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산행일자:2007. 2. 25일

                                   *소재지  :강원평창/홍천

                                   *산높이  :비로봉1,563미터/상왕봉1,491미터

                                   *산행코스:상원사입구-비로봉-상왕봉-북대사-상원사입구

                                   *산행시간:10시30분-14시54분(4시간24분)

                                   *동행    :이규성/정병기 고교동문 및 송백산악회원

 


  어제는 강원도 홍천군과 평창군을 어우르는 오대산을 올랐습니다.

작년 12월부터 올 1월까지 대구의 팔공산을 필두로 주흘산, 소백산, 덕유산에서 눈꽃 산행을 한껏 즐긴 터라 입춘 하루 전에 오른 용문산에서 휘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이 겨울이 마지막으로 내려준 보너스려니 했는데 어제 오대산을 오르내리며 또 다시 눈발을 만나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입춘도 지났고 나흘 후면 춘3월이 시작되기에 겨울의 끝자락을 마냥 붙들고 늘어질 뜻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언감생심 흰눈이 내리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래도 해발 1,500미터가 넘는 몇 안 되는 고산중의 하나이기에 주능선에는 겨우 내내 내린 눈이 다 녹지 않고 얼마라도 남아 있으면 고맙겠다 싶었는데 남은 눈도 그 양이 꽤 많았고 하얀 눈까지 내려줘 이제는 진정 이 겨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대산은 불교신자들에는 더 할 수 없이 성스러운 성지입니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대산-두로봉-상왕봉 및 호령봉 등 5대 고봉들이 연꽃처럼 피어오르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 이 연꽃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합니다. 신라시대의 고찰인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및 북대 미륵암등 5개의 암자들이 들어 서있고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기도 해 이 산을 찾는 불교신자들의 대열이 언제나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대산은 물, 불 및 바람 등 3재가 침범하지 못하는 길지여서 이조 선조임금 때 실록각을 지어 왕조실록을 보관해왔던 5대사고지의 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아침 10시30분 상원사 조금 못 미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상원사에 가까워지자 길가에 주차해 놓은 관광버스들이 많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 4-5분을 걸어올라 상원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명개리로 이어지는 임도는 똑 바로 나 있고 저희들은 왼쪽 길로 들어서 상원사를 그냥 지나친 다음 조금 후  다리를 건너 중대암으로 오르는 계단 길로 들어섰습니다. 5개의 사찰건물을 계단식으로 연이어 지어 밑에서 보면 5층 건물처럼 보이는 중대암은 4개동은 완공되었고 맨 위의 1개동만 증축 중이어서 사찰로서 틀이 잡혀가는 듯 했습니다. 오랜만에 함께 산행을 하는 송백 회원 몇 분들에 사진을 찍어드린 후 계단 길을 더 올라 적멸보궁으로 향했습니다.


 

  11시23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을 들렀습니다.

오대산이 불교의 성지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여기 적멸보궁에서 석가모니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서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신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일부를 몰래 옮겨놓아 모시는 경기도 안성의 미리내 성당 일대를 천주교에서 성지로 정한 것과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한 채 밖에 없는 조촐한 적멸보궁 앞의 공터에 자리를 깔아 놓고 수많은 신자들이 절을 올리는 모습은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부처님께 예불하는 모습들과 똑같이 진지해 보였으며, 그 분들의 진지함에 주눅이 들어 사진 찍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12시24분 이 산의 최고봉인 해발1,563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날씨가 흐려 전망이 별로였지만 동쪽 건너 남북으로 내닫는 두로봉-동대산의 백두대간 길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이번 산행의 목적이 35년 전에 한 산형과 함께 오른 오대산 산행을 “Try to remember"하는 것이라고 밝히자 동행한 두 고교동문들이 쏜살같이 앞으로 내달려 자리를 비켜주었습니다.


 

  1972년 10월의 오대산 산행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오대산 월정사 앞에 도착하는 데만 하루해가 다 걸렸습니다. 월정사를 막 지나 민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서둘러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상원사를 들러보고 적멸보궁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비로봉에 오르자 동쪽 건너 큰 산줄기가 보였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길이 바로 백두대간 길이었습니다.


 

  13시12분 해발 1,491미터의 상왕봉에 도착해 처음으로 짐을 풀고 쉬었습니다.

비로봉에서 상왕봉까지 능선 길이 이리도 푸근하고 정감 가는 길인 줄을 이번 산행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비로봉에서 눈을 밟으며 조금 내려서자 온갖 몸짓을 해대는 나무들이 평지 길을 안내해주었습니다. 죽어서도 곧바로 서있는 주목나무, 한 뿌리에서 세 네 뼘이 넘는 굵은 줄기가 12개나 뻗어 나간 참나무, 흰색의 다양함을 보여줄 듯 하얀 눈과는 또 다르게 부티 나는 우유 빛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 더 이상 하늘로 치솟기를 거부하고 등을 굽혀 이 땅과 호흡을 같이하고자 몸 전체를 뒤튼 이름모르는 나무들의 몸짓에는 제게 일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야생화 화보집 “꽃의 신비”를 펴낸 김정명 님의 신문기사를 읽고 나무들의 몸짓에서 그들의 언어를 곧 바로 해독하고자 했던 저의 조급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길을 가다가 새로운 꽃을 보면 그 자리에서 비닐을 덮어 쓰고 며칠 씩 지내며 말을 걸었다. 20일 넘게 한 자리에서 지켜본 적도 있다. 그러다보면 그 꽃이 웃기 시작했고 자신을 열어보였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저도 희망을 가진 것은 이 다음에 이 길에서 며칠이고 죽치고 기다리노라면 나무들의 비밀스런 언어들을 디코딩(decoding)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35년 전에 떼거리로 상공을 배회해 동행한 산형을 놀라게 했던 까마귀들이 이 번에는 몇 마리만 까옥까옥 울어댔습니다.


 

  14시2분 북대사를 들렀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상왕봉을 뜰 즈음에 눈발이 세졌습니다. 이 겨울이 제게 보여주는 마지막 성의인 흰눈을 오대산에서 맞자 성큼 성큼 다가오는 새 봄이 마냥 상서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왕봉에서 15분을 걸어 내려와 북대사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왼 쪽 아래로 산허리를 에도는 명개리가는 임도가 내려다보였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2.7키로를 더 가면 백두대간 상의 두로봉에 이르게 되고 그 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내달으면 동대산에 이르게 되는데 이 길이 바로 35년 전에 꿈꾸었던 오대산 종주코스였습니다. 그 때는 이곳에서 북대사로 내려서지 않고 직진해 바로 앞의 1460봉을 넘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이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우회해 북대사로 향했습니다. 갈림길에서 15분을 걸어 내려선 임도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8-9분 간 임도 길을 걸어 올라가 35년 전에 하룻밤을 묵었던 북대사를 들렀습니다. 거제수나무의 붉은 수피가 빛나는 임도 길을 따라 올라 북대사에 이르자 선원으로 바뀐 북대사는 스님들이 참선에 정진 중이어서 출입이 금해졌습니다.


 

  35년 전 1460봉을 넘어 두로봉으로 전진하는 중 날이 어두워져 명개로 넘어가는 임도 고개 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상원사 방향으로 하산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가면 상원사를 지나는 것이 분명하므로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밤길을 걷던 중 불빛을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다가가 확인해보니 북대사였고 주지스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려 스님과 한 방에서 하룻밤을 묵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이튼 날 새벽 4시에 시작되는 스님들의 예불에 저희 둘이도 참가했고 아침식사도 스님들과 똑 같이 들었습니다. 주지스님 앞에서 반가부좌를 틀고 가르침의 말씀을 듣는데 2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습니다. 10시쯤 해 북대사를 출발했고 명개리 고개마루를 거쳐 두로봉에 어렵게 올랐으나 잡목이 우거지고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습니다. 동대산행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와 북대사를 들러 늦게 점심을 해먹은 후 주지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후 4시가 훨씬 넘어 북대사를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북대사 경내를 들러보지 못하고 바로 상원사로 되돌아갔습니다.

솜꽃을 피운 버들강아지가 전해주는 봄소식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임도 따라 5-6분을 내려선 후 오른 쪽의 산길로 내려섰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흰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지만 눈길이 끝나자 경사가 급한 진흙탕길이 이어졌습니다. 20분 가까이 산길로 내려와 다시 임도를 만났고 임도를 따라 상원사로 내려갔습니다. 산허리를 굽이굽이 도는 임도 길에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끝까지 아이젠을 풀지 않았습니다.


 

  14시54분 상원사 입구를 조금 지나 임도 옆에 주차한 관광버스를 찾았습니다.

소백산을 힘들게 올랐던 후배가 먼저 내려와 산악회에서 정해준 시간 안에 간신히 닿은 저를 반겼습니다. 귀경 길에 전나무 길로 이름난 월정사 경내를 들렀습니다. 앞마당에 9층석탑이 서있는 목조건물은 대웅전이 아니고 적광전이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는 대웅전과는 달리 적광전에는 가운데에 석가모니불대신에 비로나자불을 모시는데 여기 월정사 적광전은 좌우의 보살님을 두지 않고 오직 중심에 석불암의 본존불과 똑 같은 크기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것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전나무 숲길 옆으로 찻길이 새로나 35년 전에 걸었던 전나무 길은 걷지는 못하고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35년 전 북대사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와 월정사 못 미쳐 민가에서 세 번째 밤을 묵었습니다.

상원사를 지나자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이내 어둠이 산자락을 삼켰습니다. 민가에 다다르기까지 알고 있던 캠프송을 모두 동원해 소리 높여 합창했습니다. 캠프송 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던 포크송도 같이 불러 레파토리가 동이 날 즈음해서 이틀 전에 묵었던 민가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을 해들고 땔 감을 조금 얻어 길 아래 논으로 내려가 캠프화이어도 즐겼습니다. 전날 밤 북대사에서 스님들과 한 방에서 같이 자느라 잠을 설친 탓에 이 날 밤은 숙면을 취했습니다. 이튼 날 늦게 아침을 지어먹고 월정사를 들러 경내를 들러본 후  전나무 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다다랐습니다. 


 

  저녁 9시가 채 안되어 잠실에 도착해 인근 음식점을 들러 조촐한 술자리를 동문들과 같이 했습니다. 14시간 만에 잠실을 출발해 오대산을 오르내린 후 다시 잠실로 돌아오는 민첩성은 35년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그 때는 아침10시 경에 월정사를 출발해 마장동 터미널에 오후 4시가 다 되어 도착했었습니다. 35년 전에 3박4일의 오대산 여정을 하루로 줄이고 남은 시간이 저희들 시간구좌에 고스란히 저축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 까만은 그렇지 못하고 부지런히 뛰어 만든 시간을 다시 쪼개어 살아야 하는 오늘 날 속세의 시간을 잊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등산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오로지 참선에 열중하는 북대선원의 스님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잊고 지낼 수 있는 분들이다 싶어지자 35년 전에 한 산형과 제게 반가부좌를 틀게 하고 가르침을 주셨던 노스님이 생생하게 기억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