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2008. 4. 27.

 

산거북이와 에스테반

 

 

조망이 좋지 않은 날씨/ 바람이 차고 세찬 날 

능선의 진달래 개화 상태 : 좋지 못함

 

 

 

 

비슬산 참꽃축제 기간 중 첫 일요일. 젊은 산친구와 동행을 하다보니 인파에 휩쓸릴 게 분명한 산행인데도

한번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결행을 하게된다. 그래도 일찍 출발이나하자는 의지 하나로 비슬산 아침 그림

자가 산자락에 붙어버리기 전에 현풍면 유곡리에 도착했다.  길가에는 붉고 푸른 현수막과 휘장들이 참꽃

축제를 요란하게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고, 전봇대 위의 애드벌룬은 마치 거꾸로 선 마침표처럼 침묵을 지

시하고 있다. 

 

 

유채꽃밭 멀리 비슬산과 1034 봉이 잿빛 배경을 이루고, 596.3봉과 826.8봉이 보다 근경으로 푸른 실루엣

을 이루어 아침 안개 위에 떠 있다. 자연은 고요하고 인위(人爲)는 기세가 등등한 듯...... 부지런한 방문객

들이 유가사 - 소재사의 갈림길로 향해 속속 진입을 하고 있다. 초곡리, 양리, 음리, 용리...... 비슬산 아래

달성군 유가면의 마을 이름들이 정겹다. 

 

 

 

 

산행 코스 : 유가사 원점회귀 : 6시간

 

 유가사 - 수도암 - 도통바위 - 비슬산 대견봉 -조화봉 - 대견사 터 - 1034봉 - 수성골 - 유가사

 

 

 

1. <수도암 - 도통바위 - 앞산/비슬산 분기점>

 

 

 

 비슬산 사진 산행기록만 5번째 남기는 셈이니 이전에 다녔던 기억을 되새기자면, 얼추 아홉번 쯤 되는 비슬

산 산행횟수가 가늠된다. 좋은 접근성에, 1000 미터가 넘는 알맞은 높이에, 적당한 산행거리에, 아낌없는 조

망까지 선사하는 곳이다 보니 화왕산과 함께 계절을 가리지 않고 즐겨찾는 곳이 되었다. 다만 최근 몇 해 동

안은 신대구고속도로의 영향으로 뜸해진 셈이 되었다.

 

 

시멘트길을 두세번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익숙한 길 대신에 수도암 지나 바로 왼켠으로 붙는 길로 올랐다. 이

길은 거리상으로는 약간 길지만 한적하다. 안그래도 오늘은 헐티재에서 올라 조화봉에서 청도 방향으로 내

려서는 산행을 할까 생각했었는데 이중이동의 부담을 고려해서 유가사 원점회귀로 계획을 급선회했다.

  

 

 

 

8시에 시작한 산행은 초반의 가파름에 헉헉거리며 두번의 10분 휴식과 서너번의 숨돌림으로 페이스

를 찾아  9시 45분에 앞산-비슬산 삼거리에 도착을 했다. 사진찍기를 고려하면 어느때보다 부지런히

올라온 셈이었다.

 

 

앞산 - 비슬산 분기점에 서면, 비슬산 소재사에서 대구 앞산까지 종주길이 생각난다. 그 회상은 꼬리

를 물고 그의 소탈하고 인자했던 웃음으로 이어진다. "......오래간만입니다. 비슬산, 앞산 종주를 언제

한번 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초행자에게는 너무나 유익한 산행기입니다. 개념도가 아주 기막히게 좋구요.
덕분에 아무런 걱정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부담감이 없어집니다."
그가 내게 남긴 세상에서의 마지막

글이었다. 헛된 치례의 말을 남발할 위인이 결코 아니었지만, 그는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세상의 헛된

것들과 홀연히 작별했다. 

 

 

2. <비슬산 정상 : 대견봉에서>

 

 

 

 

 

 

10시 정각이 되기 직전에 대견봉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은 그 끝이 날카롭고 차가웠다. 봄이 간직한

마지막 겨울의 추억을 불어대는듯 옷깃을 여미게 한다. 산상(山上)의 봄 날씨는 벌써 여름이 오는가

싶어도, 어느사이 샐쭉한 아가씨 새파랗게 토라지듯 소름이 돋아나게 한다. 바람막이나 오버자켓 없

이는 체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기상이다. 여지저기서 춥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온다. 

 

 

 

 

정상에서 앞산/비슬산 분기점 방향으로 되돌아보았다. 진달래는 그닥 이쁘지 않고 동시개화 정도도

알맞지 못하다. 가지끝은 생기를 가지지 못했고 꽃망울도 얼은듯 시들거나 말라버린듯 하다. 해걸이

를 한다더니..... 두해 전 몹시 가물때 모양이 안좋다가 작년에 조금 낫나했더니 올해는 별로인 갑다.  

 

 

 

 

 

 

3. <비슬산 대견봉 - 대견사 터/조화봉 갈림길>

 

 

 

 

인생의 짐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고

오른다는 것도 스스로의 의지다.

 

우리는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능한 지, 옳은 지 자문하며 순간순간을 살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짐으로 산야에 드러누웠던, 저 이의 지난 밤이 부럽다. 

 

 

 

 

 

 

누구나 각자 자기의 짐으로 열심히 오르고 있다.

 가장 무겁고 소중한 짐은, 바로 자기자신이다.

자신을 짐으로 삼고 오르는 내면의 나(我)는 누구인가?

 

 

인간이 개미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 개미와 다른 점일까.

 

 

 달리는 자는 최선을 다해 달릴 뿐이다. 전심전력이 그와 함께 한다.

멈춰 선 자는 바라보는 모든 것들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직관이 그와 함께라면.

 

 

 

 

 

 

조화봉 가는 길에 비슬산 정상과 병풍듬을 되돌아 본 장면. 진홍색 진달래와 분홍색 진달래가 어우러져

봄 비슬산의 정취를 한껏 돋우고 있다. 진홍이 좋으냐 분홍이 좋으냐는 물음에 둘이 어울려야 좋다는 대

답은, 질문자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일지라도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넉넉한 마음씀씀이다.

 

 

 

 

 

 세상이 어려워도 색상은 날로 다양해진다.

 

몇 해전 만해도 검거나 감청색 일색이었던 등산복 색깔이 빠른 속도로 다양해졌다. 아웃도어, 레저용 옷의

패션화 경향 때문에 희멀금한 진달래 사진에 되려 액센트가 된다. 이러한 여유로움과 다양함 속에 살며서도

 현재의 어려운 경제환경을 하소연 하는 것은 갈망에 대한 부족의 목마름일까? 미래에 대한 불안의 조바심일

까? 상대적 빈곤 속에 허우적대는 절대감의 상실일 뿐일까?

 

 

김영삼 정부부터 '갱제를 살리자'라는 선동의 승전고를 울려대기 시작한 지 어언 15년이다. 경제는 정말 여

지껏 깨어나지 않는 혼수상태일까? 이제 경제는 살았다고 선언할 시점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보다 더 행

복해 있을까? 누군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한 투쟁의 목소리 속에 개인의 조용한 삶이 항상 동요받고 있다.

 

 

 

 

 

 그래도 파스텔 톤의 자연색이 더 아름답다. ...... 봄의 색깔이니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조화봉 아래서 중장비로 산모가지를 파헤쳐 또 무슨 조화를 부릴려나.

톱바위(칼바위)가 한갖 공사판의 버려진 석재같이 느껴진다. 이를 어쩌나!

 

 

 

 

 

 

 비슬산 대견봉과 1004.9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내가 선 이곳은 조화봉과 대견사터의 갈림목 부근이다.

무수한 산님들이 진달래밭 구석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풀고 있다. 진달래 꽃잎에 밥 비벼서 먹

으면 어떤 맛일까 생각하니 쪼르르 공복감이 몰려온다. 조화봉에서 점심(點心) 작정을 하였다.

 

 

 

4. <조화봉에서 마음에 점을......!>

 

 

 

 

조화봉 바로 아래는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다. 조화봉 모가지를 휘둘러 길을 내고 있다.

사연인즉 그리 가슴 아플 일은 아니지만, 대견사터까지 차량을 올려놓고 마침내 조화봉 아

래까지 차량진입을 허락할 작정도 하고있다면 비슬산 전체가 등산의 격이 낮아져 별로 찾

지 않을 산이 되고 말것이다. 

 

 

조화봉 아래의 도로공사는 "낙동강유역 강우레이더 신설공사"라는 제목으로 500 여평에

콘크리이트 건축공사와 함께 거대한 높이의 시설물이 들어서게 되는 모양이다.  아울러

기존의 임도로 부터 진입을 위한 폭 4미터 길이 380여 미터의 도로공사가 병행되고 있다.

우리 삶의 안전장치를 위한 공사이니 부디 조화봉의 아픔을 최소화하면서 무사히 공사를

마쳤으면 좋겠다.

 

 

관기봉 가는 능선길에 산님들이 눈에 띈다.

조화봉 아래 청도쪽  암반에서 에스테반과 거나한 도시락을 풀어놓고 점심을 한다.

햇살이 있는듯 없는듯, 흐린듯 맑은듯 뿌연 날씨지만 배는 부르고 가슴은 시원하다.  

 

 

물은 왜 이다지도 맛있을까?

매번 느끼는 이 기쁜 소식을 뉘에게 전해줄까. 

 

 

 

 

 

 

 

5. <1034 봉>

 

 

 

시간이 흐를수록 정상부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서서히 눈이 충혈되어가고

마침내 내 온 몸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1034봉 끝은 아득한 벼랑이다. 온 산이 진홍빛 진달래로 물들면 산에 미쳐버린 사내가 맨 몸으로

새벽안개에 흠씬 젖어 이곳 벼랑에서 최종적으로 두팔을 벌리고 하늘로 향할 수 있는 자리다.

 

 

에스테반 그렇게 서 봐......! 이곳은 신이 내리는 자리야.

 

 

 

 

6. <1034봉에서 수성골거쳐 유가사로>

   

 

 

비슬산 진달래 바다의 실상은 이런 모습이다.

아마 토끼를 꼬시어간 거북이의 용궁가는 길도 이러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충혈된 눈이 식기 시작한다.

 

 

 

병풍듬이 이제사 제대로 병풍같이 보인다. 대부분의 이름은 이와같이 산아래에서의 조망에 근거했을

것이다. 수성골 하류는 연이은 치명타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다.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

2004년 매기에 연타를 맞고 피폐해진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오직 자연만이 가장 자연스럽게 그 상처

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느끼지만 수성골 하류의 등산로는 신작로와 같이 편안하고 넓다랗게 이어진다.

정상부의 광활한 진달래 바다와 함께 비슬산의 여유로움이 가장 잘 베어있는 곳.

 

 

 수도암 아래 계곡이다.  봄의 계곡은 생명의 푸름, 산상(山上)의 화원은 환희의 붉음.

붉게 물든 몸과 마음이 수도암 계곡의 초록으로 정갈히 씻겨나간다.

 

 

나는 다시 색도 없는 빈 몸이 되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