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7일 비슬산을 오르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어느 새 화사한 목련은 지고, 골목마다 라일락 향으로 현기증이 날 것 같다. 4월의 훈풍에 산골짝마다 얼었던 땅이 몸을 풀고, 화사한 꽃들이 활짝 웃음을 터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뜨리는 지금, 비슬산으로 떠나보자.

 엊그제까지 날씨가 흐리고, 금요일엔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가 빈 밭에 말을 달리는 듯 요란했다. 산행을 앞두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오보로 빈축을 사기 일쑤였던 기상청 예보가 하필이면 이 때 맞을 건 뭐람. 시집 가는 날 등창이 난다더니...

 일찍 화곡역으로 나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김 회장몇몇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강 미애일행이 따뜻한 음료로 우리들 마음을 녹여줬다. 약속했던 산우들을 기다리다 결국 20여 분 늦게 출발하게 됐다.

 차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고, 차창으로 파란 산야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러니 이 양하가 신록을 예찬하지 않았을까! 한참을 달리다보니 청풍명월의 고장 옥천 평야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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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들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지나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 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6.25 한국전쟁, 아픈 상처를 안고 통한의 세월을 보낸 게 어디 지용(芝 溶) 한 사람 뿐이랴만, 저 평화로운 옥천 들을 보니, 새삼 눈시울이 잠시 붉어짐 또한 어인 까닭인가!

 

 어느덧 지난 해 가을 산행했던, 조령산을 바라보는가 했는데 새로 뚫린 터널들을 수없이 지나다 보니 차는 달구벌을 거쳐 현풍 IC를 돌아, 유가사와 소재사 갈림 목에 다달았다. 참꽃 축제로 사람들과 차가 운집해 북새통을 이루었다.

 비교적 잘 정비된 진입로엔, 가꾸어 놓은 꽃들이 도열해 우릴 맞이해 기쁨은 배가했다. 일찍 도착한 상춘 인파와 등산 인들이 뒤엉켜 혼잡했으나, 우리 일행 중 대부분은 소재사 입구에서 하차하고 남은 분들은 유가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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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소재사 일주문을 배경으로 추억 하나씩을 필름에 담고, 진입로로 들어서니 축제로 몰려든 임시 음식점들로 시장을 방불케 했다. 초입에 들어서면서 이 유청 부회장 은 이것저것 사다 산우들을 즐겁게 하고, 길목에 설치한 동그란 화환에 얼굴을 디밀고 한 컷씩 찰깍 찰깍, 산행 때마다 항상 뒤로 쳐지는 탓에 동행들과 떨어지는 우릴 생 각해,  늘 소녀적 시정이 넘치는 이희도 산우와 이 유청 부회장이 보조를 맞춰주려 애를 쓰는데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저 만치 뒤떨어지곤 해 조금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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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견사지 쪽 길을 버리고 곧장 정상을 향해 길을 잡았다. 줄지어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 오르고 내리다 보니, 앞이 탁 트여진다. 아래로 대견사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능선 위에 섰다. 민족의 영산 태백에서 발원해 천 리를 달려 온 낙동강이, 저 멀리 굽이치고 있지 않는가. 빈 터에 말 없이 옛날을 지키고 서 있는 삼층 석탑이 저리도 쓸쓸해 보일까. 무심한 탐춘객들은 탑과 부처바위를 배경 삼아 카메라 엥글 조준에 여념이 없다.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갈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거문고 줄 아니어도 밟고 가면 운(韻) 들릴까

  끊일 듯 이어질 듯 끊인 연(緣)을

  싸락눈 매운 향기가 옷자락에 지는 걸까.

 

 

  절은 또 먹물 입고 눈을 감고 앉았을까

  만 첩첩 두루 적막 비워둬도 좋을 것을

  지금쯤 멧새 한 마리 깃 떨구고 가는 걸까.

                               -조오현-

 

  절도 없고, 거기 먹물 입고 선(禪)에 눈 감았던 스님들 마저 속(俗의) 연 끊고 열반에 들었건만, 저기 저 자리에 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

 

  -나라는 망하고 산천은 옛 모습 그대로구나.

  성벽 안엔 봄이 무르익어 초목만 우거졌네.-

                                      -杜甫-

 

 서글프다고 할까. 빈 절터를 바라보면서 난 왜 두보의 시를 연상하고 있는 걸까. 공연 처연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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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태종이

  세수하다

  대야 속에서 본 절 하나

  수소문 하다 신라에서 찾았네

  대국서 보던 모습을.

  비슬산

  대견사 터는

  신의 계시로 지었던 절.

 

 

 대견사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명당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았다. 남쪽으로 탁 트인 곳, 마치 망망한 바다를 굽어보는 듯한 자리에 어쩌면 그렇게 불국을 펼쳐놓았을까. 여기가 바로, 정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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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분지 안에 온통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장관이다. 꽃밭 속, 여기저기엔 꽃처럼 예쁜 추억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사람들. 참꽃 사이 등산로를 따라 쉬엄쉬엄 걸어, 중봉을 넘을 때까지 우린 일행들을 만날 수 없었다.

 오르는 동안 진달래 꽃밭 속 곳곳에 자리잡고, 도시락들을 펴 놓고 있다. 마음에 점을 찍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엔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밧줄을 잡고 허위허위 대견봉 정상에 도착하니, 탁 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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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에, 오를 때 힘들었던 기억이 일시에 사라졌다. 회장인 매천 선생이 산에 입문하도록 권유했기에, 오늘 이런 기쁨도 있는 것. 진정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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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부 바위는 마치 신선이 앉아, 비파나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라 한다. 비슬산은 대구 앞산에서 남쪽 화왕산(756,6m), 관룡산(739,7m), 종암산(546m)을 거쳐 낙동강에 잠기기까지 길게 뻗은 산줄기의 주산이다. 산세는 달성 쪽에서 보면, 곰이 앞발을 치켜들고 벌떡 일어선 듯 위압적이고, 청도 쪽에서 보면 아늑하면서도 묵직한 장산(壯山)이며, 정상에 서면 마치 독수리가 달구벌로 내려앉는 듯한 힘찬 모습이다. 정상 표지석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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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시를 훌쩍 넘었다. 서둘러 유가사 쪽으로 내려 서면서, 도

시락 펼 자릴 물색하다 전화를 받았다. 임 복식 산우가 소재사로 역산행했단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유가사로 가는 길 안내하고,

자릴 잡아 도시락을 펴놓으려는데, 앞서 갔던 일행 중 강 태훈 산행 대장김 두리 산우가 중봉 쯤에서 다른 회원들과 점심을 하고 넘어오다 우릴 만났다며, 배낭에서 이슬과 국선생을 내놓지 않는가. 덕택에 산상에서 두견주로 생각하며 정담을 나눌 수 있었다. 내려오는 동안 우리를 앞섰던 분들과 조우하면서 즐거운 하산 길이 되었다.

 

 역시 산은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하고, 높은 만큼 기쁨도 크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이 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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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이다. 산엔 나무도 풀도 제 나름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크고 작은 것에 메이지 않고, 서로 부대끼며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지 않던가. 좋은 자릴 다투는 일도 없이, 평화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주차장 사정으로, 예정 시간을 지나 버스는 서울로 향했다. 신발이 떨어져 고생한 분도 있고, 항상 웃는 모습인 신 동화 부회장, 차 안에선 흥겨운 음악으로 여독을 눅이는데, 어둠 속을 산에서 본 꽃과 나무들의 실루엣이 한 폭의 그림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목      어    백   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