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성을 지나 청정 비경 살구나무골로

마분봉, 악휘봉, 시루봉(괴산)

(마분봉능선에서 바라본 우측 마분봉)


〔산행개요〕

 

- 산행일 : 2006. 7. 22(토) 맑음

- 산행요약

■ 코스 : 은티마을~마분봉~입석고개~악휘봉~시루봉~살구나무골~절말 

■ 시간 : 산행시간 6시간24분, 총시간 8시간48분 

■ 구간별 

은티마을~(7분)~구왕봉,마분봉갈림길~(21분)~무덤~(44분)~692봉~(12분)~마법의성~(7분)~안부~(7분)~봉우리~(16분)~봉우리~(13분)~UFO바위~(11분)~마분봉~(16분)~774봉~(11분)~입석고개~(24분)~824봉(백두대간갈림길)~(8분)~입석~(6분)~악휘봉~(23분)~793봉(전망암봉)~(7분)~샘골고개~(14분)~822봉~(39분)~시루봉~(19분)~697봉~(14분)~사거리안부(각연사갈림길)~(43분)~시묘살이골갈림길~(10분)~쌍곡폭포~(13분)~쌍곡휴게소(도로)

(부산일보, 샘골고개가 시루봉과 822봉 사이가 아닌, 822봉과 바위슬랩이라 표시딘 793봉 사이가 맞다)


 

〔산행기〕

 

폭우로 인한 코스의 변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들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도는 어디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연 충청북도이다. 괴산과 제천 지방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산들은 어느 한 봉우리도 평범하지 않은 자기만의 개성이 뚜렷한 산들이다. 괴산군에서 발행한 「괴산의 명산」에 나오는 산만도 35개. 하나하나 산행 욕심을 갖게 하는 명산들이다.

 

충북을 대표하는 월악산, 계룡산 국립공원으로 주위에도 국립공원의 산 못지않은 좋은 산들이 많다. 이번에 산행을 하려는 마분봉과 악휘봉도 그런 명산 중 하나이다. 백두대간의 거대한 산줄기에서 살쩍 가지를 치며, 최근 들어 나름대로의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산. 이미 아름다운 산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칠보산과의 연계를 생각하며 산행에 나선다. 그래서 생각한 코스는 은티마을에서 출발하여 마분봉, 악휘봉, 칠보산을 종주후 문수암골로 하산하는 길.

 

그런데 최근의 폭우로 인해 처음 계획한 코스보다 짧은 산행이 되었다. 산행하는 당일 아침에 관리공단에 확인하니 계곡물이 많이 불어 문수암골을 건너올 수 없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칠보산은 생략하는 대신, 오랫동안 휴식년제로 묶여 깨끗함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살구나무골의 비경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더구나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마분봉과 악휘봉의 조망에 취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걱정스럽던 차에 결과적으로 잘 변경된 산행이다.

(살구나무골)


 

마분봉의 입구 은티마을 주차장

 

밤사이에 비가 내리고 비구름이 가득한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까지 그렇게 좋던 날씨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실망을 주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한 일이다.

전망이 산행의 한몫을 차지하는 산. 충북 괴산의 마분봉과 악휘봉으로 가는 산행은 복잡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잠실에서 2시간만에 은티마을 입구의 대형주차장(09:20/09:30)에 도착한다. 은티마을은 한적한 시골의 외진 마을이어도 산악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마을이다. 백두대간의 희양산, 구왕봉과 마분봉의 들머리가 되는 마을.

 

주차장에서 약50m 마을길을 따르면 은티마을 유래비와 장승 2기가 나온다. 바로 옆 나무그늘을 드리운 키 큰 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마을의 마지막 가계인 「희양산 은티집」에서 야초님이 미리 주문한 희양산 막걸리를 챙깈다. 가게 벽에는 경쟁적으로 달린 수많은 산악리본이 걸려있다.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려는 마음이 요즈음 경쟁적으로 바뀌는 산행의 세태를 보는 듯하다.

(은티마을 주차장)

(은티마을 유래비와 장승)

(마을입구의 남근석, 은티마을이 여궁혈에 해당한다)

(가게에 걸린 리본)


 

들머리를 찾지 못하고 간단히 알바

 

가게를 지나면 바로 갈림길(↖희양산, 구왕봉   ↗마분봉, 악휘봉)(09:37). 우측길로 접어들어 조금 가면 마을을 벗어나 과수원 사이의 길을 따라 걷는다. 아직 채 영글지 않은 사과들이 풍요로운 가을을 기다리며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길을 헤맨다. 숲으로 들어가는 너른길은 계속 따르면 입석고개로 가는 계곡길. 물론 중간에 마분봉능선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마분봉의 백미인 마법의 성을 지난 안부로 오른다.     

마침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제 길을 찾는다. 그 길은 과수원이 끝나고 숲으로 들어서는 너른 길 가기 직전 우측으로 오르는 길이다. 올라가는 방향으로 보이는 한기의 묘가 나침반 역할을 한다.

(희양산과 마분봉의 갈림길)

(과수원 옆을 지나가는 길)


 

첫봉우리인 692봉까지의 끝없는 된비알길

 

초입의 무덤을 지나 조금 더 나아가면 구릉지대의 너른 터에 자리 잡은 무덤(09:58)이 나타난다. 작은 동산 같이 앞이 훤히 트인 장소이다. 등산로는 무덤 우측으로 이어지며 능선을 향해 치고 오른다. 5분만에 올라선 능선(10:03)에서 주위가 훤해진다. 수풀 위로는 희양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걱정거리 많던 하늘은 어느새 햇볕이 솟아지고 열기가 느껴진다.   

 

능선부터 첫봉우리인 692봉까지는 된비알. 바람마저 잠든 답답한 숲길에서 잠깐씩 은티마을이 내려다보인다. 692봉 직전에서 처음으로 휴식(10:40/10:55)을 갖는다. 급격하게 고도를 높여 한시름을 던 기분이다.

692봉(10:57)은 수풀에 둘러싸여 전망도 없고 봉우리라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두번째 무덤)

(오름길에 내려다보이는 은티마을)


 

마법의 성을 넘어

 

692봉을 넘어서면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내리막의 끝에서 「마법의 성」 지대(11:09)가 시작된다. 마법의 성은 칼날 같은 바위들이 연이어지는 암릉지대를 의미한다. 능선 양쪽사면은 절벽 그리고 소나무와 어우러지는 암릉지대는 한폭의 동양화이다. 시야가 좋아 희양산, 구왕봉과 가야할 마분봉이 전면에 나타난다. 의외로 마분봉으로 가는 능선길이 만만치 않다.

 

암릉지대가 끝나면 다시 가파른 내리막. 안부(11:16)에는 「마법의 성」팻말이 걸려있다. 여기서 좌측은 은티마을(10분)로 하산하는 길이다. 가야할 다음 봉우리는 한없이 높기만 하다.

(692봉을 내려와 마법의 성이 시작되기 직전)

(마법의 성 암릉길)

(마법의 상)

(마법의 성에서 바라보는 우측 마분봉과 중앙의 뾰족한 악휘봉)

(마법의 성을 내려가는 가파른 바윗길)

 

 

급경사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마분봉 능선

 

처음 마분봉 산행을 검토하면서 이렇게까지 오르내림이 심한 줄 생각을 전혀 못했다. 692봉을 포함 마분봉까지 모두 4개의 봉우리. 각 봉우리마다 개별성이 강하여 급경사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한다.

 

두 번째 봉우리(11:23)는 전망이 없지만 이후 능선길은 대체로 전망이 양호하다. 희양산, 구봉산에서 백두대간과 합쳐지는 지점의 봉우리(834봉)까지의 백두대간 줄기와 마분봉, 악휘봉 등이 계속 시선을 따라온다.    

(두번째 봉우리로 오르면서 되돌아본 마법의 성에서 내려오는 바위사면)

(세번째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우측 마분봉)


 

UFO바위

 

세 번째 봉우리(11:39/11:47))를 넘은 안부에서 마분봉으로 가는 길은 조망의 맛을 한껏 즐기는 아름다운 암릉길이다. 마분봉의 험란한 바위사면은 단연 압권, 신이 만든 자연의 걸작품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약10m의 밧줄이 걸린 직벽구간(11:51) 그리고 나뭇가지를 계단삼아 오르는 바위구간 등 힘들지만 재미가 있는 바위구간이 연이어진다.

 

어느새 주위가 터지며 홀연 UFO바위(12:00/12:06)가 나타난다. 영락없는 삼각형의 비행접시 모양이다.

보는 맛에 취해 점점 느려진 발걸음이지만 배낭을 아니 내려놓을 수가 없다. 예정시간보다 지체되는 시간이 많아지며 하산시간이 슬슬 적정이 되지만 어디 그게 대수랴. 

(UFO바위로 향하면서 바라본 좌측 희양산과 우측 구왕봉)

(UFO바위를 향하며 좌측으로 바라본 전경, 좌측 봉우리가 악휘봉이다)

(마분봉)

(UFO바위로 올라가는 약10m의 밧줄구간)

(UFO바위)

(지나온 능선, 실제 느끼는 것보다 부드러워 보인다)


 

마분봉(776봉)

 

UFO바위에서 몇 차례의 바위구간을 지나 10분 정도 오르면 마분봉(12:17/12:25)이다. 바위에는 예외 없이 밧줄이 걸려있다. 밧줄이 없으면 상당히 불편하지만 있으면 상당히 재미있는 그런 종류의 바위들이다.

 

마분봉 정상은 올라갈 때의 모습과 달리 좁은 공터로 전망은 시원찮다. 서쪽 바위지대로 조금 나아가면 악휘봉도 이제 가까운 거리로 다가서 있다. 마분봉이 말똥이라는 의미로 능선상에 말똥과 비슷한 바위가 많다는데서 유래하였다.


 

(마분봉으로 가는 길의 풍경)

(마분봉으로 가는 밧줄 구간)

(마분봉으로 가면서 내려다 본 UFO바위 일대, 중앙에 UFO바위가 보인다)

(마분봉 정상)

(마분봉에서 바라보는 좌측 악휘봉과 앞의 774봉)

 

마분봉을 지나면 역시 밧줄, 급경사, 내리막이라는 3요소가 시작된다.

마분봉의 692봉에서 악휘봉까지의 등산로의 특징은

첫째 구분이 확실한 오르내림의 반복,

둘째는 적당히 마음을 긴장시키는 바위구간과 구간마다 걸린 밧줄,

셋째는 한결같이 전망 좋은 암릉이라는 점이다. 

이제 어느 정도 이런 상황에 적응되어 나름대로 다음 구간이 기대가 된다.

(마분봉을 내려오는 급경사 내리막)

(774봉을 내려가는 길에 있는 고사목)

(774봉 근처에서 바라본 희향산과 구왕봉)


 

입석고개

 

짧은 안부(12:33)를 지나 774봉(→입석마을, ↓마분봉, ↑악휘봉)(12:41)을 제법 길게 내려가면 다시 올라갈 일이 걱정일 정도로 움푹 파인 듯한 입석고개(12:52)에 도착한다.

입석고개(↓마분봉40분, →입석마을40분, ←은티마을30분, ↓악휘봉40분)는 입석마을과 은티마을을 연결하는 통로로 은티마을에서 계곡길을 따라 올라오면 만나는 곳이다. 또한 악휘봉 산행시 들머리인 입석마을에서 일반적으로 올라오는 고개이기도 하다. 최근 많이 알려진 산이어도 안부에서 좌우로 내려가는 길은 원시림을 방불케한다. 

 

이제 백두대간 줄기를 향해 오른다. 여전히 급경사이지만 바위는 사라지고 육산에 가깝다. 봉우리(728봉)(12:59) 하나를 넘고 얕은 안부를 지나 백두대간이 가까워질 무렵 답답하던 숲을 벗어나 주위가 터진다(13:14/13:20). 지나온 마분봉 능선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고 짙은 그늘아래 은티계곡이 파묻혀있다.

(입석고개 내려서기 직전)

(728봉 근처에서 되돌아본 좌측 마분봉)

(전망지대에서 바라본 좌측 백두대간 합류 봉우리)

(은티계곡)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능선길)

 

 

백두대간과 만나다, 824봉

 

백두대간과 만나는 지점(13:22/14:09)은 봉우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짙은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는 교통의 중심점답게 많은 등산객들이 점심을 즐기고 있다. 벌써 산행시작 4시간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지만 지도상에서 파악되는 거리는 걸어온 거리보다 아직도 길다. 다행이라면 이제부터는 비교적 편해진다는 사실이다.

 

늦은 점심을 빠르게 해결한다고 노력하여도 여전히 50분이 소요된다. 먹는 즐거움이 단순하게 허기를 채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도 산행의 일부분으로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대간길은 약50m 정도 살짝 맛만 보여주는 것을 끝으로 남서쪽으로 크게 방향을 전환(14:11)한다. 그리운 연인과의 짧은 만남 후 헤어지는 기분이다.

(봉우리안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백두대간 합류점)


 

입석(立石)

 

입석으로 가는 길은 여태까지의 길에 비해서는 너무나 편안한 길이다. 완만한 내리막을 지나 잠시 오르면 악휘봉의 상징인 입석(14:17)이 나타난다. 입석은 높이 4m 정도의 선돌. 절벽끝에 얹힌 듯 솟아있어 마치 허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다. 소나무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북동쪽으로 마분봉이 뒷배경을 이룬다.

(편안한 능선길)

(입석)


 

악휘봉(845봉)

 

악휘봉은 지척. 악휘봉(14:23)은 상당히 너른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암봉이다. 악휘봉은 UFO바위 일대, 793봉(악휘봉 다음 봉우리)과 더불어 이번 산행 최고의 전망지대이다.

사방으로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들이 파도를 치고 있다. 동쪽으로는 시루봉과 하얀 바위사면이 빛나는 칠보산, 남쪽으로는 막장봉에서 장성봉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하늘금을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조령산, 주흘산, 가까이로는 마분봉 등이 바라보이는 천혜의 전망대이다.

악휘봉(樂徽峰)의 이름처럼 아름다움을 즐기는 풍류가 엿보이는 봉우리이다.

(악휘봉)

(마분봉에서 바라보는 남쪽 풍경, 뒤의 능선이 막장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악휘봉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풍경, 중앙 앞이 822봉, 중간의 칠보산과 맨 뒤로 군자산이 보인다)


 

793봉

 

악휘봉을 10분 정도 내려가면 793봉이 정면(14:33)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뒷봉우리인 822봉과 중첩된 상태로 보여 능선상의 바위지대로 생각되지만 안부로 확실히 분리된 봉우리이다. 793봉 역시 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바위덩어리.

(악휘봉에서 10분 정도 내려간 지점에서 바라보는 중앙의 793봉, 그 뒤 우측은 822봉이다)

 

급경사를 내려간 후 이번 산행의 가장 재미있는 구간이 시작된다. 먼저 두 줄의 밧줄이 걸려있는 높이 약5m 정도의 바위를 올라가면 슬랩이 나타나고 다시 슬랩을 약간 옆으로 가로지르며 올라가는 슬랩이 연이어진다. 보는 것보다는 크게 위험하지는 않아도 겨울철에는 상당히 위험한 구간이 될 수도 있다. .

뒤를 돌아서 내려온 길을 보면 거의 직벽에 가깝게 보이는 아주 험난한 구간이다.

(793봉의 암벽, 좌측 슬랩으로 오른다)

(793봉 올라가는 초입, 두줄의 밧줄이 걸려있다)

(밧줄구간)

(이어지는 슬랩)

(슬랩을 가로지르는 구간)

 

793봉 정상(14:46/14:50)은 노송과 고사목들이 어우러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100여명이 있어도 넉넉한 너럭바위지대. 이런 멋진 봉우리를 놔두고 서둘러 가야하는 마음이 아깝다는 생각이다.

(793봉 정상)

(793봉에서 바라보는 822봉)


 

샘골고개

 

793봉을 내려가는 길 역시 험난한 암릉구간의 연속. 안부(14:57)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안부(→입석리60분, ↓악휘봉30분, ↑덕가산60분, 칠보산)는 샘골고개로 불리는 고개로 입석리에서 악휘봉 산행을 시작할 경우 입석고개로 올라와 샘골고개에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샘골고개의 위치가 몇 개의 개념도를 보면 시루봉과 822봉 사이로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잘못된 것으로 793봉과 822봉 사이의 안부가 샘골고개이다.  

(793봉을 내려가는 길)

(샘골고개 이정표)


 

822봉

 

샘골고개를 지나서 시루봉으로 가는 길은 가장 지루한 구간이다. 822봉은 793봉에서 바라볼 때는 대단한 바위사면을 갖고 있는 봉우리라 느끼지만 올라갈 때는 특별히 즐거운 구간은 없다. 오히려 지나온 793봉과 악휘봉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사면을 눈으로 즐기며 지루함을 달래는 맛이 더 좋다. 822봉(15:16)도 전망은 전혀 없다. 

(822봉으로 올라가며 되돌아본 793봉)

(822봉 올라가며 바라보는 맨 뒤 좌측의 대야산)

(822봉 올라가기 직전에 바라본 좌측 악휘봉과 중앙의 793봉)


 

시루봉(866봉)

 

822봉에서 시루봉까지는 산세의 흐름이 마분봉, 악휘봉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조망은 사라지고 짙은 숲속을 걷는 길, 바위는 거의 찿아 볼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의 흐름이다. 생각보다 긴 40분 정도가 흘러 불쑥 이정표(→덕가산30분, ↑칠보산50분, ↓악휘봉60분)가 나타난다.

이 이정표가 있는 곳이 시루봉(15:54). 울창한 수풀 사이의 그냥 길 중간이다. 표지석은 물론 봉우리란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 곳이다. 시루봉에서 덕가산과 칠보산 능선길이 갈라진다.

 

평범한 시루봉을 지나며 산행코스의 가치를 다시 한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산행이 마분봉에서 악휘봉을 거쳐 칠보산으로 계획을 하였지만 산세의 형상이나 산행으로서의 가치만을 본다면, 악휘봉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물론 종주 또는 걷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덕가산을 연결하거나, 칠보산을 거쳐 보배산으로 연결도 할 수 있지만 비슷한 느낌의 산들을 모아 산행하는 단독산행지의 효율성을 고려하면, 악휘봉(마분봉)과 칠보산은 완전 별개의 산행지이다.   

(덕가산 갈림길이 있는 시루봉의 이정표, 수풀에 쌓여 봉우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거리안부, 각연사와 살구나무골 갈림길

 

칠보산으로 가는 능선길은 한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안부까지는 거의 200m 정도 고도를 낮추는 듯하다. 이 길 역시 전망이 전혀 없는 길. 중간에 697봉(16:13)을 살짝 오른 다음 계속 내려간다. 

 

사거리안부(↙절말3.6km,↑칠보산0.7km,↓탐방로아님,→탐방로아님)(16:27/16:44)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안내판을 만난다. 마분봉은 제외되어 있지만 악휘봉 이후의 길은 엄연히 속리산 국립공원길이다. 지나온 악휘봉으로 가는 길과 우측 각연사로 내려가는 계곡길 입구에는 밧줄과 함께 「등산로아님」이라는 표시가 있다.

안부에서 칠보산까지는 불과 700m에 불과하지만 칠보산의 가장 재미있는 암릉구간중의 하나이다. 지척에 칠보산을 놔두고 하산하는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시간도 쫓길뿐더러 문수암골을 건널 수 없다니 어쩌랴. 다음을 기약하는 기다림이 또다른 산행의 즐거움이기에.

 

산행의 막바지라는 기분에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다. 아직까지 배낭에서 나오는 시원한 과일. 여기까지 가지고 온 수고가 놀랍다.

(사거리안부)


 

의외로 규모가 큰 청정계곡, 살구나무골

 

살구나무골로 하산하는 길은 아주 편하다. 안부에서부터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길도 비교적 너르고 침목계단등이 잘 설치되어 있다. 안부에서 얼마 내려오지 않아서부터 들리기 시작한 물소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시원하게 들린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20분 정도 내려오면 계곡합수점(119, 09-01, ↓칠보산 1.9km, ↑절말 2.4km, ←탐방로 아님)(17:04). 이제 거의 평탄한 길은 산책로로서 더없이 쾌적하고 호젓한 오솔길이다. 계곡 역시 너르고 수량도 풍부하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폭포(17:10)는 거대한 물줄기를 우렁차게 솟아내고 있고 수정같이 맑은 소와 담은 깊은 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청정함이 그대로 살아있다. 몇 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고, 부지런한 등산객들만이 이 비경을 즐기기 때문이다.

(살구나무골)

(폭포 아래의 소)

(퍈안한 계곡길)

(알탕을 즐긴 폭포지대)

 

계곡합수점에서 900m 가량 내려오면 시묘살이골 갈림길(119, 11-03, ↓칠보산 2.3km, ↖장성봉 4.7km, →절말마을 1.5km)(17:50)이 나온다. 여기서 시묘살이골은 막장봉으로 가는 계곡길, 이 계곡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청정계곡. 차라리 살구나무골과 시묘살이골이 합쳐져 형성되는 유명한 쌍곡구곡의 유명세 덕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이런 계곡들이 자연미를 간직할 수 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시묘살이골 갈림길)

 

계곡 막바지에 접어들어 쌍곡구곡의 하나인 쌍곡폭포(18:00/18:05)에 잠시 들린다. 잔잔한 폭포의 평온함은 있지만 접근하기 쉬운 하류에 있어 선정된 듯하다. 오히려 상류와 중류에 있는 무명폭이 더욱 생명력이 느껴지고 아름답다.

(쌍곡폭포, 등산로에서 약50m 내려간 지점에 있다)

 

쌍곡휴게소로 내려가는 길은 안부에서 약3.6km. 중간에 20여분 폭포 아래에서 족탕과 알탕(17:22/17:45)을 즐기고 1시간40분 정도 걸린다.  

산책로의 끝은 쌍곡휴게소(대형주차장)(18:18). 연이어 암봉이 병풍처럼 늘어선 칠보산의 구봉능선이 손짓을 하고 있다.

(쌍곡휴게소)

(주차장에서 보이는 칠보산 구봉능선)


 

산행을 마치며

 

긴 산행을 마치고 뿌듯함과 동시에 아쉬움이 더욱 남는 산행.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마분봉과 악휘봉의 아름다운 암릉을 눈과 마음으로 가득 담았지만, 아직도 빈자리가 남아있다.  역시 상상이지만 마분봉, 악휘봉보다 더욱 아름다울지도 모르는 칠보산을 눈앞에 두고 떠나려는 아쉬운 마음에 몸은 버스를 타고 떠나지만, 마음은 칠보산에 한참이나 붙들려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살구나무골의 비경은 참으로 대단하다. 규모가 상상한 것 이상임은 물론, 바위와 계곡 주변의 환경이 상당히 깨끗하고 쉬어가기 좋은 계곡이다. 자연미가 살아있는 계곡은 사실 접근하여 즐기기에 불편한 점이 많은 반면, 접근성과 자연미가 잘 조화된 살구나무골의 재발견은 이번 산행의 잊지 못할 최고의 추억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