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두어 차례에 걸쳐 서울 시내 옛 성곽의 흔적을 더듬어 보았다.

그 중 미답지가 북악산 구간인데,

한 달 전인 지난 6월에 그 곳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미완의 원을 완성할 수 있나보다 하고 기대하였지만,

북대문인 숙정문 언저리 일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하루의 답사 인원이 제한되고,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하는데,

들어가보니 주말은 상당기간 이미 만원이다.

 

서울 성곽을 어차피 완전하게 잇지 못한다면,

아예 북악에서 북한산 쪽으로 건너 가 보는 건 어떨까?

 

지도를 보며 고심하던 중,

마침 san001님께서 바로 그 코스를 선답하신 산행기를 접하게 되었다.

지난 7월 1일에 그 길을 탐험하고 길안내까지 자상하게 기록으로 남기신 것이다.

바로 이거다!

 

미답지에, 철책도 걸리적거릴 듯 하고,

정규 등로인지 긴가민가하고,

아무튼 혼자 가긴 어째 좀 께름칙하여,

하루 전에 동행을 물색한다.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아스팔트 전혀 밟지 않고 북한산엘 오르는 방법이 있다느니,

전혀 새로운 루트라느니,

코스가 환상적이니 어쩌구 하며 사기성 짙은 홍보를 하여

동반자 두 분을 포섭한다.

 

 

주요 경로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08:30) – 사직공원 – 인왕산 정상(09:25/30)

창의문(자하문 10:15) –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10:50/11:04)

산책로 끝 갈림길(11:17) – 삼각산 갈림길(11:27) – 여래사(11:34/40)

북악터널위 능선(12:07) – 큰형제봉, 점심(13:13/38) 대성문(14:33/  )

대남문(15:05) 구기매표소(16:10) -

 

 

산행 시간 : 총 7시간 50분(식사/휴식 포함, 아주 널널한 걸음)

 

참가자 : 양영진님, 이해정님, 미시령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출구에서 출발한다.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으니 곧 사직공원이다.

 

사직단.

 

사직단(社稷壇).

사직… 사직이 위태롭다고 말할 때의 바로 그 사직이다.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후에 동쪽엔 종묘, 서쪽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단군성전을 먼발치에서 훑어보며 스쳐 지나 활터를 만난다.

등과정터라는 표석이 있는 걸 보면 아마 무과 시험장이었나보다.

여궁사 한 분이 시위를 당기고 있다.

멋져…


 

활터.

 

 

“우리 어렸을 땐 활이나 쏘는 사람들더러 한량이라 그러지 않았어?”

“그렇지. 대낮에 팔자 좋아 일은 않고 놀기나 한다고 비꼬는 뜻으로 그리 불렀었지.”

 

스카이웨이를 따라 걷다 초병이 지키는 갈림길에서

스카이웨이 차도를 버리고 왼쪽길로 접어든다.

  

곧 나타나는 인왕산 등산로 계단길.

 

이어지는 성벽, 계단, 바위산…

 

인왕산 등산로는 YS 취임 후 개방되었다.

개방소식을 듣고, 초딩 1년이던가 하는 아들과 함께

거창하게 등산하는 냥 배낭까지 매고 찾아오른 곳이다.

청와대를 굽어보며 희희낙락거렸다. 한 땐 무시무시했던 시절이었었지.

아, 아이를 넘 무시하면 안된다.

며칠 전엔가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도 몇 년간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라는 델 다녔었단다.

년식이 꽤 되었군.

 

Y가 묻는다.

“인왕, 어떻게 써?”

“원래 어질 仁자에 임금 王자를 썼는데, 일제 때 왕자에 날日을 덧붙여버렸다던데…”

참 이상한 놈들이다. 여기 저기 쇠말뚝에, 개명작업…

 

인왕산.

 

 

기온이 높진 않으나 제법 습하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곧 인왕산 정상. 우백호의 머리.

안개가 뿌옇다.

서쪽엔 안산. 사방을 둘러보지만 멀리는 희미하다.

청와대도 흐릿하고 시내도 그저 뿌옇다.

오늘 조망은 꽝이네.


 

인왕산 정상. Y와 L.

 

 

길을 이어간다.

담소하며 성벽과 철책을 음미하며.

 

초소의 초병들은 주말이라선지 사복차림이다.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먼저 건네오기도 한다.

인사가 오간다.

씩씩하고 착한 아들들이다.

 

정상에서 철책을 따라 조금 내려오다 길 왼켠 철책 쪽문을 그냥 스쳐지나간다.

저번에는 쪽문으로 나가 부암동쪽으로 내려간 적이 있는데,

오늘은 성곽을 따라 직진하여 내려간다.

잠시 후 등산로는 성벽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철계단을 통해 성벽 내부로 들어온다.

인왕산 구간은 군인들이 지키는 곳이다.

순하고 편한 길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스카이웨이다. 청운동이겠지…

 

 


 

 


 

 

스카이웨이를 따라 5분여 걸으니 길 우측에 창의문이 서있다.

자하문이라고 더 널리 알려진…

紫霞門…

자주빛 노을…

참 운치있는 이름이다.

 

창의문은 서울성곽 4소문중의 하나다.

1623년 중종때 일단의 무리들이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쿠데타에 성공하였다는 사연이 있는 곳이다.

이름하여 인조반정.

실패하면 역적, 성공하면 충신.

445년 후 또 다른 무리들이 이 곳으로 침투하다 한 명을 제외하곤 다 사살되었다.

그 탓에 서울 서북부 집값은 악영향을 받았고, 우리도 그 중의 하나였다.

뭐, 최근에는 뉴타운이다 하여 좀 나아진다던가…

 

 

자하문.

 

 

스카이웨이 포장도를 따라 동쪽으로 걷는다.

이젠 북악의 뒷편이다.

길 왼쪽은 부암동이다. 오지로 유명한 동네다.

부암동의 백사실과 백석동천이 최근 미디어에 자주 소개되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

속세의 때를 급격하게 입지 않을까 우려되는 마을이다.


 

부암동 주택가.

 

 

길은 P자로 또아리를 틀며 고도를 서서히 높여간다.

차들도 많지않아 조용하고 한적하다.

멀리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저 놈은 지금이 몇시인데 이제 우는 거야?

아무튼 닭을 키우며 사는 동네일 정도로 외진 곳인가 보다.

담에 꼭 가봐야지.

 

북악산 산책로 시점.

종로구에서 세운 안내구조물이다.

산책로는 가까이, 때로는 조금 떨어져 스카이웨이를 따른다.

목재데크와 흙길이 이어진다.

 

 


 

북악산길 산책로 종로구구간 시점.

전문 산악인의 틀이 갖춰진 L.

 


 

 

 

드디어 팔각정.

맑은 날엔 북쪽 북한산이 좌우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야, 다행이다. 북한산 주능선이 저어 멀리 보이면 아마 질려서, 예서 그만 가자고 할 텐데, “

“안보여도 그만 가자.”

“흐흐흐. 그런 게 어딨어?”




 


 

북쪽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팔각정을 지나 십여 분 산책로를 따라가니 종로구간 끝지점 안내판과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은 군부대.

주의지점이다.

갈림길에서 스카이웨이를 버리고 왼쪽길 군부대쪽으로 걸어가서

정문앞 오른쪽 언덕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운동시설. 잠시 몸을 푼다.

왼쪽에 부대 철조망을 끼고 진행한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있다.  직진하면 삼각산, 여래사, 우측은 성북구민회관.

주의지점2.

여기서 철조망따라 곧장 직진해 내려간다.

 


 

주의지점2. 여기서 삼각산은 직진해야...

 

 

이내 길은 인적이 드문 희미한 산길로 변하며 어느틈엔가 철조망을 벗어난다.

그네틀로 쓰면 될 듯한 통나무구조물을 지나면 작은 갈림길이 나타난다.

주의지점 3.

양쪽 다 비슷하게 희미하다. 나뭇가지에 조망도 없고 방향감각도 흔들린다.

어디로 가지?

Y가 왼쪽을 택한다. 그나마 조금 더 뚜렷한 길이란다.

나침반을 꺼내보니 그 길이 북향이다.

그래, 가자

 

 

완만한 내림길을 조금 걷다보니 왼쪽 나무들 사이로 무언가 보인다.

아, 여래사인가 보다.

스님에게 여쭈어 대웅전 뒤켠의 샘터에서 물을 보충한다.

 

일주문을 나오자마자 왼쪽 산기슭의 소로를 찾아 오른다.

주의지점 4.


 

 

 

희미하지만 산길이 이어진다. 길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곳도 있다.

어, 저게 뭐야?

얼룩덜룩, 울긋불긋한 천들이 드리워져 있다.

무당이 굿하는 곳이다.

촛불도 여럿 켜있고 제단에 음식도 있고 마침 무언가 진행 중이다.

 

길이 막혀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빠꾸!

 

 

되돌아가다 아무튼 북쪽으로 생각되는 오른쪽 희미한 산길을 타고 오른다.

작은 바위에 석굴암방향임을 알리는 글씨도 보인다.

길은 길인데 맞는 길인지는 모르겠다.

나무가 무성하여 방향감각도 무뎌진다.

  

아무튼 두어 군데 희미한 갈림길을 만나는데,

나침반으로 가급적 북향을 찾아 또한 가급적 고도를 높이는 쪽으로 이리저리 오른다.

  

아무튼 이 곳이 가장 어렵고 난해한 구간이다.

자세히 설명하기도 곤란하고, 다시 간다고 해도 제대로 길을 찾을 지 미지수이다.

라파에루님의 기록을 보면 이 곳에서 정릉매표소쪽으로 내려가신 듯하다.

 

 

드디어 주능선으로 생각되는 능선으로 복귀.

여래사를 떠난 지 27분 만이다.

왼쪽능선으로는 밧줄에 출입금지 팻말.

san001님의 기록에는 이 왼쪽 금지구간을 돌파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우리는 그 초입을 놓쳤나 보다.

 

주능선을 만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여기가 아마도 북악터널 위 보토현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제 우측, 즉 북쪽으로 능선을 타고 진행한다.


 

주능선 복귀지점. 우리는 사진 왼쪽 희미한 산길로 올라왔다.

 

 

이어 나타나는 좌, 형제봉매표소 0.4km 이정표.

이젠 드디어 북한산 등산로이다.

1,600 x 3 = 4,800 흐흐흐.

앞으로 대성문이 두 시간 정도 거리이다.

 

  

전망바위.

지나온 북악산 능선과 팔각정이 뿌연 안개 속에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발 아래는 평창동 큰 길.


 

.

낭만 검객 L.


 

작은 형제봉. 뒤로는 보현봉이 희미하고...

 

 

 

등산로를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하얀 바위 몸체를 한 보현봉이 정면에 드러난다.

맑은 날, 인왕산이나 북악스카이웨이에서 보면,

마치 학익진을 펼친 듯한 북한산 주능선의 한 가운데에

가장 높이 당당하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봉우리이다.

그 높은 능선 자락에 산사가 보인다.

 

작은형제봉, 큰형제봉을 지나 점심을 들며 쉰다. 너무 오래 쉬는 거 아냐?

 

보현봉. 하늘이 많이 걷혔다.

보현봉은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라 출입금지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대성문으로 오른다.

 

 

오름길을 Y가 거침없이 오른다.

평소같지 않다.

이 친구가 뭘 잘 못 먹었나?

보현봉 산자락 아래의 산사에 들러 물을 보충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역시 휴일이라 사람들이 많다.

 

드디어 대성문. 북한산 성벽에 설치된 12개 문 중 하나이다.

  

여러 차례의 휴식을 포함하여 여섯 시간 소요.

오늘 목표 달성.


노장 투혼 Y. 

 

 

점심을 함께 한 다른 산객과 작별한다.

 

대성문 아치 아래 길고 넓직한 통나무에 쭈루루 앉아 쉰다.

이런 저런 얘기들.

이 나무는 뭐지?

 “빗장!” 곁에 앉은 다른 산객의 답변.

 

성벽따라 보국문으로 가서 정능으로 내려가려던 당초 계획은 여기서 획~ 바뀐다.

빗장 산객을 따라 보국문과는 반대방향인 대남문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간다.

흐흐흐


 

 


대남문 내림길.

 
 

 

이어지는 지루한 내림길.

Y가 무릎통증이 있단다. 좀 무리가 되었나싶어 걱정이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씻어본다. 시원~하다.

 

구기매표소를 지난다.

드디어 무사히 산행을 마친다.

서울 도심에서 산길로만 이어 북한산에 오르는 길을 무사히 계획대로 답파한 것이다.

미지의 길, 미답구간을 함께 해 준 L과 Y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 맘 알려나…

 

도토리묵, 파전, 막걸리…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네 병… 으흐흐.

 

 

07:05 집 나섬

08:20/30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출구

08:37 사직공원

08:57 인왕산 등산로 입구

09:25/30 인왕산 정상

09:57 인왕산 등산로 출구, 스카이웨이 청운동

10:15 창의문(자하문)

10:20 북악산 산책로 시점

10:50/11:04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

11:17 산책로 종로구구간 끝. 갈림길

11:27 삼각산/성북구민회관 갈림길

11:34/40 여래사

12:07 북악터널위 능선, 보토현(?)

13:13/38 큰형제봉, 점심

14:11 일선사

14:33/ 대성문

15:05 대남문

16:10 구기매표소

16:20 식당, 뒷풀이

  

지난 일년 반 동안은, [한국의산하]에서 구경...만 하였다.

이유는, 글쎄...

그저, 기록으로부터, 내 자신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일 것이다.

오랫만에 다시 산행기를 올리려니 조금 낯설다.

강호제현의 이해를 구한다.

  

또 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