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산행일자:2008. 7. 5일(토)

        *소재지  :경기 양평

        *산높이  :1,157m

        *산행코스:용문산일주문-용문사-상원사-장군봉-용문산정상

                  -마당바위-용문산일주문

        *산행시간:10시-19시30분(9시3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11명

         (24기김주홍/김경옥,백인목, 이기후, 이규성, 함기영, 우명길

          27기송기훈, 29기정병기/김의정, 초대산객 박현출님)

 

 

   용문산의 정상이 열렸습니다.

이 산에 첫 발을 들인지 39년 만에 처음으로 해발1,157m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애당초 열려있던 이 산 정상이 40년 넘게 닫혀있었던 것은 군부대가 들어 있어서였습니다. 지난 해 2월 고교동문들과 함께 이 산을 찾았을 때도 정상에 오르는 길목이 굳게 닫혀 바로 아래 전망바위까지만 올랐습니다.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부대가 정상을 점하고 있는 산들이 꽤 많이 있는데 용문산은 그동안 양평군으로부터 끈질기게 개방요청을 받은 군 당국이 용단을 내려 작년 11월 정상을 열어놓았기에 이번에 고교동문들과 함께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양평군과 군부대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합니다.


 

  용문(龍門)이란  중국의 황하 강 상류의 여울을 이릅니다.

이 여울은 하도 물살이 세어 잉어가 이곳을 뛰어 오르면 용(龍)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등용문(登龍門)의 어원이 바로 이 용문(龍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잉어가 용문(龍門)을 올라 용이 된 후 다시 용문산(龍門山)의 정상에 올라서면 승천(昇天)을 꿈꿀 것입니다. 용이 햇빛이 빛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은 그동안 용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날을 골라 하늘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어제 같은 날씨라면 용문산 정상에서 승천에 성공한 용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은 열렸지만 하늘은 짙은 운무로 닫혀 있었습니다. 용이 용문산 정상을 올라 승천(昇天)을 꿈꾸었듯이 선인들은 정상에 오르면 하늘을 여는 개천(開天)을 꿈꾸었습니다. 자고로 개천은 개벽이요 개국입니다. 단군께서 기원전 2333년에 하늘을 연 것은 조선을 개국하기 위함이었고, 조선조 말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님이 하늘을 열고자 한 것은 이 사회를 개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 같은 소시민들이야 감히 이 나라나 이 사회의 개벽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이 사회를 개벽해보겠다고 나선 분들이라면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해 애꿎게 소시민들의 발을 묶을 것이 아니라 여기 용문산 정상에 올라 촛불을 들며 이 나라 이 백성들을 위해 하늘에 길을 열어달라고 개천을 빌어보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나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제가 용문산의 말산 탐방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3년입니다. 

언제고 용문산의 정상은 열릴 것이고 그 전에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말산들을 미리 다 오르자는 생각에서 그해 여름에는 틈만 나면 양평으로 달려갔습니다. 2003년에 유명산(862m), 소구니산(800m), 중미산(834m). 어비산(822m), 백운봉(940m). 함왕봉(947m), 도일봉(830m), 중원산800m), 폭산(992m), 봉미산(856m), 청계산(658m)과 대부산(742m) 등 12개산을, 2004년에는 곡달산(628m), 통방산(650m)과 삼태봉(683m)등 3개산을, 작년에는 소리산(479m)을, 그리고 올 봄에 보리산(628m), 장락산(627m)과 왕터산(412m)의 3개산 등 총 19개 말산의 정상을 모두 오른 후 이번에 스무 번째로 이 산들이 주군으로 모시는 용문산의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그동안 오르내린 말산들을 한 눈에 볼 것을 그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궂은 날씨 덕분에 짙은 운무 속으로 승천해 하늘로 날아가는 용을 지켜본 듯해 말산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오전10시 용문사 일주문에서 경동고교 동문들과 함께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8시에 청량리역을 출발해 9시 조금 넘어 용문역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5-6분을 걸어 인근버스터미널로 옮겼습니다.  9시 반경에 출발하는 용문사행 버스에 올랐는데 마침 5일장이 서는 날이고 주말이어서 차안이 많이 붐볐습니다. 흐린 날씨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로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작년 11월 정상이 열린 후 첫 번째 산행이어서 난생 처음으로 이 산의 정상을 오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일주문에서 용문사까지 15분간 걸으며 수량도 풍부하고 물 흐름도 도도한 용각골을 보고나자 용문산은 역시 거산이다 했습니다.  용문사의 창건연대가 신라 신덕왕 때인 서기 913년이고, 그 앞의 은행나무 수령이 약 1,100세라 하니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은 셈입니다. 천년을 한 자리에 머문 것은 은행나무나 용문사나 매한가지이지만, 은행나무는 삶을 잃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왔고 용문사는 그동안 여러 번 개보수를 해 오늘에 이르렀다 생각하자 사람들이 만든 건축물이 제 아무리 빼어나도 해도 아무려면 하느님이 만드신 나무를 당해낼 수 있으랴 싶었습니다.


 

  11시50분 상원사에 다다랐습니다.

용문사를 들러본 후 다리 건너 마당바위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절고개에 이른 시각이 10시40분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안내 지도도 받지 않고 하산 길에 들를 마당바위로 바로 오르는 바람에 또 한 친구가 그 뒤를 따르느라 이산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상을 오른 후 용문사로 다시 내려오는 원점회귀산행이어서 중간에 무리다 싶은 대원들은 하산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산행초반부터 나사가 풀린 듯 전혀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절고개에서 한참을 쉰 후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북쪽 능선을 타지 않고 서쪽으로 직진해 상원사로 향했습니다. 능선과 골짜기를 번갈아 가며 산허리를 에돌아 상원사에 이르기까지 1시간 가까이 걸으며 참나무들이 울창한 숲도 지났고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쉼터도 지났습니다. 절고개에서 100m가량 고도를 낮추어 상원사에 다다르자 시멘트길이 잘 나있었고 남쪽 아래로 앞이 탁 트여 시원스러웠습니다. 대웅전에 세월의 때가 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창건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전망과 풍광은 용문사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상원사에서 조금 내려가 다리 건너 능선으로 올라선 후 자리를 펴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한 후배동문은 무릎이 부실해 하산했고 나머지 여덟 명이 다시 산행에 나선 것은 12시50분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14시43분 해발1,065m의 장군봉에 도착했습니다.

상원사에서 장군봉에 오르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초반 얼마간은 경사도 그만그만하고 길도 좋은 편이어서 하산 후 용문역에서 저녁 6시28분 기차를 타는 데 별 문제없겠다 싶었는데 가파른 암릉 길이 전개되고 능선 길에 올라선지 1시간이 지나자 비가 뿌리기 시작해 이게 아니다 했습니다. 어차피 산행시간은 발걸음이 제일 늦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에 몇몇이서 서둔다 해서 기차시간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싶어 이미 끊어 놓은 표가 아깝기는 해도 포기하고 다음 열차를 타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히 서두르다가는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흥건히 젖어 있는 암릉 길을 오르내리다 자칫 사고도 날 수 있는 일이어서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올랐습니다. 허리통증으로 지난 번 한북정맥 종주를 건너 뛴 한 대원도, 그리고 무릎이 신통치 않아 해발고도 800m까지 올라본 후 하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또 다른 대원도 모두 다 충분히 따라잡을 만한 속도였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같이 산행했습니다. 저희들과 똑 같이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피가 붉은 적송과 허리가 휜 하얀 꽃의 까치수염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상원사에서 1.6Km를 올라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며 25분을 더 걸어 왼쪽 아래로 백운봉이 갈리는 장군봉에 다다랐습니다. 동강난 표지석을 간신히 맞추어 세워놓은 장군봉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10분여 쉬었습니다.


 

  16시6분 해발1,157m의 용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장군봉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 만난 삼거리에서 정상봉을 우회하고자 오른 쪽으로 내려갔는데 직진 길이 정상을 왼쪽으로 에돌아 한강기맥으로 이어지는 길인 듯 했습니다. 지도로 눈짐작을 해보아도 상원사 위 능선에서 장군봉까지 2시간이 걸린 발걸음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정상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는데 다들 마음이 급했던지 정상가는 오름길이 보이지 않고 계속해 진흙길만 나타나자 조바심을 냈습니다. 비가 내리고 구름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를 않아 답답해하던 차 윤필암터에서 올라오는 능선삼거리를 만나 지도상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 잠시 이곳에서 쉬어갔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직진해 얼마만큼 내려서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서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진흙 길에 가느다란 외줄을 잡고 꽤 가파른 길을 오르기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길을 다 올라서자 정상이 열리기 전에 가장 높이 올랐던 전망바위가 바로 앞에 나타났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짧은 길에 철계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급물살의 여울인 용문을 오른 용이라 해도 햇볕이 쨍쨍 쬐는 여름날에 뜨거운 철계단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이번처럼 비가 내리고 운무가 하늘을 가리는 날을 잡아 승천을 시도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석이 서있는 정상에 올랐으나 운무가 앞을 가려 그동안 올랐던 19개 말산 중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아 제우스신에 많이 서운했습니다.


 

  무슨 일로 제우스신이 비를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정상 주위를 짙은 구름으로 장막을 쳤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제우스신의 심술로 애꿎은 기상청이 욕을 듣는 것도 딱하지만, 39년을 기다려 처음으로 오른 정상에서 달랑 정상석만 보고 내려가야 하는 저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용문산이 어디 그저 그런 보통 산입니까?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인데다 산세의 수려함은 금강산에 견줄만하다 하여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리고 오지랖도 하도 넓어 이 산이 거느리고 있는 말산만도 스무 개가 넘는 명산입니다.  모처럼 이런 산의 전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좋은 기회를 송두리째 앗아간 제우스신이 밉살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다시 생각해보니  용문을 오른 용이 이 산 정상에서 승천하고자 저희들보다 더 오래 정상의 열림을 학수고대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람들에 개천(開天)이 소중하듯이 용들에는 승천(昇天)이 그러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제우스신이 저희들과의 약속을 깨고 비를 뿌린 것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제우스신이 아무리 인격신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구름의 신이기에 정상에 비를 뿌리고 또 구름으로 산자락을 덮었다하여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낸 제우스신을 탓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8시9분 용각골의 마당바위에 다다랐습니다.

정상에서 공사 중이라서 자재들을 쌓아둔 옛길로 하산한 것은 올라온 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가느다란 줄을 잡고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4-5분을 내려서자 작년2월에 눈을 맞으며 점심을 들었던 평상이 세워진 쉼터가 나타나 반가웠습니다. 절고개로 내려서는 능선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오른 쪽 마당바위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평상의 쉼터 위는 공사 중이지만 그 아래 길은 보수공사가 모두 끝나 한 해전의 험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웬만한 경사길이면 어김없이 계단을 설치해 놓아 이 길로 오르기는 정말로 힘들 것 같았습니다. 구름이 가시고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용각골 건너 용문봉 산줄기를 카메라로 잡아보았습니다. 마당바위에서 바지와 등산화에 묻은 흙을 씻어내고 탁족을 즐기며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날 맑은 날씨라면 등을 눕히고 얼마간 쉬어가도 좋을 마당바위에서 용문사까지 1.5Km 거리를 걸어 내려가는 동안 용각골을 건너는 다리도 몇 곳 지났고 깊은 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소들도 몇 곳 보았습니다.


 

  19시30분 용문사 일주문으로 되돌아와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용각골 어디서든 짐을 풀고 반시간 가량 푹 쉬어가면 딱 좋겠다 싶었습니다. 애당초 용문산을 산행지로 선정할 때는 정상을 오른 후 하산 길에 1시간 정도 이 계곡에서 쉬어갈 생각이었는데 7시간이면 충분하다 싶은 길이 9시간 반이 걸리는 바람에 마당바위에서 대강 닦은 후 서둘러 하산하느라 용각골에는 아쉬움만 남겨두었습니다. 용문사에 내려서자 은행나무에 기생해 사는 아주 작은 나무가 제 눈을 끌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작은 나무가 고목이자 거목인  은행나무에 기생한다 싶은데 누가 알겠습니까? 1,100년을 살아온 저 은행나무가 하도 외로워 손자 녀석 데리고 놀 듯 이 작은 나무에 정을 붙이고 사는 것이라면 일방적인 기생이 아니고 서로가 도우며 사는 공생이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용문사와 천년 넘게 벗하며 살아온 은행나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 작은 나무에 자비를 베푸는 것일 수도 있기에 기생이라 단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용문사주차장 앞 한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경동동문산악회의 정기산행 중 이번 용문산 산행이 가장 긴 산행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날씨도 좋지 않았고 몸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에서 초반에 산행을 접은 한 친구를 빼고 모두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비록 시간이 지체되어 예정된 기차는 못 탔지만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용문으로 나가는 버스시간만 넉넉했다면 고된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에 주흥이 뒤따를 만한 식사자리였습니다. 이번 산행은 모처럼 화수분처럼 원 없이 시간을 써본 넉넉한 산행이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중에 내려선 송기훈 부회장님, 오랜 시간 산행으로 허리에 부담이 갔을 김경옥님, 무릎통증에 따른 하산유혹을 이겨내느라 마음을 부대꼈을 함기영 전회장님, 마당바위로 홀로 빠진 한 친구를 돕고자 뒤따라 나선 백인목님 모두 힘드셨습니다.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