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리산 종주기

 

6월16일이 노동조합창립일이라고 휴무일이다.

몇 일전부터 지리산 종주이야기가 나오더니 그동안 산에 자주 갔던 산악회원들도 선 듯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꼭 해보고 싶던 지리산 종주이기에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

이미 산악회원의 여러명(5명)이 세석산장을 예약한 상태였다.

 

용산역에서 21:45에 출발하는 진주행 무궁화호에 올라 영등포역에서 전부장, 임국장님과 합류하였다.

내일 새벽 일찍 산행을 해야 했기에 잠을 청했지만 뒷 좌석 50대 부부의 잡담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60~70년대 열차 안에서 맛있게 먹었던 옛추억이 떠올라 아내에게 몇 개의 계란을 삶아 달라고 하여 꺼낸 삶은 계란의 맛이 일품이었다.

새벽 2시 17분 구례구역에 도착하니 몇 대의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등산복차림의 우리를 보고 성삼재로 가자고 배낭을 받아 들고 앞장섰다.

가격은 이미 정해진 듯 흥정도 하지 않고 3만원을 불렀다.

상당히 험하고 가파른 길을 매일 다니는 길이라고 하지만 한밤중에 난폭운전은 꼭 잡은 손잡이에 땀이 나게 했다.

성삼재 주차장에 들어서니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하현달이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이른 시간 이라서 입장료도 내지 않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비교적 완만한 경사에 차로 오를 수 있는 넓은 도로로 올라 땀이 나려는 즈음에 노고단산장에 다다랐다.

얼룩하고 그늘진 곳의 어두움은 지하철에서 구매한 1천원 짜리 렌턴이 천원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노고단산장에서 짐을 풀고 라면과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어두움 속에서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모르게 서둘러 해결하고 대 장정의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었다.

 

비교적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동이 트는 것을 느끼면서 능선에서의 탁 트인 시원한 조망을 보며 카메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솔직이 체력에 자신이 없고 준비 되지 않은 등반이라서 그렇게도 좋아하는 사진을 포기하고 종주 성공이 더 큰 목적 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접기로 했었다.

삼도봉에서의 조망은 뒤로 노고단, 앞으로는 멀리 천왕봉까지 능선, 남으로는 불무장 등이 시원하게 보였다.

화개재로 내려서기 바로 직전 나무계단을 15분 정도 길게 내려가야 했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은 1시간가량 계속 고도를 높여 가며 길게 오르는 오르막으로 비교적 힘이 드는 코스였다.

준비해간 간식으로 쵸코파이와 영양갱, 현지 조달한 생수로 흐르는 땀에 영양소를 보충했다.

 

연하천에 도착하니 개인이 운영하는 산장이라서 인지 취사장이 따로 없었다.

물이 풍부하고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있어 간식 겸 중식으로 라면을 끓였다.

쌀과 반찬이 배낭에 가득했던 임국장님과 전부장님은 배낭이 줄지 않는 다고 불평이다.

그러나 라면 한 젖가락을 먹으니 바로 밑의 자연발화식 화장실에서 나를 불렀다.

더 이상 먹지 않을 터이니 다 드시라고 하고 갔다오니 라면 4개를 두 분이서 해치우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10시10분 연하천을 출발하여 벽소령을 목표로 종주가 계속되었다.

종주로 주변에 더덕냄새가 진동하고 치나물이 널려있음에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고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며 지루하고 힘들게 돌과 작은 바위조각으로 길을 포장 한 듯, 징검다리를 건너 듯 벽소령을 향한 발걸음이 계속 되었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기며 산행을 할 여유가 없었다. 

조금전에 보았기에 곧 도착하리라 생각되던 벽소령산장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모습을 나타내며 드디어 벽소령에 도착했다.

 

능선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정겹게 아름다운 산장의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우선은 휴식이 먼저라고 생각하여 긴 의자에 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눈을 붙였다.

그러나 달콤한 휴식은 20분에 지나지 않았다.

임국장님의 출발 5분전!

군에서 행군하면서 출발 1분전 하는 구령이 제일 싫었던 기억이 절로 났다.

등산화를 끈을 동여 매는 것으로 새로운 종주의 대 장정이 시작 되었다.

 

넓고 비교적 상태가 좋은 비포장 도로와 같은 능선으로 1시간 가량 지나니 선비샘에 이르렀다.

물통에 식수를 보충하고 지루하고 힘든 코스의 능선으로 조망도 없는 주변에 숲길이 계속 되었다.

아침은 그래도 정상적으로 해결하였으나 새참겸 라면을 건너 뛴 연하천의 식사가 불 만족 되었는지 몸의 에너지는 2% 뿐 아니라 약 5~6%의 부족을 갈구하며 식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는 두 명의 동행자는 목표지점인 세석산장까지 나를 몰아치고 있었다.

가면 갈수록 종주의 시간과 휴식 시간의 간격이 짧아 지고 있을 즈음 급기야는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 오면서 세석산장이 눈앞에 들어온다.

곳곳에 핀 철죽이 철을 모르는 듯 피어 있지만 1,500m의 고지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가끔은 힘든 등산객들로 하여금 사랑 받는 모습을 보고 제철의 꽃 보다 낫다고 생각 되기도 했다.

 

기대했던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아직도 해는 중천이고 2차 목표인 장터목산장으로 가느냐 여기 머물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차에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동행하던 30대 건장한 등산객으로부터 답을 얻었다.

장터목에 전화로 확인 했는데 이미 자리가 차서 오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세석에 머물기를 주장하던 임국장님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이곳에서 김치찌개와 저녁, 그리고 기대하던 소주한잔이 지루한 종주보다 더 나았던 모양이다.

6월중순의 여름날씨임에도 산장 바람은 가져온 잠바를 꺼내 입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다.

고지에서의 저녁밥은 그렇게 힘든 종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산장아래 30m아래의 샘터까지 내려가야 물을 구할 수 있었다.

한 발짝이 두려운 싯점의 물 깃는 일을 선배 두 분께 맡긴 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한 밥이라서 아침보다 훨씬 고소하고 맛있게 되었다.

뜨거운 김치찌개국물과 소주로 기나긴 하루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술을 못하는 내가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가히 짐작이 갔다.

그래도 위로의 말로 종주를 끝내고 내려가 시원한 사이다라도 한잔하자고 하는 두 분의 말씀이 고마웠다.

 

6시가 되어 산장 예약확인 후 자리를 잡았다.

초저녁인 7시 무렵 잠자리에 들었다.

군대 침상처럼 된 산장에 제일먼저 자리에 누웠지만 소등시간인 9시가 되도록 주변의 잡담과 소음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리는 천근 만근이 되어 있었고 군대에서 배운 행군요령(다리행군, 허리행군, 발목행군, 무릎행군 등)에도 불구하고 온 몸의 전신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피곤하여 골아 떨어질 만도 한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코를 골며 단잠을 이루고 있는 두 분이 부럽게 느껴졌다.

기온은 차가운데 담요를 덮고 있을 수가 없었다.

뒤척이며 시간을 보니 새벽3시.

무거운 발을 이끌고 내려오니 벌써 밥해먹고 출발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샘터에서 세수를 하고 임국장님의 어깨를 주무르며 깨워 아침을 먹었다.

또다시 라면과 밥이었다.

먹으면 화장실로 직행 할 것 같기에 안 먹겠다고 하고는 배낭을 챙겼다.

취사장으로 돌아오니 흰죽을 한 그릇 준비해 놓았는데 그 정성에 감동과 함께 감사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냥은 도저히 출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어느덧 주변은 환하게 밝았다.

 

새벽 5시에 세석산장을 출발하니 벌써 동이 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촛대봉에 오르니 천왕봉 옆으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었다.

비롯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아니었지만 천왕봉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음에 만족해야 했다.

두 분은 폰카라도 있으니 촬영을 할 수 있지만 나는 카메라가 없어 눈으로 만 감상할 수 밖에 없었다.

촛대봉의 일출을 감상하며 마냥 즐길 수 만은 없는 사정이기에 또다시 장터목산장을 향하여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지루한지 모르고 지리산의 전경을 감상하면서 능선을 따라 종주를 계속하는데 고냉지의 온도차이와 고도 차이로 귀가 뚫렸다가 막혔다가를 반복하는 사이 6시35분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생수를 채워야 하는데 또다시 두 분께 물병을 맡기고 쉬었다가 7시에 출발했다.

 

이제 고지가 눈 앞에 다가 왔다.

1시간이면 천왕봉에 이를 수 있다.

갑자기 히말라야를 정복하는 산악인들이 생각 났다.

고지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변의 고사목들이 눈에는 아름답고 좋아 보이지만 나름대로는 아픔을 지니고 있었다.

50년전에 벌목군들이 자신들의 벌목을 감추기 위해 불을 놓았다고 한다.

뿌리마저 죽었지만 그래도 그 모습 자체로는 아름다운 고사목이 되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때로는 아픔을 같이하면서 자연의 절정을 고이 간직하자고 외치는 듯 했다.

제석봉의 아픔을 뒤로하고 통천문을 지나 가파른 급경사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제일 높은 1,915m의 지리산 정상.

천하만물이 내 손아래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종주를 시작한 노고단을 보면서 활처럼 굽은 지리산의 25.5Km의 주능선 코스를 과연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20여개의 봉우리를 지나 이곳에 이르렀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이 순간 나는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무사히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안보하여 주심에 감사하고 우리 가정과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오늘 종주을 마지막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그리고 함께 하는 임국장님 전부장님도 지켜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멀리 산아래 우리가 내려갈 중산리가 한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러나 예정시간이 3~4시간이 걸린다는 안내를 보고 만만치 않으리라고 다짐해 본다.

그래도 올라가는 것 보다는 내려가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30분 가량 정상에서의 시간을 갖고 하산을 시작했다.

지나온 종주 코스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여 지루함도 달래고 힘든 것도 잊었지만 중산리 방향의 내리막은 정말 지루 했다.

지리산 종주의 3분의 2 이상이 돌로 되어있어 힘든 면이 많았지만 중산리 코스의 내리막은 90%가 돌길 이었고 더군다나 순전히 95% 내리막으로만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장담하던 내리막의 자신감이 무릎 통증으로 꼬리를 감추고 결국은 임국장님의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말았다.

지리산 천왕봉의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 중에 제일 가까운 코스여서 인지 오르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특히 기업체의 극기훈련코스로, 학생들의 당일코스로 우리가 내려오는 날이 토요일이라서 인지 붐빌 정도로 많았다.

 

지겹다 할 만큼의 내리막 코스가 계속 될 즈음에 법계사(로타리산장) 사찰이 나오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내려가면서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이 길을 오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이 들고 지루할까?

가끔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등반객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는데는 차마 바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거의 다 내려 왔다 생각했을 즈음에 계곡의 물소리가 난다.

너무 기뻤다.

끝이 보인다는 생각으로 기쁘고 족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러나 지리산의 끝은 그렇게 쉽게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작은 계곡 이지만 족탕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옷을 갈아 입으면서 더 이상 땀을 흘리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바람을 가졌지만 결국 족탕 후에도 매표소까지는 1시간 정도 더 내려와서야 아스팔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버스종점까지는 1Km를 더 내려가야 한단다.

1Km가 3~4Km는 되는 것 같았다.

버스종점에서 점심과 함께 나는 사이다로 두 분은 소주로 지리산 종주 성공을 자축했다.

드디어 산행 길 20시간의 지리산 종주가 막을 내렸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면서 잠 자는 일만 남았다.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면서 나중에 가족들과 같이 종주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나 끝나고 난 지금은 종주는 좀 무리인 듯하여 지리산에 하루, 이틀 오르는 것으로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리산 종주를 통하여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과 싸워 이겼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가지며 우리나라 산의 종주코스 중 가장 긴 코스를 정복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중산리까지 약 50Km에 이르는 코스를 1박 3일에 성공하게 된 것은 임국장님과 전부장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평소에 북한산만 갔다와도 후둘거리는 체력임에도 오히려 체력의 안배를 통하여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 지리산 종주 일정

 

21:45 용산역 출발(임국장, 전부장 – 영등포역 출발)

02:17 구례구역 도착 택시로 이동

02:50 성삼재 도착

03:30 노고단산장 도착, 아침식사(라면+밥)

04:30 노고단 출발  

06:35 노루목

08:10 토끼봉

09:25 연하천산장 도착 (점심? 라면)

10:10 연하천산장 출발

12:00 벽소령산장 도착

12:20 벽소령산장 출발

13:15 선비샘

16:00 세석산장 도착 (저녁? 김치찌개와 밥)

19:00 세석산장 취침 1박   

 

04:00 세석산장 기상 아침(라면+밥)

05:00 세석산장 출발

05:30 촛대봉 일출

06:35 장터목 도착

07:00 장터목 출발

08:00 천왕봉 정상 등정

08:30 천왕봉 출발(하산)

10:00 로타리산장(법계사)

12:00 중산리매표소 도착

12:20 중산리 버스터미널 도착

12:30 중산리 점심(산채비빕밥)

13:05 중산리-원지 버스출발

13:50 원지 도착

14:20 원지출발-서울남부터미널

17:35 서울 도착

 

 

3. 소요비용(교통, 숙박비 등)

 

①용산→구례구(무궁화호 20,400원)

②구례구역→성삼재(택시30,000원)

③입장료(무료-새벽이라서)

④산장이용료(세석산장 숙박+담요2장 9,000원)

⑤식사(중산리 점심 6,000원)

⑥중산리→원지(2,700원)

⑦원지→서울남부터미널(16,700원)

⑧기타(음료 1,000원)

⑨각 개인 10,000~20,000원(육포, 포장김치, 쵸코파이, 고산용가스, 쵸코렛, 라면, 쌀, 밑반찬, 껌, 영양갱, 돼지고기 구운김, 커피믹스, 조미료, 종이컵, 비상약, 수저 등)

⑩손전등, 세면도구, 우의, 여벌옷, 버너, 코펠 배낭, 모자, 스틱, 장갑, 등산지도 등

1인당 소요경비 : 약 80,000 ~ 9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