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한담 46

쉽게 다가서기엔 너무 버거웠던 그대의 품

 

 

 

 추월산에 간다. 모처럼 지인(知人)들과 함께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솔직히 늙판에 대단한 삶의 가치를 일궈내려고 바동대는 것도 아닌데, 그저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한동안 산과의 만남을 소홀했기에 가슴이 설렌다. 그래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왜 이리도 버거웠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굴레 씌워진 무덤덤한 일상의 괘도를 과감하게 선탈(蟬脫)하지 못한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애련(哀憐)해지는 그 자체가 내 탓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뭔가에 집착해 훌훌 털어버리지 못한 것은 채울 수 없는 과욕(過慾) 때문일까?
 

 연초에 유달산을 떠나 제자리로 되돌아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져 사이클이 뒤엉켜버렸다. 잠시 여유를 갖고 홀가분하게 지냈으면 좋으련만 쉽게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다보니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희망의 불씨마저 사그라져가는 듯한 좌절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기억 속에 묻혀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쉽기에 한 가닥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우여곡절을 겪는 뒤에 호남정맥이 병풍처럼 감싸고 돌아가는 인심 좋은 담양골에 터를 잡았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용기를 잃지 않도록 위로해주고 버팀목이 되어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는 동지들과 함께하는 산행이니 어찌 감개가 무량하지 않겠는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장맛비가 내린다. 산행을 취소하고 이곳 명소를 둘러보려고 했으나 그래도 왕년의 산꾼들이 이정도 빗줄기가 무서워서 눌러앉기에는 체면이 구길 것 같아 산행을 결행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 제1등산로로 올라갔다가 비교적 내리막길이 완만한 제2등산로로 하산하기로 작정하고 산길로 접어든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해후(邂逅)이기에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오르막을 오른다. 습기를 먹은 바윗길이 미끄럽지만 서로 조심할 것을 당부하면서 오르다보니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조망이 되지 않아 모처럼 찾아온 친구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없는 것이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보리암 정상에 도착하니 비가 그친다. 그러나 운무(雲霧)에 휩싸여 바라볼 것이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땀에 흥건히 젖은 우리들의 모습이 비 맞은 생쥐 꼴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차 한 잔을 나눠 마시면서 잠시 여유로움에 젖다보니 문득 한승원 님의 「茶 한 잔의 깨달음」에서 감명 깊게 읽는 대목이 떠오른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차를 마셔야 한다. 사랑은 깃털처럼 가볍고 삶은 산처럼 무겁다. 흔히 깃털처럼 가벼운 사랑이 산처럼 무거운 삶을 지배한다. 아니 사실은 산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삶도 한낱 이슬방울이나 풀 한 포기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이 삶을 무겁게 하는가.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인연이 삶의 무게를 옥죄고 억누른다. 삶을 가볍게 하려고 스님들은 머리를 깎는다. 무명초-머리카락, 그것을 자름은 속세와의 인연을 자름이다.”라는 구절이다.
 

 부대끼면서도 가까스로 희망의 싹을 고사(枯死)시키지 않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부터 머리카락을 자르는 심정으로 마음을 비우고 차 한 잔을 마시는 기분으로 살아가려고 애써보련다. 늘그막에 언제까지 속앓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기에 삶의 무게를 덜어내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