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목재에서 음절마을까지  -6구간-


날짜 : 6월 3일

날씨 : 오전엔 흐림 오후엔 맑음

동행 : 직장 형님과

시간 : 6시간 20여분

거리 : 14.8Km


오늘 가는 산행은 동행이 있다.

직장 등산 동호회 형님이 동행을 해주신다, 기분 좋은 일이다.

이번 정맥길은 비교적 오르내림이 적고 완만하여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또한, 내가 태어나 20여년을 적을 두고 살아온, 아직도 늙으신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 지근거리니, 주변 산세와 도로사정 등이 걱정을 덜게 하는 것이 이유이다.


대전 도마동에서 벌곡 중학교 앞이 종점인 21번 마을버스를 타고 벌곡면 소재지인 한삼천리를 지나 사정리가기전,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옆으로 난 터널 앞에서 버스를 내려 터벅터벅 양촌방향으로 68번 지방도로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오늘도 여유 있는 길이라서, 느긋느긋, 지난번 내려서서 통과한 호남고속도로 수로 통로를 지나고  곧 뒷목마을 진입로에 닿고 능선을 올라타니 덕목재에 닿으면서 정맥길이 시작 된다.

09시 13분.

한동안 마을 뒷산 같은 오르막을 부드러운 숨 고르기로 가고, 역시 작은 묘가 정맥길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깃대봉 닿기전 8부 능선 정도에 돌무더기가 나온다.    

“이산 돌이 아닌데” 형님이 말씀 하신다.

그러내! 

주위에서 모은 돌이 아니다, 돌 무더기의 돌들은 주위의 돌과 틀린 돌들로 성처럼 쌓여 있다 무너진 것 같다.

깃대봉 올라서서 생각하니 그 자리에는 반듯이 무엇이(성이나 참호처럼) 있을 만한 자리이다, 그것이 돌로 만든 것이든 흙으로 만든 것이든...........요새로서는 더 이상 좋은 자리는 없을 것 같다.

돌무더기를 지나고 이어서 깃대봉 정상이다.

09시 51분.

측량용 깃대와 삼각점이 있고 깃대봉이란 글씨가 적힌 함석판이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잡목으로 북서쪽만 조망이 트이고(그것도 날씨가 흐려 조망이 좋지 않다) 내가 보고 싶어 한 남서쪽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논산 저수지와 연산 일대가 조망 될 뿐........

사진 몇 장과 물을 마시며 10여분간 휴식을 취한다.

깃대봉을 지나서 몇 개의 작은 봉오리를 내리고 올라서고를 반복하고 덕목리에서 올라온 임도 개설 작업이 요란한 중장비와 함께 마루금까지 누런 황토를 내 비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곳까지 임도를 내야 할까라는 의문점 들고, 한숨만 나온다.

고압선 철탑을 지나고 급경사를 오르고 봉오리을 넘으니 곧 이어 함박봉이다(404m).

10시 40분.

하늘색의 산불 감시 초소가 자리하고 있고 참나무가 한그루 정상을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논산시의 동부지역이 시야에 거의 다 들어온다면 과장일까?

굉장한 조망이 작은 높이에서 나온다는 것은 주변이 낮은 평야 지대여서 그런가 보다.

왼쪽(서쪽)으로 양촌면이 낮은 산들로 보이고 논산저수지 좌측으로 가야곡과 저수지 넘어 논산 시내가, 그리고 부적면이, 연산면과 오른쪽(북쪽)으로는 상월면과 향적산과 계룡산이, 이 함박봉 뒤로는 벌곡면이다.


황산벌, 위 중앙은 논산저수지, 옛날에는 그곳이 냇가였을것이다, 오른쪽 맨위 산에는 계백장군묘가 있다, 함박봉근처는 유난이 황토색이 짙다.

 

황산벌!

이곳에서는 황산벌이 내 손바닥 보듯이 바로 내 발밑에 펼쳐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황산벌이 연산을 지나서 논산시내와의 경계인 마구평 일원, 부적면일대가 황산벌이라 생각하지만, 아니다.

함박봉밑 연산면 신양리, 신암리등등(옛이름도 황산리다) 그 주변일원이 옛적 백제군 5천결사대와 신라군 5만대군이 접전을 했던 주 무대이다.

끝내는 김유신의 고육책에 백제군이 패했지만 지금도 주변에는 많은 전설이 남아 있다.

벌곡면의 벌곡은(伐谷)계곡을 친다라는 뜻이 있고, 벌곡면 사무소가 있는 한삼천(汗三川里)리는 세골짜기의 물이 피와 땀으로 흘렀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 황산벌이 전장의 주 무대가 된 이유는 지형적 여건이 신라에서 백제의 수도 사비(부여)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거니와 황산벌 주위에 산성이 요새화 되어 있기도 했다고 한다.

황산성, 황령산성, 산직리 산성, 신흥리 산성, 외성리 산성, 청동리 산성, 웅치 산성등등 많은 산성이 황산벌을 서북으로 길게 이어져 수도 사비의  겉 울타리 역할을 했을 것이다.

웅치 산성은 지난번 구간(베티재에서 덕목재까지,5구간)에서 물한이재 지나서 많은 돌무더기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었다.(논산시 벌곡면 검천리와 양촌면의 경계지점에 성이 있음)

황령 산성은 함박봉을 지나 연산 벌곡간의 활룡재상에서 벌곡쪽으로 있으며, 신흥리 산성은 깃대봉정상에서 양촌쪽으로 근거리에 있다)

한때는 행글라이더 활공장으로 이용 됐던 함박봉 정상에는 행글라이더 하다 사고로 숨진이의 추모석판도 한 장 있다.

정상 한쪽 그늘에 않아 얼린 맥주와 오이를 하나씩 먹는다, 1340여년전 그 뜨거운 7월 10일의 아프고도 슬픈, 백제의 병사들과 계백 장군과 어린 관창과 반굴을 생각하면서..........(김유신의 동생인 부사령관 김흠순의 아들이 반굴, 역시 부사령관 품석의 아들이 관창임)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황룡재를 향해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나무계단을 설치하면서 박은 쇠못이 조심 하지 않으면 등산화나 바지 자락에 걸릴 정도로 길게 튀어나와 있다.

그렇게 내림막이 이어지고 내림길 오른쪽으로 공동묘지처럼 많은 묘지가 작은 비석만 한 개씩 차지하고 있다.

뽕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바로 이어서 삼천리 교육원이란 꽤 큰 건물이 나오고 아마 기독교 단체에서 만든 건물인 것 같다.

삼천리 교육원 못 미쳐서 있던 묘지들은 교회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형님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교육원 건물로 들어서 식수를 찿아 이리저리 헤 메이니 식당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나와서는 어떻게 왔냐고 물으신다.

식당 한쪽에서 시원한 정수기물로 물병을 채우고 교육원 건물 왼쪽으로 빠져 나온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바로 639번 지방도로 상의 황룡재가 나오고 왼쪽으로 커다란 황산벌 안내도가 나타난다.

도로를 따라 벌곡 쪽으로 10여m 진행하면 좌측으로 천호산 등산로 간판이 보이고 그 간판 옆으로 들어선다.

소나무가 울창한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서고 개태사등산로 팻말이 있는 봉오리에 닿았다.

여기서 남쪽으로 바로 작은 산이 보이는데 그 산이 황령산성이 있는 곳이다.

 
 금남 정맥 논산시 구간(대둔산에서 계룡시구간)은 정비가 잘되어 있어 산책로 같은 느낌이 든다

 

산책로 같은(전반적으로 논산시의 금남정맥 구간은 정비가 잘 되어 있음)능선길을 따라 가고, 대목재을  지나서 개태사 벌곡 사격장 팻말이 있는 안부 사거리를 지나고, 다시 능선길을 가고 370m봉에서 형님이 가져온 간식을 먹는다.

12시 05분.

오늘은 소풍 온 기분이 들 정도로, 여유와 기분이 드는 것은 동행이 있기 때문이랴.

오르내림이 적은 뚜렷한 능선길을 별반 힘들이지 않고 간다.

왕이 내린 이름, 천호산에 닿는다.

정상비나 정상석은 없고 천호산이라 적은 작은 철판이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왕건이 후백제 견원의 아들 신검한테서 항복을 받은 장소가 이곳 천호산밑 개태사 자리이다.

그때는 누렇게 황토가 많아서인지 황산이라 불리어져질 뿐인 이산을 왕건은 하늘이 도와 통일을 했다고 천호산이라고 바꾸고 개태사를 세우니 호국 사찰인 개태사의 크기는 엄청 났다 한다,  얼마전 공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개태사지 정밀 지표조사 최종 보고회” 에 따르면 개태사지는 불전지와 진전지(眞殿址.태조의 영정을 모셨던 자리)로 구분 조성돼 당시의 유물(축대, 건축부재, 석재, 와당 등)이 많이 남아 있어 그 중요성이 부각됐다. 또한 전언으로만 알려진 개태사 주변의 토성이 북단으로 약 1㎞, 동쪽으로는 500m, 남쪽으로 400m(서쪽은 인지되지 않음)에 걸쳐 토루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음이 확인돼 개태사의 당시 사역 범위를 짐작케 하고 있다.

개태사 뒷산인 천호산 동남쪽 골짜기 입구인 지금의 계룡 IC가 자리 잡은 동네 이름이 왕대리(往代里)이다.

이 마을근처에는 은동이라는(숨은 동네) 마을이름도있어 후백제군과 고려군과의 관계가 의문이 남는다.

이 왕대리는 연산 백중놀이라는 민속놀이의 원조로서 원래는 왕대 백중놀이라 불리어야 한다(연산백중놀이는 왕대 백중놀이를 광산 김씨들이 놀이를 연산으로 가져 가 재현 한것임).

 

점심을 달게 먹는다.

달디 단 점심과 휴식으로 체력과 기분이 살아나고 길을 나선다.

난도질당하는 정맥의 모습을 또 본다.

정맥 한 가운데 능선을  2000평정도 50년 이상 넘은 소나무 숲을 다 베어 버렸다.

어린 나무를 심은 것을 보아 아마 묘지를 조성하려나 보다, 수종 갱신 한다 신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묘지를 만들겠지..........동행한 형님한테 말씀 하니 묘 자리로서는 정말 좋다라고 하신다.

정맥 가까이 올라온 논에는 묘가 이제 땅냄새를 맞았나 보다, 제법 생기가 돈다.

허름한 조립식 건물 옆으로 폐타이어가 무더기로 쌓여 있고 그 옆길로 정맥은 이어진다.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니 도면상 두리봉이다.

그냥 지나치고 얼마를 더 가니 천마산 정상이다.

돌탑이 쌓여 있고 금남정맥이란 해설이 잘 적혀 있는 안내판이 있고 조금 더 진행하니 고압선 철탑이 나오며 팔각정이 이어서 등장 한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계룡신시가지의 모습이 발아래 펼쳐진다.

앞으로 가야할 계룡산과 왼쪽으로 향적산 등이 잘 보인다.

팔각정옆에 있는 금바위에 대한 전설이 자세히 적혀 있고 많은 시간을 동네 분들과 이야기로 보낸다.


 팔각정,     사진 중앙 왼쪽으로 계룡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팔각정앞에 금바위가 있고, 팔각정 오른쪽으로 계룡 신도시가 있다   
 

팔각정을 지나면 계룡시에서 만들어 놓은 체육시설이 정맥길 한가운데로 여기저기 벤치와 함께 놓여 있어 계룡시민들이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편안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서면 논산 경찰서 두마지서 가 바로 옆으로 나오고 발 닿는 도로가 1번 국도다.

예전엔 고개길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낮아 진 양정고개다.

이고개길이 세번 짤리면 왕조가 바꿘다고 결록에는 나와 있단다.

그런데 지금은 두번에 걸쳐 짤린 상태다, 1번 국도와 호남선 철도가.............

도로 왼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농협 건물 쪽 길을 따라 가다가 굴다리를 건넌다.

굴다리(호남선 철도)를 건너 아파트 왼쪽길을 따라 가다, 형님은 편의점 앞에서 계시고 혼자서 초등학교 지나 주택지를 지나고 도로를 건너 산 밑에 금남 정맥 간판이 전신주에 붙어 있다.

이 구간 이 지역은 정맥이 택지 개발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15시 32분.

편의점으로 돌아와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씩 하고 좌석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