이리 채이고 저리채이면서 모진 아픔을 온 몸으로 참았을 그 계란을 생각하니 차마 분식집에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보니 그 불쌍한 삶은 계란 3개는 얼마나 당했던지 갈비뼈가 부러지고 온 몸이 타박상에다가 껍질이 다 깨지고 그야 말로 난리 부르스였다. 미안해 계란아.


 

 총 산행 시간: 6시간(세월아~네월아 시간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