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자: 2008.10.11 북강릉
기온(℃)  9.6 - 17.4 최대풍(m/sec)북북동 3.0-북북동 6.4 최대순간풍(m/sec) 습도(31%)
2. 장소: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3. 인원: 친구 가족과 함께
4. 코스: 동피골야영장(09:10)-동대산갈림길(09:43)-신성암입구(10:09)-중대암(11:00)-적멸보궁(11:18)-상원사갈림길(11:25)-상원사(11:48)-방한암,탄허사리탑(11:55)-야영장(12:35)-섶다리(12:45)-자생식물원(13:12-14:10)-쏠비치(Sol beach)콘도(16:30)


5. 교통
승용차 합승

6.산행 data
Average Speed: 4.2 km/h
Maximum Speed: 41.8 km/h
Total Time: 03:07:09
Cartographic Length = 13.103 km


 



 




7.지명과 유래
-동산리 [東山里, Dongsan-ri]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리(里)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를 이룬다. 동쪽으로 오대천이 흐르며 강 주변으로 약간의 평지가 발달해있다. 사고사골, 남사골, 동피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자연마을로 아홉사리, 안동산, 중부리, 회삿거리가 있다. 아홉사리는 아홉굽이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산은 동산리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중부리는 동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중이 많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삿거리는 일정 때 東拓 주식회사에 딸린 회사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 상원사 동종, 상원사 중창 권선문, 월정사 팔각구층 사리탑, 적멸보궁이 있다.

-상원사:[ 上院寺 ]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五臺山) 중대(中臺)에 있는 절.
원래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慈藏)이 귀국한 뒤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그리고 이 절의 자리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잠시 머물렀음. 그 뒤 신라 때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오대산에 들어와 각각 암자를 짓고 일만진신(一萬眞身)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며 생활하다가 효명이 왕위에 추대되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성덕왕 4년(705)에 이 곳에 진여원(眞如院)을 세웠음. 보천은 오대산을 신행결사 도량으로 삼을 것을 유언하였는데, 이에 따라 이 곳에 문수보살을 모시고 ≪화엄경(華嚴經)≫과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독송하며, 문수예참(文殊禮懺)을 행하게 하여 화엄사(華嚴社)라는 결사 도량을 두었음. 그 뒤 고려 우왕 2년(1376) 나옹 혜근(惠勤)의 제자 영령암(英靈庵)이 판서 최백청(崔伯淸) 내외의 시주로 중창하여 이듬해 완공하고는 기념 법회를 열었음. 조선 태종 원년(1401) 태종이 권근(權近) 등에게 이 절의 사자암(獅子庵)을 중수하도록 하여 법요식과 낙성식을 개최하였고, 그 뒤 세조는 이 절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괴질을 치료하였으며, 고양이의 도움으로 자객의 암살을 피하였다는 설화가 전함. 세조 10년(1464)과 이듬해에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이 세조의 명령으로 중건하였고, 예종 원년(1469) 예종도 선왕 세조의 뜻을 이어 세조의 원찰(願刹)로 삼았음. 그 뒤 1947년 월정사 주지 종욱(鍾郁)이 중창하였음.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목각문수동자상(木刻文殊童子像)과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주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銅鐘) 등의 유물이 현존함.



















-문수신앙
우리 나라에서는 자장(慈藏)에 의해 먼저 문수신앙이 정착되었는데, 그는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 감응해 귀국하여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하여 오대산을 문수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음. ≪삼국유사≫의 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조에 따르면 신라의 정신대왕(淨神大王:?)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형제가 오대산에서 수도하면서 오대산 오만진신(五萬眞身)을 친견하였고, 보천은 입적하면서 오대산에서 신행(信行)하여 국가를 이롭게 할 일을 기록해 두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음. 먼저 오대산의 동대(東臺) 북쪽과 북대 남쪽 기슭의 관음방(觀音房)에는 1만 관음보살을 모시고, 낮에는 ≪금경(金經)≫▪≪인왕반야(仁王般若)≫▪≪천수주(千手呪)≫를 읽고, 밤에는 ≪관음경(觀音經)≫ 예참을 행하는데 이 곳을 원통사(圓通社)라 하였음. 다음으로 남대의 지장방(地藏房)에는 1만 지장보살을 모시고, 낮에는 ≪지장경(地藏經)≫▪≪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읽고, 밤에는 ≪점찰경(占察經)≫ 예참을 하며, 금강사(金剛社)라 하였음. 서대의 미타방(彌陀房)에는 무량수불을 우두머리로 하는 1만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모시며, 낮에는 ≪법화경(法華經)≫을 읽고, 밤에는 ≪아미타경(阿彌陀經)≫ 예참을 하며, 수정사(水精社)라 하였음. 북대 남쪽에는 나한당(羅漢堂)을 두고 석가불을 우두머리로 하는 5백 나한을 모시며 낮에는 ≪불보은경(佛報恩經)≫▪≪열반경(涅槃經)≫을 읽고, 밤에는 ≪열반경≫ 예참을 하며, 백련사(白蓮社)라 하였음. 중대의 진여원(眞如院)은 가운데에 흙으로 만든 문수보살 부동상(不動像)과 비로자나불을 우두머리로 하는 36 문수보살을 모시며, 낮에는 ≪법화경≫▪≪육백반야경≫을 읽고, 밤에는 문수보살 예참을 하며, 화엄사(華嚴社)라 하였음. 아울러 보천 자신이 수행하던 보천암은 화장사(華藏寺)로 고쳐서 오대사(五臺社)의 본사로 삼게 하는 한편, 매년 화엄 법회를 베풀면 나라가 모두 평안할 것이라고 하였음. 이 같은 신라의 오대산 신앙은 대체로 중대(中代)에서부터 하대(下代)에 걸쳐서 차례대로 형성되었다고 보이는데, 여기에는 화엄▪문수▪지장▪아미타▪밀교 신앙 등 오대산 신앙이 성립되기까지의 신라 불교 사상이 흡수▪통합되어 있음. 오대산 신앙은 신라 불교 수용 시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신라불연국토설(新羅佛緣國土說)의 연장선 위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신라불국토설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음.

8. 遊山歌

한밤중에 찾을 적엔 검은지 몰랐다가
새 아침에 눈 떠보니 푸른 寒氣 섬뜩하고
걸으며 곱씹는 紅葉에 다시금 놀랐구나.



 



 



 



 



 



 



 


 


옛 사람 오랜 흔적 佛家에 歸依하여
문수의 지혜 빌어 한 몸 소원 이루어도
寂滅이 寶華일진대 왜 이리 번잡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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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만 지나가도 이끼 속에 묻힌 사연
기리고자 세운 탑파(塔婆) 곡절이 애달파도



 



 


오늘에 걷는 이 길은 몰라보게 평온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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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때도 몰라 어울려 핀 단풍 숲이


 



 



 



 



 



 



 



 



 



 



가지가지 各色 나무 구슬같이 고운 풀이

 


 



 



 



 



 



 



기슭에 흐드러지니 이 또한 기화요초(琪花瑤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