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2째 주 오전 7:00 화곡역에서 모여 출발 예정돼 있었다.

며칠 전부터예보엔 일요일에 황사가 몰려온다고 해서 은근히 걱정을

하던 차,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가 보았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아마도

산행에 지장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출발 장소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

다. 30분 전 쯤인데도 모여 있는 회원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시간이 가

까와 올수록 초조한 빛을 띄는 회장단을 보는 심경도 그리 편챦았다.

여기저기 전화로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예정 시간이 10여 분 지나도

록 끝내 몇 자릴 빈 채로 버스를 출발시켰다. 속을 끓이게 하던 황사는

뿌옇게 하늘을 가려 말은 없으나,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버스가 가양대교를 옆으로 올림픽 대로로 접어들자 한강 물빛은 더욱

흐리게 보인다. 시원히 뚫린 중부고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자 차 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아직 겨울의 끝자락을 채 접지 않은 때라, 차창엔

하얀 입김이 서린다. 주말인 어제 차들이 많이 나갔을 텐데도 도로가 조

금은 붐빈다.

 

       왜 이렇게 나는 자꾸만 산만 찾아 나서는 걸까

      .....내 영원한 어머니..... . 내가 죽으면 백

       골이 이런 양지 짝에 묻힌다. 외롭게 묻어라.

       꽃이 피는 때, 내 푸른 무덤엔, 한 포기 하늘빛

       도라지꽃이 피고, 거기 하나 하얀 산나비가

       날아라. 한 마리 멧새도 와 울어라. 달밤엔 두

       견도 울어라.

       언제 새로 다른 태양이, 또 다른 태양이 솟는 날

       아침에 내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것도 믿어

       본다.

                                  -박 두 진-

 

  유별하게도 도봉을 좋아 해 시간 날 때면, 늘 산을 찾아 나서던

혜산이다. 과연 내 어머니인 산에, 우리도 묻히게 될까! 무덤 속에서도

하늘을 그리던 그의 말대로 또 다른 태양이 솟는 날, 우리도 부활을 꿈

꿀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에게 허락된 삶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살아온 날보단 길

지 않으리라. 주어진 시간, 그 시간에 나는 산을 찾아 나설 것 같다.

딱이 꽃동산이 아니라도 좋다. 우리 모두 서로 노래치며, 날뛰며, 진정

하루 화창하게 살아볼 날이 그립다던 혜산의 절규를 반추하려 산행을

멈추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소머리 국밥으로 이름난 곤지암을 지나고, 호법IC를 거쳐 새말IC를 나

올 때, 치악이 저만치 그 우람한 모습으로 우릴 압도한다. 산은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숭배할 대상이다. 선명한 산을 보면서 나는 태고에 놓

이는 착각을 느꼈다. 나설 때 뿌옇던 하늘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말끔이

개여 있다.

 

 

  10시 반경 들머리 도착.

매표소를 지나 300m쯤 들어가니, 구룡교가 속세의 번뇌를 씻어주려는

듯 옥같은 물을 쏟아 내리고 있다. 구룡소를 거쳐 구룡사, 신라 중기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가람엔 어디나 불가사의한 향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경내를 지나면서 보광루에 눈길이 간다. 거기엔 세 사람이 석

달에 걸쳐 엮은 멍석이 누 마루에 깔려 있다.

 

 맑게 갠 날씨로 모두들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50여 분, 세련폭포를 지

나 갈림길에서 직진 바로 사다리병창 코스를 택했다. 삼월이지만 아직도

산속은 한겨울 뺨칠 정도다. 다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지런히 발을 옮

기고, 계곡을 오르다 보니 어느 덧 땀이 촉촉이 배어온다. 계곡이라 등

산로는 온통 돌로 깔려 있고 곳곳엔 아직도 얼음이 박혀 있어 미끄러워

발을 옮길 때마다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비로봉을 향해 오를 땐 꽤나 힘들어, 이미 우리 일행들의 모습은 보

이지 않았다. 김 회장은 나와 보조를 맞춰주느라 뒤쳐질 수밖에. 오르

는 길이 험하고 가팔라 어려웠지만 조심조심 발을 옮기면서 치악산에

와서 치를 떨었다는 등산객의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가다 아이젠을

찼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딸이 사준 것이라 무척 아껴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것이다. 정상을 700m를 남긴 지점부터는 눈이 얼어 있어 더욱 힘

들어 한 발 한 발 옮기면서 난간 줄을 잡고, 쉬다가다를 반복해 올랐다.

드디어 비로봉 정상(1,288m), 세 시간은 족히 걸렸나보다. 대견했다,

내가 생각해도 감히 이런 큰 산을 오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 던 일이다.

 

  정상이란 참으로, 놀라운 곳이다. 사방이 넓게 트여, 이렇게도 가슴을

후련하게 틔어줄 신비로운 곳일 줄이야. 정상에 서면, 동남으로 소백산이,

동북으론 멀리 설악이 손에 닿을 듯 보일 것 같다. 수많은 돌을 쌓아 탑

을 세웠다. 이게 바로 비로의 정상이라고...

 

      松松栢栢岩岩廻...(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바위 돌고 돌아)

      水水山山處處奇...(물과 물, 산과 산이 곳마다 기묘하구나.)

                                        -김 삿갓-

 

  금강을 이렇게 묘파한 김립 시인의 표현이 여기 치악에서도 흡사할

줄이야.

 

  차가운 바람을 피할만한 양지 녁에서 같이들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반 넘어 오른 쪽 산비알을 돌아 하산하기로 했다. 얼었던 땅이 녹

아 질퍽거리는 곳이 더러 있어 더욱 성가시기도 했으나, 밧줄을 의지

하기도 하고,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야 했다. 산이란

오를 때보다 더 어려운 것이 내려갈 때란 걸 알면서도 삐끗하면 다칠

위험이 높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발 앞섰던 산우 한 사람이

미끄러졌다. 재빨리 김종인 고문이 부축해 위길 모면했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면서 돌서들이나 다름없어 무척이나 힘들었다.

싸인 눈 속에 얼음이 박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돌 사이를 돌고 넘

는 사이 맑은 계류에 여럿이 쉬고 있었다. 나도 잠시 한 숨 돌리면서 찬

물에 발을 담궜다 평소 냉수욕으로 단련했지만 금새 발을 빼지 않을 수

없다. 차갑긴 해도 얼얼하던 발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다시 걸음을 옮기

는데 바로 뒤따르던 향아 엄니가 발을 헛디뎠다. 염좌인 듯해 김회장이

일회용 파스로 임시 조치를 해 다행이었다.

 

  구룡사 계곡 내려오는 길이 오를 때보다 길게 느껴짐은 무었 때문일까.

한 발작씩 세속으로 들어오고 있어 그러한 것일까. 정토가 한 걸음씩 멀

어져 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생에 불제자로 연을 맺었었는지

알 순 없지만 가람에서의 감회는 남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주차장엔 이미 다른 회원들이 먼저 내려와 하산주로 이야기 걸쭉하게

추위를 녹이고, 산행담으로 야단법석을 펴놓았다. 출발 예정 시간이 4시,

버스에 오르자, 모두들 즐거운 표정들로 가득했다. 출발할 때 가졌던 황

사 걱정이 말끔이 가셔져 한층 즐거움이 더한 듯, 하루 산행을 마무리,

어둠 속을 달려 귀경길에 올랐다.

              

                                           -목어 백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