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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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우는 자규야!

 어느 산에서 자고 왔느냐 ?

 그 산중의 일을 네가 잘 알 터이니

 진달래꽃이 피였더냐,

 아직 피지 않았더냐 ? ‘

 


지난해 4월 25일 우중 산행을 하면서까지 보고 싶었던 참꽃축제의 진수를 아쉽게도 보지 못한

서운함과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불안을 위로 삼아 여류시인 ‘김씨란’이 지은 시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비슬산 참꽃 축제’에 때를 맞춰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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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으로 붉게 물들은 산골짜기와 흰 배꽃이 뒤덮인 들녘을 누비는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지나 대구로 들어선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답답한 마음은 대구를 벗어나 푸른 초원의 보리밭을 달리면서

다소 신선한 기분으로 전환은 되었으나 장시간 차속에 갇힌 채 허허 벌판을

뒤덮은 보리밭을 바라보는 한편의 고독한 마음에서

일생을 절망과 고독 속에서 어린 시절을 그리며 멸시와 저항의 몸부림으로 쓴

나병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떠올린다.

 


‘ 보라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 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리리.‘

 


‘비슬산 참꽃축제’를 보려고 전국에서 몰려든 차량 때문에

혼잡한 유가사입구에 도착하니 예상보다 한 시간이 늦었다.(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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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비슬산유가사’ 일주문을 넘어 산행을 시작한다.

 급물살을 막으려 계곡에 층층으로 쌓은 석축위로 물이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고,

그 물살을 가로지른 ‘극락교’를 건너 ‘유가사’로 들어선다.

 

1000고지의 울창한 비슬산 산등성을 울타리 삼아 들어앉은 천년고찰 유가사

(신라 흥덕왕 4년 도성국사가 창건) 전경을 둘러보고

‘천지만물과 화해하라’는 내용에 “대조화의 법어”를 읽은 뒤

‘대견봉 3.5km’의 표지를 따라 산행 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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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나타나는 ‘수도암’(修道庵)을 지나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산으로 들어간다.

날씨가 더워선지 초장부터 힘들어하는 달건이와 전 양규 후미대장 셋이

맨 후미에서 햇볕 뜨거운 아스팔트길을 피해 숲길로 들어선다.

 

오르는 길에 덕소에서 온 세 자매 중 한분이 더위에 힘이 부치는지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앉아 숨고르기를 하고 일행들이 추스른다.

 

그들과 함께 한고비 가파른 급경사 길을 벗어나 잠시 쉴 겸 소나무 숲속 그늘에 앉아

달건이가 버무려온 골뱅이 무침에 전대장님이 준비해온 곡차를 마시려고 펼쳐놓자

다른 산악회를 따라온 이 순영님이 곰취 나물에 싸서 드시라며 한 움큼을 내려놓고 간다.

 

곰취 나물 향과 골뱅이 무침에 곡차 맛이 어울리니 일품이다.

 

이 참에 곡차에 대한 유래나 한번 더듬어 보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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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인 조선 명종 때 계율에 얽매이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고,

유달리 술을 좋아했으며 또한 수많은 이적을 행했던 것으로 유명한 고승

진묵대사(震黙大師:1562-1633)로부터 곡차(穀茶)란 말이 유래된다.

그는 술을 곡차라고하면 마시고 술이라면 절대로 마시지 않았다.

 

하루는 잔치 집에서 술을 거르는데 그 향기가 진하게 풍기자 가서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거르느냐’고 물으니 ‘술을 거릅니다.’하고 대답하므로 대사는 묵묵히 돌아간다.

 

얼마 후 그 향기를 참다못해 다시 가서 재차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거르느냐’ 하니

그 까닭을 모르고 ‘술을 거릅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대사는 무료히 앉아 있다가 돌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술 향기에 참을 수 없는지라 삼 세 번 째 찾아가 물었는데

끝내 곡차(穀茶)를 거른다고 말하지 않고 술을 거른다고 하자

진한 아쉬움에 한참을 바라보다가 돌아와서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날 밤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철퇴로 술 거르던 자의 머리통을 내리쳤다고 한다.

 

진묵대사의 게송을 보면 곡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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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지석산위침(天衾地席山爲枕)

:하늘을 이불, 땅을 자리, 산을 베게삼고

월촉운병해작준(月燭雲屛海作樽)

:달은 등불이요, 구름은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삼아

대취거연잉기무(大醉居然仍起舞)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서 춤을 추니

각혐장수괘곤륜(却嫌長袖掛崑崙)

:긴 소맷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하노라.‘

 


곰취에 골뱅이 그리고 곡차가 뿜어내는 그윽한 향의 여운을 내려놓고 노송이 우거진 능선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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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차 탓인가, 더위 탓인가, 발걸음이 무디고 숨이 가쁘다.

 

지난해도 그랬지만 올해도 산상의 진달래 화원에 이르는 정상 길은 고통의 길이다.

 

두견새(자규) 밤새 울며 피를 토해 물들였다는 진달래꽃을 보려고

나는 오장에서 토해내는 뜨거운 피땀으로 온몸을 적신 채 맨 뒤에서 헤매며 찾아간다.

 

앞서가던 달건이와 후미대장이 나를 부르며 기다려주는 능선 바위언덕에 이르니

암벽위에 노송 한그루가 푸른 골짜기 아래 ‘유가사’를 내려다보며 고고하게 서있고,

저 멀리에 바위절벽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병풍듬’위로 ‘대견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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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상 주변 능선에 군락을 이룬 분홍빛 진달래꽃이 산뜻하게 느껴지건만 갈 길이 멀다.

 

산은 혼자만의 힘으로 가야하는 고독한 전투다.

 

가파른 길을 오르니 갈대와 진달래꽃이 함께한 넓고 완만한 능선이 시작되는

바위둔덕 ‘비슬산’(琵瑟山)정상이다.(14:34)

 

믿거나 말거나 한 풍문에 의하면 왕(王)자가 4개인 비슬산(琵瑟山)이

왕을 4명 배출한다는데 현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대통령까지 3명이 나왔으니

풍문이 맞는다면 앞으로 한명 더나온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유가사 건너편 멀리 작은 봉우리가 진한 연기를 뿜어 올리는 것을 보니 산불인가보다.

 

 ‘대견봉’을 향해 시원하게 펼쳐진 400여 미터 능선 길 주변의 넓은 산자락에 듬성듬성 이지만

산뜻하게 핀 진달래 꽃길을 따라 기암으로 형성된 ‘대견봉’(大見峰해발:1083m) 정상에 선다.(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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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참꽃축제’기간이라 복잡한 산객들을 피해 ‘정상 석’ 앞에서 잠시잠깐

박태길 대장 카메라에 자세를 취하고 내려온다.

 

정상 인근 넓은 평원 여기저기 산객들이 떼 지어 간식을 겸한 휴식을 즐기는데 그 중 순옥 아주머니를

필두로 한 덕소 일행이 푸짐하게 차려놓고 즐기는 분위기에 끼여 앉아 음식과 곡차를 마시며 쉰다.

 

멀리 ‘대견사 터’의 능선을 바라보며 굽이굽이 능선 길을 간다.(15:20) 

 

능선 길 숲속 가파른 내리막길로 ‘마재령 고개’에 도착한다.(15:40)

 

아직도 '대견사지터'는 2.5km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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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건이와 자분자분 세상이야기 하며 숨차 오르는 오르막길로 '월광봉'(해발:1004m)을 넘자(15:57)

멀리 대견사지 능선 1010고지 좌측 ‘조화봉’으로 가는 길목에 날카로운 기암괴석 애추들이

허공을 찌를 듯이  솟구친 ‘석검봉’과 긴 골짜기로 수많은 돌들이 흘러내린 모습이 장관이고,

우측으로 ‘대견사지터’의 기암군락에 이르는 광활한 구릉지대엔 참꽃(진달래)이 떼 지어

뭉글뭉글 연분홍 솜구름 일듯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룸이 가관이다.

 

달건이가 말하는 강화도 ‘고려산’을 뒤덮은 붉디붉은 진달래 군락이나

여수 ‘영취산’에서 본 진달래의 그림 같은 군락과는 색다른

몽실몽실한 부드러움과 연분홍 애잔한 따스함의 물결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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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고지 갈림 길에서 우측으로 잠시 가니 ‘대견사지 터’의 담장인 기암 능선에 선다.(16:20)

 

팔각정의 1034고지로 가는 기암능선 좌측은 큰 나라에서 본 절이라는 뜻의

대견사지(大見寺址) 공터가 절벽아래에 있고,

우측으로는 이제까지 봐왔던 구릉지대가 아닌 또 다른 넓은 구릉지대엔

고산지대의 진달래 화원이 펼쳐지고 많은 산객들이

구릉을 뒤덮고 흐드러지게 핀 넓은 진달래 꽃밭에 묻혀 맘껏 즐긴다.

 

지친 몸에 쉴 겸 한동안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한 뒤

기다리고 있던 김재규 선두대장을 따라 철 계단으로 절벽아래 ‘대견사지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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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으로 기암절벽이 담을 치고 동남쪽이 확 트인 1000고지의 정상

아늑한 터에 절의 흔적이라곤 공터 끝머리 절벽 암반위에 3층 석탑 하나가 유일하게 서있을 뿐이고,

그 아래 기암괴석들의 군락위에 홀로 앉아있는 ‘부처바위’가 쓸쓸히 석탑과 빈 절터를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은 흔적 없이 사라진 천년고찰의 서글픈 역사를 한없이 안타까워 하는듯하다.

 

주변을 보면 볼수록 기막힌 경관에 감싸인 천혜의 절터를 잠시 둘러본 뒤 기다리고 있는

박태길 대장 카메라 속에 석탑 앞에서의 흔적을 담아놓고 동쪽 출구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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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코끼리바위’와 ‘말 바위’를 보고 수녀들이 서성이며 쉬고 있는 갈림길에서

휴양림 쪽 우측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한다.(16:41)

 

고산지대에서 생각지도 못한 수녀들을 보자 불현듯 참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초등학교 동창도 수녀 복 입고 수행 정진하는 모습이 저렇게 선한 모습이겠지 생각하며

종교는 다르지만 불경집(佛經集) ‘숫타니파타’ 속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시경 한 구절을 띄우며 기억을 덮는다.

 


‘마음속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제거하여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내려가는 길은 1만-10만 년 전 주 빙하기에 형성되었고,

그 길이가 2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비슬산 암괴류, 토르, 애추의 굵은 돌들이

1000고지에서부터 시작되는 골짜기를 따라 강물처럼 흘러내린

돌들의 강을 따라 가파른 경사 길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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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줄나무’가 세상살이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키어 있는 모습이 심란하다.

 

돌 강이 끝날 무렵에서 휴양림이 시작되는 휴게소를 만난다.(17:05)

 

암괴류 전망대로 넘어가는 아치형 나무다리가 있고,

그 옆에 노산 이은상의 ‘나무들의 마음’이란 시를 읽고나서 아스팔트길을 가던 중

산 비알을 덮고 있는 ‘암괴류’를 한 번 더 기억에 담고 간다.

 

뒤숭숭한 참꽃축제의 거리를 지날 때 달건이 따스한 커피 한 잔씩 하자고해

산길 흙먼지로 컬컬한 목을 부드럽게 적시며 ‘소재사’에 이른다.(17:26)

 

‘소재사’(消災寺)는 산꼭대기의 ‘대견사’에 각종 생활용품, 의식 용품을 공급하기위해

고려 공민왕 7년 ‘진보법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소재사 전경을 얼핏 보며 다리를 건너고, 아주머니들이 팔기위해 온갖 나물들을 펼쳐놓은 숲길을 따라

길 양편에 세워놓은 ‘낙산낙수’ ‘자연휴야림’의 두 돌기둥을 통과함으로서 산행을 마무리 짓는다.(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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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기간이라선지 ‘아주까리 동동, 쓰리 쓰리 동동’이 쿵짝 쿵짝 거리는 복잡한 주차장에 내려와

고되게 능선을 따라 넘고 넘어온 산등성이를 뒤돌아보니 그 모습이 장엄하고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

 

복잡한 주차장을 피해 골짜기 길가 주차한 곳에 이르니 오랜만에 같이한 이석봉 화백님과

김익태 고문님 등 선두 일행 분들이 하산 식을 마친 상태에서 반겨준다.

 

산악회 전(全)총무와 유 국장님이 지지고 볶은 돼지불고기에 비빔밥

그리고 후미전대장님이 참꽃축제장에서 사들고 온 진달래꽃 향 물씬한 곡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산등성을 막 넘어가려는 눈부신 햇살이

푸른 초원위로 산산이 부서지는 시원한 보리밭 사이 도로를 따라 서울을 간다.

 


2007. 4. 28(음력 3. 12)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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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상도    편집: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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