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도장골과 세석평전의 봄빛

                                                    

 

                                                  < 지리산 도장골 >

 

 

ㅡ 지리산 도장골 ㅡ 
 

꼭지(아내)와 거림에서 세석고원을 다녀왔습니다.

지리산은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오늘 만난 풍경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철쭉이 듬성듬성 흐드러지게 핀 세석고원은 한 폭의 그림 같았고

아기자기한 암반과 여러소폭들이 빚어내는 도장골의 비경을 바라볼 때는

시간도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새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진 자연의 순결함속에 취하다보니

일상의 모든 잡념들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름다움은 우리들 마음이 바라보는 그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아름다운 눈으로 볼 때에야 아름답게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얻었습니다. 
 

지리산을 가꾸어가는 삐뚤어진 돌부리 하나

계류 한 복판에서 취한 듯 피어있는 철쭉의 애틋함에도

가는 길을 열어주는 산죽의 차분함에도 아름다움은 같이 있었습니다.

약간 비켜선 오후햇살에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거림골의 풍경들도 좋았고

그 연녹의 향연에 가슴이 아련히 녹아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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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지리산 (거림-도장골-시루봉-촛대봉-세석-거림)

일   시 : 2006. 5. 21(일) 맑음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166km / 2시간 30분(서대구-단성I.C-거림)


 

06:00 길상암 -산행시작-

06:25 밀금폭포?

06:40 빨치산 이영회부대아지트

06:50-07:00 널찍한 암반(좌측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계류를 건넘)

07:35 윗용소?

08:30 봉분이 없는 널따란 묘지

08:40 와룡폭포

08:50-09:10 촛대봉골과 연하봉골 합수점

09:35-09:40 촛대봉에서 갈라져온 두 계류 합수점(계류를 버리고 좌측사면으로 오름)

10:10 희미하던 길이 정상적인 산죽 길로 변함

10:20 작은 암봉

10:50 촛대봉 주 능선의 암봉

11:15-11:30 시루봉

11:50-11:55 청학연못 위 암능

12:00 청학연못

12:40 촛대봉

13:00-14:00 세석대피소

17:00 거림 매표소 -산행끝- 
 

총 산행시간 : 약 13.5km  (휴식 2시간 포함 11시간)

 

 

                                                                   ▲도장골에서 촛대봉 산행경로

 


 

지리산 도장골 
 

이 코스가 산꾼들 사이에 알려진 것은 80년대 중반부터라고 한다.

내대 거림마을 사람들이 나물과 약초를 뜯기 위해 다녔던 길이고

1950년대는 지리산 빨치산이 환자후송병원인 환자비트로 이용할 만큼 꽁꽁 숨어 있던 계곡이다.

도장골을 가리켜 “지리산 최다폭포의 한신계곡, 소와 담의 뱀사골, 원시적 경관을 자랑하는

칠선계곡의 특징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비경의 골짜기로 남아 있다. 
 

도장골은 세석고원의 동쪽 촛대봉 남릉 방향으로 흰돌골, 시루봉골(작은 도장골), 촛대봉골 등

큼직한 지류를 세 가닥 뻗고 있다. 이중 촛대봉골로 오르는 길이 비교적 수월하고 뚜렷하다.

작은 도장골 입구를 지나면 와룡폭. 자연의 폭포라기보다는 흡사 누군가 일부러 다듬어 놓은 듯 정교하다.

이 와룡폭 위로 암반을 타고 오르면 도장골 원류와 촛대봉골이 갈라지는 지점에 이른다. 
 

칠선계곡과 달리 계곡에 이정표가 하나도 없는 것이 도장골의 진정한 매력이다.

또 길이 확실치 않은 것 역시 도장골의 아름다움이다. 원시의 계곡이라 다른 코스에 비해

시간이 좀 더 걸린다. 매표소에서 5시간은 잡아야 세석에 도착할 수 있다. 
 

흰돌골, 작은도장골은 숲에 가려 그 입구를 찾기 쉽지 않지만 촛대봉골 갈림 지점은

뚜렷이 알아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암반과 여러개의 소폭들이 계속 비경을 연출한다.

촛대봉골과 연하봉골 갈림 길에서 30분쯤 지나면 촛대봉에서 내려오는 두 골의 합수점을 만나는데

이곳에서 좌측으로 촛대봉 남릉을 가늠해 희미한 길을 치고 올라야한다. 
 

계곡에서 40여분 치고 오르면 유순한 산죽길이고 10분후 가파른 암사면을 올라

20여분 진행하면 또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데 이곳이 촛대봉 주능선이다.

이 암봉 우측으로 오르면 시야가 트이고 드디어 멀리 시루봉과 촛대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일단 능선에 올라선 뒤 곧장 암릉을 타고 진행하면 시루봉정상이다.

남쪽으로는 일출봉능선과 그 너머 황금능선 멀리 희미하지만 동부능선이 첩첩이

파도처럼 시야에 들어오는데 그 또한 장관이다. 
 

지리산에 아직 이런 코스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복이다.

하지만 도장골 길은 제대로 짚어가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으므로 충분히 공부(?)를 하고

독도법, 체력 등에 자신이 선후에나 시도할 수 있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 이수영님, 최병욱님, 박중영님 산행정보참조 -


 

 

산행에 앞서 
 

사실 도장골은 곰이 살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산행 중 실제도 봤다는 분도 있다.

그렇다면 방사한 곰이 도장골에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흐미~~

지난번 이수영님 산행기에서도 곰의 것과 비슷한 발자국이 선명히 눈속에 찍혀 있었다. 
 

2004년 여름과 2005년 겨울에는 등산객이 조난사고로 사망한 곳이 바로 이 도장골이다.

2년전의 여름사고는 법의 규정 때문에 휴대폰위치를 알려주지 않아서 조난자를 일찍 발견하지 못해

사망한 사고며, 겨울에 발생한 조난사고는 봄이 되어서야 시신이 발견되었다 한다. 
 

또한 올해 1월 이수영님 부부가 일출봉에서 이곳으로 하산로를 잡았다가 죽을 고생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도장골은 꺼림직한 인상만 풍기니 선 듯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빨치산 최후의 여공비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처음 입산한 곳도 바로 이 도장골이다.

한 많은 원혼들이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무언가 자꾸만 끌어당기는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이수영님 산행기를 보고난 후 “언젠가 함 가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철쭉이 절정인 바래봉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룰 테고..

차라리 철쭉은 별로지만 세석평전과 환상적인 연하선경은 지금이 적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맹송하게 반질반질한 길로만 갈 수는 없지

지리가 어느 한 곳 수월하고 편안한 구간이 있었던가? 반문하며

그 사지와도 같은 곳을 꼭지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어디로? 비경의 도장골로 해서 촛대봉으로 그리고 연하선경에 취하며 중산리로..”

거림에서 중산리까지 계획은 거창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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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골의 초입 
 

들머리는 거림마을이다.

매표소아래 주차장에는 이미 자동차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역시 산꾼은 부지런한가보다.

좌측 길은 매표소, 직진하니 바로위에 <길상선사>라는 규모가 제법 큰 사찰이 앞을 막는다.

역시 절간은 고요하다.

행여나 누가 볼 새라 사찰 넓은 터에 자동차를 조용히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도장골 들머리인 길상암


 

06:00 사찰을 끼고 좌측으로 시멘트길을 오르니 도장골하류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그저께 비가와서 그런지 수량이 풍부하여 때를 잘 맞춘 계곡산행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길상선사에서 200m 정도 올랐을까 드디어 <길상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반겨준다. 
 

“도장골초입은 <길상암>안에 있다던데..” 두리번거리며 절안에 들어서니

아니라 다를까 <출입금지>경고 팻말이 보이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았다.

그렇다고 철조망을 타넘을 수도 없고 약간 우측으로 우회하여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안으로 들어서니 바로 숲속이다. 리본이 전혀 없다.

“길은 제대로 찾았구나.” 안심을 하지만 금지구역을 산행하는 죄책감에 얼른 숲속으로 몸을 숨긴다.

옛날 빨치산이 된 기분이다. 그렇다면 꼭지는 여공비?? 
 

길은 생각보다 뚜렷하고 좋아하는 산죽 길로 이어진다.

좌측에서 들려오는 계곡의물소리에 세상사 가져온 모든 상념들도 포말 되어 부서져 내린다.

산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낙엽 깔린 푸근한 산죽 길을 걷는 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여러 가닥의 고로쇠 줄이 등로 따라 이어진다.

이 줄이 지난번 이수영님에게는 생명줄이었다고 생각하니 더 한번 눈길이 간다.

선등자의 족적이 진흙에 찍혀있다.

2-3명정도 되는 것 같다.

비온 후의 족적이니 어제 아니면 오늘, 우리보다 앞서간 산꾼의 것이다.

갑자기 동행자가 생긴 듯 마음이 든든해진다. 

 

 

 

                                                                           ▲도장골의 하류풍경

 

 


                                                 ▲산죽길.. 오늘 와룡폭포까지 계속 이어지는 산죽 친구들이다.

 

 


 

                                                                             ▲밀금폭포?


 

계곡 또한 좌측에서 요란한 소리로 동행을 한다.

그 또한 아름다운 음악이다.

10분여 진행하니 계곡으로 시야가 트이고 도장골의 비경이 펼쳐진다.

꼭지가 탄성을 지른다.

지리산 아흔 아홉골 이 처럼 아름답지 않은 곳 있으랴마는

도장골이기에 더욱 아름다운가 보다.

길은 잠시 계곡을 벗어나 또 숲속의 산죽길로 이어진다.

10분여 진행하니 이젠 멋진 소폭과 담이 그 자태를 뽐낸다. 
 

말로만 듣던 <밀금폭포>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신비경에 꼭지와 둘이서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본다.

밀금폭포를 지나니 길은 또 정감 있는 산죽 길로 이어진다.

물소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길이 계곡에서 약간 벗어나는 느낌이라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그때, 도장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정표를 만난다. 
 


 

빨치산 이영회부대 아지트 
 

06:40 <매표소 0.8km> 이정표와 <이영회부대 아지트> 스텐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예전에 빨치산들의 입구 초소로 이용한 곳이다. 안쪽으로는 100여평의 공터가 있고

아직도 돌로 쌓은 축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때의 아픔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영회는 1951년 5월, 인민유격대가 남부군으로 재편될 때 부사령관을 맡은 인물이다.

이영회가 직접 지휘한 부대는 여순사건 당시에 입산했던 구 빨치산을 주축으로

산청군인민유격대, 진양군인민유격대를 통합하여 재편성한 빨치산부대이다.

지리산의 빨치산투쟁은 1948년 10월 여순사건 관련자들이 산악지대로 들어가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비운의 정순덕이 새색시의 몸으로 남편을 찾아 이 도장골로 입산할 때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참으로 우리의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리산 골짜기마다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은 없다.

이현상이 최후로 사망했다는 빗점골에도, 여순반란사건의 주모자 김지회가 죽었다는 반선에도,

최후의 여자 빨치산 정순덕이 체포된 내원골에도 좌우대립으로 상징되는

우리 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

 

 

 

 

 

                                     ▲빨치산 이영회부대아지트 안내문과, 처음이자 마지막인 이정표(매표소 0.8km)


 

김지회일당을 밀고한 반선 주막의 여주인은 빨치산 잔당들에게 보복당해 머리가 짓이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김지회가 죽은 후 그의 처 조경순은

끝내 전향을 거부한 채 49년 9월 처형됨으로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빨치산의 역사는 아직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지리산에서, 덕유산에서 겨울을 나야 했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전향을 거부한 채 싸워야 했는지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없다.

우리의 슬픈 역사, 도장골은 원혼들의 아픔을 토해내듯 울고 있고

그들이 피와 땀이 흘려진 산죽 밭

그 속에서 무성하게 자란 산죽만이 제 몸속에 사무치도록 배어있는

과거의 아픔을 추억하며 묵묵할 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암반의 계류를 건넌다. 
 

아지트를 지나 찹찹한 심정으로 이제는 키 큰 산죽 길을 걷는다.

양쪽으로는 산죽을 베어내어서 길은 넓고 진행하기는 좋다. 하지만 운치는 덜하다.

10분정도 진행하니 또 계곡이 모습을 보이고 이제는 널따란 암반이 펼쳐져 탄성을 지르게 한다.

잠깐이나마 음울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여름철 퍼질고 앉으면 신선이 따로 없을 정도의 쉬기 좋은 암반, 이곳에서 길은 계류 건너편에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여유를 부리며 땀을 식힌다.

그런데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건너편에?”

리본은 보이지 않지만 길은 계류 건너편에 있었다.

계류를 건넌다.

물이 많아도 큰 돌들이 징검다리역할을 해주어 계류를 건너기는 수월하다. 
 

흔한 표시기하나 없지만 산죽길이 뚜렷하다.

계류의 물소리도 들리고 고로쇠줄도 계속 이어진다.

보송한 보송한 낙엽이 발바닥에 상쾌함을 선사한다.

조금 후 약간의 경사 산죽사면을 치고 오른다. 계곡이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다.

숨이 조금 가빠질 즈음 길은 다시 유순하게 이어지는데 모기 같은 벌레들이 많이 날아든다.

거미줄도 달라붙어 스틱을 세우며 지나간다.


 


 

                                                        ▲철쭉이 군데군데 피어서 도장골을 수놓고 있다.  

 


 

                                          ▲철쭉옆에 퍼질고 앉은 꼭지의 모습을 보니 이세상 다 가진 기분이다..

 

 

 

                                                                                   ▲도장골과 철쭉

 

 

 

                                                       ▲서서이 너덜길이 이어진다. 길 찾기가 조금씩 까다롭다.


 

07:20 반석에서 계류를 건넌지 10분, 길상암에서 2.5km 정도 진행한 것 같다.

아담한 반석과 계류 한복판의 철쭉이 장관이고 조물주가 꾸며놓은 천상의 정원이다.

철쭉옆에 퍼질고 앉은 꼭지의 모습을 보니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07:30 길은 산죽대신 돌들이 삐죽삐죽한 너덜로 이어진다.

약간 까다롭다.

길 찾기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항상 계곡산행 때는 너덜 길을 조심해야 한다.

 

정상 등로를 놓치면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되고 고생만 죽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빛바랜 리본이 보이고 고로쇠줄도 이어진다.

조금씩 경사가 심해지고 방향은 계곡이 아닌 능선쪽으로 붙는 것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우측으로 물소리가 들려 길은 맞는 것 같다. 
 


 

윗용소 구간 
 

07:35 다시 계곡이 나타나고 멋진 소폭과 담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도장골의 윗용소는 칠선계곡의 선녀탕을 닮은 모습이다.

꼭지 왈

“지리산에는 선녀들이 많이 살았겠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고 소폭과 담들의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계곡풍경을 즐기며 20여분 계곡과 등산로를 오가며 지난다.

 


 

 

                                                                                  ▲윗용소?

 

 


 

                                                            ▲윗용소에서 10분여 올라선 계곡풍경

 

 


 

                                                        ▲윗용소에서부터 계속 이러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길은 계곡을 떠나 산죽밭으로 이어진다.

새소리가 요란하다. 능선으로 붙는 것 같은 느낌인데 Y자 갈림길이다.

좌측은 나뭇가지로 막아놓았다.

길이 뚜렷한 우측으로 간다.

이곳부터는 산죽을 베어내지 않아 울창해진다.

경사도가 급한 가파른 길이다. 계곡에서 50m 정도 올랐을까

너무나 경사가 심해 이러다간 능선으로 붙겠다싶어 계곡으로 다시 백 한다.

벌써부터 능선에 붙어버리면 와룡폭포도 보지 못하고 계곡산행은 끝나기 때문이다. 
 

08:00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여기저기 다른 길은 찾아본다.

혹시 계곡 저쪽에 길이 있나싶어 건너가보지만 길은 없다.

할 수 없이 내려왔던 산죽 길로 다시 오른다.

날씨가 덥고 후던지근해 벌레가 더 극성을 부린다.

물소리는 점점 멀어져간다.

길이 계곡과 떨어지고 있다는 징조다.

능선으로 붙는 것 같다. 이제는 계곡을 차라리 포기한다.

촛대봉으로 바로 이어지겠지..

그러기를 20여분 땀깨나 흘린 후에야 
 

08:20 멀리서 약하게나마 물소리가 들린다.

어! 다시 계곡이 가까워지나 보다.

그제야 정적을 깨는 새소리가 감미롭게 다가온다.

산죽이 우거져 아예 머리를 숙여 허리를 굽히고 지나간다.

그에 대한 보답인가 갑자기 하늘이 들리고 조망이 트인다.

봉분이 없는 묘지가 있는 곳인데 넓은 헬기장만하다.

빨치산들의 무덤인가?? 
 


 

와룡폭포 구간 
 

묘지를 내려서니 이제와는 반대로 급경사 하산길이다.

아! 길은 맞구나 직감적으로 느낀다.

내려가면 계곡이 나올 것이다.

5분여 내려서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초행길에 반대쪽에서 온다면 이곳에서 엄청 갈등을 할 것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택하지 않고 계곡을 고집하면 길을 잃고

고생을 할 것 같은 구간이다.

이곳에서 와룡폭포까지는 5분이면 도착한다.

 

 

 

 


                                                                          ▲와룡폭포 상단부

 

 

 

                             ▲와룡폭에서 조금 오르면 멀리 촛대봉이 시야에 들어오는 암반, 바로앞에 합수점이 보인다.


 

08:40 와룡폭포 상단부다.

하지만 그곳을 지난 후에야 그곳이 와룡폭포라는 것을 알았다.

폭포 하단부는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포 상단부 널찍한 반석 따라 계곡의 경치에 취하며 10분여 진행하니

계곡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양쪽 다 골의 폭이나 물의 수량도 비슷하다. 


 

촛대봉 갈림길(촛대봉골과 연하봉골 합수점) 
 

08:50-09:10 이곳이 촛대봉골과 연하봉골의 합수점?

갑자기 의문이 앞선다.

“와룡폭포를 지나면 촛대봉골로 갈라진다고 했는데..”

그제야 조금전에 반석아래의 폭포가 와룡폭포라는 것을 짐작한다. 
 

처음에는 이곳이 시루봉골인줄 알았다. 리본을 찾아 우측으로 계류를 건넌다.

근데 꼭지가 이쪽에도 리본이 보인다고 한다. 다시 백한다.

양쪽에 리본이 하나씩이다. 어디로 갈까?

오늘의 목표는 시루봉-촛대봉방향이다.

 

  


                                                        ▲ 촛대봉골과 연하봉골의 합수점, 길은 좌측 계류방향 

 

 


 

                                                           ▲길 찾기가 까다로운 너덜 길, 감각이 필요하다.


 

잘못하여 연하봉골로 접어들면 안되므로 휴식을 하며 지도도 한번 펴보고..

우측길(연하봉골)로 10여 m 진행해보니 흐흐~~  길이 영 아니다.

이수영님이 이 희미한 너덜 길로 내려왔다니 상상이 안간다.

살아난 것이 신기할 정도다.

촛대봉골은 골이 뚜렷하다고 했으니 이골이 맞을 것이다.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좌측으로 촛대봉골로 진행한다.

하지만 길이 뚜렷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계곡은 계곡, 길은 길 이렇게 구분이 되었지만

이제는 길이 계류에 바삭 붙어 이어지니 구분하기가 힘들다.

육감으로 간다. 작년 칠선계곡 산행시에도 후반부는 그랬다.

운이 따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갈수록 길은 점점 희미해진다. 
 


 

계곡을 버리고 시루봉을 능선을 향하여.. 
 

09:40 또 계류는 두 가닥으로 나누어진다.

촛대봉을 기점으로 좌우로 나누어서 계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작은 실 폭포가 장관이다.

계곡은 보통 상류에 이르면 잡석이 많은 너덜이 이어지는데

도장골은 상류에까지 작은 소와 폭이 어우러져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아~~!

절로 감탄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잠시 휴식을 갖고 길은 찾는다.

혹시나 계류반대쪽이 길이 있나 싶어서 리본을 열심히 찾아보지만 없다.

희미하지만 길은 좌측으로 계속 계류 따라 이어진다. 

 

 

 

                                     ▲촛대봉골의 실폭포, 계곡은 상류에 이르러서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촛대봉에서 내려오는 두 계류의 합수점


 

09:45 길은 더욱 희미해진다.

긴가민가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칠선계곡 상단부를 걷는 기분이다.

계곡을 끼고 계속 너덜 길로 이어진다.

족적에 의해 낙엽이 약간씩 눌려있는 곳이 길이라면 길이다. 
 

09:50 만보계를 보니 9,300보를 가르키고 있다.

대략 길상암에서 4.6km 지점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더 이상 앞으로는 길이 없다.

여기저기 아무리 둘러보아도 리본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좌측에 하나 색 바랜 리본이 전부다.

 

방향은 무조건 좌측이리라 이쯤에서 계곡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도랑같이 파헤쳐진 길이 눈에 들어온다.

차라리 길이 아니라 도랑 같지만 그곳 말고는 길이라 생각되는 곳이 없기에

이제는 능선을 향해 듬성듬성 있는 산죽 길을 치고 오른다. 
 

앞을 가로막거나

걸그적 거리는 것이 없으니 계속 올라갈 뿐이다.

오르다 못 오르면 다시 백할 각오로..

그렇게 100m 정도를 복잡한 생각을 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오르니

드디어 길이 산죽사이로 등로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느낌이다.

선등자의 발자국의 흔적도 보인다.

너무나 반갑다. 그때서야 안심을 한다.

 

 

 

                   ▲20여분 치고 올랐지만 길은 여전히 희미하다. 칠선계곡의 상류처럼 태고의 원시림을 간직한 구간이다.

 

 


 

                                                     ▲길이 이제야 산죽사이로 제법 뚜렷해진다.(계곡에서 25분거리)


 

10:15 뚜렷한 산죽길을 만난다.

하늘이 환하게 트인다. 시루봉능선이 지척이다.

헉헉거리며 암능사면을 치고 오른다.

로프는 전혀 없고 그냥 나무등걸이나 밖으로 들어난 나무뿌리를 잡고 오른다.

이 암봉이 시루봉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올라서니 아니다.

시루봉지능선에 이르려면 아직 30여분을 더 가야할 것 같다.

저기만 오르면 시루봉주능선이라며 힘들어하는 꼭지를 위로 했는데

자기에게 거짓말시켰다며 꼭지가 투덜댄다. 
 


 

운 좋게도 산꾼을 만나 길을 찾는다. 
 

10:50 드디어 시루봉능선에 도착했는데, 헉!! 이번엔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Y자 갈림길인데 우측길은 보지 못하고

암봉이 가로막을 때 좌측으로 우회했다는 어느 분의 산행기가 생각나서

아무생각 없이 좌측 길로 틀었다.

그런데 길은 사면을 우회해서 돌아야 하는데 어! 계속 좌측 능선따라 이어진다.

암봉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길이 틀린 것이다. 

 

 

 

                                                                       ▲촛대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 능선을 막고 있는 암벽, 우측으로 돌면 치고 오르는 길이 있다.


 

바로그때 나이 지긋하신 산님을 만났다. 오늘 첨 만나는 사람(?)이다.

움찔!! 서로가 놀라면서 인사를 건넨다.

삼천포에서 오셨다는 모 산악회대장님이시다.

산용호님도 아신다고 한다.

 

그분말씀 “산용호”를 아는 것을 보니 당신도 대단한 사람이구만.“

크윽~~ “산용호”님 덕분에 나도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다.

하기야 삼천포에 “산용호”님을 모른다면 산꾼이 아니겠지..

용호아우님 고맙수~^^*

다시 암봉아래로 뒤돌아온다. 암봉 우측사면으로 길이 희미하다. 

 

 

  

                                                              ▲시루봉에서 드디어 천왕과 인사한다.

 

 


                                         ▲되돌아보면 도장골과 일출봉능선, 그너머 황금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루봉에서 바라본 거림골

 

 


 

                                         ▲시루봉에서 바라본 촛대봉, 몽땅초에서 촛물이 흘러내린 형상이다.


 

11:15 암봉을 지나 능선따라 시루봉에 올라서니 조망이 좋다.

더군다나 동행자(?)를 만나서 마음까지 든든해진다.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청학연못”이라 한다.

“헉~~~! 청학연못?”

신비에 싸인 <청학연못>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고 본 기억도 있다.

“오늘 좋은 산님을 만나서 횡재 하는구나.”

안내자가 없이는 결코 찾을 수 없다는 지리산의 신비 천지연(?)이다. 
 


 

지리산의 신비경 “청학연못” 
 

12:00 청학연못

청학연못은 촛대봉 주 능선에서 남서쪽으로 약간 벗어나있으며 전설속의 무릉도원과 같다.

세석고원의 절묘한 곳에 숨어있는 청학연못은

옛날에 꼭꼭 숨어있던 금정산의 금샘을 찾는 것 만큼 힘들고

고도1500 고원에 이렇게 큰 연못이 있다는 것에 신비함을 금할 수 없다.

지리산을 구석구석 누빈 내노라 하는 산꾼들도 “청학연못”이라는 이름조차 모를 정도라 하니

그 숨어있는 위치에 대해서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청학연못”위치를 가르켜주시는 삼천포 산님.. 이 지점에서 스틱방향으로 100m 정도의 거리

 

 


                                                                   ▲세석고원 신비속에 감춰진 청학연못

 

 


 

                                                                  ▲대슬랩에서 내려다본 청학연못


 

작년인가 청산님의 산행기에서 가을단풍이 곱게 물든 청학연못을 본 기억이 있었는데

오늘 운이 좋게도 삼천포에서 오셨다는 산꾼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독도법에 자신이 있다는 분도 정밀지도를 펴 놓고 이러 저리 측정을 하며

용을 서 보아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청학연못 
 

내 누님 같은 촛대봉 가르마 타고 흘러가는 나는

시루봉 못 미쳐서 암봉 앞에 멈춰서네.

우측으로 발을 돌려 목마름을 호소 하니

저 넘어 남부능선 음양수가 반기네. 
 

얼마쯤 내려가니 클랙 바위 우릴 반기고

왼쪽으로 방향 틀어 희미한 족적 찾네.

길 따라 내려가니 이 길이 연못가는 길이더냐.

길 따라 가는 길을 교묘하게 위장해도

설마 아닌 지리산 다람쥐를 따돌리랴. 
 

한참을 내려가니 심산중의 계곡소리

지리산 다람쥐는 귀도 밝구나.

우리 올 줄 알고 마중 나온 다람쥐는

무슨 잘못 저질렀기에 두 손 모아 빌고 있네. 
 

오 메 오 메 청학연못 이곳이 우리 이상향.

둥근 타원형에 앞 물 막아주는 대슬랩구간

어느 누가 만들었나 궁금하기 짝이 없네.

천 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무심타 하늘이여

대슬랩 올라 보니 삼신봉과 남부능선 아득하다.

연못 옆에 피어 있는 단풍나무 화사하고

심심잖게 흘러가는 구름 속의 용오름은

우리를 혼절 시킨 청학 연못이여…… 
 

                        -청산님의 산행기에서- 
 


 

백두산에는 천지가 있고

한라산엔 백록담이, 지리산에는 청학연못(천지연)이 있다.

산사랑방의 억지 생각...

산행대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청학연못에서 그분들과 헤어져 촛대봉을 향해 세석고원을 오른다.

촛대봉 아래에 펼쳐진 고산나물 군락지와 듬성듬성 피어있지만 철쭉의 향연은

5월에만 만날 수 있는 세석고원의 최고의 신비경일 것이다.

 

 

 

                                                                        ▲촛대봉을 오르며 뒤돌아본 시루봉

 

 


 

                                            ▲촛대봉에서 바라본 영신봉과 세석산장, 그리고 5월의 철쭉


 

무척 힘들어하는 꼭지를 달래며 연하선경으로의 길을 포기하고

거림으로 하산하기 위해 세석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사람들이 엄청 많다.

“역시 지리산이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돌길을 내려서니

“행님!!” 낯익은 진아우의 목소리다. 
 

어제 통화할 때 종주한다며 세석쯤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했는데

예감이 적중, 종주중인 진아우를 만난 것이다.

예상된 만남이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다. 등로 한가운데서 한참동안 수다를 떤다.

“행님 힘들어 죽겠심더. 행님따라 도장골이나 따라갈걸.. 내가 왜 이 고생인지 모르겠심더.”

ㅋㅋ~~ 후회해도 늦었지만 어쩌랴. 무사종주를 기원하며 굳은 악수로 헤어진다.

천왕봉찍고 다시 장터목으로 백무동까지.. 오늘 진아우의 글 솜씨만큼이나

걸쭉한 걸음걸이가 될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이수영님도 지리에 들었다기에 전화를 해도 계속 연결이 되지 않는다.

세석산장에 도착해 라면을 끊여 때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랜만에 산에서 먹어보는 따듯함이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인다. 세상사 다 이 맛이리라.

1시간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내려서려는데 이수영님의 전화다.

 

 

 

                                                                                ▲하산길의 세석교

 

 


 

                                                                          ▲아름다운 거림골의 소폭 

 

 


 

                                   ▲오후 햇살이 약간 비켜선 거림골의 초록풍경도 도장골 못지않게 아름답다.


 

작은새골에서 초입을 못 찾아 큰 새골을 치고 올라 이제 칠선봉에 도착했단다.

세석까지 오려면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수영님과 진아우의 안산을 기원하며 거림으로 내려선다.

거림골의 풍경 또한 도장골 못지않게 아름답다.

 

단지 우리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우리들 마음이 바라보는 그 가운데에 있었다.

도장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약간 비켜선 오후햇살에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거림골의 풍경

연녹의 향연에 가슴이 아련하다. 
 

  - 끝 - 감사합니다.